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lbum KPOP Album

빛과 소금 ‘Here We Go’ (2022)

평가: 4.5/5

26년 만에 돌아온 ‘다른 감수성’

K팝 타이틀 아래 눈부신 성공과 신기원 쾌척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우리 대중음악에 여전히 심리적 괴리감을 호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고대하지만 ‘천만과 억’의 매몰자본이 기본인 투우장에서 ‘대세’를 무시하기란 어렵다. 대세는 늘 폭압적이다. 이런 개성완박의 소나기를 피해 자신만의 색깔을 도모하는, 이른바 ‘디깅’의 흐름이 수년 전부터 이어진 ‘시티 팝’ 유행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적지 않은 그 소수들은 “이런 음악도 있는데…”는 말을 늘 입에 붙인다.

그들 덕에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빛과 소금’이 굴착되고 발굴되고 융기되었다. ‘바이닐’ 열풍과 맞물린 그 트렌드는 빛과 소금의 LP가 출시되기만 하면 어김없이 완판의 결과로 이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저 옛날 이렇게 잘 매만진 사운드가 있었나?”하는 경이가 결집해 끝내 빛과 소금을 은둔의 장에서 끌어내 활동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사실이다. 1996년 5집으로 끝난 것 같았던 그들이 다시 신보를 들고 26년 만에 돌아왔다. 반갑다.

장기호의 ‘Blue sky’와 박성식의 ‘오늘까지만’은 그들의 컴백이 결코 이름값이 아님을 실증한다. 선법 작곡에 따른 전자와 모처럼 박성식 본인이 노래한 후자는 과거와 현재 시제의 교배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 질의에 대한 의욕적 응답이다. 세월의 이끼가 배인 그들만의 아지트 속에서도 지금의 감수성을 응시하고 있음을 축약하는 두 곡 모두 후반부의 연주 하모니는 독자적 미학의 극치를 선사한다. 누가 이런 노래를 만들고 내놓겠는가.

이게 진정 ‘뉴트로’ 아닐까. 실로 시티 팝에 대한 다소 수다스런 관심이 증강해 주조해낸 거대한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본인들도 시티 팝에 신세를 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붐에 일게 된 재조명 분위기를 인식하고 30주년 기념 신곡을 염두에 두었으니까. 처음에는 서로 한 곡씩 두 곡만을 생각했으나 내친김에 앨범 제작으로 확장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발매가 지체되었지만 이제라도 접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요, 무한희열이다.

핵심은 ‘대세’와 ‘현실’이란 논리에 기초한 외부의 불편한 추궁을 즐겁게 묵살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처음처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쾌한 ‘필라마네’든, 잔잔한 CCM 트랙인 ‘우리 모두에게'(크리스천인 둘은 앨범에 단 한 번도 가스펠 곡 수록을 뺀 적이 없다)든, 컨트리 냄새가 물씬한 ‘사랑의 묘약’이든, 연주곡 ‘비 오는 숲’이든 언제나 그랬듯 지극히 ‘빛과 소금적’이다. 곡마다 치밀한 사고가 꿈틀거리고 정돈된 울림과 세련된 공기가 넘나든다.

그렇다손 쳐도 일각에서는 대중성 부재에 대한 걱정스런 지적을 들이밀 테지만 두 사람의 오랜 지향에 대한 겸손한 고집은 견고하다. 균질적이고 획일화된 것에 대한 불굴의 거부! 앨범에 대한 “기존의 성향 그대로 유지하려 했고 빛과 소금의 음악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 오랜만에 바치는 선물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장기호의 소감이나 “’음, 역시 빛과 소금이야!’라며 미소 보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박성식의 말에 그게 깔려있다.

두 사람은 트렌드가 아닌 빛과 소금에 봉사했다. 솔직히 그들이 우리에게 건넨 ‘퓨전재즈’도 애초 비인기종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샴푸의 요정’ ‘아침’ ‘그대 떠난 뒤’로 음악계에 새로운 파도를 불렀다. 음압만 강조하는 듯한 아이돌 팝 댄스, 힙합, 일렉트로니카로 대별되는 지금의 판 속에서 이번 음악도 ‘뉴 웨이브’의 기능을 시범한다. 하지만 ‘희소성’이란 낱말사용은 자제하자. 그것으로 앨범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한다면 그건 우리 대중음악이 한두 가지 스타일에 쏠려있는, 병약한 상황인가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니까.

단지 쉬는데 깔리는 위로의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단지 쉼표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취향 고양에 따른 음악 섭취의 별채를 원할 때 비로소 앨범의 유용성이 확립된다. 빛과 소금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찾아 듣는 것’을 원한다. 실로 어떤 이에게는 ‘경이’일 것이고 누군가에는 ‘경외’일 작품이다. 올해의 앨범이 벌써 정해졌다. 흥행의 압박을 넘어 음악 다양성의 영토구축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두 레전드의 노고를 칭송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고 싶지 않다.

– 수록곡 –
1. Blue sky (English ver.)
2. 오늘까지만 (Feat. 서출구, 최현우)
3. 필라마네(Hey! children!)
4. 우리 모두에게

5. 비오는 숲
6. 사랑의 묘약 (Feat. 장재환)
7. Lost days
8. 우리 모두에게 with fans
9. Blue sky (Korean ver.)
10. Reminiscence

Categories
Album KPOP Album

르세라핌 ‘Fearless'(2022)

평가: 2/5

부유하는 메시지 : 소녀들은 왜 인어공주가 되었나

방탄소년단을 품은 거대 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이 함께 만든 걸그룹 르세라핌의 화력이 식지 않고 타오른다. 5월 2일 데뷔 이후 활동 근 한 달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의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데뷔 첫날 17만 장의 음반을 팔아 치우며 역대 걸그룹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는가 하면 벌써 여러 개의 음악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쥐었다.

르세라핌. 즉, 나는 두렵지 않아(IM FEARRLESS)란 글자의 순서를 바꿔 만든 이름만큼 두려운 것 없는 행보다. 거창한 콘셉트와 음반 서사의 확장성을 부여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이들의 앞을 막아설 것이 없는 듯하다. 반면 곡은 의외로 가볍다. 화려하게 사운드를 섞지 않아 단조롭고 정적이다. 타이틀 ‘Fearless’는 자신들을 ‘겁 없는 새로운 b**ch’라 명명하지만 소리를 터트리지 않고 숨을 참는 쪽을 택한다.

‘Blue flame’이나 ‘The great mermaid’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욕심을 빨간색보다 더 뜨거운 파란 불꽃에 비유한 ‘Blue flame’은 타이틀과 같은 기조를 유지, 앨범에 매끄럽게 녹아든다. ‘하날 위해선 하날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다 갖겠다고 말하는 ‘The great mermaid’도 그렇다. 앞선 B**ch(나쁜 여자)에서 인어공주로 비유 대상만 바꾸었을 뿐 전체의 톤과 메시지는 같다. 다국어로 비장하게 시작하는 첫 곡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일관된 논조로 ‘주체성’에서 시작된 ‘차별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달라’라고 말하는 있지(ITZY).
‘또 이 어려운 걸 해내지 / 우린 예쁘장한 savage’라고 외치는 블랙핑크.

등의 연장선상에 선 르세라핌이 꺼낸 ‘두렵지 않다’는 주체성 전략은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제 유행을 넘어 장르가 된 ‘걸 크러시’를 마케팅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또렷이 보인다. 이들의 ‘피어리스’엔 빈틈이 크다. 카메라를 노려보다가도 끝 곡 ‘Sour grapes’에선 ‘눈물 나게 시큼한 게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다’ 말하는 ‘소녀’로 변모한다. 그룹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손 쳐도 이러한 콘셉트는 여전히 석연찮다.

새로운 차원에 들어오듯 SF적인 첫 곡이 지닌 탈시대성, 과도한 콘셉트가 만든 이미지의 과잉, 이를 통해 실제 주체인 소녀들의 주변화까지. 걸 크러쉬에서 비롯된 주체성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직접 성애의 대상이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콘셉트의 비현실성을 끌어와 실제와 선을 긋는 것마저 전형적이다. 소녀인 듯, 소녀 아닌, 소녀 같은 그룹이 됨으로써 이들이 은근하게 드러낸 살색은(혹은 이를 바라보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테니스복에 하이힐을 신은 의상과 엎드려 몸을 흔드는 뮤직비디오 속 장면 등 그룹의 지금엔 문제가 많다. 한 끗 차이로 색을 달리하는 숭배와 혐오 사이 대상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르세라핌이다. 두려울 게 없다고 드높이는 이들이 완벽한 곡 소화력을 선보일지라도 그 핵심은 지나치게 흐리다. 껍데기만 남은 메시지. 인어공주 등의 비유로 어벌쩡 시도한 대상화하기가 커다란 구멍을 낸다. 자꾸만 그룹 너머 ‘기획’사가 호도한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수록곡 –
1.The world is my oyster’
2.Fearless
3.Blue flame
4.The great mermaid
5.Sour grapes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박재정 ‘한 걸음’ (2022)

평가: 3/5

이전 히트곡 ‘너의 그사람’을 통해 헤어짐을 말하던 박재정이 과거를 가슴에 묻고 새사랑을 노래한다. 화자의 수줍은 용기가 정직하고 섬세한 가창을 타고 흐르는 이 고백 송은 뉴트로 사운드에 로파이한 질감을 입혀 감미로운 음색을 부각한다. 따뜻한 피아노 멜로디 뒤 은은하게 음향의 중심을 잡아준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플레이어와 프로듀서 진 사이 역할 분담이 매끈하게 이루어졌다.

박재정의 깊고 섬세한 목소리에 성시경과 같은 선배 발라더들의 이름이 어렴풋이 스친다. 평범한 노래처럼 보일지라도 ‘한 걸음 두 걸음’ 정성스레 공들인 그의 진심이 발라드의 순수성을 보존한다.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마크(Mark) ‘Child’ (2022)

평가: 2.5/5

SM엔터테인먼트의 디지털 싱글 프로젝트 ‘SM 스테이션’이 ‘엔시티 랩(NCT Lab)’으로 돌아왔다. 첫인사는 엔시티 소속으로 슈퍼엠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마크다. 팀 내에서도 작사에 적극 참여하며 랩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멤버 중 가장 먼저 출격한 것은 당연하다.

에미넴의 ‘Beautiful’처럼 클린하지도 찌그러지지도 않은 전기 기타 톤이 보컬과 만나 도입부터 호소력 높인다. 이어지는 베이스 신시사이저 역시 노래에 담긴 복잡하고도 혼란한 자아 고민을 대변하며 정제하지 않아 일그러진 음색으로 화답한다. 음악적으로는 그렇다.

아쉬운 점은 음향에 있다.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본격적으로 리듬 악기가 들어오면 보이스 중심의 사운드가 흔들린다. 화자의 힘은 자연스레 흐려지고, 주인공은 사라진다. 이러한 부분도 곡의 의도와 함께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지만 청감상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태연 ‘Can’t control myself’ (2022)

평가: 2.5/5


태연은 당찬 성격처럼 자신감 있게 노래를 지배한다. 그래서 걸 그룹 출신이지만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라도 자기와 맞으면 주저 없이 선택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그 대상에는 록도 포함한다. ‘Can’t control myself’에서는 전자음원을 머금은 개러지 록과 인디음악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경계선을 확장했다. 다른 노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 멜로디가 약하지만 그것으로 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키만 훌쩍 커버린 어른아이 같아
진심이 없는 네 말에 감당하지 못 할 감정을 택했잖아
그래 Too late
상처를 되돌리기엔 늦어버렸어’

이 대상은 흔들리는 연인일 수도 있고 애증의 관계인 소속사일 수도 있다. 태연은 이 중의적인 노랫말을 통해 자신의 본심을 드러냈다. 2월에 공개할 세 번째 정규앨범의 첫 싱글 ‘Can’t control myself’는 ‘I’, ‘Fine’에 이은 록 3부작의 마지막 퍼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