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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Savage’ (2021)

평가: 3.5/5

차세대 SMP의 이상향

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실재하는 우주의 변천사와 평행을 달린다.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소멸했지만 그들의 파편은 지금까지도 가요계를 수놓고 있다. 허공에 흩뿌려진 유산은 팽창의 자양분이 되어 2020년 마침내 일원화된 신세계 SMCU(SM Culture Universe)를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선배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태어난 거대 세계관의 주인공이 바로 걸그룹 에스파다.

팀 이름부터 방향성은 명확했다. 인간 멤버들이 자신의 데이터에 기반한 아바타 ‘아이(æ)’를 만나 경험하게 될 메타버스 스토리. 미래 기술과 음악의 접목이란 사실만으로 등장 전부터 이목이 쏠렸다. 낯익은 이미지로 점철된 데뷔곡 ‘Black mamba’가 그 기대에 미치진 못했으나 올해 손목을 꺾는 디귿 춤과 쫀득한 발음을 곁들인 ‘Next level’이 인기를 끌며 에스파는 단숨에 대세로 우뚝 섰다. 산업 간의 융합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힌 건 결국 음악이었다.

유행의 본질을 파악하고 돌아온 이들의 음조는 더욱 맹렬해졌다. 강렬한 비트와 찢어 늘인 신시사이저 그리고 극적인 고음 애드리브까지, ‘Savage’의 기틀은 보아와 동방신기가 프로듀서 유영진과 함께 주도했던 2000년대 중반 SMP다. 물론 그 시절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후렴구는 엔시티 127의 대표곡 ‘Cherry bomb’처럼 짧은 호흡으로 받아치며 중독성을 배가하고, 브릿지는 엑소의 알앤비 발라드 ‘What is love’를 들여와 보컬 기량을 발산한다. 더불어 둔탁한 타격의 틈엔 영국 일렉트로닉 레이블 PC 뮤직의 시그니처 샘플들을 분절시켜 입체감을 높인다. 기획사의 노하우를 집약하고 하이퍼 팝까지 이식한 K팝 트랙은 혁신적 관점으로 시대를 매끈하게 앞서간다.

뒤이은 ‘I’ll make you cry’까지 야성적인 자세로 일관한 데 비해 후반부는 톤을 낮추며 캐주얼한 면모를 드러낸다. 몽롱한 멜로디의 ‘자각몽’은 이달의 소녀나 레드벨벳의 드림 팝이 스치고, 자존감이 충만한 ‘Yeppi yeppi’는 있지의 ‘달라달라’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비교적 친숙한 질감이 자칫 독보적인 매력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채로운 전자음과 목소리의 블렌딩은 음악적 친밀감을 제고하며 타이틀곡의 접근법이 낯선 이들마저 새로운 차원으로 빨아들인다.

음악 외의 콘텐츠도 흡인력을 강화한다. 어린이 만화에 나올 법한 ‘ænergy’의 대사나 ‘Savage’ 뮤직비디오 속 2D 애니메이션은 키치한 즐길 거리다. 막연한 연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훗날을 위한 면밀한 설계로 짐작된다. 현실의 ‘나’와 가상의 또 다른 자아 ‘아이’는 익명에 가려진 시스템의 양면이고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빌런 ‘블랙 맘바’는 딥페이크를 비롯한 기술 범죄의 초상이다. 허구의 이야기 속 투쟁은 디지털 사회의 실태고 이를 조영하는 비주류 매체는 유머 섞인 지적질을 날린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서브컬처의 상승으로 근래 보기 드문 아이돌식 풍자를 완성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메타버스는 점점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여전히 흐릿하다. 엉성한 3D 모델링과 각종 표절 논란만 봐도 생소한 개념은 그저 키워드 마케팅에 불과해 보인다. 그럼에도 네 명의 소녀와 네 개의 홀로그램이 그려갈 문화 행보는 근시안적 태도의 불손함을 상쇄한다. 탄탄한 가창력과 과거의 질료로 구축한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다각적인 고발과 비판의 메시지. < Savage >는 미디어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며 가장 이상적인 SMP를 주조했다. 시대가 공증할 수 있는 ‘Iconic’한 존재, 선구자의 발걸음에 신세기의 성패가 달렸다.

– 수록곡 –
1. ænergy
2. Savage
3. I’ll make you cry
4. Yeppi yeppi
5. Iconic

6. 자각몽 (Lucid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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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BoA) ‘BETTER’

평가: 3.5/5

데뷔 20주년. 이제 보아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 솔로 가수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아시아의 별’ 같은 거창한 칭호를 잠시 내려놓아도 케이팝 세계화의 프로토타입, 가혹한 트레이닝과 거듭된 의문을 모두 감내하고 이겨낸 극복 스토리, 쉬지 않고 탄탄히 쌓아 올린 디스코그래피가 넘볼 수 없는 입지전(立志傳)을 구축한다. 하지만 10번째 정규 앨범 < Better >는 여유로운 커리어 톺아보기가 아니다. 여전히 전진하는 베테랑 아티스트의 치열함 아래 소속사의 정신과 지향점이 짙게 물들어있다.

‘Better’의 전면 배치부터가 그렇다. 실험적이었던 ‘Woman’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Kiss my lips’, ‘Only one’ 대신 오랜만에 정통 SMP를 복각하는 모습은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결코 대중적인 선택지라 볼 수 없음에도 이 곡을 상징적인 작품의 타이틀로 선정했다는 데서 회사는 ‘ID : Peace B’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아의 서사를 핵심 아이덴티티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이것이 자사의 세계관 중심에 있음을 역설한다. 과감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힘 있는 가창과 퍼포먼스로 완성하는 노래 속 2020년의 보아가 2000년대의 보아, 2010년대 보아와 함께 호흡한다.

여러 부분에서 < Better >는 < Kiss My Lips >처럼 개인의 작품보다 기획사 단위의 결과물로 인식된다. ‘Better’에서 ‘Temptations’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태민의 ‘Criminal’ – ‘일식 (Black Rose)’를 연상케 하고, 보아가 작업에 참여한 보사노바 스타일의 트랙 ‘All that jazz’는 NCT의 ‘Dancing in the rain’과 유사한 위치 배치와 구조를 가져간다. < Woman >에서도 지적된 바 있는 약점으로, 강렬하게 출발한 첫 트랙이 긴장감을 불어넣으나 막상 결과물은 여전히 관습적인 프로덕션의 흔적이 남아 점차 느슨해지는 모습이다. 문샤인(Moonshine)의 그루비한 ‘Got me good’은 ‘Better’의 자매 트랙으로 후반부 무게중심을 잡으며 ‘Gravity’는 전형적인 발라드 패턴의 곡으로 차분한 마무리를 의도하는 기능에 충실할 뿐 아티스트의 새로운 베스트 넘버가 되기엔 약하다.

그럼에도 보아의 영민한 곡 해석 능력과 장르 불문의 아우라는 안이한 노래에도 특별함을 부여한다. 런던 노이즈(LDN Noise)가 제공한 선 굵은 베이스 기반의 디스코 곡 ‘L.O.V.E’에서 팔세토 가창으로 코러스와 호흡을 맞추며 감각적인 면모를 더하더니 모던한 ‘Honey & diamonds’에서는 섬세한 가녀림과 강한 확신을 오가며 내부의 다양한 무드를 오간다. 미니멀한 비트에서 한껏 숨을 죽이고 냉정하게 켄지의 가사를 내뱉는 ‘Cut me off’도 독특한 지점. 2010년대 초중반 유행한 팝 스타일을 가리키는 수록곡임에도 매끄럽게 잘 소화하여 현재의 것으로 옮겨오는 관록이 돋보인다.

일률적 기획의 아쉬움은 감동을 선사하는 쪽이 퍼포머로의 보아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현재와 미래를 투영하는 보아의 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로파이 질감의 유행하는 얼트 알앤비 장르를 활용한 ‘Cloud’, 공간감 있는 구성과 두터운 하모니, 벅차오르는 드럼의 ‘Start over’는 그가 갈 수 있는 길이 아직도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Only One > 속 ‘네모난 바퀴’가 떠오르는 ‘Little bird’에서 ‘마침내 난 꿈을 이뤘죠 / 넘어진 만큼 더 높이 뛸 수 있었죠’라 자유로이 노래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은 앨범에서 가장 거대한 카타르시스다. 이런 순간이 이 의미 있는 작품에 그리 많지 않다.

잘 만든 팝 앨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멈춤 없이 진격을 외친 것에 비해 음악 그 자체로 큰 파도를 몰고 오진 못한다. 자연스러운 감동 이전에 SM 브랜드 철학의 재확립 전략과 그 속에서 보아의 ‘경영철학’ 역할이 먼저 다가온다. SM은 보아가 있기에 어떤 확장과 다소 허황되어 보이는 도전이라도 과감히 시도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최근작들과 < Better >에서 보아 운신의 폭은 제한적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보아가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큰 이름인 것이다. 소속사의 정수와 같은 아티스트의 기념작은 수작이 아니라 걸작이어야 했다.

– 수록곡 –
1. Better
2. Temptations
3. Cloud
4. All that jazz
5. L.O.V.E
6. Cut me off
7. Got me good
8. Honey & diamonds
9. Start over
10. Gravity
11. Littl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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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보아 인터뷰(2016/02)

한류가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 권에서 발화하고 있을 때 더 큰 대중문화 시장인 일본을 정복해 그 확산력, 폭발력, 파괴력을 주도한 인물은 말할 필요 없이 보아(BoA)다. 공인 수식이 ‘아시아의 별’이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K팝’ 글로벌 비상은 보아가 일본을 흔든 시점과 궤를 맞춘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은 그가 일본에 진출한지 15년이 된 해다.

이제 막 30대에 들어섰지만 중견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보아의 스탠스는 견고하다. 지난해 발표한 통산 8집 < Kiss My Lips >는 이즘의 올해 베스트10 앨범에 선정됐고 서울가요대상에서도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해 그는 고생한데 따른 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견으로서의 음악지향과 갈등, 지금의 심경 등 전반이 궁금했다. 13년 만에 이즘과 만난 보아는 음악이야기에 즐겁게 집중했다.

작년 < Kiss My Lips > 앨범은 평단과 음악관계자들 사이에 반응이 좋았다.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보상받은 것 같아서 다행, 행복이라고 밝혔는데 앨범 작업하면서 무엇 때문에 고생을 했나.
아무래도 전체 노래를 다 쓴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7집 ‘Only one’을 냈을 때 사실 ‘Only one’도 제가 쓴 노래였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세요. 제가 작사, 작곡하는 것을 잘 모르셔서… 8집 때, 2015년은 데뷔 15주년이었거든요. 그래서 15주년을 기념으로 해서 재밌는 무언가를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내가 직접 손수 만든 앨범을 팬들에게 선물을 하면 어떨까”하는 판단을 했죠. “될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혼자 한번 써볼게요.”라고 회사에 얘기를 해서 혼자 쓴 노래들도 있고 또 외국 작가들이 와서 캠프를 진행할 때 저도 같이 참여를 해서 쓴 노래들도 있어요. 편곡자 분들도 지속적으로 만났고. 시간 할애하는 것이나 계속 아이디어를 내는 것. 그런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앨범 작업은 어느 정도 걸렸나.
시작한 건 2014년도 거의 초반인 1, 2월 정도부터였으니까 1년이 넘게 걸린 거죠. 앨범이 5월에 나왔으니까요. 말씀 드린 대로 정성스럽게 만들어 선물 꾸러미를 팬들에게 바친다는 생각에서 작업시간이 꽤 길었죠.

경력이나 위치 때문에 앨범 접근 방식도 달랐을 거로 본다. 우선 수록 곡을 12곡으로 빼곡히 채워 대단했다. 워낙 싱글, 미니가 판치다보니 아직도 앨범 곡수 형식미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7집의 수록곡이 7곡 밖에 안됐어요. 그때 기자 분들, 관계자들로부터 이건 미니 앨범인데 왜 정규라고 하는 거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정말 좋은 노래만 내고 싶어서 한 건데. 그때 마음에 뭔가가 남았나 봐요. 그래서 이번에는 풀 열두 곡을 채워서 내겠다(웃음)고 그랬죠. 사실 만든 노래는 20곡 가까이 있었구요.

한일 양국 왔다 갔다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워낙 스트레스도 많은 슈퍼스타인데 굳이 자신이 곡을 쓴다는 게… 왜 작사, 작곡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뮤지션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인가?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고요. 이번 앨범은 정말 팬들에게 선물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저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어요. 왜냐면 아이돌이란 타이틀로 데뷔했던 10대 소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면 저 또한 ‘내가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거예요. 욕심이라면 그게 욕심이었죠.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하긴 했죠. 전 곡을 다 채워서 넣는다는 게… 이제는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항상 일을 할 때 일에 대한 흥미를 찾아가고 싶은 스타일이라서 다음에 또 노래를 내게 된다면 내 노래가 아니라 어떤 다른 작가의 노래를 나만의 방식으로 꾸며서 색다른 옷을 입혀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꼭 내가 노래를 쓸 겁니다!’라고 고집을 하는 건 아니에요.

8집의 12곡 중에서 제가 생각할 때 후크가 명확한 ‘Shattered’하고 ‘Fox’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Shattered’는 곡 진행의 변화폭도 크고 몽환적이고… 이 노래 작업한 과정을 들려 달라.
저랑 ‘언더독스’ 팀하고 처음 같이 작업을 한건데요, (스스로 요청한 것이냐고 묻자) 네. 이번에 작업을 했던 팀이 언더독스 랑 ‘스테레오타입스’ 랑 테디 라일리 등등이었는데… 테디 라일리 캠프와 하니까 너무 마이클 잭슨 같은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웃음) 저 또한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 노래를 리패키지로 내려고 했는데 좀 여의치가 않아서 아직 발표를 못한 상태입니다. 언젠가는 나오겠죠? 근데 언더독스가 한국에서 캠프를 갖는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욕구가 솟구쳤죠.

어떤 측면에서?
그 팀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나 프렌들리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어떨까 궁금해서 호기심 반, 이렇게 간 거죠. 캠프를 가면 되게 즐거운 게 트랙을 막 들려줘요. 그럼 뭔가 쇼핑하는 기분인거예요. (웃음) 근데 ‘Shattered’를 딱 들었는데 ‘아 이건 꼭 써야겠다!’, 근데 한국 A&R 분들은 좀 어려운 곡이라고 하셨는데, 몽환적인 것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집했죠.

몽환적이지만 후크가 확실하다.
네. 그게 약간 제가 멜로디를 쓸 때 습관 아닌 습관이기도 한데, 코러스 부분은 좀 확실하게 캐치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또 같이 탑 라인을 해준 티파니라는 친구도 저랑 동갑에 잘 통해서 금방 금방 나왔던 노래예요.

앨범을 딸에게 들려준다면 아델에게 선수를 뺏겨서 그렇지 (웃음) 보아의 ‘Hello’도 만만치 않다. 예쁜 곡이다.
(웃음) 감사합니다. 저는 가사를 쓰면서 사실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면서 몸 다치는 건 신경 많이 써도 마음 다치는 건 신경을 많이 안 쓰잖아요? 근데 내 마음에게 내가 한번이라도 진정성 있게 안부를 물어본 적이 있나, 내가 누구한테 받은 상처나 이런 거에 대해서 정말 진심어린 사과나 위로를 나 자신에게 해본 적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로 썼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는 감성적이다가 글을 쓸 때는 냉철해야 하는 게 평론가들이다. 그래서 감성과 이성이 동거해서 이중적이다, 심지어는 때로 변태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데 예술가들은 다 그렇지 않나?
네, 다들 조금 변태성이 있죠. (웃음) 맞아요. 저희 직업도 맨 정신으로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아요.

백 스테이지에서 보아는 되게 침착할 것 같다. 근데 막상 온 스테이지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춤추고 그럴 것 같다. 한마디로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커 보인다. 거기서 어떤 괴리를 느끼지 않나?
저는 사실 백 스테이지 일이 더 잘 맞는 성향 같긴 해요. 만들고, 스튜디오에 있는 시간을 너무 좋아하고… 근데 저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 그 긴장감 때문에 ‘나는 정말 무대를 올라갈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 것 같다.’고 항상 얘기해요. (웃음)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게 이제는 사람들이 ‘보아가 연말에 무대한대’, ‘뭐 어떻게 할까’, ‘당연히 라이브 하겠지?’, ‘보아는 라이브 해야지. 미친 듯 춤추면서 그래도 라이브 해야지.’ 이런 기대감이 있잖아요. (웃음) 항상 그런 기대감이 저에겐 점점 부담이 되고 강박이 되니까 무대가 이제 더 어려워지죠. 하지만 그걸 하면 너무나 뿌듯하고… 그런 면에서 저도 그런 이중적, 변태성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패티김 여사도 공연을 앞두고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화재가 나서 공연이 취소 됐으면’ 하고 기도하곤 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선다는 게 일반인은 하기 어렵다, 사실은.
그렇죠. 근데 저는 공연은 조금 더 안심이 돼요. 왜냐면 만회할 기회가 뒤에 스물 몇 곡이 있으니까. 근데 생방송 무대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이 더 힘들어요.

근데 <케이팝스타>는 너무 잘했다.
케이팝스타는 앉아서 듣는 입장이니까. 그거랑 또 내가 직접 올라가서 하는 게 다르죠.

그래도 여유 있게 하던데. 그래서 그때 ‘멘토 언니’ 되지 않았나.
하하하 멘토 언니? (프로그램 하는 게) 재밌었어요.

‘Kiss my lips’는 만들고 나서 이게 타이틀이다 하는 생각을 바로 했나
사실 저는 노래를 12곡을 회사에 던지고 ‘타이틀을 고르십시오.’하고 맡겼어요. 대중가수로서 앨범에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들으시고 판단을 해주세요!’라고 했는데 압도적으로 ‘Kiss my lips’가 높았다고 하고, 그 다음이 ‘Fox’, ‘Smash’ 그렇게 갔어요. 저는 솔직히 ‘Kiss my lips’를 내면서도 이 노래는 음원으로 많은 사랑을 못 받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왜냐면 너무나 생소한 음악이니까요.

좀 어려울 수도 있다.
뚜렷한 훅도 없고 이게 어디가 코러스인지 구분이 안 되는 노래기 때문에. 근데 한번쯤은 시도를 해야 하는 음악이지 않나 싶었어요.

‘Hurricane venus’때도 그렇고 ‘Only one’에서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Kiss my lips’ 이번에도 본인이 빅 스타, 월드스타인 것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큰 것 같다. 대중가요는 소통이다. 왜 그냥 편하게 가도 욕먹을 나이도 아니고 욕먹을 위치도 아니고 욕먹을 상황도 아니다. 근데 너무 자기 위치에 따른 강박이 작용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Hurricane venus’도 좀 쉽게 해도 되는데 내가 적어도 월드스타로 뻗어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Kiss my lips’ 때도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차라리 ‘Fox’나 ‘Clockwork’, ‘Who are you’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고려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결국은 음악적 선택입니다.

‘Who are you?’를 선공개로 발매한 이유는?
‘Kiss my lips’가 조금은 어려운 음원이라는 판단 하에 부담 없이 가자. 더 솔직하게 ‘Who are you?’는 이거 100% 음원 잘 될 노래니까 한 방 치고, ‘Kiss my lips’로 무대에서 보여준다는 전략이었어요. 어차피 저희는 앨범을 프로모션 하는 거고 싱글 프로모션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죠. 저희가 음악 방송을 2곡씩 하잖아요. 근데 이 2곡을 방송 3사마다 모두 다른 노래로 했어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음악 방송의 시청률이나 관심도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것과 이제 그런 모습을 보여드려도 많은 분들이 찾아서는 보시지 않는다는 점이죠. 점점 음악자체가 인스턴트 화 되는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 안에서는 8집 앨범이 중요한 해에 나온 앨범이기도 하고,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15년 이상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정규 풀 앨범을 꼭 내고 싶다, 뭐 앞으로 활동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욕심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Kiss my lips’가 첫 싱글이었을 때 ‘보아는 여전히 앨범 아티스트다!’ 하는 생각은 든다. 그 정도의 무게감, 존재감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좀 자주 하려고요 이제는. 아까 말씀하신 ‘Hurricane venus’도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내는 거였기 때문에 저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너무 부담이 많았던 앨범이긴 했어요. 예를 들어 3D 티비 때문에 뮤직비디오를 3D로 찍어야 하고 뭔가 시도가 굉장히 많았던 앨범이었어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오긴 했는데, 성과를 떠나서 그 노래는 정말 지금 공연할 때 써도 너무 좋은 노래예요. 사실 ‘Only one’은 더 캐주얼하게 냈던 노래긴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대중적으로 들어주셨던 것 같고. 근데 저는 너무 공백기가 길잖아요,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그 기간을 좀 줄여가면서 나도 편하게 음악을 낼 수 있는 싱글 체제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제 많이 들더라구요.

‘Only one’ 할 때 마이크를 끄고 안무만 한 적이 있다. 내가 알던 보아라면 어떻게든 노래와 춤을 다 해내리라 했을 것 같은데 뭔가 하나를 포기하고 춤, 퍼포먼스 측면을 극대화하는 것을 봤을 때 다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좀 벗어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음악적으로도 사실 ‘Hurricane venus’ 이전은 뭔가 컨셉트를 연기하는 보아가 노래를 부르는 거라면 ‘Only one’ 부터는 진짜 인간 보아가 자기 노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캐주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데, 그 중간 기점에 뭔가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 아닌가. 6, 7집 사이의 간극이 있었던 것 같다.
음, 뭐가 바뀌었을까요. 나이가 들어서 유해졌나? (웃음)

그때 6, 7집 사이가 일본 활동에서 국내활동으로 무게중심이 좀 이동할 때 아니었나.
네, <케이팝스타>를 2011년에 시작해서…

그런 것도 큰 변화다. 사실 2007-8년까지 보아는 거의 일본 가수이지 않나. 2010년까지는 일본에 임대한(?) 상황이었으니까. 일본에서는 많이들 보아를 일본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들었다.
그게 초반에는 한국 출신이라는 얘기도 했었고 신문에도 ‘한국 출신의 가수 보아’ 이렇게 나는데 사람들에게는 제가 그냥 어디 출신이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냥 ‘보아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노래하는 가수’라고만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일본어 싱글이나 앨범 낼 때하고 한국어로 낼 때 어느 것이 더 편한가.
마음이요, 아님 노래 할 때요? 사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일어가 조금 더 편하다고 느꼈어요. 왜냐면 우리말로 부를 일이 5년 정도가 없었으니까. 근데 또 이쪽에서 더 활동을 많이 하고 일을 하니까 또 한국어가 더 편하고 이제는 역으로 가끔 일본 가면 일본어가 좀 막힐 때도 있어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적으로 크게 얻은 소득은?
일단은 제이팝 나름의 캐치한 멜로디 감성? 제 8집을 들으시면 굉장히 제이팝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맞다. 약간 뽕끼가 전반적으로 흐른다 (웃음)
근데 그게 케이팝 뽕끼는 아니잖아요. (웃음) 꼭 코러스 부분에서는 알기 쉬운 멜로디여야 하고, 그런 게 무의식중에 좀 있나 봐요 제가. 근데 어쨌든 그런 노래들이 많이 기억에 남고 좋잖아요. 그런 게 도움이 많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또 사실 초반에는 일본에서 음악을 더 많이 냈고, 제 목소리 컬러를 믹스 과정이라든지 좀 더 명확하게 잡아준 게 일본 쪽이어서 그 영향이 우리에도 많이 도입이 됐었죠. 엔지니어링이라든지.

‘아틀란티스 소녀’ 들을 때 놀란 건 유난히 숨소리가 많이 들어갔다. 숨소리는 위험해서 보통은 지우려고 한다. 괜찮았기 때문에 놔둔 것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90년대만 해도 가성을 쓰는 가수는 노래를 못하는 사람처럼 많이 인식이 됐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꼭 진성으로 어디까지 올라가냐 이게 정말 중요했던 시기였는데 저는 가성을 쓰는 게 더 편했던 목소리였어요. 왜냐면 어렸을 때 소프라노 이런 걸 조금 했거든요. 진성이 너무 어려웠는데 일본에서 제 가성의 장점을 찾아준 거죠. 코러스도 녹음해보고 발라드나 이런 것도 하면서. 저는 진성, 가성을 섞는 게 너무 편했어요.

한국에서 강타 오빠가 2집 때 ‘늘’이라는 노래를 줬는데, 녹음을 하러 갔다가 키가 너무 높아서 “오빠 이거 키가 너무 높아서 내렸으면 좋겠어요!” 했더니 “야, 시간이 없어서 스트링을 녹음 해버렸어 못 내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럼 오빠 제가 이거 가성을 좀 섞어서 불러 봐도 될까요?” 하고 불렀더니 그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수만 선생님도 ‘아, 보아한테 이런 목소리가 있었어?’라고 하면서 놀라셨구요. 다른 분들도 가성을 쓰는 게 사실은 노래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던 계기였죠. 그래서 곡을 쓴 (황)성제 오빠도 저의 그런 가성이나 숨소리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보컬 측면에서 8집 가운데 이 노래는 잘한 것 같다 하는 곡이 있다면 어떤 노래인가.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Shattered’도 굉장히 어려웠구요, 그 톤을 잡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그게 진짜 진, 가성을 섞어야 나올 수 있는 목소리라 그 보컬을 잡는 게 어려웠어요. 또 힘들었던 게 노래를 만들면서 가이드를 만들잖아요? 그때 목소리가 훨씬 좋아요. 소리가 너무 열려있고 아무런 부담이 없으니까.

제가 ‘Love & hate’ 노래 녹음을 세 번 다시 했어요. 그 가이드 느낌이 안 살아서. 그래서 ‘우리 이거 그냥 가이드 갖다 쓰면 안 될까?’ (웃음) 어차피 콘덴서 마이크에 했으니까 갖다 쓰자, 가사 몇 개만 고치자’ 그랬어요. 그 톤이 안 잡히니까. 열심히 부르긴 했는데… 다 열심히 불러놨는데 어떡하죠. 너무 어렵다.

그런 면에서 ‘Kiss my lips’가 잘한 노래라고 본다.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보아다. (웃음)
제가 ‘Kiss my lips’ 믹스를 23번 했어요. 제 앨범 때문에 저희 엔지니어 기사님들이랑 녹음실이 마비가 됐었거든요. 데드라인은 정해져있지, 믹스는 밀려있지, 통과는 안 나지, 엄청 힘들어 하셨어요. 근데 스테레오타입스만의 믹스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이 트랙을 줬을 때의 그 느낌이 안 사는 거예요. 정말 제 목소리 톤도 그렇지만 기타 루프나 이런 소리가 왜 안살까. 그래서 정말 고집도 많이 부리고 수정도 많이 보고 마스터를 두 번 했거든요. 왔다가 탐(드럼 파트) 소리 하나 때문에 ‘다시 해주세요~’ 하기도 하고.

일반인으로 따지면 보아는 너무 젊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전 노장 취급을 한다. 그것을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저는 정말 젊게 살고 나이를 잊고 사는데 내 나이를 주변이 더 잘 아는 느낌? 나는 정작 잊고 사는데 그런 느낌이 들어요. 자신이 나이 먹는 건 생각 안하고 벌써 보아 걔가 그렇게 됐어? (웃음)

또 이것도 묻고 싶다. ‘Kiss my lips’, ‘Who are you?’, ‘Shattered’, ‘Fox’란 노래도 그렇고 ‘Double jack’, ‘Love & hate’, ‘Green light’도 그런데 대체로 노래가 퍼스널(personal)한 느낌이 든다. 그 정도 되면 누구에게 희망을 줘야지 하는 공적인 주제가 있을 법한데 사적인 접근이 대부분이다.
저는 확실히 여자 감성이라 그런 류의 노래가 많은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여 전사 같은 이미지를 하고 싶지 않아서. (웃음). 항상 SM에서 하던 ‘센’ 가사들 있잖아요. 의미를 잘 모르는. 그 가사들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냥 제 나이 여자들이 느끼는 것, 그런 거를 쓰는 게 가장 솔직하고 나다운 게 아닐까 싶었어요. 자켓도 보면 굉장히 편안해요. 그냥 여자. 뭐 화장 좀 진하게 하고 약하게 한 거? 그거 두 개밖에 다른 게 없죠.

‘Double jack’의 경우 그래요. < 비긴 어게인 >의 그 ‘더블 잭’있잖아요? 저도 더블 잭이 있긴 했는데 굳이 쓸 일이 없었죠. 근데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저희는 이어폰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못할 때는 그거 꽂아서 같이 듣고 빨리 빨리 진행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만 썼지 그렇게 로맨틱하게 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웃음) 그걸 보면서 ‘더블 잭이 Y모양인데 사람의 심장이 이어진다고 생각이 되면 어떨까’, 공유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썼어요. 그렇다고 가사가 100% 가상은 아니죠. 그럴 수가 없죠.

사적인 질문인데, 보아씨 부모님은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자랑스러운지 걱정스러운지 궁금하다. 일본에 오래 활동하면서 제대로 딸을 곁에 둬본 적이 적으시니까, 가장 이쁠 때.
그래서 저희 엄마가 절대 독립 못하게 하세요. 다 같이 살거든요. 부모님은 굉장히 개방적인 분이세요. 그래서 한 번도 뭐 해라 하지마라 강요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오빠들도 바이올린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피아노가 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로 대학을 갔고 작은 오빠는 춤이 좋다, 만화 그리는 게 좋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기 영상을 하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공부해서 가고. 그런데도 (저의) 독립생활을 허용하지 않으시죠. 연예활동은 좋아하시고 정신건강 상태가 좋은 거에 가장 안심하세요. 사실 연예계 쪽에 오래 있으면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좀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널 보고 있으면 되게 평범한 30살 여자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죠.

독립하는 걸 싫어하신다면 시집가는 것도 그렇게 달가워하시진 않겠다.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웃음) 결혼하는 건 괜찮은데 혼자 사는 건 안 돼, 그런 거죠. 혼자 살면 제가 너무 놀러 다닐까 봐 안 된다는 걸까요. (웃음)

2003년 인터뷰 마치고 ‘보아 저 사람은 춤추고 노래하기 전에 문학소녀여야 했다고 그랬던가, 책 읽고 조용히 있는 게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아까 백 스테이지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때 생각이 들더라.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그러게요, 원래 꿈이 의사였는데. 의사할 껄 그랬나. (웃음) 2003년 그 무렵에는 책도 많이 읽었어요. 요즘에는… 이게 사람이 점점 나태해진다니까요. 점점 책을 안 보게 되고.

보아의 베스트 곡은? 본인한테는 안 맞아도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 또는 시류에 맞추기 위해서 한 곡이 아니라 진짜 내 취향, 내 감성, 내 스타일을 반영한 곡.
그럼 저는 8집의 경우 ‘Who are you?’랑 ‘Fox’인 것 같아요. 저는 좀 밝으면서도 감성적인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Only one’이나 이런 노래를 참 좋아해요.

‘Only one’은 좋아하면서 부른 것 같았다.
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도 미디움 템포 알앤비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왔고 좋아했어요.

그럼 결정적인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오늘날 보아를 음악하게 만든 사람들. 테디 라일리는 들어갈 것이고.
테디 라일리도 있고, 사실 그런 거 있잖아요. 어렸을 때 보면 남들이 안 듣는 거 찾아듣고 싶고 그렇잖아요. 갑자기 도넬 존스 막 이런 거. ‘U know what’s up’ 이런 노래. 되게 감미로운데 사람들 잘 모르고. 지금은 많이 알지만, 어셔의 댄스 노래도 좋아하지만 슬로우 잼 감성의 노래에 끌렸죠. 이번 저스틴 비버 앨범이 너무 맘에 드는데 거기에 ‘Love yourself’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어요. 저스틴 비버의 EDM도 좋고 다 좋은데 그런 감성적인 노래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비트가 강한 노래보다는.

한동안 SM의 간판이었고 톱스타였지만 지금은 모든 상황이 말해주듯이 주력 상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팬들로부터는 기획사로부터 홀대 받는 것 아니냐는 불평 아닌 불평이 있기도 했다. 본인으로서도 이제 내가 회사의 중심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 나이로 볼 때 힘들지 않았나.
주력 상품은 항상 바뀌는 것 같아요. 주력 상품이라는 건 항상 바뀌지만 그 회사의 가장 핵심 상품이라고 해야 하나요, 진짜 주(主)가 되는 상품. 왜 농심도 ‘너구리’ 말고도 많은데 너구리는 항상 오래도록 죽지 않는 사랑을 받잖아요. 새로운 게 나오면 또 그게 주력 상품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물 흘러가듯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지만 우리가 언제든 먹고 싶을 때 찾아 먹을 수 있는, 그런 것 같아요. 요즘에 라면의 신상들이 널려 있지만 너구리는 스테디셀러잖아요. 그래서 사실 저는 그런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왜냐. “야 SM=보아잖아”, 근데 SM=누구잖아, SM=뭐잖아 이런 얘기는 안하잖아요. 그거에 대한 자부심?

앞으로 내가 SM이 아니라 대한민국 또는 아시아 가수로서 앞으로 음악적이든 뭐든 내가 보여줘야 할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전 정말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거든요. 많은 분들이 그러세요. 보아는 약간 국가대표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마돈나처럼 60대에 육박해도 무대에 서줬으면 좋겠다는 말인데, 근데 요즘은 여자 댄스가수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

또 저희 회사에서 ‘스테이션(Station)’이라는 시스템을 도입을 했는데, 노래를 내는 거에 있어서 저조차도 부담감이 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항상 그래도 정규를 해야지 그런 게 있었는데 그렇게 되다보니 한 곡 한 곡 내는 거에 너무 부담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캐주얼하게 내가 어떨 때는 정말 밝은 것도 내보고 어떨 때는 발라드도 내보고 뭔가 저조차도 부담 없이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는, 그런 활동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죽어도 10집은 꼭 채우기 바란다.
그럼요. 해야죠. 근데 이제 다시 그런 시대가 오는 것 같아요. 싱글을 내서 싱글을 모아서 신곡을 채워서 정규를 내는, 약간 옛날 일본식의 시스템이 되는 것 같아요. 미국은 싱글을 냈다가 앨범을 내고 이걸 1, 2년에 걸쳐서 리컷해가면서 프로모션을 하는데 사실 저는 그게 하고 싶었거든요 이번 앨범에서. 근데 그게 안 되더라구요.

장기적으로 많은 공을 던져보고 싶다고 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어떤 음악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는지.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됐지만 ‘스테이션’ 잡혀있는 게 있나.
지금 잡혀 있는게 있긴 한데 아직 진행이 안 되어서요. 확실하게 뭘 할 거라는 말씀은 못 드리는데 확실하게 제 노래는 아니에요. (웃음) 왜냐면 저는 작년에 과다출혈을 했거든요. 너무 많이 썼고, 한번 딱 하면 정말 몇 년은 ‘로직(작곡 프로그램)’을 열지도 않아요. 일단 다른 사람들의 감성이나 멜로디나 그런 음악을 통해서 충격도 많이 받고 싶고, 노래하면서 그런 음악들을 꾸미는 재미가 또 있거든요.

2003년부터 해온 공연이 현재 98회를 했고 1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부터 밴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밴드 라이브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영남씨가 감탄하기도 했다. 밴드 라이브를 고집하는 이유, 앞으로 어떤 퍼포먼스나 공연을 만들고 싶은지 말해 달라
제가 태어나서 처음 가졌던 공연도 밴드 라이브였고, 밴드 라이브가 없는 공연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은 MR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밴드 공연만의 드라이브감이 너무 좋고, 그게 있어야 제 에너지가 2시간 반을 채울 수 있어서 앞으로도 밴드는 계속 고집할 것 같아요. 100회 공연이 어디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예술의 전당에서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아마 대관을 안 해주시지 않을까요. (웃음) 댄스가수 쪽은 좀 더 박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할 때도 폭죽이나 이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

8집을 신보라고 간주하고 ‘이 앨범은 이렇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면.
8집은 보아라는 여자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멋있는 보아, 귀여운 보아 뭐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보아가 있겠지만 그냥 제 나이에 맞는 여자 보아가 표현하는 앨범이에요. 사실 제 앨범을 저도 아직 CD로 못 들었어요. (‘무서워서 못 듣는 거죠’ 라고 했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확실히 mp3랑 CDP는 음질이 다르니까…이제는 듣고 싶네요.

보아는 아티스트로서 어떤 사람인가.
보아라는 사람은 일을 참 좋아하고 항상 재밌게 살고 싶은 여자,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 하나를 하더라도 제 스스로가 그거에 대한 흥미를 못 느끼면 100% 몰입을 할 수 없는? 그래서 항상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재미를 찾아가는.

내 춤, 현재 추고 있는 춤은 많은 변화가 있어왔지만 그 춤은 내 노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천부적인 건가.
저는 노력인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정말 라이브를 못하던 가수였거든요. 일본에서 2001년에 데뷔를 하고 어떤 공연에서 라이브를 보고 에이벡스(SM과 계약한 일본 소프트회사)에 어떤 분이 ‘쟤는 단독 콘서트 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대요. 너무 못해서. 그래서 춤 추면서 노래 하는 거를 정말 많이 연구하고 연습했어요. 그래서 이만큼 할 수 있게 됐죠.

‘ID; Peace B’는 잘했지 않나?
그땐 립싱크 세대잖아요. 진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소화 하는 건 정말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춤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노력의 결과라고 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씨가 인터뷰에서 보아가 가장 춤을 잘 추는데 그 이유는 춤에 감정을 집어넣기 때문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석하는 거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요? 저는 음악을 들으면서 들리는 소리가 많으니까 거기에 맞춰 춤을 좀 느낀다고 해야 하나? 뒤에 해주시는 분들도 다 잘하시는 분들이고 한데 그냥 제가 센터에 있어서 저만 보인다고 하신 것 같아요. (웃음)


인터뷰: 임진모, 황선업, 이수호, 정민재
인터뷰 정리: 임진모
사진 제공: S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