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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 ‘Im Nayeon'(2022)

평가: 3/5

그룹 활동에 집중했던 트와이스가 솔로 활동을 개시했다. 첫 주자는 나연. 지효와 더불어 곡 전반을 이끄는 보컬리스트이자 팬덤과 대중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멤버 중 하나이기에 다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다. 미니 앨범 분량을 최대로 채운 일곱 곡의 트랙 리스트와 별다른 수식어 없이 본인의 이름을 딴 앨범 제목이 이에 따른 자신감을 적극 반영한다.

당당한 포부와 달리 초반부는 다소 조급하다. 타이틀곡 ‘Pop!’은 현아의 ‘Bubble pop!’처럼 이목을 끌 포인트를 적극적으로 배치했으나 그 밀도가 너무 높아 산만함이 동반된다. 레드벨벳의 ‘Rookie’처럼 중독성 일궈내기에 바쁜 탓에 비트가 자아내는 피로감을 희석하지 못하고 있다. 영어로 쓰인 ‘No problem’으로는 해외 시장을 겨냥하지만, 가사 전달에 치중하는 사이 정작 피처링으로 참여한 스트레이키즈의 래퍼 필릭스에게 주목도를 빼앗기고 만다.

스포트라이트의 쟁취는 부담을 덜어낸 이후에 이뤄진다. 유연한 보컬을 펼치는 ‘Love countdown’은 원슈타인과 능숙하게 섞이면서도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유지하고, ‘Candyfloss’는 전형적인 트와이스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으나 단단한 장악력 덕분에 다른 여덟 멤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랩의 빈자리를 여유롭게 채우는 목소리가 그룹의 향후 방향성까지 어렴풋이 가리킨다.

유사한 맥락으로 음색 뽐내기에 초점을 맞춘 알앤비 트랙보다 차분한 발라드가 돋보인다. 기교를 살짝 덜어내고 목소리 자체에 집중한 ‘노을만 예쁘다’는 나연의 기초적인 하드웨어가 결코 허술하지 않다는 사실을 재차 증명한다. 화려한 장치와 숨 가쁜 계획 뒤에 가려졌던 준비된 아티스트가 발굴되는 결말이 자연스레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음반이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되지만, 그 어떤 준비운동도 없이 바로 본 게임에 뛰어들었음을 감안하면 < Im Nayeon >은 나쁘지 않은 첫 라운드다. ‘솔로여도 되는 이유’에 대한 확인을 마쳤으니, 다음 과제인 ‘솔로여야 하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하나, 가수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커질 필요가 있다.

– 수록곡 –
1. Pop!
2. No problem (Feat. 필릭스 of 스트레이키즈)
3. Love countdown (Feat. 원슈타인)
4. Candyfloss

5. All or nothing
6. Happy birthday to you
7. 노을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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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퓸 지니어스(Perfume Genius) < Ugly Season >

평가: 3.5/5

다채로운 스타일의 아트 팝 앨범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의 흑백 화면에서 정면을 응시하던 남자는 거친 붓 터치의 일그러진 형상으로 변모했다. 고통의 운명을 타고난 자의 몸부림은 관습과 규율을 깨는 것이 사명인 양 소리를 뒤틀고 콜라주 한다. 퍼퓸 지니어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 Ugly Season >은 수줍은 이단아가 펼치는 소리 만화경이다.

케이트 월릭의 현대무용 < The Sun Still Burns Here >을 위해 만들었던 신작은 시각적 체험을 돕는 영화음악에 가깝다. 곡들은 길어졌고 대중적 색채도 옅어졌지만, 퍼퓸 지니어스는 늘 그래왔듯 제약을 거부한다. 뮤지션 겸 프로듀서 블레이크 밀스가 네번째 정규 앨범 < No Shape >와 전작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에 이어 아방가르드에 일조했다.

성소수자, 크론병 환자로 겪은 아픔은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유대인 남성에게 금단의 장소인 에렘에 자신을 투영한 ‘Herem’은 분열을 암시하고 현악기가 두드러지는 바로크 팝 ‘Ugly season’에선 ‘갈라진 검은 구덩이, 혀를 주목하라’ ‘나는 썩은 신으로부터 돌아온다.’라는 구절로 어두운 심상을 구축한다. 은유와 환유로 점철된, 소리로 표현한 시(詩)다.

반겔리스의 관악기와 현악기 사이에 있는 듯한 시그니쳐 사운드와 로버트 프립이 기타 효과음처럼 실험적이다. 실로폰과 닮은 체명악기 글로켄슈필이 신비로움을 형성한 ‘Teeth’와 거대한 앰비언트 소리벽을 조금씩 뜯어가며 미니멀리즘으로 전환하는 ‘Just a room’은 현대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를 소환했다. 급진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사이로 ‘Pop song’과 ‘Photograph’의 선율이 대중성을 확보했다.

퍼퓸 지니어스는 쓰라린 기억을 어둡고 몽환적인 앰비언스에 담아 소수자의 가슴에 흩뿌린다. 예술만이 구원이었고 자아실현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주저할 수 없었다. 현대미술처럼 전위적인 사운드와 노랫말은 자유로운 사상을 담기에 최적화되었다. < Ugly Season >은 ‘음악에 모두를 건’ 예술가의 존엄한 수기다.

-수록곡-
1. Just a room
2. Herem
3. Teeth
4. Pop song
5. Scherzo
6. Ugly season
7. Eye in the wall
8. Photograph
9. Hellbent
10. Ce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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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We’ (2022)

평가: 3/5

온갖 조롱과 함께 밈(meme)으로 전락한 2017년 < Everything Now > 이후 5년 만이다. 돌아온 아케이드 파이어는 디스코 리듬 대신 기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편안함 대신 격렬함을 추구하는 작법을 택한다. 첫 싱글로 공개된 연작 ‘The lightning’은 초창기 음악으로 돌아가겠다는 일종의 선포다. 전반부 ‘I’의 자아 탐구에서 ‘We’의 세계로 향하는 전환점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밴드의 옛 모습을 잊지 못한 이들에게 반가움을 안긴다.

반면 이외의 곡에서는 의도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일정 단계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카타르시스의 직전에서 머뭇거리는 ‘Age of anxiety I’의 구조가 곳곳에서 반복되는 탓이다. 상승 기류가 보이던 두 번째 섹션 이후 고꾸라지는 ‘End of the empire I-III’, 찬란한 멜로디를 평이한 후렴으로 황급히 마무리하는 ‘Unconditional I (lookout kid)’은 < Funeral >과 < The Suburbs >가 이룩한 명성을 더욱 견고한 성역으로 드높일 뿐이다.

그렇다면 신보는 그저 혈기를 상실한 팀의 씁쓸한 현주소일 뿐일까.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앨범들처럼 공동체 정신 속 격정적인 감정의 발산이 아케이드 파이어 음악의 한 축을 이뤘다면, 반대편에서는 < Neon Bible >과 < Reflektor >를 거치며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 이어졌다. 합창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를 꼬집은 < Everything Now >는 두 갈래의 통합을 이루는 듯했으나, 지나치게 신나는 분위기에 함몰된 나머지 계몽을 이끌 선지자보다 대중을 기만하는 컬트 교주로 전락해 버렸다.

< We >가 그 과오를 씻어내는 방법은 ‘낯설게 하기’다. 동일하게 사회 갈등과 분열을 텍스트로 삼지만, < Reflektor >처럼 거창한 고대 신화의 은유 대신 ‘불안감’이나 ‘구독 취소’처럼 현실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청자의 과한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전작에 대한 반성을 담은 ‘End of the empire IV (Sagittarius A*)’는 아예 제4의 벽을 깨며 ‘Fuck season five(시즌 5는 꺼져!)’라 외치기까지 한다. 해답 없는 질문들이 마지막까지 이어지며 거듭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것이 끝난다면, 과연 우리가 다시 해낼 수 있을까?’

발을 맞춰 달려 나가던 젊은 날의 부활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다. 의의는 서서히 빠져버린 계몽자의 늪에서 벗어나, 어려운 개념과 이론의 비중을 줄이고 대중과 같은 시선을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기로 마음먹었다는 점이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분명 달라졌다. 그들이 다시 건넨 손을 붙잡고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이어 나갈지에 대한 선택은 이제 철저히 우리의 몫이다.

-수록곡-

  1. Age of anxiety I (추천)
  2. Age of anxiety II (rabbit hole)
  3. Prelude
  4. End of the empire I-III
  5. End of the empire IV (Sagittarius A*)
  6. The lightning I (추천)
  7. The lightning II (추천)
  8. Unconditional I (lookout kid)
  9. Unconditional I (race and religion) (Feat. Peter Gabriel)
  10. 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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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woo!ah!) < Joy >(2022)

평가: 4/5

브레이브 걸스의 ‘Rollin’, 씨스타의 ‘나 혼자’, 에이핑크의 ‘No no no’, 현아의 ‘Bubble pop’, A.O.A.의 ‘심쿵해’의 춤을 만든 안무가 김규상이 설립한 NV 엔터테인먼트 소속 5인조 걸그룹 우아는 다른 팀들과 결이 다르다. 노래에 어울리는 안무를 구성하는 것보다 춤에 맞게 노래를 수정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곡과 율동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비대칭은 주목을 받지 못한 이전 싱글 ‘Woo!ah!’, ‘Purple’, ‘Bad girls’, ‘I don’t miss U’, ‘빙빙빙’에서 드러났다. 오렌지 카라멜의 ‘까탈레나’나 크레용팝의 ‘빠빠빠’처럼 대중성과 실험성, 독창성과 키치적 감성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우아는 그 선배들의 성공방식을 따르면 안 된다. 그들보다 실력이 좋기 때문이다.

다른 걸그룹들이 곱고 여린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가성을 자주 사용하나 우아는 마마무나 브레이브 걸스처럼 진성으로 노래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멤버들의 재능과 충실했던 보컬 훈련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지점이다. 한일 혼혈인 멤버 소라의 한글 발음 역시 무난해 감정 전달에도 이질감이 없다. 케플러의 히카루만큼 한글 가사를 잘 소화하는 소라는 우아의 다양성에 마침표를 찍는다.

첫 앨범 < Joy >에는 2020년에 팀을 나간 멤버 송이가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 가창력이 아쉬웠던 그의 탈퇴로 5인조가 된 우아는 전체적인 안무 동선에도 변화를 줬고 그에 따라 가창력과 정확한 호흡을 요구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조금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것이 이번 음반의 성장 동력이자 미덕이다. 자신감 있는 보컬은 일취월장했고 주로 고음을 맡은 민서 역시 안정적이다. ‘단거(Danger)’, ‘Switch up’, ‘Joyride’에서 곡을 휘젓고 다니는 루시의 래핑 플로우도 좋고, 인상적인 코러스와 특이하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허밍으로 흥얼거리기 좋다. 이것만으로도 대중적인 요소를 하나 더 장착한 셈. 여기에 최근 몇 년 간 히트공식이 된 복고적인 펑크(funk)/디스코를 시도한 ‘별 따러 가자’는 < Joy >의 보석 같은 히든트랙이다.

노래, 외모, 가창력의 편차가 심하지 않은 여러 아이돌 그룹들에게 명과 암을 제공하는 것은 코디나 안무, 사생활 논란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이 많다. 4세대 걸그룹 군에서도 괜찮은 보컬과 춤 실력을 소유한 우아가 보완해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0대 초반의 밝은 멤버들과 어울리지 않고 노래와 따로 노는 율동이다. 우아의 댄스는 평범함과 쿨함 안에서 노래와 함께 어울려야 빛을 발한다.

< Joy >는 자신들의 색깔보다 현재 걸그룹 유행에 맞춰서 대중의 주파수에 들어가려고 노력한 흔적이 뚜렷한 음반이다. 사포처럼 조금 거칠고 민트초코처럼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겠지만 이 모든 것은 우아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4세대 걸그룹 경쟁에 뛰어든 우아가 드디어 우아하게 날개를 편다.

– 수록곡 –
1. 단거(Danger)
2. Joyride
3. Go away

4. Switch up
5. Straight up
6. 별 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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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기착寄着’ (2022)

평가: 3/5

데뷔 이래 여행을 주제로 한 메시지를 음악에 녹여내 온 에피톤 프로젝트가 이번엔 여행 중의 잠깐의 멈춤을 다뤘다. 앨범의 제목 ‘기착’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어떤 곳에 잠시 들르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코로나가 야기한 고립과 사색을 의미한다. 때문에 음반의 분위기가 진중하며 한편으론 시련의 끝 무렵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형식을 취했기에 긍정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도모한다.

회상은 그의 음악의 오랜 재료로 향한다. 영화 < 토이 스토리 3 >의 캐릭터가 떠오르는 제목의 ‘랏소’와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을 그린 ‘그대와의 꿈’은 모두 과거의 추억과 현재 상황의 대비가 일으키는 감정적인 긴장을 드러낸다. 꾸밈없이 깨끗하게 툭툭 내뱉는 보컬이 가창 기술보단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농익은 어쿠스틱 편곡은 쓸쓸함을 연출한다. 이러한 견고한 감성은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뺄지 고민한 결과다.

자유에 무게를 둘지, 낙하에 무게를 둘지에 따라 해방감을 표현한 단어로 읽을 수도 있고, 추락을 암시하는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기에 ‘자유낙하’의 제목은 묘하다. 가사를 들여다보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신뢰로 몸을 던지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뜻한 편곡으로 떠나간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달콤씁쓸한’은 명확한 양가감정을 표현한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은 한 가지 감정을 고집하지 않아서 우리의 삶과 더욱 가깝다.

피아노 연주곡 ‘작별’과 ‘눈 오는 날의 풍경’은 각각 EP의 간주와 아웃트로로 기능한다. 멜로디 그대로 노래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선명한 선율감으로 가창곡들 사이에 이질감 없이 섞여 앨범의 서사를 구축한다. < 기착 >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이 스치는 두 연주곡 덕에 트랙들의 감흥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것에 성공하며 진부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주제인 사랑을 꿰어낸다.

예상치 못한 잠깐의 멈춤은 우리의 마음 안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코로나가 허락한 수동적 성찰에 터를 잡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번 앨범도 우리의 이야기만큼이나 개인적이다. 전작들과 비슷한 문법의 전개를 사용한 탓에 얼마간의 지루함이 느껴지나 솔직한 감성에서 기인한 특유의 편안함이 앨범 전반적으로 깔려 잔잔한 매력이 있다. < 기착 >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깨달은 이의 마음 정리다.

– 수록곡 –
1. 자유낙하 (추천)
2. 달콤씁쓸한
3. 작별
4. 랏소
5. 그대와의 꿈
6. 눈 오는 날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