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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코이버니(verycoybunny) ‘Where’s The Exit?'(2022)

평가: 3.5/5

장르와 소재는 서로 다를지라도 오늘날 인디 신의 판도는 분명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틴에이지 록스타를 위시한 ‘매우 내성적인 토끼’, 베리코이버니도 그 중 하나다. 2010년대 후반 유행하던 정형적인 팝 알앤비 스타일에서 벗어나, 팝 펑크 리바이벌이 우세를 떨치는 현 시류에 맞춘 작업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 온스테이지 > 출연을 통해 단기간에 신성 위치에 올라선다.

한 해의 행보를 집약한 정규 1집 < Where’s The Exit? >의 역할은 확고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사춘기를 상징하는 각종 소품 활용부터 치밀하다. 동화 속 세계처럼 아기자기한 방의 말괄량이와 뿌연 폴라로이드 사진 속 로커를 공존시키는 방식이나, 에이브릴 라빈으로부터 계승되는 펑크 패션을 가져온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출구는 어디야?’의 근본적인 청춘 난제부터 ‘수업은 끝났어(Class is over)’로 자유를 갈구하는 음반 역시 치기 어린 방황과 사랑을 노래하는 송가, 그 속에서도 수많은 젊음을 이끈 얼터너티브 록과 쟁글 팝, 그런지에 궤를 두는 이유다.

면밀한 준비 과정 없이 단순한 답습에 그쳤다면 쉬이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베리코이버니 음악의 주요 핵심은 목소리에 있다. 힘을 뺀 채 어눌하게 읊조리는 오묘한 창법. 다만 < Where’s The Exit? >의 싱그러운 현장에서 이는 감정을 가감없이 담아낼 수 있는 장치이자 특유의 십대 감성을 포착하는 지점이 된다. 개성이 상당히 강해 위험 부담이 클 수 있던 시도임에도, 결과적으로 화자와 메시지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배경이 되는 작풍과 가사도 지향하고자 한 색채를 담아낸다. ‘넌 잘못 그려진 타투같아 / 쳐다보기 싫은 야채 같아(Bad connection)’의 직관적이면서도 순수한 비유는 확고한 인상을 남기고, 스매싱 펌킨스 풍 청명한 잔향의 다리를 건너며 상대를 향해 전진하는 ‘More’과 일렉트로닉 변주로 갈팡질팡한 마음의 단상을 그려낸 ‘Mirror’의 사운드 터치는 주제와 분위기를 우수히 결합한다.

아직은 과도기 단계의 앨범이기에 ‘모자라’ 같은 킬링트랙의 부재와 전반적인 완급 조절 면에서 언뜻 아쉬움을 남기지만, 수많은 기호층을 겨냥한 신인이 등장하고 저무는 가운데 순탄한 빌드업으로 단숨에 독립적 위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인디 스타의 활약이 다시금 대두되는 시기, 그 출발선에 베리코이버니가 있다.

– 수록곡 –
1. Class is over
2. You need my love
3. Bad connection
4. Don’t get me wrong
5. Mirror
6. In your dream
7. More 
8. Love never ends 

9. Where’s the exit?
10. The science of sleep
11. Close your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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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아이디(J.I.D) ‘The Forever Story’ (2022)

평가: 4/5

신의 스포트라이트와 ‘드림빌 특급 유망주’라는 칭호. 최근 몇 년 사이 일궈낸 힙합 팬들의 열띤 지지가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하지만 제이아이디는 그 모든 기대를 찬사로 맞바꾼다. 2017년 제이 콜이 이끄는 드림빌 레코드 입단을 발판 삼아 정규작 < The Never Story >와 < Dicaprio 2 >를 발매하며 주가를 올린 그의 신보는 그가 그저 유망주가 아닌 어느덧 신을 이끌 수 있는 리더로 성장했음을 천명하는 작품이다.

야심이 그 여느 때보다 거대하다. ‘네가 엄마를 위해 연주할 노래를 가져왔지 / 여자들에게 들려줄 노래도 가져왔지 / 약쟁이들에게 팔 것도 가져왔지'(‘I got the sh*t you could play for your mama / I got the sh*t you could play for the hoes / I got the sh*t you could sell to the trappers’)라는 ‘Raydar’의 가사를 보라. 이 말이 허풍이 아닌 게, 음반은 자기 과시 트랙과 진심 어린 발라드, 가슴 시린 가족 이야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를 아티스트의 일취월장한 역량과 연결 지어 눌러 담는다. 제이아이디의 커리어 최고작이라는 평가도 평단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속속 나온다.

초반부의 자기 과시 트랙들은 래퍼로서의 제이아이디에 주목하는 구간이다. ‘Never’나 ‘Off deez’ 등 이전의 뱅어에서 드러난 그의 랩은 한 방 카운터보다 스피드와 잽에 능한 복서처럼 묵직하기보다 가볍게 툭툭 치는 듯한 발성과 촘촘한 플로우가 특징. 본작에서도 그 주무기는 강력하다. 무거운 베이스 위로 날렵하게 라임을 내리꽂는 ‘Raydar’, 이전과 비교해 힘을 뺀 랩이 21 새비지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Surround sound’가 중독성 있다. 특히 2절의 예측 불가한 플로우 스위치로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친 ‘Dance now’는 올해 최고의 힙합 싱글 중 하나.

프로듀서 크리스토(Christo)가 총괄하고 캐나다 연주 밴드 배드배드낫굿, 베이시스트 썬더캣 등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프로덕션은 옛 재즈와 소울의 향취로 고풍스럽다. ‘Bruddanem’에서는 신스 펑크(Funk) 그루브 위 흡사 앤더슨 팩처럼 노래하기도 하고, 모스 데프가 피쳐링해 무게감을 살리는 ‘Stars’에서는 부유하듯 몽환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일품이다. 올드 힙합과 블랙 뮤직에 대한 헌사는 ‘Surround sound’에서 본격적으로 행해지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의 ‘One step ahead’를 모스 데프의 1999년 작 ‘Ms. Fat Booty’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샘플링했다. 옛 힙합 팬들에게는 반가움을, 신세대 리스너들에게는 신선한 감흥을 전달할 신구를 아우르는 전략이다.

음악적 완성도와 더불어 세밀하고 진심 어린 가사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주된 글감은 각별한 가족 이야기. 전작에서도 자전적인 메시지를 드러낸 바 있는 그이지만 본작에서는 일곱 남매로 자란 어린 시절 배경을 더욱 구체적으로 풀어내며 서사의 밀도를 높였다. ‘Crack sandwich’는 이웃과의 다툼을 통해 더욱 끈끈해진 남매의 일화를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음울한 비트와 제임스 블레이크의 몽환적인 후렴구가 공존하는 ‘Sistanem’에서는 돈을 벌고 유명해질수록 소홀해진 여형제와의 관계를 한탄한다. 이 분야에서 백미는 단연 ‘Kody blu 31’. 언뜻 빌 위더스의 ‘Lean on me’가 연상되는 포근한 멜로디로 일찍 세상을 등진 친구의 아들을 애도하는 노래는 ‘그럼에도 삶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강인한 메시지를 새기며 단연 앨범에서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긴다.

힘들었던 과거에 마냥 사로잡힐 수는 없기에, 그는 나은 미래를 소망하고'(‘Better days’) 인생의 많은 낙관에도 ‘사랑을 느껴라’ 청자를 독려한다.(‘Lauder too’) 그가 앞날을 향해 새긴 한 줄 희망의 언어가 보편의 메시지로서 제이아이디 자신을 넘어 우리에게 닿을 때 기품 있는 엔딩 크레딧이 장식된다. 만개한 기량과 깊어진 서사가 빛을 발하는 올해 최고의 랩 앨범 중 하나다. 드림빌 에이스의 성장이 절정에 달했다.

– 수록곡 –
1. Galaxy
2. Raydar
3. Dance now (Feat. Kenny Mason) 
4. Crack sandwich
5. Can’t punk me (Feat. EarthGang)
6. Surround sound (Feat. 21 Savage, Baby Tate) 
7. Kody blu 31 
8. Bruddanem (Feat. Lil Durk)
9. Sistanem 
10. Can’t make u change (Feat. Ari Lennox)
11. Stars (Feat. Yassin Bey, BadBadNotGood)
12. Just in time (Feat. Kenny Mason, Lil Wayne)
13. Money
14. Better days (Feat. Johnta Austin) 
15. Lauder too (Feat. Raven Lenae, Allen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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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Seven, (세븐 콤마)’ (2022)

평가: 3.5/5

휴식을 넘어 생존을 위한 숨 고르기다. 공존의 가치를 일깨워준 아내가 암으로 사망한 2017년 임재범은 모든 매체와 소통을 끊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간 주류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종종 행적을 감추기도 했지만 사별 직후의 잠적만큼은 일상을 되찾기 위해 필수로 요구되는 재활의 시간이었다. 30주년 콘서트를 끝으로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7년, 쉼표가 아닌 숨표라 명시한 일곱 번째 정규작 < Seven, (세븐 콤마) >가 멈춘 듯한 심장 그리고 음악 활동에 용기 어린 제세동을 가한다.

이별의 비통함을 어루만져 준 건 오랜 시간 그의 음악 곁에 머무른 조력자들이다. 특히 ‘비상'(1997)을 시작으로 25년간 수많은 히트곡들의 작사를 맡았던 영혼의 콤비 채정은의 공로가 크다. 슬픔 서린 내면을 들여다보며 써내린 치유의 노랫말은 앨범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냈고, ‘집을 나서고’, ‘빛을 따라가고’, ‘기억을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휩쓸려간 세월을 차분히 회고한다.

답답한 숨구멍이 트인 덕분에 가창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위로’와 더불어 일대기의 막을 여는 ‘Homeless’에서 7년간 보존하며 단단해진 성대의 진가가 드러난다. 낮은 톤으로 정돈한 보컬은 한동안 반가성으로 올리던 고음을 진성으로 다듬어 말끔한 전달력을 갖췄고, ‘머리에 물감처럼 어둠을 풀어’와 같은 시적 가사를 피아노와 스트링에 얹어 우아히 가슴을 후벼 판다. 이미 정평이 난 베테랑의 쇳소리에 시련이란 각인까지 새긴, 강인한 연마의 증표다.

장르 다변화를 위한 담금질 역시 아끼지 않는다. 갖은 역경을 딛고 희망이란 정상으로 올라가는 남자의 이야기 ‘히말라야’는 전통 성악의 한 분파인 정가를 들여와 극적으로 연출한다. 목관악기 대금과 현악기 아쟁은 한국 특유의 한을 드리우고 서릿발처럼 냉랭히 휘몰아치는 선율 위를 여창 장명서와 함께 헤쳐 나간다. 나직한 팝 발라드 ‘내가 견뎌온 날들’에선 뮤지션 윤상과, 사랑의 애틋함이 감도는 ‘너란 사람’에선 가수 김현철과 교합하기도 하며 극복의 서사를 완성했다.

도움의 손길이 뻗치는 중에도 심지를 굳게 다진 주체는 결국 본인이다. ‘비상’의 작곡가 최준영과 재회한 ‘여행자’는 전성기를 추억하는 듯한 멜로디에 콜드플레이 풍의 기타를 덧입혀 나그네처럼 매일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의 인생을 그린다. ‘이 밤이 지나면’이 스쳐가는 트랙 ‘불꽃놀이’ 또한 희로애락의 굴레를 받아들이고 빛나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폭죽처럼 다가올 장면을 찬란히 수놓고자 한다.

고해를 토해도 모자랐던 방랑자는 이제 의연하다. 과거를 영위했던 동료들과 협연을 펼치며 생명력을 얻었고, 성찰로 체득한 위안의 언어는 현재의 자신은 물론 미래를 키워갈 아이들까지 보듬는다. 호흡을 가다듬고 토닥이는 음유시인의 한 구절 한 마디에 시대가 따스히 공명할 일만 남았다.

– 수록곡 –
1. 위로 [Prologue]
2. Homeless
3. 여행자

4. 그리움
5. 히말라야 (Feat. 장명서)
6. 우주의 전설
7. 불꽃놀이
8. 아버지 사진
9. 내가 견뎌온 날들
10. 너란 사람
11. 홀로 핀 아이 [Epilogue]
12. 우주의 전설 (Acoustic ver.)
13. Another life (메모리즈… 속으로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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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Elevation’ (2022)

평가: 3/5

2009년 작 < The E.N.D >는 광풍을 일으켰다. 팝 음악을 덜 듣는 한국의 고등학생들도 ‘Boom boom pow’를 흥얼거렸고 이 곡과 함께 ‘I gotta feeling’과 ‘Imma be’가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다. ‘Where is the love?’와 ‘Let’s get it started’, ‘Shut up’으로 존재감을 터뜨린 세 번째 정규 앨범 < Elephunk >을 내놓은 지 꼭 6년 만이었다. < The E. N. D >의 일대 현상에 미치지 못했으나 영화 < 더티 댄싱 >의 수록곡 ‘(I’ve had) the time of my life’를 일렉트로 팝으로 바꿔 놓은 ‘The time (dirty bit)’을 대중에 각인했다.

휴지기를 거쳐 8년 만에 발표한 < Masters Of The Sun Vol. 1 >은 대장부 퍼기 대신 필리핀 출신 가수 제이 레이 소울(J. Rey Soul)을 영입해 만든 첫 작품이었다. 그룹의 입지가 내려간 지 오래고 상업적 반응도 미미했으나 본령인 힙합으로의 회귀를 반기는 팬들도 적잖았다. 라틴 음악의 경향성에 영합했다는 지점에서 2020년 작 < Translation >과 궤를 함께하는 신보 < Elevation >은 중독적인 댄스 팝의 연속으로 다시금 대중성을 모색했다.

힙합과 팝, 전자음악의 자연스러운 혼합은 블랙 아이드 피스의 강점이며 여기에 라틴 리듬과 레게톤을 더해 사운드의 폭을 넓혔다. 퍼기의 록적인 음색과 대비되는 제이 레이 소울의 감각적 가창과 랩이 ‘Double d’z’를 관통하고 레게톤의 대표 주자 대디 양키(Daddy Yankee)는 ‘함께 춤춰요’라는 뜻의 ‘Bailar contigo’에 장르 색을 입혔다. 리사 리사 앤 컬트 잼과 릭 제임스의 펑크(Funk) 샘플링에 기댄 전작과 달리 멤버들의 역량을 충분히 분출했다. 샤키라와 프랑스 출신 세계적 디제이 데이비드 게타로 드림팀을 꾸린 ‘Don’t you worry’는 그룹 본연의 국제성과 화합의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숱하게 들어왔던 기계음이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축적된 내공이 자극점을 꿰뚫지만, 기시감과 키치함을 느끼는 순간 흥분감은 사그라든다. 약점을 포착한 베테랑 프로듀서 윌 아이 엠은 빅비트 밴드 프로디지의 동명의 곡에서 최소한의 기타 사운드를 추출한 ‘Fire starter’와 미니멀한 라틴 트랙 ‘Filipina queen’으로 변주를 꾀했다.

윌 아이 엠 창작력의 고점과 퍼기의 카리스마가 합세한 최전성기의 위력에 미치지는 못했다. 비슷한 질감의 댄스 팝 행렬은 청각적 쾌감과 깊이감 부족의 양날 검을 안고 가나 ‘사반세기 그들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싸앉고 춤췄는가?’ 공로를 상기한다. 앨범의 7번 트랙 ‘Guarantee’처럼 블랙 아이드 피스의 음악은 유쾌감을 보장한다.

-수록곡-
1. Simply the best
2. Muevelo
3. Audios
4. Double d’z
5. Bailar contigo
6. Dance 4 u
7. Guarantee
8. Filipina queen
9. Jump
10. In the air
11. Fire starter
12. No one loves me
13. Don’t you worry
14.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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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로(Tove Lo) ‘Dirt Femme’ (2022)

평가: 4/5

색깔이 뚜렷한 만큼 토베 로의 음악은 부담감을 동반했다. 두 곡의 싱글을 히트시킨 데뷔작 < Queen Of The Clouds >부터 미니멀한 < Lady Wood >, 퇴폐미를 고밀도로 농축한 < Blue Lips >까지 이어진 위협적인 이미지는 < Sunshine Kitty >로 뿌연 연기를 일부 걷어낸 후에도 끈적한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메이저 음반사를 떠나 스스로 설립한 인디 레이블에서의 첫 작품 < Dirt Femme >은 사뭇 다르다. 제한 없이 펼친 창조력이 오히려 놀랄 만큼 근사한 음반을 만들어냈다.

거손 킹슬리(Gershon Kinglsey)의 ‘Popcorn’을 비틀어 치명적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는 ‘2 die 4’, 섭식장애의 악몽을 격렬한 에너지로 털어내는 ‘Grapefruit’ 등의 댄스 튠이 먼저 시선을 끈다. 2022년 발매된 팝 음반 사이 단연 뛰어난 멜로디를 자랑하는 여러 트랙 중 정점은 역시 이견의 여지없이 오프닝 트랙 ‘No one dies from love’가 차지한다. 1980년대 신스팝에 북유럽 전자음악의 향취를 끼얹어 고통 이상의 비극을 빚어내는 곡은 토베 로의 최대 역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른 포인트는 육체적 쾌락 너머로 시야를 확장한 가사에 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뮤지션은 ‘Suburbia’에서 규격화된 아내와 엄마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그로 인해 놓치게 될 기회비용 또한 두려워한다. 적막한 반주의 ‘True romance’로 감정을 토해낸 그는 ‘Cute & cruel’에서 사랑을 하나로 규정짓는 대신 그 복잡함을 그대로 포용한다. 관습적인 프레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더러운 여성(Dirt Femme)’을 자처했기에 획득한 지혜다.

그렇기에 협업 트랙에서 게스트의 색깔이 우선적으로 묻어나오는 현상은 주도권의 함락 대신 더 큰 자아 형성을 위한 수용의 과정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겠다. 모국 스웨덴 출신 포크 듀오 퍼스트 에이드 킷과의 하모니는 어쿠스틱 기타와 이루는 뜻밖의 궁합을, SG 루이스가 주조한 두 트랙에서는 스타일을 막론한 소화력을 증명한다. 마냥 직진하는 대신 잠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기를 택한 것이 기존 장벽이었던 피로도를 낮추며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혜안이 되었다.

그동안 줄곧 간단한 키워드로 정의하게 되던 아티스트는 단번에 쉽사리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났다. 마치 직계 선배인 로빈(Robyn)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적으로 틔워낸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쏘아 올린 축포가 음악적인 성취까지 동반한 셈이다. 팝 신에서 토베 로는 이제 다른 의미로 독보적인 이름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수록곡-
1. No one dies from love
2. Suburbia
3. 2 die 4
4. True romance
5. Graepfruit
6. Cute & cruel (Feat. First Aid Kit)
7. Call on me (With SG Lewis)
8. Attention whore (Feat. Channel Tres)
9. Pineapple slice (With SG Lewis)
10. I’m to blame
11. Kick in the head
12. How 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