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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기착寄着’ (2022)

평가: 3/5

데뷔 이래 여행을 주제로 한 메시지를 음악에 녹여내 온 에피톤 프로젝트가 이번엔 여행 중의 잠깐의 멈춤을 다뤘다. 앨범의 제목 ‘기착’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어떤 곳에 잠시 들르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코로나가 야기한 고립과 사색을 의미한다. 때문에 음반의 분위기가 진중하며 한편으론 시련의 끝 무렵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형식을 취했기에 긍정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도모한다.

회상은 그의 음악의 오랜 재료로 향한다. 영화 < 토이 스토리 3 >의 캐릭터가 떠오르는 제목의 ‘랏소’와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을 그린 ‘그대와의 꿈’은 모두 과거의 추억과 현재 상황의 대비가 일으키는 감정적인 긴장을 드러낸다. 꾸밈없이 깨끗하게 툭툭 내뱉는 보컬이 가창 기술보단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농익은 어쿠스틱 편곡은 쓸쓸함을 연출한다. 이러한 견고한 감성은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뺄지 고민한 결과다.

자유에 무게를 둘지, 낙하에 무게를 둘지에 따라 해방감을 표현한 단어로 읽을 수도 있고, 추락을 암시하는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기에 ‘자유낙하’의 제목은 묘하다. 가사를 들여다보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신뢰로 몸을 던지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뜻한 편곡으로 떠나간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달콤씁쓸한’은 명확한 양가감정을 표현한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은 한 가지 감정을 고집하지 않아서 우리의 삶과 더욱 가깝다.

피아노 연주곡 ‘작별’과 ‘눈 오는 날의 풍경’은 각각 EP의 간주와 아웃트로로 기능한다. 멜로디 그대로 노래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선명한 선율감으로 가창곡들 사이에 이질감 없이 섞여 앨범의 서사를 구축한다. < 기착 >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이 스치는 두 연주곡 덕에 트랙들의 감흥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것에 성공하며 진부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주제인 사랑을 꿰어낸다.

예상치 못한 잠깐의 멈춤은 우리의 마음 안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코로나가 허락한 수동적 성찰에 터를 잡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번 앨범도 우리의 이야기만큼이나 개인적이다. 전작들과 비슷한 문법의 전개를 사용한 탓에 얼마간의 지루함이 느껴지나 솔직한 감성에서 기인한 특유의 편안함이 앨범 전반적으로 깔려 잔잔한 매력이 있다. < 기착 >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깨달은 이의 마음 정리다.

– 수록곡 –
1. 자유낙하 (추천)
2. 달콤씁쓸한
3. 작별
4. 랏소
5. 그대와의 꿈
6. 눈 오는 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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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Im Hero'(2022)

평가: 2.5/5

트로트는 거들 뿐, 중장년층의 아이돌 임영웅

송가인이 쏘아 올리고 임영웅이 이어받았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의 연이은 성공이 젊은 두 트로트 스타를 배출했다. 이중 후발주자로 나선 임영웅의 화력이 굉장하다. 2020년 출연한 < 미스터 트롯 >의 우승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첫 번째 정규 음반이 발매 첫날 9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가 하면 3일차에는 1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팔아 치워 역대 솔로 가수 음반 초동 판매량 1위에 올랐다. 그가 ‘트로트’ 가수임을 염두에 둘 때 새삼 대단한 성과다.

아무리 국내에 트로트 열풍이 일었다 손치더라도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앨범을 사고, 음악을 소비하는 적극적인 10-20대 향유층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트로트가 일대의 큰 관심을 받긴 했지만 정확히는 얼어 있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그들을 흔들고 녹였다. 임영웅의 엄청난 음반 판매량 역시 닫혀있던 이들의 지갑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측면에서 더 큰 함의를 가진다. 지금의 임영웅은 중장년층의 아이돌이다.

확실한 인기층을 등에 업은 그는 옛 감성의 트로트를 꺼내오기보단 현재의 젊음을 강조한다. 자신의 이름을 앨범 명으로 삼은 신보의 커버 속 임영웅은 반짝이는 트로트 의상이 아닌 말끔한 정장을 입고 어딘지 ‘힙’하고 세련된 시선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사진만 보았을 땐 ‘트로트’의 잔상이 사실상 전무하다. 수록곡 역시 트로트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후반부 위치한 ‘사랑역’, ‘보금자리’를 지나 ‘사랑해요 그대를’ 정도만 본적을 드러낸다.

집중한 것은 트로트보다 범보편적인 ‘대중성’이다. 이적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앞서 드라마 OST로 큰 사랑을 받은 ‘사랑은 늘 도망가’ 풍의 진한 발라드이며 ‘우리들의 블루스’ 역시 비슷한 색감을 지닌다. 이후 흥겨운 후크송 ‘무지개’, 복고풍의 달콤한 세레나데 ‘손이 참 곱던 그대’, ‘사랑해 진짜’ 등의 쉽고 확실한 메인 멜로디를 장착,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이어진다. 트로트가 윗세대의 것이라면 적어도 이 음반에서 그 그림자는 살짝 감춰진다.

레게 리듬에 랩, 전자음을 뒤섞은 ‘A bientot’에 트로트는 없다. 애끓는 발라드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앨범은 무리 없이 그의 주요 팬층을 향해 다가서는데 나는 여기서 중장년층의 아이돌 임영웅의 현재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트로트로 윗세대의 마음을 열었지만 그는 지금 ‘트로트’를 포함한 ‘익숙함’으로 중장년층의 관심을 굳힌다. 얼핏 EDM을 포함한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담은 앨범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장르의 외피만 벗겨왔을 뿐 메시지 자체는 안정적으로 윗세대 팬층에게로 향한다.

트로트 계의 아이돌 임영웅이 현재 서 있는 그 무대. 빼고 더할 것 없이 익숙한 그의 모습을 모나지 않게 재생산한 앨범이다.

-수록곡-
1.다시 만날 수 있을까
2.무지개
3.손이 참 곱던 그대

4.우리들의 블루스
5.아버지
6.A bientot
7.사랑역
8.보금자리
9.사랑해 진짜
10.연애편지
11.사랑해요 그대를
12.인생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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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수미(Say Sue Me) ‘The Last Thing Left'(2022)

평가: 3.5/5

오늘날 인디 밴드는 홍대에서만 피어나지 않는다. 전국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로컬 신 가운데서도 부산은 김일두, 보수동쿨러 등 많은 뮤지션을 낳은 큰 무대다. 세계적인 밴드 세이수미 역시 부산 출신이다. 이들은 영국의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와 계약을 맺고 엘튼 존이 라디오에서 소개하며 로컬 밴드에서 한국 록의 해외 진출 선봉장으로 성장했다.

행운과 함께 불운이 들이닥쳤다. 성공적으로 영국 투어를 마친 2017년 드러머 강세민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친구의 부재에 대한 슬픔과 추억을 담은 < Where We Were Together >로 음악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어두운 터널은 계속됐다. 2020년 코로나 발생으로 공연이 모두 중단되었고 세이수미는 본거지로 돌아가 새 앨범에 힘을 쏟았다.

녹음부터 후반 작업, 디자인, 뮤직비디오까지 밴드의 손길이 닿은 < The Last Thing Left >의 감정은 깊고 넓다. ‘Around you’는 펜데믹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요즘의 모습을 옮겨왔고 베이시스트 하재영이 팀을 떠날 때 쓴 ‘Photo of you’는 관계 단절로 인한 상실감을 노래한다. 동시에 ‘꿈에’는 죽음이 끝이 아니고 언젠가 재회할 것이라 희망한다.

활기 넘치고 재글재글하던 밴드 사운드는 은은하고 아늑해졌다. ‘Around you’의 펑크(Punk)적인 기타 리프는 최수미의 보컬을 만나 부드러운 팝으로 변모하고 ‘Still here’의 느리고 우울한 멜로디는 팀이 존경하는 밴드 요 라 텡고(Yo La Tengo)의 스타일을 따른다. ‘No real place’의 빠른 리듬 기타와 리버브에는 대표곡 ‘Old town’의 여운이 남아있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세이수미는 여전히 해사하게 노래하며 희망을 전한다. 3집의 제목 ‘The Last Thing Left(마지막에 남은 것)‘가 뜻하는 것 역시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아갈 수 있다는 진심을 녹였다. 우울과 자기혐오로 점철된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다정한 음반이다.

– 수록곡 –
1. 그 때의 기억
2. Still here (추천)
3. Around you (추천)

4. We look alike
5. No real place
6. 꿈에 (추천)
7. Photo of you
8. The last thing left
9. Now I say
10. George & Ja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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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XCX(Charli XCX) ‘Crash’ (2022)

평가: 3.5/5

늘 두 발짝 앞서 있던 팝의 선구자가 갑작스레 한 발짝 후퇴를 선택했다. 레트로 유행에 편승한 ‘Good ones’, 같은 팬덤을 공유하는 크리스틴 앤 더 퀸즈와 캐롤라인 폴라첵을 대동하여 드림팀을 꾸린 ‘New shapes’, 그리고 밈으로 유명한 ‘Cry for you’를 샘플링한 ‘Beg for you’까지. 남녀노소 과거로 뛰어들던 흐름에 동참하면서 인터넷 문화까지 노골적으로 겨냥한 행보는 자연스레 단어 하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셀아웃(Sell out, 변절자)’.

여기까지가 정확하게 < Crash >가 의도한 그림이다. 대형 레이블에서의 마지막 음반을 위해 그는 ‘악마와의 계약’을 콘셉트로 잡고 상업성을 최상위 목표로 둔 이상적인 팝스타의 틀에 자신을 맞췄다. 싱글을 공개할 때마다 일일이 동봉한 개별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 리믹스 없이 새 트랙으로만 채운 디럭스 버전은 2010년대 초중반 가수들의 성실했던 앨범 활동을 그리워하는 팝 키덜트들의 아쉬움을 채워준다.

내실 있는 음악 덕분에 일련의 전략은 허위 광고에 그치지 않는다. 2019년 < Charli >의 첫 트랙 ‘Next level Charli’를 닮은 도입부에서 뉴 잭 스윙으로의 반전을 꾀하는 오프너 ‘Crash’는 화려한 기타 솔로를 추가하며 짜릿함을 극한으로 충전하고, ‘Good ones’는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의 베이스라인을 재해석하면서도 날카로운 가성을 덧입혀 본인만의 색채를 뚜렷하게 새긴다. 성공을 위해 복고 트렌드를 이용은 하되 결코 몰개성적으로 휩쓸리지는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 Crash >는 그의 지난 음악 세계를 집대성하는 요약본이기도 하다. 데뷔작 < True Romance >의 어두움을 흡수한 ‘Lighting’에서는 완전히 체화된 하이퍼 팝의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끈적한 1980년대풍 베이스의 ‘Yuck’으로는 사랑에 흠뻑 취한 가사를 그려내며 2014년 히트곡 ‘Boom clap’의 달콤한 추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스스로가 거쳐온 자취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뮤지션만이 만들 수 있는 커리어 1막의 훌륭한 피날레다.

명성을 안겨다 준 하이퍼팝에 ‘죽음’을 선포하며 시체가 놓인 관을 두고 군무를 췄던 ‘Good ones’의 뮤직비디오처럼, 찰리 XCX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거대 자본의 기회를 전격 활용해 소박한 마이너 스타로 만족하기보다 타락한 팝의 하수인으로 부활하기를 택했다. 타협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온 방면에서 끌어모은 노력은 팬들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첫 번째 영국 앨범차트 1위라는 영예를 그에게 안겼다. 거래는 성공했고, 장례식은 축제가 되었다.

– 수록곡 –
1. Crash (추천)
2. New shapes (Feat. Christine and the Queens & Caroline Polachek)
3. Good ones (추천)
4. Constant repeat
5. Beg for you (Feat. Rina Sawayama)
6. Move me
7. Baby (추천)
8. Lightning (추천)

9. Every rule
10. Yuck (추천)
11. Used to know me
12. Tw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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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셀(Soft Cell) ‘Happiness Not Included'(2022)

평가: 3.5/5

1981년 발표한 데뷔작 < Non Stop Erotic Cabaret >는 앨범커버부터 음악까지 섹슈얼한 이미지로 가득했고 미국 소울 여가수 글로리아 존스의 곡을 커버한 ‘Tainted love’와 ‘Bedsitter’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신스팝 앨범으로 부상했다. 보컬 마크 알몬드와 연주자 데이비드 볼로 이뤄진 소프트 셀은 비록 데뷔작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1980년대에 발표한 넉 장의 정규 앨범으로 신스팝 역사에 이름을 각인했다. 2002년 18년 만의 복귀작 < Cruelty Without Beauty >를 내놓은 이들은 또 한 번 긴 시간을 지나 신작 < Happiness Is Not Included >로 돌아왔다.

중후해진 알몬드의 목소리는 주제 의식에 힘을 실었다. 소프트 셀 이후 활동이 미비했던 볼과 달리 알몬드의 디스코그래피는 < Stories Of Johny >(1985)와 < The Stars We Are >(1988)같은 아트 팝 수작을 포함 정규 앨범만 25장에 달한다. 전천후 뮤지션인 알몬드지만 소프트 셀 시절엔 볼의 기악에 얹은 가창과 가사에 집중했고 그 작업 방식은 이번 앨범에도 적용되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다. ‘Hearts like a Chernobyl’과 ‘Bruise on all my illusions’는 사회 풍자로 가득하고 타이틀곡 ‘Happiness is not included’는 “영국은 노예 제도와 부당이득으로 세워졌다”라며 직설한다. 마음의 횃불(Torch)을 켜 타락한 사랑(Tainted love)을 나누던 혈기 왕성과 대비되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캐치한 멜로디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동양적 선율을 품은 클럽용 뱅어 ‘Nostalgia machine’과 1981년 히트곡 ‘Memorabilia’와 흡사한 ‘Polaroid’는 볼의 감각을 입증했다. 펫 샵 보이스가 참여한 ‘Purple zone’은 두 그룹의 개성을 적절히 혼합했고 폴 매카트니, 티나 터너와 협업했던 세션 연주자 게리 바너클의 색소폰은 차분한 전개의 ‘Light sleepers’에서 돋보인다.

< Happiness Not Included >는 전작 < Cruelty Without Beauty >와 마찬가지로 복고적인 신시사이저 음향을 지향했고 매끄러운 곡 전개와 또렷한 선율은 스타일과 무관한 흡인력을 지녔다. 6장의 정규 앨범을 관류하는 사운드적 연속성은 40년의 세월에도 퇴색치 않았다. 뇌쇄적인 목소리로 성(Sex)을 노래하던 두 청년은 환갑이 넘어 다른 목소리, 다른 주제로 1980년대 신스팝의 향수를 자극했다.

-수록곡-
1. Happy happy happy
2. Polaroid
3. Bruises on all my illusions
4. Purple zone (With. Pet Shop Boys)
5. Heart like Chernobyl
6. Light sleepers
7. Happiness not included
8. Nostalgia machine
9. Nighthawks
10. I’m not a friend of god
11. Tranquiliser
12. New e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