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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엔하이픈(ENHYPEN) ‘Bite me’ (2023)

평가: 2.5/5

운명의 경계에 선 ‘Given-taken’,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Drunk-dazed’, 혼란에 맞선 ‘Tamed-dashed’, 자신만의 길을 다짐한 ‘Blessed-cursed’, 미래 세대로의 연결을 노래한 ‘Future perfect’까지. 엔하이픈은 데뷔 후 짧은 기간 안에 케이팝 아이돌이 느끼는 영광과 혼란을 옹골지게 이야기하며 서사를 그려왔다. 다소 빠르게 소모된 감도 있지만 이들의 방대한 세계관은 여전히 지속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잊고 있던 운명의 상대를 재회한다’는 새로운 콘셉트의 ‘Bite me’는 기존 곡과 달리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애정을 손짓하는 ‘구애’의 노래다.

특장점이었던 자극적이고 세찬 비트, 도발적인 일렉트릭 기타, 자신만만한 노랫말 대신 미니멀한 비트와 다소 무미건조한 멜로디를 내세운 ‘Bite me’는 그간 내놓은 그룹의 타이틀 중 가장 평범하다. 단순 감상용 사랑 노래라면 감각적인 어쿠스틱 팝 ‘몰랐어’나 쉬운 멜로디로 대중적이었던 ‘Polaroid love’처럼 전작에서도 선택지가 많고, 팀의 뱀파이어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도 밋밋하게 다가올 공산이 크다. 그간 그들이 두르고 있던 음악적 외피가 확고하고 개성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는 곡. 몰아치던 에너지를 한풀 줄여 팀을 서사의 다음 장으로 연결하는 중간 다리 같은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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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Blur) ‘The narcissist’

평가: 4/5

블러답다. 음악도, 데이먼 알반의 나른한 보컬도, 무난한 팝 록 스타일도, 모든 면에서 블러다. 하늘에 먹구름이 낄지라도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모습을 포착한 앨범아트는 지극히 1990년대 브릿팝의 정서와 닮았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유쾌함과 스산함이 공존하는 전작 < The Magic Whip >과는 결이 다르다. 거칠게 뛰노는 ‘Song 2’, 통통 튀는 ‘Girls & boys’, 나른한 ‘Coffee & tv’와도 다른 모양새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다.

데이먼 알반의 음악 세계는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쩔 때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The narcissist’는 편안하다. 조급한 마음, 특별한 걸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은 전혀 없다. 그 대신 밴드의 정석만을 들려준다. 무심한 듯 감정을 쌓는 보컬, 그 뒤에서 같이 무던하게 얹는 코러스,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노이즈를 키워 천천히 공간감을 넓혀나가는 세션, 휘몰아치는 후반부, 짧은 여운까지, 평범한 밴드 음악을 범상치 않게 해낸다.

이제 블러는 블러를 실험실로 쓰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의 고향이다. 이제 블러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더 중요하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뻗어 나갔던 멤버들은 30여 년이 지나서야 < Leisure >의 수영장에 다시 모였다. 어린 날들의 어설픔과 불안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관록이 새롭게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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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Buddy’ (2023)

평가: 3/5

민수의 팬들에게 얼마간 반향을 일으킨 데모곡을 정식으로 발매한 버전이다. 전보다 풋풋하진 않지만 깔끔해진 편곡이다. 그때의 수줍음은 미완성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연의 산물이었기에 이번 곡에선 매무새가 더 좋아졌음에도 귀를 잡아채는 특별한 매력은 부족하다. 다만 가수의 개성과 표현력이 한껏 무르익었음을 추론할 만한 근거는 귀에 자주 들어온다.

시티팝의 사운드를 응용하여 과거 시제의 따뜻함을 끌어왔던 이전과는 달리 편안하게 귀에 들어오는 팝적인 밴드 편곡으로 현재의 감각을 겨냥한다. 특히 쉬운 코드와 단순한 멜로디 진행에 터 잡으면서도 비슷한 재료를 이용한 다른 전형적인 곡들과 질적인 차이를 두게 하는 감각이 도드라진다. 이는 민수가 다른 누군가의 감성을 학습하거나, 혹은 실험적인 시도를 어필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의미다. 이 예민해진 감각에 좋은 노래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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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 ‘Love you! (Feat. 타블로)’ (2023)

평가: 3/5

거친 음성으로 감정을 토해내던 아티스트가 마음을 가다듬고 따듯한 안부를 건넨다. 2014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한 이후 그의 디스코그래피엔 유독 OST와 음악 예능의 흔적이 짙게 밴다. 대중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대표 앨범의 부재로 흐릿해진 정체성 또한 대변한다. 여러 가지로 신곡 ‘Love you!’에 부여할 무게는 충분하지만, 이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단지 노래한다.

감각적인 비트와 기타 위로 신스 소스가 가미된 중독적인 후렴의 팝 넘버가 펼치는 청량에 적절히 더해진 타블로의 랩이 거슬리지 않고 물 흐르듯 진행된다. 계절감 가득한 보편적 위로가 특별하진 않지만,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실한 목소리. 김필은 이를 차곡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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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헌 ‘Freedom’ (2023)

평가: 2.5/5

몬스타엑스 주헌의 첫 솔로 EP 타이틀곡이다. 8년만의 독무대인 만큼 할 수 있는 것 내지는 하고 싶은 것을 다양하게 펼쳐 놓았지만 성마름을 숨기지 못했다. ‘Freedom’은 서로 다른 몇 개의 곡을 이어 붙인 모양새로 발라드와 힙합이 촌각을 다투며 번갈아 나오다 대뜸 웅장한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보컬리스트와 래퍼 모두를 아우르는 프로듀서로의 면모를 압축하려 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서로 융화하지 못한 각 면모의 각개전투다.

주헌은 그동안 그룹 안팎에서 다양한 역할을 도맡으며 올라운더가 되기 위해 분투했다. 몬스타엑스 9집에서 11집의 타이틀곡을 모두 프로듀싱하며 그룹의 방향성에 큰 공을 세우는 등 그의 능력과 노력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제 막 자유를 노래하려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에 앞서는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