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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성 ‘수몰’ (2021)

평가: 3.5/5

덥고 습하고 동시에 건조하다. 그 이질적인 온도와 습도만큼이나 음반이 주는 잔상은 묘하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건드리는 것 같으면서도 또 때로는 곁에 두면 마음을 저릿하게 찌르는 순간들을 소환한다. 각 수록곡이 제시하는 풍경과 시대 역시 서로 다르다. 천용성이 만들어낸 노래 속 주체는 사는 게 조금 무력해진 듯 보이는 중학생, 눈 오는 새벽 당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어린아이를 거침없이 오고 간다. 그리하여 앨범은 지금의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노래한다. “분하고 더럽”지만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삶을 말이다.

2019년 < 김일성이 죽던 해 >란 독특한 제목의 첫 정규 앨범을 선보인 천용성은 시작부터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일상의 언어로 나지막이 써 내려간 그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포근한 선율과 만나 앙상블을 이뤘다. 이듬해 그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과 노래 부문에서 수상하며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세간의 기대만큼 들뜨지는 않았다. 여러 인터뷰와 음반 제작기를 담은 < 내역서Ⅱ >에서 고백했듯 쏟아지는 관심과 별개로 음악을 통해 얻은 수익은 적었다. 아니 부족했다. 그는 데뷔작의 성공을 두고 말한다. “우리끼리의 성공”이라고.

쉽게 조급해지지 않고 진중하게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심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음악 역시 그와 닮았다. < 수몰 >. 과거에는 누군가가 살았을 터전에 인위적으로 물을 채운다. 끝과 시작을 동시에 담고 있는, 그래서 어쩐지 마냥 명쾌하지만은 않은 단어를 주제로 삶을 그렸다. 어쿠스틱 기타,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 등 전작보다 확장된 악기들이 음반의 서정을 적절히 뒤받친다. 사랑하는 우리가 여기 있었음을 술회하는 ‘있다’, 먼저 간 친구 몫까지 살아내고 싶다 다짐하는 ‘거북이’ 등이 대표적인 트랙. 또 한편 맑은 음색을 가진 뮤지션 이설아와 함께한 타이틀 ‘수몰’은 재즈적인 터치로 밝지만 마음 한편의 쓸쓸한 감정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포착해냈다.

천용성의 음악이 특별한 건 바로 이 양면성에서 나온다. 밝음과 어둠이, 행복과 불안이 공존한다. 음악을 만드는 걸 두고 그는 ‘자아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그가 파괴한 것은 나를 요동치게 만든 어떤 감정의 장막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리차’가 빨리 식는 계절이 건네주는 시원함과 엄마의 자잘한 넋두리를 풀어낸 ‘설’날의 풍경이 제시하는 평범함. 그리고 죽음 이후 하늘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냐는 불안함을 담은 ‘어떡해’를 오가는 와중 어디에도 거칠 거나 강한 제시는 없다. 다만 거리를 두고 잔잔하게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삶을 또 저러한 삶을. 그를 거쳐 나온 음악에는 세상이 있고, 삶이 있고 우리가 있다.

– 수록곡 –
1.(feat. 시옷과 바람)
2. 거북이
3. 수몰(feat. 이설아)
4. 보리차(feat. 강말금)
5. 어떡해
6. 중학생(feat. 임주연)
7. 붉은 밤
8. 식물원(feat. 시옷과 바람)
9. 싶어요
10. 설
11. 반셔터(feat.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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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코토바(cotoba) ‘세상은 곧 끝나니까(2021)’

평가: 3/5

2018년 말 경에 결성한 코토바는 현재 그 어떤 밴드보다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여느 인디 밴드는 다를까 싶지만 그룹은 성실하게 곡을 만들고 이를 지체하지 않고 홍보할 줄 안다. 또한 ‘인디씬’에 관한 각종 포럼과 ‘인디 뮤지션’으로서의 처우 개선을 위해 열심히 목소리 내고 있다. 홍대 앞에서 누구보다 자립적으로 음악을 펼쳐내는 이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작년 2번째 EP 발매 이후 근 1년 만에 새로운 음반을 내놓았다. CD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한 곡을 포함해 총 5개의 적은 수록곡이지만 개별 노래의 완성도는 묵직하다. 가장 눈여겨 볼 요소는 촘촘한 그물을 짜듯 교차하는 악기의 합. 일례로 ‘찾고있는 것은’은 6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이 무색하게 매끈한 완숙도를 보여준다. 독특한 리듬감과 묘하게 섞이지 않는 악기들로 포문을 열더니 어느 순간 드럼이, 이후 일렉트릭 기타 멜로디가 중심을 완벽하게 잡아낸다.

이는 밴드의 대표곡이기도 한 ‘Melon’에서도 나타난다. 오랫동안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지 않았던 이 곡은 < 온스테이지 >에 공개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정교하게 꽂히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절규에 가까운 보컬의 외침이 시원한 쾌감을 준다. 노래를 주무르는 완급 조절 역시 곡의 매력을 상승케 한다. 이러한 각 포지션의 유기적인 만남을 그룹은 ‘매스 록(math rock)’이란 정체성으로 설명한다. 그만큼 복잡한 악기 라인들이 부딪히고 이를 결국의 하나의 ‘값’으로 뽑아낸다.

‘살아남은’이 담고 있는 재즈에서 자주 들을 법한 변칙적인 드럼은 천천히 쌓여가다 이내 응축된 에너지를 터트리는 곡의 뼈대가 된다. 반면, 끝 곡 ‘Goodnight Lilith’는 기타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음반의 문을 닫는다. 한 편의 웅장한 서사를 풀어내듯 집중력 있게 곡을 쓰고 이를 흡입력 있게 마감한다. 어떤 노래도 편히 흘려보내지 않고 꽉 동여맨 사운드 설계에서는 모종의 음악적 열망이 뿜어져 나온다. 합이 좋고 열정이 뜨겁다. 코토바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 수록곡 –
1. Melon
2. 찾고있는 것은
3. 살아남은
4. Goodnight Lilith
5. Lost orb(EP ver. C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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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 ‘Butter’ (2021)

평가: 3/5

지난해 ‘Dynamite’로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3번이나 차지한 이들이 새 싱글 ‘Butter’로 또 한 번 칼을 갈았다. 외수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은 영어로 적은 가사에서 한번, 걸릴 것 없이 안전한 멜로디에서 또 한 번 드러난다. ‘Dynamite’와 같이 펑키함을 살리고 선명한 선율로 모든 연령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접근을 취해 누구나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팬데믹 상황을 잊게 할 에너지 넘치는 썸머 송이란 설명처럼 노래는 그야말로 경쾌하고 그야말로 청량하다. 간결한 드럼 비트로 문을 열어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과 쉭(chic)의 ‘Good times’를 연상케 하는 베이스라인을 얹고 사이사이 신시사이저를 짙게 채색해 즐기기 좋은 멜로디를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 ‘Man in the mirror’, 등의 가사를 조금씩 비틀어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가사의 맛을 살린 접근은 또 어떤가. 살짝 감춰둔 재치 있는 은유는 명백히 해외 시장을, 나아가 윗세대 어른들의 취향까지 노린다.

뮤직비디오를 공개함과 동시에 390만 명의 유튜브 최다 동시 접속자를 만들어내고 24시간 만에 이룬 1억 820만이란 누적 조회 수는 이들의 전략이 이번에도 세계를 호령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기세 좋은 성과가 균열 없이 안전한,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 속에서 쓰였음은 노래를 해석하는데 한 면에서의 제동을 건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밝고 맑은 소재로 그려낸 긍정적인 치얼 업 송. 이들의 군더더기 없는 퍼포먼스가 곡의 가치를 풍부하게 살린 것은 맞지만 보편타당함을 지향하는 지금의 방향이 어딘가 노래의 힘이 풀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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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우린 (Prod. by 이찬혁 of AKMU)’ (2021)

평가: 3/5

악동뮤지션의 찬혁이 직접 곡과 가사를 썼다. 선배 뮤지션 이승철의 데뷔 35주년을 맞이한 기념 싱글로 피아노를 중심으로 점점 고조되는 진행이 일품. 젊은 시선으로 사랑 이후의 감정을 써낸 찬혁과 이를 표현한 보컬 이승철 사이에 어떤 시대적인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다. 매끄럽게 소화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곡. “우린 / 우린 / 우린 사랑했죠” 노래하며 한 템포 숨을 죽였다 다시 퍼지는 구성 역시 튼튼하다. 조금은 담백한 구성이 단점으로 자리할 수 있으나 그 한계만큼이나 깔끔한 인상을 전해준다. 좋은 시너지의, 핵심만 담은 발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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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라슨(Zara Larsson) ‘Poster Girl’ (2021)

평가: 3/5

주제는 사랑, 재료는 전자음 기반의 트렌디한 사운드다. 깔끔하고 확실한 노선을 따라 열두 개의 총천연색 ‘팝송’을 수놓았다. 3분 언저리를 맴도는 수록곡들은 저마다 확실한 멜로디를 각인. 러닝타임 내내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어려움은 없다. 마음 편히 듣고 흥겹게 취하면 될 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빛을 보지 못했지만 자국인 스웨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10살 무렵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 탈랑 2008(Talang 2008) >에 출연해 소울풀한 가창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1위로 경연을 끝낸다. 이후 스웨덴에서만 공개한 정규 1집 < 1 >(2014)을 거쳐 2017년 < So Good >으로 당당히 전 세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가창력으로 주목받았으나 본격 활동을 시작한 후에는 보다 ‘젊은’ 사운드로 무장했다. 일렉트로닉 그룹 클린 밴딧과 함께해 국내에 좋은 반응을 일으킨 ‘Symphony’처럼 목에 힘을 풀고 전자음을 한껏 끌어와 선율을 짰다. 전자음을 중심으로 찰진 선율을 만들고 실력 좋은 가창은 한 편의 요소이자 포인트로 배치. 활기 넘치고 쨍한 색감의 작품을 만든다.

이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디스코 리듬을 바탕으로 펑키함을 살린 ‘Poster girl’부터 ‘Need someone’은 피아노와 베이스의 합이 근사한 울림을 가져온다. 넷플릭스의 영화 < 워크 잇(Work It) >(2020)에 쓰이며 주목받은 ‘Wow’는 굵은 베이스라인과 보이스를 교차하며 만드는 클럽튠이 일품. 이 외에도 미국의 래퍼 영 떡이 목소리를 보탠 ‘Talk about love’는 부드러운 알앤비의 매력을 짙게 살리는 두 보컬의 만남이 탄탄한 시너지를 낸다.

문제는 이 경량이 딱 그 정도의 중량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무게감과 적당한 청량감. 그리고 적당한 톤 다운만이 담겼다. ‘네가 한 짓으로 더 멋져진 나를 봐’라고 외치며 현악기로 멜로디를 치고 나가는 ‘Look what you’ve done’을 기점으로 음반은 힘을 푸는데 이 힘 빼기가 전체의 윤곽을 뚜렷하게 꾸려내진 못한다. 열두 개의 오밀조밀한 틴 팝. 기승전결을 살리기 위한 곡의 배치 등 선택한 접근은 감각적이었지만 그 너머의 강렬함이 적다. 너무 깔끔해서 담백해지기만 한 건 아닐는지.

– 수록곡 –
1. Love me land
2. Talk about love (Feat. Young Thug) 
3. Need someone 

4. Right here
5. Wow
6. Poster girl 
7. I need love
8. Look what you’ve done
9. Ruin my life
10. Stick with you
11. FFF
12. What happens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