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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Life′s too short’ (English ver.) (2022

평가: 3/5

혁신을 거듭해 온 메타버스 전사들이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복귀를 예고하며 공개한 ‘도깨비불’이 전자음과 시크한 래핑을 앞세운 ‘에스파 클래식’이었다면, 올해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발매 전 미리 선보인 첫 영어 싱글 ‘Life’s too short’는 유려한 팝 선율로 완급을 조절한다. 단출한 기타 리프 위 성가대 같은 코러스와 맑은 고음을 덧입히고 다국적 그룹답게 능숙한 외국어를 속삭이며 러닝타임을 감미롭게 에워싼다.

섬세하게 변용한 음조와 달리 직설적인 화법은 그대로다. 치밀한 세계관에서 잠시 벗어난 본체들은 핸드폰 화면 뒤에 숨은 악플러들의 조롱에 개의치 않고 짧은 인생을 즐기겠다는 포부를 명확히 밝힌다. 하이틴 드라마 속 맹랑한 주인공처럼 제발 남에게 신경 끄고 본인의 삶을 살아달라는 일침은 덤. 에스파만의 달콤한 경고, 그 안에 감춰둔 비수는 예리하게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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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Savage’ (2021)

평가: 3.5/5

차세대 SMP의 이상향

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실재하는 우주의 변천사와 평행을 달린다.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소멸했지만 그들의 파편은 지금까지도 가요계를 수놓고 있다. 허공에 흩뿌려진 유산은 팽창의 자양분이 되어 2020년 마침내 일원화된 신세계 SMCU(SM Culture Universe)를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선배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태어난 거대 세계관의 주인공이 바로 걸그룹 에스파다.

팀 이름부터 방향성은 명확했다. 인간 멤버들이 자신의 데이터에 기반한 아바타 ‘아이(æ)’를 만나 경험하게 될 메타버스 스토리. 미래 기술과 음악의 접목이란 사실만으로 등장 전부터 이목이 쏠렸다. 낯익은 이미지로 점철된 데뷔곡 ‘Black mamba’가 그 기대에 미치진 못했으나 올해 손목을 꺾는 디귿 춤과 쫀득한 발음을 곁들인 ‘Next level’이 인기를 끌며 에스파는 단숨에 대세로 우뚝 섰다. 산업 간의 융합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힌 건 결국 음악이었다.

유행의 본질을 파악하고 돌아온 이들의 음조는 더욱 맹렬해졌다. 강렬한 비트와 찢어 늘인 신시사이저 그리고 극적인 고음 애드리브까지, ‘Savage’의 기틀은 보아와 동방신기가 프로듀서 유영진과 함께 주도했던 2000년대 중반 SMP다. 물론 그 시절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후렴구는 엔시티 127의 대표곡 ‘Cherry bomb’처럼 짧은 호흡으로 받아치며 중독성을 배가하고, 브릿지는 엑소의 알앤비 발라드 ‘What is love’를 들여와 보컬 기량을 발산한다. 더불어 둔탁한 타격의 틈엔 영국 일렉트로닉 레이블 PC 뮤직의 시그니처 샘플들을 분절시켜 입체감을 높인다. 기획사의 노하우를 집약하고 하이퍼 팝까지 이식한 K팝 트랙은 혁신적 관점으로 시대를 매끈하게 앞서간다.

뒤이은 ‘I’ll make you cry’까지 야성적인 자세로 일관한 데 비해 후반부는 톤을 낮추며 캐주얼한 면모를 드러낸다. 몽롱한 멜로디의 ‘자각몽’은 이달의 소녀나 레드벨벳의 드림 팝이 스치고, 자존감이 충만한 ‘Yeppi yeppi’는 있지의 ‘달라달라’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비교적 친숙한 질감이 자칫 독보적인 매력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채로운 전자음과 목소리의 블렌딩은 음악적 친밀감을 제고하며 타이틀곡의 접근법이 낯선 이들마저 새로운 차원으로 빨아들인다.

음악 외의 콘텐츠도 흡인력을 강화한다. 어린이 만화에 나올 법한 ‘ænergy’의 대사나 ‘Savage’ 뮤직비디오 속 2D 애니메이션은 키치한 즐길 거리다. 막연한 연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훗날을 위한 면밀한 설계로 짐작된다. 현실의 ‘나’와 가상의 또 다른 자아 ‘아이’는 익명에 가려진 시스템의 양면이고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빌런 ‘블랙 맘바’는 딥페이크를 비롯한 기술 범죄의 초상이다. 허구의 이야기 속 투쟁은 디지털 사회의 실태고 이를 조영하는 비주류 매체는 유머 섞인 지적질을 날린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서브컬처의 상승으로 근래 보기 드문 아이돌식 풍자를 완성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메타버스는 점점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여전히 흐릿하다. 엉성한 3D 모델링과 각종 표절 논란만 봐도 생소한 개념은 그저 키워드 마케팅에 불과해 보인다. 그럼에도 네 명의 소녀와 네 개의 홀로그램이 그려갈 문화 행보는 근시안적 태도의 불손함을 상쇄한다. 탄탄한 가창력과 과거의 질료로 구축한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다각적인 고발과 비판의 메시지. < Savage >는 미디어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며 가장 이상적인 SMP를 주조했다. 시대가 공증할 수 있는 ‘Iconic’한 존재, 선구자의 발걸음에 신세기의 성패가 달렸다.

– 수록곡 –
1. ænergy
2. Savage
3. I’ll make you cry
4. Yeppi yeppi
5. Iconic

6. 자각몽 (Lucid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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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æspa) ‘Next level’ (2021)

평가: 3/5

작년 11월에 발표한 ‘Black mamba’의 뮤직비디오가 케이팝 데뷔곡 사상 최단기간 1억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에스파는 단숨에 주목할 만한 그룹으로 떠올랐다. 현악기가 주도하는 부드러운 질감의 ‘Forever’로 숨 고르기를 한 그들은 세 번째 싱글 ‘Next level’로 현실과 가상의 소통이라는 서사를 이어간다. 에스파는 세계관의 정교성으로 팬덤을 결집하고 ‘아바타가 일상과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가상공간’을 일컫는 메타버스 개념으로 Z세대들의 호응을 끌어내고자 한다.

영화 < 분노의 질주 : 홉스 & 쇼 >에 수록된 호주 출신 뮤지션 애스턴의 ‘Next level’은 에스파의 버전에 밑바탕을 제공했고 여기에 유영진 특유의 반전을 주는 브릿지가 더해진다. 원곡의 힙합 사운드는 카리나와 지젤의 절도 있는 랩에 들러붙고 윈터의 고음역은 브릿지 파트에 활기를 불어넣어 변화가 많은 곡 구성을 매끄럽게 엮어간다. 에스파와 아바타의 교류를 막는 ‘블랙 맘바’를 찾아 가상세계 ‘광야’로 떠나는 여정은 세계관의 난해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으나 여정을 향한 의지만큼은 확고하며 그 의지는 SM 컬쳐 유니버스의 세계관 구현의 열망과도 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