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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던스 인터뷰

얼마 전까지만 해도 ‘Young’이라는 개념엔 왠지 모르게 엄청난 악센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점점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어린 가수들이 마음껏 그들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음의 찬가를 들고 나타난 신인 혼성 그룹 프루던스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복고적인 감성과 현대적인 질감을 적절히 버무려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팀들은 많지만 이들은 젊음, 즉 청춘을 이야기하고 있다.

데뷔 EP 앨범 < While You Are Young >을 발매한 지 한 달도 안 된 9월의 첫날, 이즘 사무실로 프루던스의 두 멤버가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엔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막상 음악 얘기를 시작하니 마스크 너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작곡과 프로듀싱을 책임지고 있는 지영, 그리고 작사와 보컬을 맡고 있는 지유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에게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팀명 ‘프루던스’의 의미는.
지유 : 둘 다 신중한 성격이라 ‘신중함’이라는 뜻을 가진 프루던스(Prudence)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처음 같이 작업한 ‘그대 이름은 Blue’의 이름과도 잘 어울려서 프루던스로 결정하게 됐다.

팀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영 : 2019년 10월 정도에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여성 보컬을 찾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소개도 받고 인터넷으로 커버 영상이나 자작곡 올리시는 분들을 많이 검색했는데 지유 씨가 유독 눈에 띄더라. 목소리나 송라이팅이 너무 좋아 연락을 했고 홍대 연남동에 있는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음악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다.

원하는 음악적 이미지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나.
지영 : 그 생각은 얼굴 보기 전부터 들었다. 지유가 인터넷에 올려둔 곡들을 들어봤는데 목소리가 내 음악이랑 너무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특정 음색을 정해둔 것도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보컬에 맞춰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지유의 음색을 듣는 순간 상상이 구체적으로 완성됐다.

타이틀곡이 ‘그대 이름은 Blue’다.
지영 : 지유가 팀을 결성하기 전부터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파란색으로 표현한 가사를 미리 써뒀는데 이게 너무 마음에 들더라. 그래서 최대한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곡이다.
지유 : 나 역시 어떤 노래가 나올지 엄청 기대했는데, 결과물을 듣자마자 너무 내 취향이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사운드에 내가 쓴 가사까지 입히니 부를 때도 신이 났다.

가장 기분 좋게 부른 곡이 따로 있나.
지유 : 아무래도 앨범 제목이기도 한 ‘While you’re young’을 뽑고 싶다. 젊음은 사랑 그 자체라 생각하고, 이 곡이 그 얘기다.

요즘 보면 젊음과 사랑이 그다지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사랑이 부재한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더 끌어올린 건가.
지유 : 아무래도 어릴 때는 순수하고 재는 거 없이 사랑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진짜 어릴 때의 사랑만이 젊은 사랑이라고 보진 않는다. 연애 기간도 길어질수록 어떻게 보면 나이가 드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결론적으론 ‘사랑이 전부다’ 이걸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앨범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지영 : 트렌디하지만 복고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시티팝 스타일 같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마 1980년대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1980년대에 태어나서 직접적으로 당대의 음악을 듣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냥 디스코 음악이나 신스팝이 내 감성과 잘 맞는 것 같다.

크레딧을 보니 지영 님 혼자서 기타, 피아노, 베이스를 녹음하고 믹싱까지 했다. 평소 리얼 세션과 전자 음악의 비중을 어떻게 두는지.
지영 : 어릴 때부터 기타를 쳤고, 베이스랑 키보드도 좀 다룰 줄 알기 때문에 리얼 녹음이 필요할 때는 큰 무리가 없는 편이다. 드럼만 세션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전자적인 사운드는 20대 중반 이후에 개발된 취향인데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둘 다 동일하게 비중을 둔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도 수집해서 사용하고 있다. 가상 악기도 물론 훌륭하지만 예전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내는 소리도 많이 넣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레트로한 느낌도 강조되는 것 같다.

기반은 밴드 사운드지만 신시사이저도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을까.
지영 : 의도라기보다는 다섯 곡의 작업 시기가 다 다르다. 처음 스케치를 3~4년 전에 했던 곡들의 경우엔 그 당시에 좋아했던 밴드들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가 있고, 제일 마지막에 쓴 ‘Festival’처럼 최근에 작업한 곡들은 아무래도 전자음악 쪽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트랙마다 프루던스의 변천사가 조금씩 들어가 있다.

각각의 곡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지영 : 청춘이 느끼는 다섯 가지 감정의 스펙트럼인 셈이다. 첫 곡 ‘그대 이름은 Blue’에는 기대와 이상이 담겨있다. 청춘은 어떤 모습일지, 나의 인생에 가장 푸르른 시기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는 느낌으로. ‘초상화’는 어린 시절의 시행착오와 그에 대한 불안함으로 생각한다. 타이틀곡 ‘While you’re young’은 말 그대로 찬가다.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다.’평행우주’에는 가장 찬란한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느껴지는 허전함과 상실을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Festival’은 초월에 가깝다. 어쨌든 인생은 축제 같은 것이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 있다가도, 그냥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불꽃놀이 같은 걸 보고 깨닫는 것처럼. 짧고 아름다운 거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를 즐기자는 메시지다.

이번 EP를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주길 바라는지.
지유 : 계속 언급했듯 청춘이 키포인트다. 청춘을 마무리하는 사람, 청춘을 막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 그러니까 청춘을 살아가는 모두가 자신의 시절을 떠올리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일종의 세대 차별이 아닌가. (웃음)
지유 : 본인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다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풀 렝스 앨범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지영 : 소속사에 몸 담기 전부터 데뷔 앨범은 EP로 계획했다. 롤링컬처원에 들어와서 ‘Drive my car’라는 곡을 먼저 싱글로 발매하게 되었고 당장은 음악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다섯 곡의 미니 앨범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음악이라는 게 결국 라이브, 즉 관객과 만나는 걸 전제로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사실상 조금 어려운 시점이다. 그런 면에서 앨범의 발매 시점을 조금 미룰 계획은 없었나.
지영 : 그런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다. 원래 이번 EP를 작년에 내려고 했었는데 ‘Drive my car’를 싱글 앨범으로 먼저 발매하면서 예상보다 기간이 조금 늦춰진 케이스다. 당연히 처음부터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팀이라 많이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음악적으로 성장할 거고 취향도 계속 바뀔 테니까 지금 시점을 기록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지유 : 솔직히 막 힘든 적이 아직까지는 없었다. (웃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지금이 아닐까 싶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고 처음 해보는 일이 많다 보니까. 그만큼 더 잘 하고 싶어서 아무래도 마음고생도 하고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지영 : 주저하지 않고 20대 중반을 말하고 싶다. 이전 밴드(굿모닝달리)를 하기 전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자연스레 고민이 많았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남들은 학업도 마치고 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고, 이게 제대로 된 커리어로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돌아보면 그때는 겪어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 주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지영 : 사실 부업으로 아이돌 콘서트 실시간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BTS, 블랙핑크, 세븐틴 이런 아티스트들 전부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한 적도 많다 보니까 작년부터 거의 매주 아이돌 콘서트를 접하고 있는 상황이다. 솔직히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생소한 경험이긴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도 많다. 수많은 국내외 팬들이 보는 만큼 저들이 갖고 있는 무언가, 즉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영 : 우선 비주얼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팬들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 아이돌은 데뷔부터 소통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팬들이 즐기기엔 훨씬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인디 밴드가 이들의 비교 대상으로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인디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통의 폭이 좁아서 아쉽긴 하다.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지유 : 가사를 쓰는 작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가끔은 정말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 마무리를 앞두고 어느 한 군데에서 막혀버리더라. 이런 게 창작의 고통인가 싶다. 그리고 녹음할 때 세심하게 집중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긴장이 많이 되곤 한다.

가사를 쓸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지유 : 시집에서 영감을 주로 얻는다. 책이랑 영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영감을 자주 얻곤 한다. 대개 큰 틀만 챙기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우는 편이다.

본인을 음악가로 만든 가수나 앨범, 노래가 있다면?
지영 : 나는 계속 자미로콰이다. 어릴 적 악기를 배우면서 연주의 개념으로 음악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발견한 취향이 애시드 재즈다. 굿모닝달리에서 이를 많이 구사하려고 노력했었다. / 자미로콰이 < Travelling Without Moving >, 레드 제플린 < Led Zeppelin IV >, 어스 윈드 앤 파이어 < All ‘N All >, 팻 메스니 < Offramp >, 존 메이어 < Inside Wants Out >

지유 : 노래 부를 때 기교를 심하게 넣는 스타일은 아니라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그런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찾아 듣게 되더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유재하 같은 목소리가 훨씬 감동적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된 것 같다. 나는 내 목소리가 제일 좋다. (웃음) /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 검정치마 < Thirsty >, 시거레츠 애프터 섹스 < Cigarettes After Sex >, 블러 ‘There’s no other way’

앞으로 활동에 있어 포부가 있다면.
지영 : 일단 기대보다 좋은 성과를 얻고 있어서 출발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작업에 목말라 있는 상태라 앞으로 많은 곡을 발표할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하고, 이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잘 풀릴 것 같다. 열심히 하다 보면 코로나 사태도 종결되어서 공연할 기회도 생길 거라 믿는다. (웃음)

인터뷰: 임진모, 임동엽, 장준환, 이홍현, 정다열, 김성엽
촬영: 임동엽, 김성엽
정리: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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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열 인터뷰

기타리스트 유병열의 음악 인생은 길고 굽이굽이 이야기가 들어차 있다. 1990년대 윤도현 밴드(현 YB)의 주축 멤버로 데뷔해 비갠 후, 바스켓노트를 거쳐 최근엔 산울림의 김창훈이 만든 김창훈과 블랙스톤즈로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산울림 음악을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 창문너머 어렴풋이 >의 음악감독 역시 유병열이다. 다각도로 쉬지 않고 활동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웃으며 “전투적인 사람의 덩어리로 태어났다”라고 답했다.

유병열은 하지만 고민이 많다. 한국 최초로 록 기타리스트들의 축제 < 골든핑거 >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이에 맞춰 ‘지구를 지켜라’라는 테마의 싱글 ‘We want green earth’를 발매했지만 세간의 관심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를 두고 일정 부분 자포자기 혹은 관망 상태임을 고백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정중동이다. 모든 걸 쏟아부은 자만의 ‘초연함’이랄까. 최근 활동을 중심으로 기타리스트 유병열의 현재를 돌아봤다.

얼마 전 < 골든핑거 기타페스티벌 >(이하 ‘골든핑거’)을 ‘비대면’으로 끝냈다.
첫 회는 창동에서, 두 번째는 통영에서 대면으로 공연했는데 3회에 이어 이번 4회 차 역시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기타리스트 공연을 비대면으로 한다는 게 감이 잘 안 잡힌다. 노래 없이 기타만 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쉽게 성사된 면도 있지 않나?
오히려 연주곡 중심이라서 더 안 될 거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연주는 유튜브에 너무 많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이걸 돈 내고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거라고 봤다. 그래서 공연 준비하면서 애로사항도 많았고…

뭐가 애로사항이었는지?
대면으로 했던 1~2회 공연은 거의 매진이었다. 물론 통영에서 공연할 땐 통영 플랫폼을 통해서 입장료가 비싸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싸다고 관객이 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붐이 일어서 좋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아쉬움이 컸다. “유튜브로 다 볼 수 있는데 뭐 하러 돈 내고 영상을 봐?”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장비를 엄청나게 들여왔다. 진짜 방송처럼 지미집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현장에서 기타 연주 공연을 보니까 예상보다 울림이 크던데… 대면이 매진됐다는 게 이해가 된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기타 공연을 보면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다. 우리가 항상 가수들 뒤에서 연주하거나 록 밴드에서도 보컬 뒤에서 연주하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다. 연주만 가지고도 정말로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 이 공연이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을 거다.

이번 공연에서 적게는 3, 4살 많게는 10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는 기타리스트와 함께했다. 특별히 느낀 바가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다 개성이 있다. 예전에는 누가 더 잘 치는 것 같으면 열 받고 뒤에서 연습하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내가 기타를 30년 넘게 쳤는데… (웃음) 지금은 전혀 그런 게 없다. 황린(< 골든핑거 >에 참여한 젊은 기타리스트) 같은 애들을 보면 ‘얘는 아이디어가 좋구나’, 또 ‘쟤는 어린데 잘 치네’ 그런다. 동시에 또 ‘그럴 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젊을 때는 특이한 것 치려고 난리 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점에 대해서 인정하고 ‘저 사람은 나보다 손가락이 두 배가 빠르네’ 이러고 만다.

그렇게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 골든핑거 >를 성황리에 마쳤고 환경에 관한 싱글 ‘We want green earth’도 냈다. 곡을 내게 된 배경은?
일단 환경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갖게 됐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도 있고 그래서 더 기후 변화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편이다. 요즘 환경오염이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데 매스컴 등에 덜 노출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음악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이런 거니까, 그래서 곡을 썼다.

처음부터 < 골든핑거 >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기획이었나?
< 골든핑거 >라는 연주 공연을 계속하고 있었고 또 거기에 (싱글 발표가) 맞물려 있었다. 아무래도 이럴 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게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지 않나. 보통 곡들은 노래 중심인데 이번에는 이런 장점들을 살려 8분 남짓의 연주 중심 곡을 썼다.

과거 록 분야에서 환경 관련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 꽤 주목받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싱글의 가치와 시의성이 상당하다고 본다.
지속해서 어느 정도의 연계성을 갖고 계속 발표하고 싶다. 사람들이 이 곡을 듣고 각성을 하든 안 하든, 노출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이 곡을 가지고 ‘플라스틱 챌린지’를 SNS에서 진행했는데 잘 안됐다. 누굴 지목해서 플라스틱 분리수거를 하고 그 인증사진을 올리는 걸 했다. 당연히 길게 연결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시도는 했는데 유명인이 아니니까 그 흐름이 끊어지더라.

국내 정상급 기타리스트인데…
최고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그럴 때마다 뭐가 최고라는 거지? 최고라고 하면서 처우가 왜 이러는지 생각하곤 한다. (씁쓸하다고 말하니) 슬프지만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외국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 있고 핫한 신인들이 나오면 그 둘이 함께 간다. 근데 우리는 신인 애들이 나오면 옛날 사람은 그냥 없는 사람이 된다. 요즘 많은 연주자도 윗세대 연주자들을 모른다. 당연히 나도 잘 모를 거다. 실용음악과가 생기면서 입시 위주의 ‘이런 곡을 들어야 해!’하는 게 생기니까 속된 말로 ‘실용 펑키(Funky)(입시 때 연주 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펑키한 곡을 많이 연주하곤 한다 -편집자)’ 스타일의 기타 연주 흐름이 생겼다고 본다.

유병열은 기타리스트이자 창작자이기도 하다. YB의 초창기 히트곡 ‘먼 훗날’, ‘가리지좀 마’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고 상기한 다양한 밴드를 이끌며 대중의 관심도와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직접 쓴 많은 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가 무엇이냐 물으니 예상 밖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매한 ‘길꽃같은 우리’를 꼽았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이야기를 길가에 피어있는 생명이 질긴 꽃에 비유한 노래라고 했다. 작사, 작곡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촬영 및 편집까지 전부 그가 한 곡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기타 치는 스타일이 있다고 보는 건가?
근데 이건 유행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카시오페아(일본의 퓨전 재즈 밴드)가 유행할 때 다 그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 같은 느낌? 마치 그랬던 것처럼 비슷한 플레이들이 많아서 아쉬운 것들이 있다. (지금도 어떤 하나의 스타일에 쏠리는 것 같으냐 물으니) 그렇다. 지금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다 실용음악과에 맞춰져 버렸다.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 곡 위주로 기타를 배우다 보니까 거의 다 그쪽으로 먼저 빠진다. 그렇게 안 치면 ‘구리다’고 한다. 그래서 톤도 다 비슷하고.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면?
나는 앰프 세대다. 오프라인에 직접 앰프를 써서 거기서 나는 소리가 콘솔로 가는 거다. 근데 요즘은 ‘앰프 시뮬레이션’을 건다. 앰프 없이 다이렉트로 콘솔에 소리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까 소리가 건조하다. 대신 선명도는 있고 입체감은 떨어지는 차가운 톤이 된다. 전형적인 디지털 톤이랄까? 또 예전에는 굵은 저음도 막 둥둥 나왔다면 요새는 얇게 저음도 딱 깎고 하이도 딱 깎는다. 듣기 편한 소리. 어쩌면 전형적인 세션 맨 톤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요새 음악이 좀 들리기는 하나?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한데.
음악하고 있는 자체도 재미없다. (태연한 어조로) 제일 재밌는 거는 산에 가 있는 거다. 아침에 등산해서 산에 있는 거랑 맨날 자연 보는 게 낙이다.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가족이랑 같이 시골 가서 우리끼리 텃밭 가꾸고 사는 게 꿈이다. 음악이 꿈이 아니라, 기타리스트 유병열의 꿈이 아니라. 사람 자체로서의 꿈이다. 그때는 음악 안 해도 된다, 나는. (웃음)

현재 진행 중인 별도의 기획은 없나?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씩 싱글을 계속 냈다. 아마 올해 3월까지 싱글을 냈던 것 같다. 근데 이게 맞는 건지… 그렇게 계속 내다보니까 사람들이 그거에 대해서 별로 감흥이 없기도 하고 그걸 모아서 정규로 낼까 싶기도 하고. 고민하고 있다. 요즘에 약간 정체기다. 그래도 곡은 한 20곡 정도 써뒀다. 그걸 2장짜리로 해서 아트록처럼 스토리가 있게, 타이틀을 딱 정해서 앨범으로 내려 하다가 흐지부지됐다.

앞으로의 음악 활동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가?
계획이 없다. 솔직하게 심정을 얘기하면 내 창작은 이제 계획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안 하면 안 하는 거고 자연스럽게 (활동이) 이어지면 하는 거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어딘지 마음 한 편이 씁쓸하다.
(더 밝게 웃으며) 경험이 너무 많아서, 지레짐작으로 상상을 해서 내가 걸러 버리는 거다. 뚜렷한 변화가 있을 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겠다. 하하하!

‘산’, ‘요즘 애들’, ‘나 때는’이라는 말 사이 ‘꼰대’라는 단어가 번쩍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을 종종 꼰대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비판과 잔소리에는 강단이 묻어 있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욕심껏 기타를 친 연륜 있는 자의 자신감 혹은 주관은, 결코 먼지 쌓인 고루한 말들이 될 수 없다. 언제 연주를 그만둘지 모르겠다고 버릇처럼 말했지만 인터뷰 당일에도 내내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그였다.

자신을 ‘전투적이며 하나에 꽂히면 미치는 사람’이라 표현한 그는 후회 없이 기타를 털어낼 수 있을 만큼 기타연주에 모든 것을 토해냈다. “음악을 관둘 때 지저분하게 관두기 싫다. 하루아침에 사라질 거다. 확 불 지르고 마른 장작처럼 한 번에 없어질 거다. 그때는 미련 없이 음악을 떠날 거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자에게 후회란 없다. 자포자기 같은 톤의 언어들에서도 그런 열정과 달관이 쉼 없이 새어 나왔다.

인터뷰: 임진모, 임동엽, 박수진
정리: 박수진
사진: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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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석 인터뷰

과거 MBC 예능 프로그램 < 러브 하우스 >에 출연했던 양진석은 건축가이기 전에 가수다. 1988년 ‘노래그림’이란 4인조 그룹으로 데뷔했던 그는 건축 유학을 위해 팀을 그만두게 됐지만 귀국 후 1995년부터 다시 개인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생활을 이어갔다. 작품의 성패와 상관없이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던 그가 10년 만에 정규 앨범 < Barn Orchestra >로 돌아왔다.

양진석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낸 건 이번이 여섯 번째인데 6집에선 그의 목소리가 빠져있다. 대중가요에서 가장 중요한 가창을 배제한 작품이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음에도 후배들의 목소리로 채워 넣은 것이다. ‘건축을 음악 하는’ 사람답게 회사 건물 지하에 마련된 작은 공연 공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다양성 주의자 양진석을 만나 신보의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라이터 보다 싱어의 이미지가 강한 분인데 본인의 목소리를 완전히 없애는 파격적인 결정을 어떻게 내리게 되었나요?

몇 년 전부터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음악과 원래 좋았던 음악에 대해 심사위원의 마음으로 나름 정의를 내렸어요. 그 기준을 두고 저를 돌아보는데 제가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해버리면 정말 트렌드에서 빗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하루는 < 7080콘서트 >를 보는데 당장 저부터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저에겐 여전히 스타이신 분들이지만 창법이나 연주, 편곡에서 이미 기성들 외에는 좋아할 수가 없는 구성이었요. 근데 음악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혁신적이고 진보적이어야 하는데. 자칫 나도 이 함정에 빠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컨템포러리’라는 말이 바로 떠올랐거든요. 시대의 호흡, 숨결, 그리고 문법에 맞춰서 이 앨범이 더욱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음악만 했다면 이런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을 텐데 건축을 같이 하다 보니까 놓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내가 혹시 올드하지 않나? 시대의 소리를 못 담고 있지 않나? 크리에이터로서 이런 부분에 대한 강박이 좀 있어요. 최근에 리조트 설계를 맡았는데 리조트는 분양이 안 되면 정말 끝이에요. 소비자는 20대부터 60•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 부모 세대들이 회원권을 사도 아들, 딸들이 안 써주면 리조트는 유지가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걸 만족시키기 위해서 컨템포러리하게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자연스레 음악도 비슷한 관점으로 보게 된 거죠.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도 어린 친구들의 음악을 맞춰 간다는 게 쉽진 않은데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이 컨템포러리한 감성을 갖게 되는 데 도움을 준 분이 있을까요?

프로듀싱에 함께 참여한 이주원의 힘이 컸죠. 91년생 친구인데 저랑 형 동생 하면서 요즘 음악에 대해 서슴없이 얘기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다시 그 생각들을 바탕으로 같이 작업도 많이 했어요. 제가 멜로디를 만들고 포리듬 편곡 틀을 짜서 지정을 해주면 주원이가 그걸 듣고 요즘 음악으로 해석하는 시스템이죠. 근데 주원이가 이렇게 조미료를 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정말 예술이에요. 어쨌든 저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그들만의 감성을 주원이가 충분히 채워준 거죠.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떤 스타일을 구현하고 싶었나요?

특별한 스타일을 두기보다는 각자에게 맞는 옷을 입혀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댄스나 발라드를 비롯해서 어린 뮤지션들이 선호하는 곡들을 많이 써줬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들의 목소리에 맞게끔 작업을 했어요. 사실 6집에 실린 ‘Late love’는 이미 10년 전에 만들었던 노래입니다. 그때 가이드 녹음을 했던 가수가 토미어인데 이 노래는 아무리 다른 친구들한테 줘도 토미어 외에는 소화를 못 하더라고요.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작업하면서 가장 잘 풀렸던 곡과 어려웠던 곡은?

별일 없이 진행됐던 건 타이틀곡 ‘고로(孤路)’에요. 80년대 신스팝의 정서를 요즘 사운드로 구현하는 잔나비나 혁오의 음악을 좋게 듣고 있는데 이런 음악을 내가 부르면 너무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어린 친구들을 찾게 됐죠. 사실 탐내는 사람 중에 유명한 분들도 계셨는데 김웅 대표가 기성 가수는 절대 안 된다고, 무조건 새로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고 극구 반대를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가이드 보컬로 참여한 강효준(샴)이 부른 걸 들었는데 딱 이 친구 음악 같은 거예요. 물론 그때는 가이드다 보니까 바로 도장은 안 찍었는데 다른 기성 가수들의 목소리로는 요즘 아이들의 느낌이 안 나와서 결국 효준이가 부르게 됐죠.

반면에 ‘Run run run’은 좀 까다로웠어요. 원래는 제목도 다르고 저를 포함해서 6명 정도가 같이 가창을 한 곡이었는데 하루는 강제규 영화감독님이 오셔서 들어 보시더니 부담스럽다고 하시면서 노래는 아닌 것 같다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보컬은 빼고 색소폰을 넣어서 녹음을 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감독님도 다시 듣고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주제로 한 차기작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하시면서 상의해보고 이 곡을 꼭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다른 곡들의 작업기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와닿는 곡이기도 한 ‘All of us love’는 제가 아내한테 써줬다가 까인 곡이에요. 대중음악을 안 하는 클래식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지금은 딸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밖에서 한가롭게 곡을 만들어 와서 대뜸 연주를 해달라고 하니 기가 차지 않겠어요. 사실 아내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엔니오 모르꼬네의 ‘넬라 판타지아’ 바이올린 연주를 허락받은 연주자예요. 근데 제가 밥 먹으면서 이 얘기를 꺼냈거든요. 아무리 남편이었어도 제가 정중하게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아내도 슬쩍 한 번 보고는 답을 안 하길래 까였구나 싶었죠. 근데 또 섭외하다 보니까 첼리스트 임은진 씨가 와이프 고등학교 동기였어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따로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크리스 보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할 수 있는 나팔을 찾다 보니까 유나팔을 섭외하게 되었어요.

‘Second choice’는 사랑과 평화의 ‘장미’를 오마주한 곡인데 제가 펑키(Funky) 한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라서 제 음악에도 이런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곡에 참여한 커먼그라운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룹이에요. 연락은 퍼커션을 맡고 있는 조재범 군을 통해서 했지만 주원이가 키보드를 맡고 있기도 해서 섭외가 더 쉬웠죠.

‘잠이 오질 않아’는 처음에 결혼 축가 곡으로 만들었던 노래인데 만들고 나니까 정작 헤어지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웃음) 서울예대에서 제2의 임재범으로 불리던 동하가 이 곡을 불러서 그런지 애절한 감정이 더 깊어진 느낌도 들고요.

음악과 건축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50세 전에는 거의 이론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서 절실히 느낀 건 건축과 음악 모두 철저하게 외로운 작업이라는 거예요. 물론 중간이나 마지막엔 팀워크에 의해서 완성이 되지만 둘 다 스타트를 끊는 건 무조건 혼자 해야 하는 일이죠. 그래서 제가 한 달에 20일 정도는 팀 단위로 움직이고 나머지 열흘은 혼자 있어요. 일주일에 48시간은 가족과도 떨어져서 연락이 안 되는데 이때 책을 보거나 스케치, 음악 작업을 하는 편이죠. 감성과 이성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쉽진 않아요. 그야말로 외로운 투쟁이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외로움이 덕지덕지 붙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로’도 외로운 길이란 뜻이고 ‘토요일 오후’엔 혼자, 혼술 같은 단어도 나오잖아요.

말씀해 주시기 전엔 잘 몰랐는데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러네요. (웃음)

이 음반을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줬으면 하는지?

가장 욕심을 냈던 부분은 가사예요. 개인적으로 요즘 노랫말이 시적인 표현이나 인문학적인 표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이번 작품에선 되씹을 만한 가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멜로디나 편곡 구성이 현대적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긴 힘들겠지만 팝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올드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진석의 이름과 나이를 모르고 들어도 케이팝에 이런 음악도 있구나 정도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막상 결과물을 본 이후에 본인의 판단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100% 만족은 있을 수 없죠. 대중적으로나 평단에서 인정받는 문제와는 별개로 어느 정도 제 음악 인생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도는 한 것 같아요. ‘양진석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고 자체적으로 의의를 두고 있어요.

현대적인 작업을 시도한 만큼 현시대 음악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네요.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BTS만 하더라도 이제는 외국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또 협업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악뮤, 아이유, 잔나비, 혁오 같은 팀들은 굉장히 관심 있게 보고 한편으론 존경하기도 해요. 특히 아이유는 더 기억에 남는 게 제가 2010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 게스트로 왔었거든요. ‘좋은 날’ 3단 고음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공연 전에 와서 ‘저희 엄마가 양진석 씨 팬이에요’라면서 수줍게 인사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멋진 아티스트로 성장했죠.

이번 앨범 이후에 계획 중인 곡 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7집에 들어갈 노래를 벌써 8곡 정도 작업해 놨어요. 아마 DJ 리믹스 앨범으로 선보이게 될 것 같은데 2집 < Summer Dream > 때부터 이런 음악을 선호했던 사람이라 어떻게 보면 자아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죠. 코로나가 종식되면 록 페스티벌이 열릴 텐데 그때 꼭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서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는 것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울렁증이 있는 건 아니에요. 가면은 그냥 제가 올드 하단 소리를 들을까 봐 단지 외적인 부분을 가리고 싶어서 쓰려는 겁니다.

과거 활동했던 밴드 ‘노래그림’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요?

여전히 너무 좋죠. 얼마 전에도 (한)동준이가 와서 같이 술 한잔했죠. 옛날에도 둘이 술 많이 먹고 그러면 제가 등에 업고 가다가 잔디밭에 쓰러져서 누워 자고 그러기도 했었죠.

1988년 5월에 저희 첫 앨범이 나왔을 때 (이)수만이 형이 MBC 라디오 DJ를 하셨는데 저희 노래가 맘에 드셨는지 수소문을 해서 자리를 마련하셨어요. 모아놓고 찬찬히 보시더니 수만이 형이 저희 제작을 맡겠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싫어요!” (웃음) 수만이 형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런 거죠. 저는 유학 중이라 어려웠고 나머지 멤버들도 애매했어요. 그런데 동준이는 울림통이 좋기도 하고 군 제대를 앞두고 있어서 유일하게 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죠.

그러고 나서 곡을 모으는데 그때 김광진이 나타났죠. 당시에 투자 자문 회사를 다니다가 저희랑 연락이 닿았는데 자기가 이대 가요제 나가서 받은 대상 곡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를 들려주는데 곡이 죽이더라고요. 그렇게 광진이도 작업에 참여해서 한동준 1집을 발표했는데 반응은 거의 없었죠. 사실상 한동준과 김광진이 SM 1호, 2호 가수였어요.

변진섭 씨의 ‘새들처럼’을 작곡한 지근식 씨도 빼놓을 수 없죠.

이것도 비하인드스토리가 있어요. 어느 날 제가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근식이가 옆에 와서 무슨 코드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듣고는 다음날 갑자기 ‘새들처럼’을 만들어 온 거예요. 처음에는 너무 동요스럽지 않냐면서 살짝 무시를 했는데 화성을 쌓아서 불러보니까 이글스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 제법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신촌 크리스탈 무대에서 이 곡을 동준이랑 듀엣으로 불렀는데 그날 진섭이가 온 거죠.

진섭이는 87년에 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앨범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들은 저희 노래가 맘에 들었는지 술 마시다가 너네는 판 낼 계획이 없으니까 자기한테 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그냥 알았다고 하면서 가져가라고 했죠. (웃음) 그 당시엔 뭐 저작권 이런 거 잘 신경 안 썼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근식이가 작곡한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같은 곡들을 가져갔었죠.

더 웃긴 건 그 이후에 엄용섭 사장님이 스튜디오로 놀러 오라고 하셔서 갔는데 갑자기 저희 보고 녹음실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야, 너희 코러스 해.” (웃음) ‘새들처럼’ 뒤에 깔리는 코러스가 저랑 동준이 목소리에요. 3도 올려서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했는데 정작 세션비로 순댓국 한 그릇 먹었어요. (웃음)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그게 100만장이 팔리면서 근식이는 대박이 났죠. 그래서 지금도 ‘새들처럼’ 들을 때마다 ‘어, 저거 내 목소린데.’ 하면서 듣고 그래요.

오늘날의 양진석을 만든 음악은?

어릴 때 들었던 스틸리 댄의 음악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특히 미디엄 템포에 베이스를 둔 록을 좋아하는데 이번 앨범에 수록된 ‘토요일 오후’ 같은 경우도 스틸리 댄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서 만든 곡입니다. 그리고 비틀스의 퍼포먼스도 크게 와닿았어요. ‘록을 거칠게 하면서 음악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 위대한 밴드였죠. 조금 더 커서는 퀸의 음악을 많이 접했죠. 특유의 동양적인 멜로디는 물론이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앞서 이글스도 얘기하셨는데.

이글스도 맞죠. 세션맨 계보에선 정말 리스펙트 하는 팀이 이글스랑 ELO, 토토 정도가 있습니다. 이 세 팀한테 세션에 의한 록 사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양진석의 음악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요?

제 일기라고 생각해요. 영화 < 원더풀 라이프 >를 보면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고 저승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요. 제가 굳이 이 영화를 언급을 하는 이유는 현시대에 발표한 내 작품이 인기를 얻고 말고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의 노래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메시지가 되고, 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미디어에 남는다는 얘기는 거의 평생 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양진석이란 이름으로 어떤 앨범을 냈는데 언제 들어도 ‘그 당시에 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구나’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거죠. 건축이 보통 100년, 200년 안에 무너지는 데 비하면 음악은 훨씬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절대 질 낮은 타협을 하면 안 되겠다고 항상 다짐하죠.

인터뷰: 임진모, 임동엽, 정다열
정리: 정다열
사진: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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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인터뷰

13년이라는 음악 활동 공백기를 깨고 2019년 정규 10집 < 돛 >으로 돌아왔을 때 김현철을 소환한 건 시티팝 붐이었다. 갑자기 시티팝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젊은 세대는 퓨전 재즈를 기반으로 도시의 감성이 부르는 1980년대 김현철의 고감도 음악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시티팝 대부’라는 거창한 수식을 떠안으면서 뉴트로를 넘어 ‘오래된 미래’임을 증명했다.  

세련된 편곡과 부드러운 음색으로 본인만의 색깔을 확립해 온 그는 막 내놓은 신보 < City Breeze & Love Song >에서도 도시, 바람, 햇살을 포함한 긍정적인 가사로 도시 속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활력을 선사한다. 이즘은 2015년 진행했던 인터뷰 이후 6년 만에 김현철을 다시 만났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앨범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를 주문했다.

2017년 시티팝 붐이 일면서 13년 만에 정규 10집 < 돛 >을 발매하셨는데,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팬들은 빠른 복귀를 기다렸을 텐데 왜 이리 신보가 오래 걸린 건가요?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나요?
우리 나이대의 가수들은 앨범이 올해 나왔으면 몇 년 후 꼭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 13년간 작업을 쉬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다. 코로나의 영향은 없었다. 정규 음반은 2년이 걸린 게 맞지만 그동안에 폴킴과 작업을 했고 < Brush >라는 EP를 발매했었다.

폴킴, 쏠, 죠지 등 젊은 인디 뮤지션과 협업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그들과는 모두 내 음악을 함께 작업했었다. 선배님들과 < Brush >앨범을 함께 하면서 느꼈는데 만약 후배들이 본인의 앨범을 작업하자고 요청한다면 나는 흔쾌히 참여할 것이다. 내가 선배님들께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걸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중간에 진행했던 < Brush > EP나, 폴킴과 함께 한 ‘선’ 등의 작업은 어땠나요?
재밌게 작업을 했다. 폴킴과의 작업뿐만 아니라 ‘오랜만에’라는 노래가 맥심커피 광고 음악에 깔리게 돼서 광고 버전의 음악을 따로 녹음하기도 했다. 특히 선배님들을 모시고 < Brush >음반을 재작할 때 매우 재밌었다. 주현미, 최백호, 정미조 선생님 나름대로 다들 너무 잘해 주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만약 후배가 나에게 함께 작업하자고 한다면 언제든 같이할 의향이 있다.  

과거 2015년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정규 1집부터 10집까지 한 각론으로 묶어서 빨리 보관해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사실 곡은 이미 넘치고, 콘셉트 걱정도 제가 해왔던 대로 하면 되니 큰 고민은 없어요.”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쌓아둔 곡을 원하는 콘셉트로 해서 < 돛 >을 낸 건가요?
두 장짜리로 낼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22곡이 되었다. 그래서 이걸 나눠서 낼까 하다가 ‘내가 적극적으로 음악 할 시기가 기껏해야 20년인데 많이 소구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오늘 생각나는 노래를 내일 풀지 않으면 죽을 때 아깝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LP를 생각하고 제작했다. 제일 음질이 높기로는 20분에서 22분인데 LP는 한정돼 있어서 두 장으로 냈다. 요즘 앨범을 내 인생에 있어 기록 점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음악을 아끼지 않고 앨범으로 인생의 기록 점을 찍어 가고 있다.

이유 없이 음악이 싫어져서 음악을 쉬었다고 들었는데 다시 음악을 시작하겠다는 계기가 된 건 무엇인가요?
쉬는 동안에도 방송하고 디제이, 교수 일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죠지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하고 싶다고 허가서를 요청했고 당연히 허락을 해줬다. 리메이크한 노래를 받아 들었는데 좋았고 발매 후 인기도 있었다. 그 후 죠지가 나에게 무대 게스트를 부탁했고 그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공연당일 타이거 디스코라는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러 왔는데 그날을 계기로 친해져 본인이 일하는 1969라는 클럽에서 공연을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클럽에 갔는데 100명이 넘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어서 신기했다. 요즘 미디움 템포의 음악이 뜬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를 계기로 자신감이 붙었고 ‘음악을 다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악기도 사고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앨범 제목 중 City Breeze는 시티팝을 전제하고 붙인 것 같은데 제목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감성이 그 감성이다. ‘오랜만에’라는 곡도 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3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나는 도시와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록곡 전곡을 시티팝으로 한 이유는 뭐죠?
이 질문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웃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요즘 리스너들이 즐겨 듣는 시티팝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번 앨범 제목이 < City Breeze & Love Song >이라서 사람들이 시티팝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아티스트는 내고 싶은 음악을 내는 거지 이 음악을 냈을 때 어떤 반응일지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이번 음반을 듣고 어떤 기자분이 “김현철씨 1집의 첫 번째 노래인 ‘오랜만에’가 이런 기분을 담고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오랜만에’의 가사 중 ‘나의 머리결을 스쳐 가는 바람이 좋은걸’, ‘밤은 벌써 이 도시에’처럼 도시와 바람이 가사에 있다. 30년 전 처음 낸 앨범에 있는 그 감성이 자연스럽게 올 뿐, 요즘 시티팝이 인기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란 곡이 영어로 이야기하면 ‘City breeze & love song’인 격. 그 안에 사랑 이야기, 바람, 도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앨범의 현실적 가치가 떨어진 시점에서 앨범을 낸다는 게 조금 맥빠지지 않았나요?
안타깝긴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LP로 내는 것보다 싱글로 내면 훨씬 음질이 좋다. 왜냐하면 적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내니까 음질이 좋아진다. 그래서 싱글을 낸다.

앨범의 어떤 것에 역점을 두었나요?
그냥 여름에 듣기 좋은 노래. 내가 써 둔 곡이 발라드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정말 여름에 듣기 좋은 노래로 선택했다. 그리고 ‘사랑한다’라는 가사 대신 ‘맘에 든다’, ‘좋아한다’는 가사를 썼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심각하지 않게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음악을 하는 기분이 난다. 이번 앨범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음악이 가볍다는 게 아니라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

‘So nice!!’는 어떤 심정으로 만들었나요?
뭐가 제일 So nice 한지 생각해 보다가 남녀가 만나는 첫 단계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이 So nice 하게 보인다는 게 떠올랐다. ‘요즘 어때 괜찮아?’,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등의 전반적으로 연애 장려 가사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16비트를 들으면 버겁기 때문에 아침에 대한 내용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8비트로 만들었다.

수록곡 ‘평범함의 위대함’의 가사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이 튀고 싶어 하고 튀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아오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평범한 게 제일 어렵고 제일 좋다고 느꼈다. 평범하다는 것은 사람이 동글동글하다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튄다는 것은 잘하는 부분이 올라오는 것. 하지만 사람은 모두 같은 함량을 타고났다고 믿는다. 따라서 여기가 튀는 면이면 다른 반대편은 들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앨범 제작 중 어려웠던 부분은?
앨범 제작을 순조롭게 진행하긴 했지만 쉬워 보이는 마지막 곡 ‘동창’이 가장 어려웠다. 마지막 부분에서 코러스를 넣어야 했는데 전문 코러스를 써서 낼 것인가 동창들을 불러서 할까 고민했는데 후자는 10집에서 해봤으니까 의미가 없을 듯해서 이번에는 상민이, 태윤이형 등 밴드 멤버분들과 함께 했다. 다들 노래를 잘했다. 그때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나머지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심현보를 작사 파트너로 한 이유는?
제목은 내가 정했고 가사는 현보와 같이 썼다. 현보가 워낙 가사를 잘 쓰니까 내가 빈칸을 제시하면 그 안을 현보가 채워주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가사를 나열해 두면 가사에 대한 데이터가 많은 현보가 낱말 빈칸을 채우듯이 가사 작업을 진행했다.

세션 분들만 봐도 대단함이 느껴지네요. 녹음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혹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녹음은 저번 10집 앨범과 비슷하게 진행했다. 옛날에는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그 내용에 대해 믹싱을 하고 논의했는데 10집부터는 내가 집에서 다 만들어서 그 데모를 밴드 세션에 보내주면 그들은 똑같이 따온다. 데모를 들어보면 얼마나 똑같이 연주해오는지 알 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연주한다. 그렇다면 연주자들이 해야 할 게 뭐냐면 손맛이 확실히 달라서 베이스, 기타, 드럼 자체의 질감을 살려낸다.

11집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AOR 노래는?
AOR은 옛날부터 꾸준히 좋아해 왔다. 크레이그 런키(Craig Ruhnke), 짐 슈미트(Jim Schmidt), 브루스 히바드(Bruce Hibbard) 등의 노래를 들었다.

공연계획이 따로 있나요?
공연이 쉽지는 않다. 내년쯤 되면 공연장이 풀리지 않을까. 공연 관련 얘기는 계속하는 중이다. 그리고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시티팝 페스티벌을 기획해 보고 싶다.

빌보드와 BTS 현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세대 때만 해도 외국 뮤지션을 동경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가수가 전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고 영화 부문에서는 아카데미상을 받는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 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 꿀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우리가 외국의 음악 요소를 따라 했었다면 이제는 외국인들이 거꾸로 우리나라 소리를 따라 한다. 즉, 우리나라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게 되었다. 옛날에는 외국 가수들 데리고 작업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안 그래도 된다. 우리나라 얘들이 더 잘 치고 더 잘한다.

신보에 담은 작가의 의도는?
노래는 발표하기 전까지는 내 것이지만 발표한 후는 듣는 사람의 것이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던 그건 본인의 마음이다. 작가의 의도야 있기는 하지만 그 곡을 잡고 있을 때까지 인 거고 물 위에 띄워 놓고 나서는 물이 가는 데로 따른다.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그건 여러분이 정하는 거다.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생각하는 나에 대한 정의는 필요하지 않다. 나의 모든 행동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행동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내가 베스트드라이브가 되고 싶은 건 둘째 문제고 남이 인정을 해 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아티스트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정답이다.

인터뷰: 임진모 임동엽 이홍현 김성욱 김도연
사진: 김성욱(사진 1, 2, 3), FE 엔터테인먼트 제공(메인, 사진 4)
정리: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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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얼라이브 펑크 인터뷰

2020년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앨범 한 장을 뽑으라면, 단연 그 주인공은 < Di-Ana >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상 악기와 샘플링을 배제하고 모든 소스를 직접 연주’했다는 공격적인 문구 아래, 편리함에 마비되어가는 음악계를 향해 반발감을 당당히 내비친 이 문제적인 작품은 아날로그의 비연속성 색채와 순수한 창작력이라는 통속적인 무기만으로 현존하는 음악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 예술가의 뚜렷한 목표 의식이 반영된 < Di-Ana >의 극단적 태도 속에서 우리는 순도 높은 숭고함을, 그리고 본인이 설계한 과업을 멋지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보기 드문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시대 프로듀서가 갖춰야 할 ‘멋’을 진정 추구할 줄 아는 낭만주의자, 얼라이브 펑크(Alive Funk)를 만나 그의 방대한 음악 세계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IZM을 보는 독자분들에게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얼라이브 펑크(Alive Funk)입니다. 블랙 뮤직의 코어가 되는 알앤비와 디스코, 그리고 힙합 외에도 UK 신스팝 같은 다양한 장르를 계속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음악을 시작한 건 중학교 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부터다. 우선 밴드는 약속이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합주를 해도 시간이나 인원 같은 조건이 맞아야 하고 이에 따른 변수가 많다. 그러던 도중, 문득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작곡에 도전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더 잘해지고 싶어 연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굉장히 수동적인 내가 딱 하나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능동적으로 하는 게 바로 음악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라이브 펑크의 음악을 논하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게 멀티 인스트루멘탈에서 비롯된 넓은 스펙트럼이다. 이 다양한 악기들은 어떻게 익히게 되었나.
물론 베이스 기타를 치긴 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악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드럼이나 일렉 기타, 혹은 키보드라던가. 일단 기본적으로 밴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또래 남학생들은 게임을 하거나 노래방을 많이 가지 않나. 나는 그것보다 악기를 만지고 좋아하는 곡을 카피해 연습하는 게 더 재미있었고, 그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다.

그 당시 주로 듣던 음악이 뭐가 있을지.
내 세대라면 많이 공감할 텐데 밴드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엑스 재팬(X-Japan)이다. 최초로 산 앨범이 그들의 베스트 CD다. 이후 멜로디 메탈에서 스트라토베리우스(Stratovarius) 같은 강력한 스피드 메탈로 넘어가다가, 나중에는 영국 쪽의 라디오헤드나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음악을 따라 하면서 기본적인 믹스나 사운드 구조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힙합 음악은 언제부터 접하게 되었나.
우선 나는 딱히 장르를 정해 놓고 하나만 듣는 편은 아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접한 가장 흑인 음악에 가까운 음악이 한국에 나온 아소토 유니온의 1집 < Sound Renovates A Structure >다. 처음에는 강력한 헤비메탈이나 일명 멜스메(멜로딕 스피드 메탈)에 비하면 사운드가 다소 심심하기도 하고, 흔히 쓰는 표현인 ‘그루브’가 잘 느껴지지 않더라. 근데 점점 듣다 보니 눈을 뜨게 되고, 아소토 유니온과 함께 작업한 다이나믹 듀오를 거쳐 에픽하이를 듣게 되고, 조금 더 파고들어 소울 컴퍼니와 빅딜 레코즈의 음악을 접하면서 블랙 뮤직에 완전히 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메이카 리듬이나 NY 브루클린에서 비롯된 붐뱁 리듬같이 다양한 뿌리가 뻗어 나가면서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 여러 장르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고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정규 1집 < DI-ANA >에 실린 도발적인 앨범 소개가 화제를 끌었다.
예전에 쓴 문구가 비난의 어조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원했던 것은 ‘그 방법을 쓰지 마라’가 아닌 프로듀서의 양심에 대한 토론이었다. 확실히 스플라이스나 프라임 룹스, 룹질라 같은 좋은 사이트가 많이 생겨났고, 그만큼 음악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이트를 이용하다 보면 나조차도 이 곡이 정녕 내가 만든 게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데, 이는 그 시점에서 이미 양심의 가책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만약 방금 언급한 그런 것만을 가지고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이 이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고 창작이라 말한다면,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존중을 표할 것이다. 그저 이 주제에 대해 꼭 한번 토론을 해보고 싶었다.

작품의 제목을 ‘Di-ana’로 택한 것이 ‘Di’와 ‘Ana’에 각각 다이(Die)와 아날로그(Analogue)라는 의미를 가져와, 아날로그를 배척하는 현 음악 신의 흐름을 고발하려는 의도로 알고 있다. 심지어 작업 과정에서 전부 직접 연주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특수한 제작 방식이 힘들지는 않았나.
기본적으로 가상 악기나 루프를 쓰지 않으려면 구축된 하드웨어 장비로만 작업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제한적인 방법이다. 한 마디로 지금 가진 신시사이저와 기타 이펙터만 가지고 곡을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런 방식을 택한 것은 작품을 만들 때 극한에 한번 놓이고 싶었고, 그런 환경에 닥쳤을 때 어떤 음악이 나올지에 대해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작업하다 보면 래퍼마다 요구하는 사운드 어프로치(Approach)가 각각 다를 때가 있다. 트랩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UK 드릴과 미국 드릴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르가 무엇이 되고 어떻게 접근하든 간에 언젠가 작품을 꺼냈을 때 분명 아쉬움이 남을 거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첫 커리어를 장식하는 앨범인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상징성을 남기고 싶었다. 예전 유튜브에서 루드윅(Ludwig Göransson)이라는 프로듀서가 차일디쉬 감비노의 ‘Redbone’을 실시간으로 메이킹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나 또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기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섞인 앨범 같다. 오히려 확장성보다 제한된 상황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로 보면 맞다. 제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니 하드웨어 하나를 가지고도 면밀히 연구하게 되더라.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경우에는 증명하는 과정이 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내가 그런 능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치 있는 뮤지션임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어찌 보면 과거에 사용하던 작법과도 많이 달랐을 텐데.
일단 가상 악기는 편의성이 좋다. 작업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 내가 피아니스트가 아니더라도 피아니스트처럼 보이게 해주는 게 미디(MIDI)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작업을 통해 가상 악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날로그 소스는 한번 녹음해서 기록해도, 다음 날 일어나서 프로그램으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요즘 다시 바이닐 붐이 일어나는 걸 보면 아날로그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 Di-Ana >를 들을 때는 여타 앨범과는 달리, 건조한 기타 리프와 베이스가 가진 잔향, 혹은 신시사이저 루프 하나하나에도 집중하게 된다. 무엇보다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했음에도 통일감이 우수하다. 전반적으로 그루비하고 늘어지는 로파이 톤의 사운드가 주축이 된다.
앨범을 구상하는 프로듀서라면 모두 직면하게 될 문제인데, 여러 플레이어와 작업을 하게 되면 사람마다 가진 이미지가 다른 만큼 그들이 쓰는 미장센이나 장치가 다른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나는 앨범에 열다섯 곡이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앨범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아무래도 그걸 조금 상쇄할 수 있던 건 모든 곡의 주제와 테마를 내가 직접 정해서 요청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 산문집을 좋아하기도 하고, 피처링 의뢰를 하기 전에 에세이를 써서 먼저 드리는 습관이 있다. 이 곡의 내가 생각한 오브제는 이렇고, 이걸 읽고 작업에 임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이게 완전히 맞을 때고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전혀 맞지 않더라도 이의는 제기하지 않는 편이다. 어쨌든 기본적인 오브제를 상대에게 제시했을 때, 단어나 내용 같은 부분까지 검열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막는 거고, 단순 ‘내가 보컬이 아니기 때문에 너에게 부탁하는 것’이라는 의미밖에 더 되나.

로파이 질감과 그루브한 면은 평소 듣는 음악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예상한다. 스톤 스로우 레코드(Stones Throw Record) 소속의 댐 펑크(Dam-Funk)나 제이 딜라(J Dilla), MF 둠(MF DOOM), 매드립(Madlib) 같은 뮤지션의 음악을 자주 들은 게 믹스 과정에서 작용하지 않았을까. 평소 이런 오버 프레싱 기법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마인드 컴바인드가 있겠다.

사실 < DI-ANA >가 취한 접근법에 비해 앨범 자체의 이슈가 덜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앨범을 만들 때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앨범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어떤 앨범을 가져오는지’에 대해서였고, 그런 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켄드릭 라마의 < To Pimp a Butterfly >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앨범에는 흑인 음악의 코어가 되는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그의 이전 행보만 보고 당연히 다음 작품도 엄청난 랩으로 가져오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와장창 무너진 앨범이다. 나 역시 < DI-ANA >를 만들 때 집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다양한 사운드의 재미를 주고자 했다. 사실 가벼운 앨범은 아니다. 조금 염세적이기도 하고, 신인 아티스트의 에고(Ego)가 나조차도 느껴지니까. 통일성을 주면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혹시 앨범이 그런 비타협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된 경위가 있을까.
음악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무엇이든 간에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나. 앨범을 한창 준비할 당시 점점 그 성취감이라는 원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타인에게서 그 이유를 찾았다. 왜 내 음악에 관심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리스너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는 건데 당시에는 신인이나 뉴 제너레이션의 음악에 평가가 박하다고 생각한 거다.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드러난 앨범이라 조금은 일기 같은 앨범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밝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작업을 하고 있지만 외로운 에너지를 갖고 있었고, 혼자 작업하는 과정에서 느낀 고립감이 점점 표출되었다.

독특하게도 피처링 진을 구할 때 인맥을 활용하지 않고, 일일이 메일이나 DM을 이용해 직접 연락했다.
보통 젊은 감각을 지닌 분들은 파티나 클럽 같은 사교의 장에서 삶을 즐기고 사람을 사귀는데, 일단 나는 성격 자체가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앨범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정작 아는 분이 하나도 없더라. 참여진 중에 이미 알던 사람은 내가 속한 ‘KeepNews’ 크루 친구들과 부현석, 그리고 오도마 뿐이었다. 그래서 아티스트 섭외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래퍼의 이메일이나 DM으로 연락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종의 정공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 신에서 누구를 통해 연락하는 행위가 비겁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낭만적인 방법을 시도하고 싶었다. 만약 음악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면 수락해 주리라는 믿음이었다.

딥플로우의 경우에는 DM으로 연락을 보냈더니, 바로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는 답장과 함께 핸드폰 번호가 왔다. 성사되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테이크원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흔적을 찾아봐도 도저히 메일 주소를 알아낼 수가 없어서 하프타임 레코즈에 직접 문의를 넣었는데, 그 글을 보고 매니저를 통해 연락이 와서 참여하게 되었다. 나머지 분도 거의 유사하게 곡이 마음에 든다고 흔쾌히 참여해 줬다. 열린 마음으로 들어줘서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이 방법을 택한 건 어떻게 보면 성취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원한 아티스트에게 닿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지 않나. 물론 방식 자체가 필연적으로 피드백이 늦기 때문에 힘들게 기다린 기억이 난다. (웃음)

아날로그 작법을 필두로 한 고전적 접근이나 신인 아티스트의 고집 등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앨범이지만, 모두 돌고 돌아 결국 낭만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나한테는 그게 굉장히 중요했다. 아까도 말했듯 앨범에 상징성을 담고 싶었고, 적어도 그 과정에서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멋지게 기억하고 싶었다.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미숙한 부분이 보이거나 불안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시절의 나는 노력했다는 징표니까. 일종의 로맨스인 셈이다. 내가 생각한 고유의 멋을 지키는 게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

단연 두드러지는 트랙은 ‘신도시’로, 인스트루멘탈 트랙 ‘Tesla’와 같이 게스트 없이 혼자 주조한 트랙이다. 앨범을 한 편의 영화라고 본다면 직접 캐스팅을 한 뒤 중간에 잠깐 참조 출연한 셈인데, 직접 노래를 쓰고 부른 이유가 있을까.
‘신도시’라는 곡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밝은 곡 중 하나임에도, 어느 것보다도 컨셔스한 주제를 다루고 역설적인 면을 지닌 트랙이다. 무엇보다 내가 처한 상황에 관해 얘기하고 동시에 가장 솔직해야 하는 곡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의 에너지를 끌어오기보다 내가 직접 주는 편이 더 크게 감동이 작용할 거라 생각했다. 곡이 앨범 내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순환을 이루는지 집중하며 작업을 했고, ‘신도시’가 그런 곡이었다.

전반적으로 얼라이브 펑크라는 틀 아래 잘 응집된 것 같다. 그럼에도 참여진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아티스트나 기억에 남는 곡을 꼽는다면.
우선 참여진으로는 ‘DNCE’의 자메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랩을 잘한다는 의미를 넘어 일단 내가 의도한 오브제를 잘 이해한 아티스트였다. < DI-ANA >는 발매 2주 전까지도 타이틀을 못 정한 상황이었는데, 자메즈의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이 곡이 타이틀이 되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여러 악기를 태깅하듯 펼쳐 놓은 후반 구간에서는 누가 와도 온전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거라 예상했는데, 그걸 가뿐히 뛰어넘더라.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기억에 남을 만큼 피드백이 많이 오고 호불호가 갈린 트랙은 네버언더스투드(neverunderstood)가 참여한 ‘아류’다. 마지막 트랙인 만큼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데다 무엇보다 사운드 어프로치가 말이 안 되는 곡이다. 여러 FX 소스는 물론 모듈러 신스를 이용해 회로도 직접 만들면서 만든 곡이다. 진짜 힘들었다.

네버언더스투드의 이름이 언급된 김에 본인이 속한 ‘KeepNews’ 크루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한다.
우선 프로듀서는 얼라이브 펑크가 있고, 플레이어로는 보나조이(Bona Zoe)와 네버언더스투드, 쿠엔틴 파이브(Quentin 5ive), 코지마이(Kojimai), 칼리 킴(Kali Qim), 그리고 오엘프라이스(OL’Price)로 구성된 크루다. 혼자 음악 하는 친구들을 내버려 두기 싫어 결성된 크루다. 그렇다고 해서 모였으니 막연하게 노는 것 역시 불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하기에 몇 년 전 1집 컴필레이션 앨범 < Radio >를 제작했다. 같이 작업하면서 시너지가 많이 나오고 있고, 최근에도 2집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 상황인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일단 내가 엄두가 안 나서. (웃음)

최근 ‘POP-UP STORE’의 슬로건을 내건 싱글이 두 개 나왔다. 하나는 서사무엘과 함께한 ‘To-kyo’, 또 하나는 던말릭과 수비(Soovi)가 참여한 ‘없어도 돼’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프로젝트인가.
예전에는 프로듀서가 싱글 앨범을 릴리즈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싱글은 포맷 상 기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요소가 적은 데 정녕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던 거다. 근데 < DI-ANA >를 만들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하기도 했고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창작을 해보고 싶었다. 시리즈별로 기획을 짜고 ‘POP-UP STORE’라는 슬로건을 짜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일단 대중적으로 가고 싶었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의 커머셜한 사운드를 많이 차용했다. 기존의 공격적인 신시사이저보다는 듣기 편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 DI-ANA > 때와는 달리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하게 되더라.

뭔가 기존 스타일에서 공간감이 확장된 것 같다.
내가 원한 의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보면 된다. ‘To-Kyo’는 일종의 워드 플레이인데, 찾아보니 ‘Kyo’가 공허라는 뜻이 있더라. 그 앞에 ‘Too’가 붙은 셈이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섞이면서 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고, 가끔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청각으로 표현한 곡이다. 그렇기에 듣기 부담스럽지 않은 앰비언트하고 칠 아웃한 사운드가 나오게 되었다.

서사무엘과의 작업은 어땠나.
우선 ‘To-Kyo’ 곡 자체로 가지고자 한 목적은 ‘편안함’이었는데, 서사무엘은 직접적인 요청 없이도 알아서 듣기 편한 최적의 루트로 채워냈다. 그리고 이제껏 같이 작업한 이들 가운데 베이스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 두 번째 버스의 도입부에서 베이스 프레이즈를 긁으며 들어가는 구간에 소리를 비워 놓은 걸 보고 굉장히 놀랐다. 본인의 앨범 < Frameworks >를 인용한 듯한 가사도 무척 마음에 들고.

‘없어도 돼’에서 던말릭이 펼친 퍼포먼스도 인상적이다. 특히 메시지가 얼라이브 펑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좋은 질문이다. 사실 던말릭은 저번 앨범에서 같이 하기로 한 곡이 있었고, 완성까지 했는데 그 결과물이 둘 다 만족스럽지가 않아 미처 발매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작업이 재밌었고 평소 너무 좋아하는 래퍼라 다시 한번 만나 작업을 도모했다. 하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느낌이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실수로 작업 전에 수비에게만 에세이를 주고 실수로 던말릭에게는 안 보냈더라. 결국 던말릭은 ‘없어도 돼’라는 제목 하나만 듣고 참여한 거다. 근데도 멋지게 가사를 써줬고, 심지어 발매 기간이 촉박했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작업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서로 장난도 치고.

어떻게 보면 또 에세이를 보내지 않은 게 새로운 시너지를 만든 게 아닐까.
앞으로도 그렇게 해볼까 생각 중이다. (웃음)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만큼, 향후 발매될 팝업스토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으로 구성될 예정인지.
사실 그 점에 관해서는 내 작업 스타일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하고 싶다. 나는 앨범을 제작할 때 앨범을 위한 곡을 만드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곡을 만들어 놓고 언젠가 아카이빙된 그 수많은 곡을 나중에 펼쳐 보았을 때 느낌이 오면 수록을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불 위 DI-ANA’ 같은 곡은 앨범 발매 4년 전에 쓴 곡이고, < DI-ANA >를 만들면서 버린 곡만 해도 63개에 달한다. 심지어 전부 아날로그로 작업했다.

물론 곡이 별로라서 뺀 건 아니다. 그저 넣으면 안 되는, 이 < DI-ANA >라는 앨범 안에서는 생명력을 지니지 못하는 트랙이었던 거다. 지금도 팝업스토어 프로젝트를 겨냥하고 쓴 곡이 벌써 열다섯 곡 정도 되지만, 그 곡이 수록될 가능성은 미지수다. 처음 목표로는 볼륨 1부터 3까지 발매한 뒤 후에 새로운 곡을 추가한 디럭스 버전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때부터는 또 하나의 앨범이 되는 거니까 또 통일성을 생각해야 할 테고. 그래도 차근차근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날로그 세션을 자주 사용하는 만큼 밴드 라이브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큰 욕심은 없다. 아직 드러나는 것보다는, 대중에게 먼저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다른 세션을 쓰기보다는 혼자 원맨밴드 식의 작업 방식을 고수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멀티 트랙을 깔아놓고 공연을 한다거나. 정직한 앨범을 냈기 때문에 라이브 현장에서도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시기에 대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이건 참여한 래퍼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앨범을 내고 파티 같은 것도 기획하고 있었는데 전부 무산되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고 있지만, 꼭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모두가 원할 테지만, 빈지노와 작업을 해보고 싶다. 어떤 음악의 기준이나 특수한 사운드 접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또한 각종 리듬과 장르를 전부 소화할 수 있는 뮤지션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빈지노는 정규 1집의 수록곡 ‘Break’에서는 로큰롤 리듬을 선보이지만 ‘Dali, van, picasso’로는 재즈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발매된 ‘Blurry’는 또 트랜스 음악과 많이 닮았다. 그런 면에서 이해도가 높고 스펙트럼도 넓은 아티스트라 꼭 한 번 원 엠시 원 피디로 작업을 해보는 게 꿈이다. 멋진 작업을 할 자신도 있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 만큼 추천하고 싶은 음악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얼라이브 펑크가 좋아하는 여러 장르에서 대표로 한두 장씩 소개 부탁한다.
일단 힙합 앨범에서는 DJ Shadow의 < Endtroducing…… >을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최초의 샘플러와 턴테이블로만 만든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데다, 브레이크 비트 같은 개념이나 트립 합 등에 영향을 끼친 앨범이다. 턴테이블리즘이 일어났을 때 그 중심에 있던 음악가기도 하다. 만약 샘플링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DJ Shadow의 음악이 좋은 소재가 되리라 생각한다.

디스코에서는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 코모도스나 팔리아먼트 등 괴물 같은 그룹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이에 필적할 만한 그루브를 가진 팀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순수 재즈는 아니지만 재즈틱한 앨범 중에서는 아이작 헤이즈(Isaac Haves)의 < Chocolate Chip >을 뽑고 싶다. 어쿠스틱하고 애시드한 사운드를 많이 썼기에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유행에 구애받지 않을 앨범이다. 소울 음악이라 하면 소울 폴 리얼(Soul for Real)의 앨범을 추천한다. 뉴 잭 스윙이나 슬로우 잼 같은 다양한 소울 펑크 리듬이 있고, 나 역시도 거기서 악기의 어레인지 같은 것을 많이 참고한 것 같다.

일렉트로니카에서는 Teebs의 < Anicca >. 앰비언트한 요소도 있지만 강력한 드럼도 있고, 이 앨범에서 사운드 접근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부가 많이 된 뮤지션이라 추천을 하고 싶다. 록은 다들 많이 알 테지만,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를 권한다. 내 기준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앨범이고, 아직까지 이걸 뛰어넘은 앨범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 더 있다면 핑크 플로이드의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을 꼽고 싶다.

최근 재밌게 들은 앨범이 있을까.
일단 한국에서는 마인드 컴바인드가 있고, 그리고 외국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키드 커디(Kid Cudi)의 < Man On The Moon III : The Chosen >을 뽑고 싶다. 물론 첫 등장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Man on the moon’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작년 발매된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와 알케미스트(The Alchemist)가 같이 작업한 < Alfredo >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음악 팬들이 얼라이브 펑크의 음악을 들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지.
아까도 말했듯,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작품의 하자나 허점은 분명 내 눈에도 보일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영원히 미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음악을 완성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청자다. 최고의 칭찬이던, 혹은 정말 별로라는 말을 남기든 간에, 어쨌든 평이 나온 것 자체가 음악을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청자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 얼라이브 펑크로 활동하면서 솔직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나의 일기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당시의 얼라이브 펑크가 이걸 좋아했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유추해도 좋다. 어쨌든 솔직함은 소중한 가치고, 그걸 고수하는 게 멋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감사하다.

인터뷰 : 김도헌, 임동엽, 장준환
사진 : 임동엽
글 : 장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