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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가수유랑단,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지난 5월 25일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의 막이 올랐다. 시작은 지난해 <서울 체크인>에서 던진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효리의 가벼운 제안이 현실이 됐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그리고 화사가 모였다. “우리가 바라던 무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목표로 이들이 한데 뭉쳐 전국을 돈다. 해군사관학교의 작은 강당, 3천여 명의 인파가 모여든 진해군항제 폐막식, 대학가 축제 현장. 이들의 유랑 길이 그 규모를 가리지 않고 펼쳐진다.

여자, 댄스, 가수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 댄스, 가수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그나마 시선이 나아졌지만 맏언니 김완선이 데뷔한 1980년대의 분위기는 달랐다. 몸을 흔드는 댄스. 육체에서 분리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지며 작은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게 되었을 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물론 1960년대 ‘키다리 미스터 김’으로 큰 인기를 끈 이금희가 댄스 음악의 원조라 불리기는 하지만, 오늘날 ‘댄스 가수’란 호칭을 굳힌 건 명백히 김완선이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오늘밤>이란 음반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그가 내세운 건 ‘섹시한 분위기’였다. 트레이드 마크 격인 비음으로 “나 오늘 밤엔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노래를 부르고, 신체를 적극 활용한 과감한 율동을 선보였다.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댄스. 비슷한 시기 소방차, 박남정 등이 댄스 가수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김완선이 불어온 반향에 미치지는 못했다. 폐쇄적이고, 엄숙한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김완선은 은근히 섹슈얼한 면모를 어필하고 이를 압도적 카리스마로 표출하며 그 빈틈을 파고든다.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댄스 가수임에도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등 거물급 록, 포크 뮤지션에게 곡을 받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포용했고, 춤뿐만 아니라 노래 완성도에도 신경을 썼다.

섹시 가수 우상이 되다

1990년대 박진영이 남성 댄스 가수로 이름을 펼치기 전까지, 댄스 가수는 대부분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박진영 이후에도 댄스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장르의 대표성을 장악한 몇 안 되는 분야다.

엄정화표 댄스 음악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1993년 고 신해철이 써준 ‘눈동자’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데뷔 초 가수보단 배우로 더 조명을 받는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1997년 발매한 정규 3집 <후애>의 수록곡 ‘배반의 장미’부터였다. 노래 가사에 맞춰 특유의 표정 연기를 선보이고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부각한 의상 등은 대중에게 엄정화의 이름을 아로새긴다. Y2K 새천년의 시작과 종말을 앞둔 때에는 테크노 곡 ‘몰라’로 시대를 응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엄정화는 ‘Poison’, ‘초대’ 등의 곡을 통해 이별 후의 감정,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사랑의 과정 등을 노래하며 제 영역을 구축한다. 반면 이효리는 시작부터 강했다. 요정 콘셉트의 그룹 핑클에서 솔로로 재도약한 2003년부터 그가 내세운 건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며 당당한 여성상이었다. 10분 만에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노래하는 ’10 MINUTES’가 그 시작. 당시 유행한 힙합 사운드를 바탕으로 카고 바지에 크롭탑을 입고 무대를 활보하던 이효리의 모습은 뭇남성은 물론 여성의 마음까지 훔친다.

몇 차례 표절 관련 문제로 몸살을 앓긴 했지만 이효리는 그야말로 꾸준히 내 것을 하며 길을 개척했다. ‘섹시함’에 집중되어 있던 노래들이 외적 이미지에서 개인 서사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보다 친근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천하무적 이효리’, ‘이발소 집 딸’ 등의 노래가 꼭 그랬다.

인디 음악가와 협업하며 댄스에 로큰롤, 포크 등의 소스를 이식하고 가장 최근 발매한 정규 음반 < Black >(2017)에서는 일렉트로니카, 트립합을 끌어오기도 했다. 셀프 프로듀싱 및 작사 작곡 비중도 상당하다. 음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풀어나감에 있어, 대중과 호흡함에 있어 어떤 성숙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No.1’과 ‘Ending Credit’.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이러한 언니들이 ‘No.1’을 부르는 보아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특히 보아는 대형 레이블 소속으로 데뷔부터 ‘기획형 아이돌’이란 반발 아닌 반심 속 활동을 이어왔던 아티스트가 아니던가. 활동 시기는 이효리와 비슷하지만, 워낙 어린 13살에 데뷔한 덕에 풍파도 많았고 변신과 성장의 폭도 컸다. 지금이야 외국 현지 맞춤의 프로덕션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보아가 막 일본에 발을 들일 때는 그 어떤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01년 일본 데뷔 당시 부족한 라이브 실력을 지적받고 악착같이 연습을 이어 나갔다는 일화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 데뷔 초 립싱크를 하며 퍼포먼스 위주 공연을 선보이던 보아가 라이브, 댄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까지 흘린 땀방울은 쉽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Valenti’, ‘아틀란티스 소녀’, ‘Girls On Top’ 등 히트곡이 있었음에도 어느 정도 회사가 만든 메시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가 정규 7집 < Only One >(2012)을 기점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모습들은 아시아의 별 보아의 가치를 더욱 드높게 치켜세운다.

김완선으로 시작해, 엄정화, 이효리, 보아를 거쳐 2014년 그룹 마마무를 통해 데뷔한 화사가 힘을 합친 댄스가수 유랑단. 막내 화사가 대표하는 것은 앞선 언니들의 호흡에 맞닿은 ‘섹시함’과 주도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댄스’다. 몇 차례 화제를 일으킨 자유분방한 화사의 퍼포먼스는 앞선 언니들이 겪었듯 ‘논란’이란 꼬리표가 되어 잡음을 만들었다. 데뷔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은 화사였고 인기 반열에 오른 후에는 선정적인 옷차림, 댄스에 관심이 집중되며 화사를 막아서는 듯했지만, 솔로 곡 ‘멍청이’, ‘마리아’가 연이어 흥행하며 그는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됐다.

이 여성 댄스 가수들의 유랑이 반가운 건 이 같은 이들의 스토리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의 관심이 각 아티스트를 조명하든 조명하지 않든 이들이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내 음악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더 방송이 전하는 감동에 불을 지핀다.

이 대목에서 보아의 ‘No.1’과 사랑의 마지막, 혹은 인생의 크레딧이 올라간 후의 감정을 그린 엄정화의 ‘Ending Credit’를 소환하고자 한다. 언제고 넘버 원이기도 하며 또 언젠가 가수로서의 엔딩 크레딧을 조심스레 상상하는 댄스가수들의 유쾌한 공연 방랑기. 5명의 ‘여성’ ‘댄스’ ‘가수’가 모여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며 우리를 다시 춤추게 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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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ENHYPEN) ‘Bite me’ (2023)

평가: 2.5/5

운명의 경계에 선 ‘Given-taken’,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Drunk-dazed’, 혼란에 맞선 ‘Tamed-dashed’, 자신만의 길을 다짐한 ‘Blessed-cursed’, 미래 세대로의 연결을 노래한 ‘Future perfect’까지. 엔하이픈은 데뷔 후 짧은 기간 안에 케이팝 아이돌이 느끼는 영광과 혼란을 옹골지게 이야기하며 서사를 그려왔다. 다소 빠르게 소모된 감도 있지만 이들의 방대한 세계관은 여전히 지속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잊고 있던 운명의 상대를 재회한다’는 새로운 콘셉트의 ‘Bite me’는 기존 곡과 달리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애정을 손짓하는 ‘구애’의 노래다.

특장점이었던 자극적이고 세찬 비트, 도발적인 일렉트릭 기타, 자신만만한 노랫말 대신 미니멀한 비트와 다소 무미건조한 멜로디를 내세운 ‘Bite me’는 그간 내놓은 그룹의 타이틀 중 가장 평범하다. 단순 감상용 사랑 노래라면 감각적인 어쿠스틱 팝 ‘몰랐어’나 쉬운 멜로디로 대중적이었던 ‘Polaroid love’처럼 전작에서도 선택지가 많고, 팀의 뱀파이어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도 밋밋하게 다가올 공산이 크다. 그간 그들이 두르고 있던 음악적 외피가 확고하고 개성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는 곡. 몰아치던 에너지를 한풀 줄여 팀을 서사의 다음 장으로 연결하는 중간 다리 같은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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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Buddy’ (2023)

평가: 3/5

민수의 팬들에게 얼마간 반향을 일으킨 데모곡을 정식으로 발매한 버전이다. 전보다 풋풋하진 않지만 깔끔해진 편곡이다. 그때의 수줍음은 미완성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연의 산물이었기에 이번 곡에선 매무새가 더 좋아졌음에도 귀를 잡아채는 특별한 매력은 부족하다. 다만 가수의 개성과 표현력이 한껏 무르익었음을 추론할 만한 근거는 귀에 자주 들어온다.

시티팝의 사운드를 응용하여 과거 시제의 따뜻함을 끌어왔던 이전과는 달리 편안하게 귀에 들어오는 팝적인 밴드 편곡으로 현재의 감각을 겨냥한다. 특히 쉬운 코드와 단순한 멜로디 진행에 터 잡으면서도 비슷한 재료를 이용한 다른 전형적인 곡들과 질적인 차이를 두게 하는 감각이 도드라진다. 이는 민수가 다른 누군가의 감성을 학습하거나, 혹은 실험적인 시도를 어필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의미다. 이 예민해진 감각에 좋은 노래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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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 ‘Love you! (Feat. 타블로)’ (2023)

평가: 3/5

거친 음성으로 감정을 토해내던 아티스트가 마음을 가다듬고 따듯한 안부를 건넨다. 2014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한 이후 그의 디스코그래피엔 유독 OST와 음악 예능의 흔적이 짙게 밴다. 대중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대표 앨범의 부재로 흐릿해진 정체성 또한 대변한다. 여러 가지로 신곡 ‘Love you!’에 부여할 무게는 충분하지만, 이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단지 노래한다.

감각적인 비트와 기타 위로 신스 소스가 가미된 중독적인 후렴의 팝 넘버가 펼치는 청량에 적절히 더해진 타블로의 랩이 거슬리지 않고 물 흐르듯 진행된다. 계절감 가득한 보편적 위로가 특별하진 않지만,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실한 목소리. 김필은 이를 차곡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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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헌 ‘Freedom’ (2023)

평가: 2.5/5

몬스타엑스 주헌의 첫 솔로 EP 타이틀곡이다. 8년만의 독무대인 만큼 할 수 있는 것 내지는 하고 싶은 것을 다양하게 펼쳐 놓았지만 성마름을 숨기지 못했다. ‘Freedom’은 서로 다른 몇 개의 곡을 이어 붙인 모양새로 발라드와 힙합이 촌각을 다투며 번갈아 나오다 대뜸 웅장한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보컬리스트와 래퍼 모두를 아우르는 프로듀서로의 면모를 압축하려 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서로 융화하지 못한 각 면모의 각개전투다.

주헌은 그동안 그룹 안팎에서 다양한 역할을 도맡으며 올라운더가 되기 위해 분투했다. 몬스타엑스 9집에서 11집의 타이틀곡을 모두 프로듀싱하며 그룹의 방향성에 큰 공을 세우는 등 그의 능력과 노력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제 막 자유를 노래하려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에 앞서는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