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lbum KPOP Album

르세라핌 ‘Fearless'(2022)

평가: 2/5

부유하는 메시지 : 소녀들은 왜 인어공주가 되었나

방탄소년단을 품은 거대 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이 함께 만든 걸그룹 르세라핌의 화력이 식지 않고 타오른다. 5월 2일 데뷔 이후 활동 근 한 달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의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데뷔 첫날 17만 장의 음반을 팔아 치우며 역대 걸그룹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는가 하면 벌써 여러 개의 음악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쥐었다.

르세라핌. 즉, 나는 두렵지 않아(IM FEARRLESS)란 글자의 순서를 바꿔 만든 이름만큼 두려운 것 없는 행보다. 거창한 콘셉트와 음반 서사의 확장성을 부여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이들의 앞을 막아설 것이 없는 듯하다. 반면 곡은 의외로 가볍다. 화려하게 사운드를 섞지 않아 단조롭고 정적이다. 타이틀 ‘Fearless’는 자신들을 ‘겁 없는 새로운 b**ch’라 명명하지만 소리를 터트리지 않고 숨을 참는 쪽을 택한다.

‘Blue flame’이나 ‘The great mermaid’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욕심을 빨간색보다 더 뜨거운 파란 불꽃에 비유한 ‘Blue flame’은 타이틀과 같은 기조를 유지, 앨범에 매끄럽게 녹아든다. ‘하날 위해선 하날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다 갖겠다고 말하는 ‘The great mermaid’도 그렇다. 앞선 B**ch(나쁜 여자)에서 인어공주로 비유 대상만 바꾸었을 뿐 전체의 톤과 메시지는 같다. 다국어로 비장하게 시작하는 첫 곡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일관된 논조로 ‘주체성’에서 시작된 ‘차별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달라’라고 말하는 있지(ITZY).
‘또 이 어려운 걸 해내지 / 우린 예쁘장한 savage’라고 외치는 블랙핑크.

등의 연장선상에 선 르세라핌이 꺼낸 ‘두렵지 않다’는 주체성 전략은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제 유행을 넘어 장르가 된 ‘걸 크러시’를 마케팅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또렷이 보인다. 이들의 ‘피어리스’엔 빈틈이 크다. 카메라를 노려보다가도 끝 곡 ‘Sour grapes’에선 ‘눈물 나게 시큼한 게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다’ 말하는 ‘소녀’로 변모한다. 그룹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손 쳐도 이러한 콘셉트는 여전히 석연찮다.

새로운 차원에 들어오듯 SF적인 첫 곡이 지닌 탈시대성, 과도한 콘셉트가 만든 이미지의 과잉, 이를 통해 실제 주체인 소녀들의 주변화까지. 걸 크러쉬에서 비롯된 주체성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직접 성애의 대상이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콘셉트의 비현실성을 끌어와 실제와 선을 긋는 것마저 전형적이다. 소녀인 듯, 소녀 아닌, 소녀 같은 그룹이 됨으로써 이들이 은근하게 드러낸 살색은(혹은 이를 바라보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테니스복에 하이힐을 신은 의상과 엎드려 몸을 흔드는 뮤직비디오 속 장면 등 그룹의 지금엔 문제가 많다. 한 끗 차이로 색을 달리하는 숭배와 혐오 사이 대상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르세라핌이다. 두려울 게 없다고 드높이는 이들이 완벽한 곡 소화력을 선보일지라도 그 핵심은 지나치게 흐리다. 껍데기만 남은 메시지. 인어공주 등의 비유로 어벌쩡 시도한 대상화하기가 커다란 구멍을 낸다. 자꾸만 그룹 너머 ‘기획’사가 호도한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수록곡 –
1.The world is my oyster’
2.Fearless
3.Blue flame
4.The great mermaid
5.Sour grapes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그냥노창 ‘없는계절’ (Feat. 아이네, 씨잼, 윤훼이) (2022)

평가: 3/5

음악 감상에 있어 남의 고통에 동참할 당위 같은 건 없으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몸부림의 이유를 묻는 너그러움 정도는 있는 게 좋다. 7분이 넘는 긴 재생 시간 동안 한순간도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없는계절’은 이 여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보통 삶을 송두리째 흔들 정도의 깊은 슬픔에 잠겨 있지 않기에 우울한 이의 절규가 어색하다. 매 순간이 고통인 화자가 반복 생산하는 우울을 듣고 있으면 하루를 사는 기분을 쉽게 통제했던 경험의 낯선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화려한 피처링 명단 중 아이네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가상의 존재를 내세워 마치 해당 캐릭터가 실제 방송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스트리머. 가상과 실제를 오가는 인물이 허망한 애정을 노래하니 묘하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음울한 분위기, 전위적인 형식 등 많은 연유로 이 노래를 대중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만듦새의 측면에선 난해함을 선호하는 소수를 위한 웰메이드 퍼즐이다. 새소년의 ‘난춘’을 리믹스한 ‘없는계절’은 말 그대로 봄이 어지러운 사람의 이야기다.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이그니토(Ignito) ‘황금마차’ (2022)

평가: 3/5

‘점화하다’라는 영어단어 Ignite에서 이름을 따온 래퍼 이그니토는 확고한 정체성으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어두운 분위기는 문학적인 노랫말과 만나 아우라를 발산하고 단단한 기본기가 밑을 받친다. 2006년에 나온 1집 < Demolish >는 하드코어 힙합의 수작으로 인정받았고 1.5집 < Black >을 거쳐 2017년 인간 근원을 파헤치는 < Gaia >를 발표했다.

정규 3집의 가늠자가 될 신곡 ‘황금마차’는 독특한 분위기로 래퍼의 개성을 공고히 했다. ‘조금 더 힘차게 가다오, 주변에 거친 발굽 소리가 들리게’라는 소설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구절엔 자조(自照)와 의지가 뒤엉키고, 여성 소프라노의 코러스와 현악기가 중세풍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직관성은 떨어지나 곱씹을수록 풍미를 남기는 문학성으로 국내 힙합 신의 한 부면을 형성했다.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선예 ‘열애중’ (2022)

평가: 2/5

세 딸의 어머니가 된 국민그룹 리더의 재도전이다. 옛 스타들의 컴백 프로젝트 < 엄마는 아이돌 >에 출연한 원더걸스 출신 선예는 6명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메인보컬을 거머쥐며 가요계 복귀를 알렸다. 담백한 감성과 탄탄한 기본기는 무뎌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대낮에 한 이별’에 머무르는 음악적 지향은 벤의 히트곡 ‘열애중’에 녹아들지 못한다. 어쿠스틱 편곡에 얹은 차분한 발성이 원곡의 절절한 감정을 지우자 진부한 사랑 노래가 되어버렸다. 어제의 영광에만 기대는 리메이크, 원곡의 익숙한 멜로디만 공허하게 맴돌 뿐이다.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태연 ‘Can’t control myself’ (2022)

평가: 2.5/5


태연은 당찬 성격처럼 자신감 있게 노래를 지배한다. 그래서 걸 그룹 출신이지만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라도 자기와 맞으면 주저 없이 선택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그 대상에는 록도 포함한다. ‘Can’t control myself’에서는 전자음원을 머금은 개러지 록과 인디음악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경계선을 확장했다. 다른 노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 멜로디가 약하지만 그것으로 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키만 훌쩍 커버린 어른아이 같아
진심이 없는 네 말에 감당하지 못 할 감정을 택했잖아
그래 Too late
상처를 되돌리기엔 늦어버렸어’

이 대상은 흔들리는 연인일 수도 있고 애증의 관계인 소속사일 수도 있다. 태연은 이 중의적인 노랫말을 통해 자신의 본심을 드러냈다. 2월에 공개할 세 번째 정규앨범의 첫 싱글 ‘Can’t control myself’는 ‘I’, ‘Fine’에 이은 록 3부작의 마지막 퍼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