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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음악웹진 이즘(IZM)과
인천 아티스트
인터뷰 시리즈 진행

부평구 예비 문화도시 추진, 음악중심 문화도시로 
인천·부평 아티스트 기록부평구문화재단, 
음악웹진 이즘(IZM)과
지속가능한 음악 생태계 기반 마련


인천 부평구문화재단(대표이사 이영훈)은 대중음악평론 웹진 이즘(IZM)과 한국 대중음악 역사와 함께한 인천·부평 아티스트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라는 타이틀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부평구문화재단은 지난 3월 대중음악평론 웹진 이즘(IZM)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부평구 예비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의 지속가능한 대중음악 생태계 기반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는 인천·부평을 대표함은 물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시대의 아티스트를 선정한다.

이즘(IZM)의 대표이자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와 소속 평론가들과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부평 미군 부대(ASCOM, Army Service Command)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음악 역사를 재조명하며, 그들의 음악 활동과 인천·부평의 생생한 음악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인터뷰는 6월 10일부터 부평구문화재단 홈페이지(www.bpcf.or.kr)와 이즘(www.izm.co.kr)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또한 올해 말 10명의 아티스트 인터뷰와 일러스트 작가 권민지가 참여한 인터뷰 북 발행과 참여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인터뷰 본문으로 연결됩니다.

비와이

힙합 서바이벌 예능 <쇼미더머니>로 이름을 알린 힙합 뮤지션 비와이는 데뷔와 동시에 ‘day day’와 ‘가라사대’등과 같은 곡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고, 인천의 대표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홍이삭

‘봄아’라는 곡으로 201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해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홍이삭은 2019년 ‘슈퍼밴드’ 출연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며 다양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구라, 그리(GREE)

김구라는 코미디 뿐 아니라 음악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과 일가견을 가진 인물로 유명하다. 대중스타로 떠오르기 전에는 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대로 또 1998년생 그의 아들 동현은 ‘MC그리’란 예명이 말해주듯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백영규

음악계 동향에 밝지 않은 사람에게 백영규는 1980년대 초반 히트 퍼레이드와 당시의 애청곡 ‘슬픈 계절에 만나요’, ‘잊지는 말아야지’, ‘순이생각’, ‘우리 만나요 처음 만난 그곳에서’ 등에 멈춰있겠지만 그 기억은 강렬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 처량함과 비참정서…

박기영

박기영은 노래를 잘한다. 하지만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먼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인터뷰 중 짧은 몇 마디에 ‘싱어 유전자’가 느껴질 정도. 그는 “음악은 나를 살게 한다”고 말하며 인천이란 연고가 많은 음악적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

리듬파워

중·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힙합이란 꿈을 함께 좇은 리듬파워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다이나믹 듀오가 수장으로 있던 < 아메바 컬쳐 >에 들어갔다. 어느덧 데뷔 10년 차. 오랜 시간 함께한 < 아메바 컬쳐 >를 나와 < 팀플레이 뮤직 >을 직접 설립하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정선 X 윤병주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로 음악인구에 회자되는 이정선 그리고 블루스 하면 떠오르는 뮤지션 윤병주. ‘윤병주와 지인들’은 전에도 이정선의 곡 ‘거리’와 ‘우연히’를 리메이크해 싱글로 낸 바 있다. 2020년 윤병주가 이끄는 프로젝트 밴드 윤병주와 지인들은 막 ‘항구의 밤’이라는 곡을 원곡의 주인공 이정선과 함께 녹음했다.

쿠마파크

이들을 장르라는 단어로 국한할 수 있을까. 재즈와 힙합을 오가는 쿠마파크는 색소폰 주자 한승민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6인조 밴드로 러브존스 레코드의 수장이자 재즈 힙합의 개척자다. 여러 악기를 이용해 힙합, 소울, 디스코와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한 그들의 복합적인 음악은 타 아티스트들 가운데서도 독보적이다.

하헌진

2020년 활동 11년 차에 접어든 서울의 블루스 맨’ 하헌진은 블루스에 대한 애정이 유독 각박한 한국에서 ‘델타 블루스’를 연주한다. 그는 “이 시대, 세대에도 블루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다.”라는 우직하고 강단 있는 포부를 밝혔다. 2019년부터 4인 체제의 ‘하헌진 밴드’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아마도이자람밴드

이자람, 그는 소리꾼임과 동시에 포크록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더다. 아버지 덕에 송창식을, 어머니를 통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사이먼 앤 가펑클을 자주 들었던 이자람은 김추자와 김정미의 팬이었음을 밝히며 넓은 음악적 바탕을 자랑했다. 그 광대한 취향이 아트 록, 포크, 일상의 언어를 바쁘게 오가는 아마도이자람밴드의 개성으로 직결된 것은 우연히 아니다.

차승우 X 차중용

노브레인, 문샤이너스, 모노톤스를 거쳐 새 프로젝트 밴드 ‘조카들’을 결성한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국내 전설의 로큰롤 밴드 ‘키보이스’에 있던 차중락의 조카다. 프로젝트 팀명을 ‘조카들’로 한 이유 역시 차중락의 노래 ‘그대는 가고’를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원래 차승우는 이 곡을 부친과 함께 하려 했으나, 아버지가 암 투병으로 별세하면서 완성되지 못했다. 차승우는 조카로서, 아들로서 선대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음악 인생 중 가장 무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송창식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음악계의 ‘레전드 중 레전드’이자 인천 출신의 대표 뮤지션 송창식은 인천 신흥동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에 잠시 피난한 것을 빼곤 성장기를 줄곧 인천에서 보낸 ‘원단 인천맨’이다. 지금도 인천에 남다를 애정을 간직해 자신의 모든 일이 ‘인천이랑 관련이 있는 일’이라며 “활동 자체에 여유가 있다면 인천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지금은 자신의 별칭이자 미사리 라이브 카페인 ‘쏭아(Ssonger)’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곽경묵

이름에서부터 소울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느껴지는 밴드 ‘소울트레인’은 흑인 음악 뮤지션들의 라이브를 35년간 대중에게 전했던 전설적인 음악 방송에서 따왔다. 현란한 기교보다 멤버의 조화를 중시하는 소울트레인은 기타, 베이스, 드럼의 기본 밴드 구성에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으로 이루어진 금관악기 주자와 보컬들까지 가세해 10인조의 대규모 그룹의 편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곽경묵이 이 밴드의 리더이다.

유심초

친형제인 유시형과 유의형은 학생 때부터 백영규, 이춘근 등과 함께 고향 부평에 터를 잡고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들어도 눈물 날 것 같은 소슬하면서도 아린 감성 그리고 시적인 가사는 어떤 음악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느낌이 각별했다. ‘세련됐다’, ‘딴 음악하고는 달랐다’는 등 칭송이 잇따랐다. ‘사랑이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원투 펀치’로 당대 음악 팬들에게 강한 추억을 남기며 형제 듀오 ‘유심초’는 그렇게 80년대 초반 음악계를 석권했다.

신지

98년 데뷔 이래 마이너 댄스음악이란 확고한 정체성으로 나이트클럽과 길거리를 수놓았던 코요태, 바로 신지가 이 팀의 메인 보컬이다. ‘순정’, ‘만남’, ‘시련’, ‘Passion’, ‘디스코왕’ 등 수많은 히트곡이 줄지어 터지면서 코요태는 댄스음악 전문팀의 롱런 가능성을 시범했다. 그때 만해도 가수가 댄스음악을 가지고 10년 이상 장수하기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인복’ 때문이라며 겸손했지만, 대화에는 거침이 없었다.

윤항기

‘한국의 비틀스’라는 수식이 말해주듯 국내 초창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 밴드 ‘키보이스’는 1960년대 부평의 애스컴(ASCOM) 등 미군 부대의 클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키보이스하면 떠오르는 이름 윤항기. 그는 이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딴 ‘윤항기와 키브라더스’ 활동, 솔로 히트 넘버인 ‘별이 빛나는 밤에”나는 어떡하라고”장밋빛 스카프’ 등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굵직한 획을 남겼다.

by @kath_illust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곧 서구음악을 우리 정서로 새롭게 가공한 국산화의 역사다. 부평의 미군 클럽을 뛴 우리 밴드와 가수들, 악단들이 미군들을 위한 음악을 하면서 미래를 향한 내공을 축적했다.
그들이 우리 대중가요의 다양화와 질적 상승을 주도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부평이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성장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모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