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음악] 인디 – 테이프 앤 포스트

7월 1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는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음악 산업계 피해 규모가 약 877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소 레이블 및 유통사의 발매 연기 및 취소, 인디 뮤지션들의 소규모 공연부터 대규모 페스티벌까지 사라져 버린 공연 시장의 실태를 반영한 통계다.

그러나 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음악인들의 목소리가 있다. IZM은 코로나 19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두번째로 IZM이 찾아간 곳은 8월 15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온라인 페스티벌 ‘테이프 앤 포스트(TAPE AND POST)’다.

어둠이 내려앉은 8월 15일 저녁의 모래내시장. 드문드문 인적이 보이는 시장 안쪽에서 희미한 기타, 드럼, 베이스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노래방 간판의 좁은 계단을 오르자 좌측에는 ‘모래내 극락’, 오른쪽에는 구남과여 라이딩스텔라의 조웅이 운영하는 ‘쌀롱 어제’를 알리는 A4 종이 위 손글씨가 테이프로 붙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음향을 체크하는 엔지니어들과 리허설 중인 밴드 멤버들, 굿즈를 준비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스태프들,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를 준비하는 카메라맨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페스티벌’이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음악 페스티벌이 사라진 여름, 페이스북 ‘N 년 전 오늘’로만 희미하게 추억할 수 있던 페스티벌이었다. 비록 안전을 위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현장 관객은 사전 예약 30명으로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참여 아티스트, 타임테이블, 맥주가 준비되어있는 여름날의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홍대의 생기 스튜디오, 남가좌동의 모래내극락, 연남동의 채널1969에서 동시 진행되며 온라인으로 공연 실황을 중계한 ’테이프 앤 포스트(TAPE AND POST)’ 페스티벌이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 

“페스티벌이에요!”. 채널1969에서 펼쳐진 향니의 공연을 이어받은 모래내극락의 첫 번째 주자,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연주와 함께 현장을 채운 관객들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평범한 여름날이었다면 인천에서, 지산 리조트에서,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강원도 철원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 땀 흘리며 음악과 함께 정신없이 뛰며 소리 질렀을 사람들이었다. 아지랑이 지는 기타와 강렬한 드럼 비트 위 관객들은 그 한을 조금이라도 풀려고 노력했다. 크게 소리 지르지 못했지만 환호했고, 끝없이 박수를 쳤다. 

“대단히 특별하고, 새롭고, 멋진 것을 하자는 생각보다 ‘현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DMZ 피스 트레인 페스티벌’의 운영팀장으로 ‘테이프 앤 포스트’를 기획한 베리 하이(VeryHigh)의 김세훈 감독은 페스티벌 분위기 구현을 우선점으로 두었다고 밝혔다. “페스티벌은 단순히 공연만 즐기는 게 아니잖아요. 페스티벌 키트 제작도 염두에 뒀고, 오프라인 펍 섭외도 생각했습니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테이프 앤 포스트’ 페스티벌은 15일부터 16일까지 홍대 앞부터 모래내 시장까지 앞선 언급한 3곳의 공연장을 통합하여, 타임테이블에 따라 각 공연장마다 아티스트들이 등장해 공연을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비대면 시대 온라인 송출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같은 시간대 다른 공간에서의 퍼포먼스를 한데 묶어 송출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 감독은 이 기회를 ‘평균적인 수준보다 각 장소의 특징을 강조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생기 스튜디오’의 경우 많은 온라인 스트리밍 노하우가 있어 음향과 영상 연출 수준이 높습니다. ‘채널1969’는 다양한 공간을 아티스트 분위기에 맞게 활용하고 연출하는 콘셉트가 독특하고요. ‘모래내극락’은 새로 선보이는 공간이라 현장에서 관객이 느끼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생적으로 노력해온 클럽, 공연장, 베뉴들의 역량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지난 8월 13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개최한 ‘제2회 코로나19 음악 사업계 대응책 논의 세미나’에 의하면 홍대 인근 공연장 콘서트 약 126건이 코로나 여파로 취소되어 약 10억 7600만 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공연장을 운영하는 이들,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기획자들, 여름을 기다려온 아티스트들 모두 기약 없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4월부터 시작해서 거의 매 달마다 하나씩 페스티벌 출연 계획이 있었는데 모두 취소됐죠.”. 2019년 7월 첫 정규 앨범 < Freesummer >를 발매하며 활동을 늘려가던 밴드 까데호에게 2020년 코로나 유행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저희에겐 올해가 첫 번째 페스티벌 시즌이었거든요. 실제로도 많이 섭외도 왔고…”. 까데호와 추다혜차지스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멤버 김재호의 말에서 아쉬움이 강하게 묻어났다.

그나마 온라인 라이브로 숨통을 틀 수 있었다고는 하나 라이브 무대의 생동감에 비할 바는 못됐다. 까데호의 기타리스트 이태훈은 “처음에는 온라인 라이브라고 다를 게 있겠나 싶었어요. 막상 진행해보니 다르더군요. 온라인 라이브는 오히려 레코딩에 가까운 개념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페스티벌의 경우 강하고 파워풀하게 연주하지만, 비대면 송출은 정확한 소리를 들려주려 하죠.”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드러머 김다빈, 매니저 이승준의 표현은 더욱 정확했다. “세게 연주할 수 없어서 답답해요.”, “못 갈기잖아요!.”.

무엇보다 관객이 없다는 점이 가장 허전했다. 채널1969에서 무대를 가진 문선에게 ‘코로나 시대 라이브에서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에너지’를 말했다. “호응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그리고 앞뒤 아티스트들이 있고 없고가 굉장히 큰 차이를 가져와요.”. 

김세훈 감독은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가장 큰 위기로 아티스트들에게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을 꼽았다.

“인디 뮤지션들 중 코로나 때문에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바이러스 확산 전에도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 뮤지션은 거의 없었거든요. 현실적, 물리적 피해보다는 무대를 잃고 음악 동력을 잃었다는 정신적 피해가 더 큽니다.”.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까데호는 오는 10월 두 번째 정규 앨범을 공개한다. 기타리스트 이태훈의 설명에 따르면 “두 장의 CD에 팝, 록, 댄스 등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담은” 작품이다. 팀의 베이스 주자 김재호는 밴드 씽씽 출신 소리꾼 추다혜와 함께한 밴드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로 2020년 상반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온라인 시장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자음악을 다루며 브랜딩, 그래픽 디자인 경력을 갖고 있는 문선은 “화면 분할, 특수효과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공연에 입체적인 색을 더하고 싶다.”는 기술적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세훈 감독 역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인디의 지역성, 공간적 제약의 탈피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홍대 앞’ 등의 물리적 위치로 음악을 지칭할 필요가 없는 거죠. ‘홍대’와 ‘인디’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제약을 해소하는 것이 코로나가 저희에게 가져온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테이프 앤 포스트’ 페스티벌은 미팅부터 아티스트 섭외, 실제 공연까지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꾸준히 교류해왔고,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었던 덕이다. 스테이지 리허설 전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에게 ‘코로나 시기가 힘들지 않은가’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과 동일했다. “모두가 다 힘든데,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봐야죠.”.

모래내극락에서 즐겁게 어깨춤을 추던 관객들, 생기스튜디오에서 고개를 흔들던 이들, 채널1969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택시에 몸을 뉘었다. 향후 공연 스케줄을 이야기하던 밴드들, 분주히 무대를 준비하던 스태프들의 모습이 유례없는 재난 속 희망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스마트폰 화면 속 ‘광화문 촛불집회 2만 명 운집’ 뉴스는 다시금 모두를 불길하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코로나바이러스의 수도권 확산으로 인해 8월 20일부로 서울시는 10인 이상 집회 및 모임을 30일까지 금하며 사실상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조치를 결정했다. 8월 23일 0시 기준 코로나바이러스 신규 확진자는 387명이 확인됐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고,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춤출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는 김세훈 감독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돈다. 

‘그 이후’를 넘어, 다시 한번 ‘그 이후’를 고통스럽게 그려야 할 나날이 온 것이다.  

기획
김도헌
취재
김도헌
사진
TAPE AND POST
(Jinn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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