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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The College Dropout’ (2021)

평가: 5/5

한 시대를 이끌어갈 천재의 등장

대중이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2000년대 초, 카니예 웨스트는 칼을 갈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프로 활동을 시작해 로카펠라의 스태프 프로듀서로서 신생 레이블의 도약을 도모하며 업계의 제일가는 작곡가로 성장한 그이지만, 그 이상을 꿈꿨다. 제이 지의 < The Blueprint >, 앨리샤 키스의 ‘You don’t know my name’ 등 많은 히트작을 낳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야심은 무대 뒤가 아닌 비트 위, 직접 가사를 뱉는 데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힙합 신은 카니예 웨스트에게 래퍼 자리를 내어줄 만큼 분위기가 자비롭지 못했다. 거칠고 마초적인 래퍼가 공고하게 주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제이 지가 있었고, 피프티 센트를 비롯한 갱스터 랩이 인기였다. 그에 반해 카니예의 배경을 보자. 대학교수인 어머니와 미술 대학까지 진학한 나름의 학력을 가진 중산층이지 않은가. 안정적인 환경이 래퍼가 되는 데에는 제동을 거는 법이다. 모두가 그에게 비트만 따내려 했지 로커스(Rawkus Records)도, 캐피톨(Capitol Records)도 래퍼로 그를 원하지 않은 이유다.

신예의 도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인 로커펠라와 그 수장 데이먼 대시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해 이 데뷔작의 제작은 결정적인 한 사건에 기인한다. 2002년 가을, 카니예 웨스트는 늦은 새벽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마주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거의 그를 죽일 뻔한 사고로 턱과 다리에 심한 골절을 입고 입원 신세를 졌다. 본의 아니게 맞이한 시간과 자유. 스물다섯 열정 많은 청년은 이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쯤으로 여긴 듯하다. 사고 후 2주 만에 선공개 싱글 ‘Through the wire’ 작업에 나섰고, 이는 힙합 역사를 영원히 뒤바꾸어 놓을 앨범의 신호탄이 됐다.

< The College Dropout >의 파급력은 여러모로 막강했다. 우선, ‘칩멍크 소울(chipmunk soul)’ 프로덕션을 대중화하는 데에 기여한 앨범이다. 칩멍크 소울이란 알앤비&소울 보컬을 샘플링해 음정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해체, 재배열을 거쳐 비트에 녹여내는 작법을 말한다. 저스트 블레이즈와 함께 제이 지의 < Blueprint >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 주특기가 본작에서야말로 제대로 꽃피었다는 게 중론이다. 1990년대 중반 우탱 클랜의 프로듀서 르자가 방법을 제시했다면 카니예는 그걸 일정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수록곡 열두 곡에 사용된 열네 개의 샘플에서 공동작곡 두 곡을 제외하면 모두 셀프 프로듀싱. 래퍼로서의 출사표이지만, 이를 아우르는 프로듀로서의 압도적인 역량이 우선이다.

진가는 당시 힙합 신의 주된 내용을 크게 벗어난 랩에서도 두드러졌다. 16세기 삽화 책에 영감받은 배경에 앙증맞은 곰 인형으로 마감질한 커버와 줄무늬 폴로 셔츠를 빼입고 나온 외형처럼 앨범은 곧 힙합 관습의 타파를 의미했다. 향락과 폭력성의 철저한 배제! 그는 여기서 ‘갭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Spaceship’) 평범한 대학 중퇴생 신분을 감추지 않는다. 그 보통의 시선을 당당히 드러내며 인종,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담았다. 이는 나아가 후대 힙합이 포용하는 캐릭터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졸업식에 쓸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 ‘Intro’를 돈벌이에 찌든 또래의 넋두리 ‘We don’t care’로 맞받아치는 순간 작품에 대한 예고는 끝난 것이다. 예사롭지만 이 뼛속까지 삐딱한 젊은이의 날 선 비판과 유머는 로린 힐 ‘Mystery of iniquity’를 흥겹게 가져온 ‘All falls down’에서 미국 사회의 물질주의를 꼬집고, ‘Two words’에서는 사랑도 브레이크도 없는 무자비한 조국(‘United States, no love, no brakes’)을 쥐어뜯는다.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만 부자들이 가장 자존감이 낮’고 ‘마약 거래로 백인들만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는(‘All falls down’) 사회는 청년의 눈에 그저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결정타는 ‘Jesus walks’다. ‘예수만 빼고 다 이야기해도 된대'(‘They say you can rap about anything except for Jesus’)라 미디어의 획일화를 비판하고 종교적 가치관을 축약하는 곡이다. 총과 마약으로 득실대던 힙합 신에 신실한 찬송가다. 그는 아무래도 ‘쿨’해 보이는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듯하다. ‘Never let me down’에서 민권 운동 시대를 싸운 선조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매우 유기적인 배치로 학력주의를 비꼰 여섯 개의 스킷 트랙으로 이 모든 전개가 실제로 대학을 중퇴한 그의 시간적 배경을 뒤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Family business’가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화자와 청자 사이의 묘한 유대감을 만드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이 걸작의 가치는 단 한 순간, ‘Through the wire’를 거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교통사고 일화를 세밀하게 풀어놓는 노래 속 그의 랩은 실제로 ‘턱에 철사를 단’ 채 녹음해 발음마저 어눌하다. 놀라운 수준의 입체감, 실재감이다. 샤카 칸의 히트곡 ‘Through the fire’를 샘플링해 치밀하게 피치와 위치를 매만진 비트는 힙합 역사상 가장 멋진 칩멍크 프로덕션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비극을 승리로 맞바꾸는 챔피언'(‘But I’m a champion, so I turned tragedy to triumph’)의 자세로 음악을 향한 열의를 강변하고 있는 이 데뷔곡을 카니예 커리어 사상 최고의 싱글이라 칭하고 싶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히트 싱글 ‘Slow jamz'(1위), ‘All falls down'(7위), ‘Jesus walks'(13위)를 배출했으며 판매고는 400만 장을 넘겼다. 평단의 호응은 그 이상이었다. < 스핀 >과 < NME > 등 다수 매체가 입을 모아 음반을 그해 베스트 앨범 리스트에 상위권으로 안착시켰고 그래미는 최우수 랩 앨범과 최우수 랩 노래 등 3개 부문 상을 안겼다. 롤링스톤이 작년 개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에서는 74위에 오르며 후대에 끼친 파급력을 인정받았다. ‘All falls down’에 피쳐링한 실리나 존슨과 로카펠라 A&R 키암보 조슈아(Kyambo Joshua)는 ‘제이 콜과 켄드릭 라마 등 리리시즘 래퍼에게 큰 영향을 준 클래식’이라 평가했다.

극적인 인생 서사나 거친 자기과시 없이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자기에 대한 기록과 사회 참여, 눈앞에 펼친 현재의 담담하고도 날카로운 저술. < The College Dropout >은 힙합 신에서 관습에 섣불리 매몰되거나 음악적 자아와 실제 자아가 충돌해 ‘가짜’가 되고 마는 뮤지션이 범람할수록 그 위력이 거대해질 앨범이다. 확실한 주무기, 선구적인 문법으로 옹골차게 메꾼 히트 넘버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또 놀랍다. 21세기 힙합을 선도할 천재는 이토록 영민하고도 화려한 등장으로 그가 일으킬 파장을 예고했다.

– 수록곡 –
1. Intro (Skit)
2. We don’t care 
3. Graduation day
4. All falls down (Feat. Syleena Johnson) 
5. I’ll fly away
6. Spaceship (Feat. GLC, Consequence) 
7. Jesus walks 
8. Never let me down (Feat. Jay-Z, J. Ivy) 
9. Get em high (Feat. Talib Kweli, Common)
10. Workout plan (Skit)
11. The new workout plan
12. Slow jamz (Feat. Twista, Jamie Foxx) 
13. Breathe in breathe out (Feat. Ludacris)
14. School spirit (Skit 1)
15. School spirit
16. School spirit (Skit 2) 
17. Lil Jimmy (Skit)
18. Two words (Feat. Mos Def, Freeway, The Boys Choir of Harlem) 
19. Through the wire 
20. Family business 
21. Last 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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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이 ‘4 Only’ (2021)

평가: 2.5/5

YG 시절 ‘보석함’이라는 타이틀이 누구보다 잘 어울릴 정도로 앨범 발매 텀이 길었던 이하이는 AOMG로 소속사를 옮긴 후 비교적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바버렛츠 안신애와의 합작품 ‘홀로’와 ‘For you’를 연달아 공개했으며 크러쉬, 그레이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는 등 뮤지션으로서 이전보다 자유로워진 행보를 보였다. 일 년간의 예열을 마친 그는 5년 5개월 만에 새 정규앨범 < 4 Only >를 꺼내 들며 한층 넓어진 음악 스펙트럼과 함께 2막의 시작을 알린다.

다채로운 장르의 시도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라는 앨범의 주제를 구현한다. 이하이를 강하게 특징짓던 펑키(Funky)한 알앤비 소울의 색채를 걷어내고 신스팝, 발라드, 재즈 멜로디에 목소리를 녹여 앨범에 풍성함을 더했다. 라틴 풍의 ‘그대의 의도’와 빠른 템포의 리드미컬한 기타 연주로 흥을 더한 ‘물타기’는 이하이의 허스키한 중저음 보이스가 가진 매력을 강조하며 비아이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구원자’는 쓸쓸한 비장미가 깃든 재즈 사운드와 시적인 가사로 서정적인 정서를 떨군다.

소속사 이적 후 발매하는 첫 정규작인 만큼 같은 소속사 내의 여러 힙합 뮤지션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예상했으나 6곡을 작곡한 이하이의 참여 비중이 제일 크다. 웅장한 건반 연주의 무게감과 와일드한 보컬로 진한 잔상을 남긴 ‘Darling’은 자작곡 중 단연 돋보이며 프로듀서 그레이와의 색깔을 적절하게 믹스한 ‘Bye’는 리드미컬한 템포와 그루비한 보컬의 조화가 돋보인 매력적인 신스팝이다.

음악적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듣는 재미를 더했으나 타격감을 주는 곡은 부족하다. 무엇보다 타이틀곡 ‘빨간 립스틱’은 위켄드, 두아 리파 등으로부터 이어져 온 디스코 풍 신스웨이브 사운드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르며 곡에서 화자의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든다. 타샤니의 ‘경고’를 오마주 하며 윤미래를 피처링으로 대동한 것 또한 신선한 전략이라기보다는 뻔한 흐름의 일부에 가깝다. AOMG 이적과 함께 기대를 모았던 코드 쿤스트와의 협업곡 ‘어려워’와 ‘안전지대’마저 나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와 밋밋한 조화를 이룰 뿐이다.

< 4 Only >는 7년간 YG의 철저한 기획 하에 만들어진 가공의 정체성을 깨고 가수 본연의 주체성을 발현하기 위한 터닝 포인트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특유의 독특한 음색과 개성을 돋보이게 해준 ‘1,2,3,4’, ‘It’s over’, ‘Rose’ 등 초기 활동곡들과 같은 강한 소구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반영한 만큼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깃들었다. 아직은 미약한 발돋움이지만 이하이의 본격적인 색채 변화는 주목할 만한 행보다.

– 수록곡 –
1. 구원자 (Feat. B.I)
2. 그대의 의도
3. 물타기
4. Bye
5. 빨간 립스틱 (Feat. 윤미래)
6. 머리어깨무릎발 (Feat. 원슈타인)
7. 안전지대
8. 어려워
9. Darling
10.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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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Nell) ‘Moments In Between’ (2021)

평가: 3.5/5

문명사회와 단절되어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던 영화 < 넬(Nell) >(1995)의 주인공처럼 동명의 밴드 넬 역시 그들만의 음악적 어휘로 세상과 소통했다. 초기에 거칠고 과장된 면이 있었음에도 특유의 우울한 정서에 공감하는 팬들은 물론 묵묵히 함께 해온 멤버들과 다져온 유대를 통해 젊은 시절의 응어리는 세련된 모습으로 정제되었다. 22년이란 긴 세월 동안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와의 ‘관계’로 귀결된다. 아홉 번째 정규작으로 돌아온 40대의 넬은 관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사이의 순간들’을 탐미한다.

보편적인 콘셉트 앨범이긴 하나 과거에 제시했던 방법론과는 상이하다. 메이저 정규 6집 < Newton’s Apple >로 완결 지었던 중력 3부작이 하나의 키워드에서 파생된 영감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흩뿌린데 비해 본작은 기억의 파편들을 차례대로 이어붙여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춘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동치는 감정 변화의 서사라는 점에서 각각의 곡에 부여한 의미보다 전체가 전하는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어느 때보다 앨범 단위의 청취를 요구하는 만큼 자연스레 글귀에 시선이 집중된다. 한때 그룹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현학적인 노래 제목과 가사는 아니다. 다만 일상의 언어로 써 내려간 노랫말은 그리움이란 파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파랑 주의보’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다 고치겠다며 끝없이 상대를 붙잡는 ‘말해줘요’ 같이 수동적인 입장을 적극 대변한다. 구어체가 전작들의 문체에 비해 평이한 건 사실이나 오히려 그에 뒤따른 빈약함이 쓸쓸함을 배가해 텍스트를 극의 주된 요소로 만든다.

반복과 여백의 미학은 사운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6분 30초 간의 황홀경 ‘위로 危路’가 리얼 세션과 전자음으로 조밀하게 채운 팝 록 ‘유희’와 함께 더블 타이틀로 나선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과 불안이 공존하는 ‘위험한 길’의 풍경은 잔잔한 전자기타를 타고 그려지기 시작한다.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미리 비워둔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름답구나 그대/아름다워라’를 되뇌는 김종완의 목소리다. 여린 읊조림 한 번의 반향은 미미하지만 도돌이표를 통해 점층적으로 고조된 파동은 현악기와 조우하며 장엄함을 연출하기 이른다.

‘위로 危路’와 ‘Duet’을 기점으로 전반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함을 서서히 실체화하기 시작한다. 작품 구조상 이별은 정해진 결말이었다. 밝은 선율에서 왠지 모를 위태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조 진행으로 변모하며 그 묘한 음울함을 극대화한 곡이 바로 ‘Sober’다. 사랑보다 이별에 능숙한 ‘내’가 아닌 ‘우리’를 기억해달란 외침. 스산한 기타 리프가 서로의 온몸에 새겨지는 순간 화자와 청자가 뒤섞이면서 앞선 아홉 곡에도 재해석을 가미해 입체적인 감상의 여지를 남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으로 살아온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은 매번 ‘넬스러움’이란 고유의 특성 앞에 미사여구를 들여와 도전을 거듭했다. 이번 작품에선 덤덤한 대사와 사운드를 최소화한 청각적 미장센을 중심으로 색다른 단편 영화를 완성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관계와 감정을 노래한 신보의 이야기엔 결말이 있지만 넬의 연대기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Sober’의 마지막 바램처럼 < Moments In Between >은 대중에게 기억될 만한 분기점으로 자리하며 그룹의 영속성을 확보한다.

– 수록곡 –
1. Crash
2. 파랑 주의보
3. Don’t say you love me
4. 유희
5. Don’t hurry up
6. 위로 危路
7. Duet
8. 말해줘요
9. 정야
10. S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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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씨 ‘Stereotype’ (2021)

평가: 3/5

걸그룹 전담 히트메이커 블랙아이드필승의 공식은 이번에도 통했다. 씨스타, 에이핑크, 트와이스 등 유독 여자 아이돌과의 탁월한 상성을 보여왔던 그는 지난해 6인조 걸그룹 스테이씨를 기획했고 이들은 ‘So bad’와 ‘ASAP’ 단 두 곡만으로 빠르게 입지를 다졌다. 특히 ‘ASAP’이 중독성 강한 후렴구와 안무 챌린지로 인기를 끌면서 이들은 케이팝 4세대를 이끌어가는 신예로 급부상했다. 첫 번째 EP < Stereotype >은 앞으로의 발돋움을 위한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전작에서 확립한 스테이씨만의 색깔과 음악 스타일을 전적으로 반영하며 고유의 코드를 확립한다. 통통 튀는 신시사이저 리듬이 ‘ASAP’의 잔향을 남기면서도 가벼운 808 베이스와 브라스 연주로 청량한 후렴구를 캐치하게 구현한다. 몽환적인 보컬 소스와 쫄깃한 보컬로 강조한 도입부와 브리지 구간 등 적재적소에 힘을 준 프로듀싱 또한 인상적이다. 질주하듯 이뤄지는 변주 혹은 화려한 사운드 장치를 혼합하는 형태의 케이팝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지만 뻔한 작법을 비껴갔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들린다.

이엑스아이디와 신사동호랭이, 브레이브걸스와 용감한형제의 관계처럼 블랙아이드필승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앨범이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제법 다양한 갈래를 구축한다. 빠른 템포의 미니멀한 비트로 주조한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의 ‘Slow down’, 개성 강한 멤버들의 음색을 섬세하게 활용한 알앤비 트랙 ‘I’ll be there’ 등 그룹이 추구하는 틴프레시 콘셉트 외적으로도 역량을 발휘하며 다음을 향한 가능성을 심어준다.

단출한 구성의 미니앨범이지만 타이틀곡이 가진 방향성만큼은 뚜렷하며 그룹의 정체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일차원적인 작사 탓에 호소력이 온전히 발휘되지는 않지만 편견 없이 자신을 봐달라는 ‘색안경’의 메시지는 곧 그룹이 대표하는 Z세대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며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나이대의 입장을 대변한다. 뻔한 사랑 노래와 예쁜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고정관념과 차별의 태도를 지양하는 긍정적 메시지를 노래하는 화자, 스테이씨의 정체성 또한 분명해진다.

– 수록곡 –
1. 색안경 (Stereotype)
2. I’ll be there
3. Slow down
4.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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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LANY) ‘Gg Bb Xx’ (2021)

평가: 3/5

로스앤젤레스(LA)와 뉴욕(NY)의 앞 글자를 가져온 캘리포니아 출신 3인조 밴드 레이니(LANY)는 2014년에 결성한 이후 모두 4차례의 내한공연과 ‘Malibu nights’와 ‘Cowboys in LA’ 같은 레트로 감성의 곡들로 한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0년 10월에 나온 3집 앨범 < Mama’s Boy >가 빌보드 앨범차트 7위에 올라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둔 이들은 1년이 안 되어 새로운 정규 앨범 < Gg Bb Xx >를 발표하며 성공 가도를 향한 명확한 의지를 표명했다.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살을 연상케 하는 느긋한 레이드 백 감성이 전작 < Mama’s Boy >를 관통했다면 이번 앨범은 리듬이 두드러지는 댄서블한 트랙들이 돋보인다.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2017년도 1집 < Lany >로 귀환한 기조를 보여주되 사운드의 매끈함과 편곡의 정밀성을 더했다. 1980년대의 향기를 품은 신스팝 넘버 ‘Care less’나 발랄한 멜로디와 이별을 선포하는 가사가 묘하게 대조되는 ‘Never mind, let’s break up‘은 차분한 감성이 주를 이뤘던 레이니의 또 다른 매력을 부각했다.

레이니는 정교성이 떨어지는 악곡을 프런트 맨 폴 제이슨 클라인의 매혹적인 음색과 감각계를 건드리는 몽환적인 사운드로 상쇄해왔고 이 지점은 신작에서도 일정 부분 유지했다. 부드러운 어쿠스틱 스타일로 선율을 강조한 ‘Live it down’과 피아노 연주가 감미로운 ‘Somewhere’로 전반적으로 경쾌한 앨범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밋밋한 버스(verse)에서 신스 아르페지오의 코러스에 다다르는 천편일률적인 구성이 개별성을 약화했다. 이성보다 감성에 무게추가 쏠린 작곡 방식이 낳은 결과다.

1년이 채 안 되어 공개한 새 앨범에는 장점과 고질적인 문제가 공존한다. < Mama’s Boy >의 드림팝 스타일로 레이니를 접한 이들에겐 통통 튀는 신스팝 앨범 < Gg Bb Xx >가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오지만 상업적 성과를 이어가려는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상업 지향성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에 매몰되어 발전을 더디게 할 우려가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 1집에 비해 사운드의 진일보를 이룩한 만큼 곡의 만듦새를 점검할 시간도 필요하다.

– 수록곡 –
1. Get away
2. Up to me
3. Never mind, let’s break up
4. DNA
5. Roll over, baby
6. Live it down
7. Dancing in the kitchen
8. Ex I never had
9. Somewhere
10. Care less
11. ‘Til I don’t
12. One minute left to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