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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키 ‘H1-KEY 1st Mini Album [Rose Blossom]’ (2023)

평가: 3.5/5

뭔가, 어딘가 다르다.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듣자마자 든 생각이다. 이내 5개의 신곡과 2개의 보너스트랙이 담긴 신보를 재생, 역시나 처음의 감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2022년 싱글 ‘Athletic girl’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이들이 1년 만에 내놓은 EP는 기존에 주목한 ‘건강함’의 범위를 더욱 넓히려 든다. 궤는 흔히 말하는 4세대 아이돌 즉, 아이브의 ‘Love dive’,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같은 ‘주체성’이나 접근이 다르다. 더 쉽고, 더 넓고, 더 두껍다.

밴드 데이식스의 영케이가 가사를 쓴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전 국민 히트송 거북이의 ‘빙고’가 생각날 만큼 멜로디가 쉽고 노랫말이 따뜻하다. 전자가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했다면 이 곡은 스스로를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로 지칭하며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힘내자고 노래한다. 가사 속 ‘I’ll be alright’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위로와 다짐이 곡과 음반의 핵심을 관통했다.

이들의 주체성은 사랑과 성별 다시 말해 고착된 여성적인 이미지를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삶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리라는 접근에서 주체적이다. 이는 첫 곡 ‘Ring the alarm’에서도 나타난다. 일면 블랙핑크의 ‘뚜두뚜두’가 떠오르는 노래는 힙합 질감을 기초로 해 미니멀한 전자음과 휘파람을 효과음으로 얹어 ‘시간 됐어 일어나요 Ring the alarm’을 너머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 다 잘 될 거니까’는 외침을 농도 깊게 전한다.

아이돌의 맑고 청량한 정형화된 모습을 내비치는 팬쏭 ‘You are my key(for m1-key)’를 제외한 ‘Crown jewel’, ‘Dream trip’ 역시 메시지는 같다. 특히 ‘Crown jewel’은 태국 아티스트 Tachaya의 힘을 빌려 태국 악기인 라나트, 자케와 우리나라 전통 악기 꽹과리를 한데 뒤섞어 선율을 만들어 냈는데 그 조합이 매끄럽다 못해 감칠맛 난다. 블랙핑크 ‘Pink venom’, 어거스트디 ‘대취타’, 송민호 ‘아낙네’ 등 한국의 소리를 노래에 넣은 이전 곡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AI가 그룹의 멤버가 되거나 멤버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로 소개되곤 하는 작금의 복잡한 K팝 월드에 단순하지만 힘센 그룹이 나왔다. 오빠, 삼촌에게 말을 걸거나 혹은 언니, 누나의 모습으로 손 내밀지 않고 ‘나’로서 다가오는 하이키식 위로가 범대중적인 호소력을 터트린다. 계산됐든 계산되지 않았든 부담 없고 불편하지 않은 ‘대중 가수’의 시작이다.

-수록곡-
1. Ring the alarm
2.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Rose Blossom) 
3. Crown jewel (Feat. Tachaya) 

4. You are my key(for m1-key)
5. Dream Trip
6.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Rose Blossom) (Inst.)
7. Athletic girl (2023 Re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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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한정인 ‘Spells'(2022)

평가: 3.5/5

공들인 성장, 반짝이는 서사
2011년 즈음 홍대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코스모스 슈퍼스타’로 활동하던 그가 본명인 ‘한정인’으로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냈다. 앞서 발매한 2개의 싱글 ‘Extra’, ‘슬픔의 맛’을 포함한 총 14개의 수록곡. 음반은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성을 대변하듯, 많은 곡 수와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로 용솟음친다. 한 곡, 한 곡, 탄생 내막을 묻게 하는 노랫말. 매끄럽게, 또 때론 예상 밖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곡 배치도 힘 있다. 한정인이 주도권을 쥐고 듣는 이의 호흡을 이끈다.

전자음을 중심으로 어둡고 맑은 신시사이저를 교차하며 선율을 뽑았다. 이는 전작 < Eternity Without Promise >(2019)와 비슷한 구성이나, 그는 신보에서 목소리를 보다 앞으로 끌어온다. 어둡고 몽롱한 꿈속 한 가운데를 헤엄치던 것 같던 과거의 보컬 사용에서 탈피, 선창하듯 제 색을 내는 목소리의 운용은 더 이상 음악 뒤에 숨지 않으려는 뮤지션의 의지로 읽힌다. 이 의지는 외로움, 두려움, 괴로움, 사랑 등의 감정을 적극 드러내는 노래 속에서도 천명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친구가 아닌’ ‘특별한 단 한 사람’이라 말하는 ‘Listen & repeat’.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삶을 고백하는 ‘Borderline’,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슬픔의 맛’을 노래하는 ‘슬픔의 맛’ 등 곡 안에서 한정인은 노래와 함께 실컷 나를 풀어낸다. 이 적극적인 고백의 기조가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타이틀 ‘Wallflower’에서 ‘Badluckballad’를 지나 ‘도시전설’로 이어지는 전반부.

레트로한 댄스팝 ‘Wallflower’는 중무장한 대중 선율로 듣는 이를 댄스 플로어 위로 데려간다. 땀 흘리며 흠뻑 뛴 후 음반의 정체가 이 흥겨움 속에 놓여 있는가 할 때, 무너져 내리는 어두움으로 가격하는 ‘Badluckballad’가 흐르고, 반전되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침한 어조의 ‘도시전설’이 재생된다. 종잡을 수 없는 항해가 쫀쫀하고 쫄깃해 음반 단위 청취의 즐거움을 높이 끌어 올린다.

‘인디 음악’으로 통용되는 오늘날 인디씬에 내 색으로 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살아가고 있다. 긴 시간 공들여 쓴 이 음반으로 한정인은 자신이 독보적으로 맑고 청아한 창법에 뒤통수를 때리는 멜로디로 삶의 양가감정을 노래하는 음악가임을 증명한다. 그 제목도 웅장한 ‘Badluckballad’에서 ‘불행한 미신’에 의해 ‘행운을 불러온다는 미신을 믿는 마음’을 잃게 된 그가 앨범명을 Spells 즉, ‘주문들’로 지은 이 간극을 깨달을 때까지 앨범을 두 손에 꽉 쥐어 보길 추천한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 수록곡 –
1. Extra (Feat. 이이언)
2. Listen and repeat
3. Wallflower
4. Badluckballad
5. 도시전설
6. 차라리
7. Festival
8. Borderline(Feat. 천미지)
9. The boy named luke and the girl named lily(Feat. 김사월)
10. One second time machine (Prod. Piano Shoegazer)
11. 나나의 졸업식
12. 슬픔의 맛(remastered)
13. 하지
14. 묵시록(Feat.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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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공공구(GongGongGoo009) ‘청담대교’ (2022)

평가: 2.5/5

올해 초 발매한 첫 EP < ㅠㅠ >는 공공구 개인 서사의 진정성을 뿜어냈다. “불안정한 내면의 스토리라인을 선명하게 그려 나간다”는 백종권 필자의 평처럼 음반은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안정적인 래핑, 설득력 있는 가사로 빼곡히 채웠다. 앨범에서 느껴지는 그만큼의 무게감과 그 너머로 전해지는 삶의 피로도는 작품을 문제작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탄탄했다.

EP가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꾹꾹 담아낸 삶을 노래했다면 싱글 ‘청담에서’는 스쳐 가는 순간을 담는다. 글감 역시 더 가벼워졌다. ‘너의 옥탑방에 옥상 달이 뜬 밤 / 차린건 없지만 축하해’라는 비교적 단조로운 가사가 반복되고 러닝타임도 3분이 채 안 된다. 일렉트릭 기타 선율 위로 퍼져나가는 노랫말이 일면 활기차기까지 하다. 가벼워진 발걸음. 마음에 담긴 것들을 음악으로 쉽게 풀어내는 공공구의 접근법이 이후 행보를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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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34 파제(Pa.je)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서른네 번째 주인공은 관성에 갇히지 않고 음악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뮤지션 파제(Pa.je)다.

뮤지션 파제(Pa.je)는 음악가가 어디를 향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묻게 한다. 차 막히는 주말 아침,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저녁에 있을 공연을 위해 거주지인 인천에서 서울로 막 도착했다고 했다. 카페를 운영하고,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열고, 무대에 서는 그는 바쁘지만 편안한 인상으로 질의에 답했다.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기타를 잡고(그의 기타 실력은 정말 엄청나다!)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는 그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물으니 “결국에는 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 중간 매개물”이란 답이 돌아왔다. 음악이 목표가 아닌 수단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서 그만큼 일상에 깊게 침투한 음악의 파워가 느껴지는 듯했다. 음악가는 어디를 향해 어떻게 움직이는가. 파제는 삶 속에서 음악과 함께, 음악을 곁에 두며, 담담하게 걸어 나간다.

2020년 연주곡으로 채워진 정규 음반 < Pa.je Archive >를 발매했고 8월 30일, 오랜만에 EP < 관성의 바깥 >을 발매했다.
작년에 음반을 하나 내긴 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홍대에서 긴 시간 같이 활동했던 뮤지션 ‘엉망’과 ‘포래스트’라는 팀명으로 < Piece Forest >를 냈다. 엉망이 노래를 부르고 내가 작곡, 편곡, 연주를 했다. 사실 < 관성의 바깥 > 녹음도 작년에 다 끝낸 상태였다. 2022년도에 다른 일이 무조건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에 앨범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던 와중 인천문화재단에 좋은 지원사업이 떴고 다행이 지원받게 되어 < 관성의 바깥 >을 발매하게 되었다.

< 관성의 바깥 >과 관련된 공연 혹은 활동 계획이 있다면?
11월 19일에 인천에 있는 카페 겸 문화공간 ‘인천여관X루비살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EP 중심의 공연은 아니고 그냥 파제라는 뮤지션이 해오던 지난 활동들의 연장선상으로 봐주면 좋겠다. < 관성의 바깥 >의 후속 공연은 아마 없지 않을까? 이번 음반은 연주자로서, 싱어송라이터로서 파제가 아니라, 마음 가볍게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든 곡들을 묶어 발매했다. 작곡부터 그렇게 진행했다 보니 발매 이후의 공연을 염두 하지 않았다. (웃음)

‘관성의 바깥’이라는 음반 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사람들이 인식하는 뮤지션 파제의 이미지가 있다. 기존 발매했던 ‘제주의 봄’과 같은 따스한 어쿠스틱 사운드의 음악이 있고, 버둥 혹은 다른 뮤지션들과 콜라보한 음반에서처럼 싱어송라이터, 포크 뮤지션으로서의 행보가 있다. 이것 말고 내가 가진 영역, 즉 우주가 상당히 큰데 그걸 보여주기가 사실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 관성의 바깥 >은 내가 관성처럼 해오던 음악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누가 들어도 파제의 노래임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앨범을 통해 관성의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이해가 쉬울까? 음반 커버를 보면 동그란 게 막 있는데 그게 나의 태양계다. 우리한테 관성은 태양계이지 않나. 애매한 위치에 모여있는 별들은 ‘관성의 바깥’을 표현한 거다. 태양계 밖에 있는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어, 디자인을 맡아 준 장희문과 상의 끝에 완성했다.

EP 수록곡 ‘사천진 걸음마’란 노래를 재밌게 들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올리기도 했던데.
친한 동생과 강릉에 놀러 갔었다. 동생이 혼자 컨셉을 잡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보고 인사를 하고, 또 걸어가며 장난을 치더라. 그때 문득 그냥 걸어가는 모습을 찍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계속 한 방향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영상을 찍었고, 집에 와서 영상을 붙여보니 그 반복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영상 클립을 먼저 따고 바로 이런 식의 곡을 만들겠다는 감이 왔다. 귀엽고 발랄하게 사운드를 뽑으려고 장난을 많이 친 노래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쭉 음악 활동을 한 건가?
군대 빼고는 늘 인천에서 살았다. 심지어 군대도 용산 쪽이어서 인천을 관통하는 1호선을 타고 다녔다. (웃음)

음악 활동을 하기에 공연장 등 인천의 인프라는 어떤가?
형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록, 메탈이 주였던 1990~2000년대 초에는 구월동 쪽에 연습실도 많고 서울에서 인천 쪽으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활동하는 시기도 다르다 보니 내게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다.

그 당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은 이제 클럽을 차리거나 본인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됐다. 그러다 보니 인천에 헤비니스 부류의 공연장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인천에 있는 어쿠스틱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주로 서울에 가서 활동하게 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좀 크다.

인천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또 그곳에서 공연도 열었던 걸로 안다.
동료 뮤지션 단편선, 전유동, 이권형과 함께 공연했었다. 외곽의 넓은 공간에서 음악 하며 놀면 재밌겠다는 이야기를 이전부터 나눴고,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이를 진행해보겠다는 결심을 한 뒤, 만날 때마다 조금씩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공고가 뜬 인천문화재단의 ‘시작공간일부’를 통해 청년 축제 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관객도 많이 오고, 우리 카페 고객도 꽤 많이 현장을 찾아 즐기고 갔다. 다만, 정기적으로 공연을 제안하시는 분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건 힘들다. 기획 음악 장비 및 인력 구축, 관객 홍보 등 고민할 지점이 많기에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무턱대고 진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천에서 참여한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하나를 꼽아준다면?
콜트콜텍 노동자 음악제. (이)권형이 나를 섭외해서 엉망과 인천의 다른 밴드들과 주안역 앞에서 버스킹을 했었다. 그곳이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긴 하지만 퇴근 시간대여서 아무도 우리 얘기를 안 들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멈췄다. 지나가던 학생들, 어른들까지 말이다.

요즘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해도 어떤 소리를, 메시지를 던졌을 때 시민들이 들어주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사람들이 진심을 들을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력이 있구나 하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관심을 주는 것을 보고 사실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세상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처음부터 ‘파제’란 활동명으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게 아니라고.
2010년도에 전역하고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들었다. 기존에 각자 속해있는 또 다른 밴드들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 맞추기가 어렵더라. 혼자라도 먼저 해야겠다 싶어 그룹을 나와 음악을 시작했다. 그때는 밴드 음악을 그냥 어쿠스틱 기타로 가져와서 하는 형태이다 보니 우울한 노래들이 많았다. 회색빛의, 회색 톤의 음악을 한다고 해서 ‘그레이톤’이라는 이름을 썼었다. 내 이미지랑 안 맞지 않나. (웃음) 2013년 후반부터 ‘파제’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파제의 음악에서 기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기타는 언제부터 익힌 것인지.
2006년 11월 수능 끝난 날에 형한테 처음 배웠다. (실력이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친 것인 줄 알았다고 하니) 얼마 안 됐다. (웃음) 형은 일찍부터 음악을 하려고 하던 사람인데, 나는 그냥 ‘기타 치면서 데미안 라이스 노래 부르고 싶다’ 정도였다. 군대 막바지에 조금씩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형을 통해 핑크 플로이드나 오아시스 등을 접하면서 영역을 넓히게 됐던 것 같다. 기타 솔로 같은 것도 따보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악기, 기타를 다루는 등 누구보다 음악 스펙트럼이 넓다.
한국에 플라멩코 단체가 있다. 내가 플라멩코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다 그 단체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스페인에 직접 가서 플라멩코를 배웠다. 그때 ‘파두’라는 포르투갈 장르를 알게 됐고, 터키에서는 ‘카눈’이란 악기를 배웠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에 조금 더 관심을 두게 됐다. 물론 나는 그 소리를 단순히 내 음악에 잘 녹여내고 싶다는 측면에 가까워 적절한 연주법만 익힌 정도다. 프로 연주자만큼의 실력은 절대 아니다. (웃음) 그래도 그런 식으로 하면서 음악에 대한 지평이 넓어지다 보니까 조금 더 수월하게 음악을 만들고 진심을 더 담을 수 있게 된 건 확실하다. 전에는 많은 게 막연했고 음악 카피도 잘 안되고 그랬다.

파제를 대표할 수 있는 음악 혹은 음반을 한 장 뽑아준다면?
무조건 연주 앨범인 정규 1집 < Pa.je Archive >. 그 음반에 오랜 기간 내가 해오던 음악 스타일이 잘 녹아 있다. 곡을 쓰던 때와 현재 시점에서의 생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과거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다. < Pa.je Archive >에는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과 마음이 온전히 들어있다. 존경도 애정도 때로는 아쉬움도 담기지 않았겠나. 그런 감정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솔직하게 음반에 담았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하다.
연주곡 중심의 음반을 한 2장 정도 발매하려고 생각 중이다. 실제로 곡을 꽤 만들긴 했는데 앨범을 내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사실 음반 계획은 한 번에 네다섯 개씩 한다. 예를 들어 < Pa.je Archive 2 >가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스타일의 연주곡 앨범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상황에 맞춰 조금 더 완성되고, 충분히 즐거운 앨범이 뽑힌다면 그때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지 않을까.

진행 : 박수진
정리 : 장준환, 박수진
사진 :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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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혁 ‘Error'(2022)

평가: 4/5

에러, 죽음, 대중성

악동뮤지션에서 ‘악뮤(AKMU)’로 8년여간 활동을 이어간 끝에 발매한 이찬혁의 첫 번째 솔로 작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꽃폈다. 그 관심은 음악이 아닌 ‘행동’에서 발아한다. 음반이 공개되기 전, 의외의 장소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목격되는가 하면 몇몇 음악 방송에서 보여준 예측 불가의 퍼포먼스는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보고, 읽게만 했다. 노래와 음반이 화제가 되지 않았고, 이찬혁의 행동이 연일 텍스트화 되어 온라인을 떠돌았다.

‘다리꼬지마’, ‘라면인건가’ 등 일상적인 소재로 노래를 만들던 그가 사랑(‘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자유(‘Bench’), 그리고 신보와 같이 죽음을 노래하기 시작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 변화를 따라올 만큼 민첩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찬혁에게선 과거가 보이지 않았다. 대중은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땀난 손을 연신 닦으며 통기타를 쥐던 ‘찬혁이’를 기억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때 그 시절의 찬혁이는 이 자리에 없다.

이를 바로 보지 못할 때 대중과 이찬혁 사이의 에러(Error)가 극심해진다. 음반의 내러티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번뜩이는 퍼포먼스가 ‘기행’, ‘예술병’ 등의 단어로 격하되는 것이다. 유독 이찬혁의 일거수일투족이 밈(meme)으로 소비되는 현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매끈한 선율, 유기적인 수록곡, 담백한 무게감으로 죽음을 회고하게 하는 압축적 서사까지, 작품마다 완숙한 성장을 보였지만 상찬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신보는 지난했던 과거와의 완벽한 이별이자 이찬혁 성상 서사의 확실한 변곡점이다. 파워풀한 일렉트릭 기타로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을 다룬 ‘목격담’, 완연한 EDM으로 사고 현장을 묘사하는 ‘Siren’, 생의 마지막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복고풍의 신시사이저 선율 위에 녹여낸 ‘파노라마’. 앨범을 수놓은 11개의 수록곡은 사고, 죽음의 문턱, 이별, 죽음, 장례의 과정을 착실히 좇아가며 이야기를 쓴다.

하나의 콘셉트 음반으로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를 쓰지만 대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이찬혁은 늘 대중적이며 친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작곡 능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귀에 감기지 않는 멜로디가 하나도 없다. 앨범의 중간 위치에서 삶의 후회를 논하는 ‘뭐가’는 발라드로 마음을 울리고 착하고 따뜻한 후크송 ‘내 꿈의 성’은 아기자기한 초창기 악뮤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또, 웅장한 가스펠로 작품의 문을 닫는 ‘장례희망’은 짜릿하다. 예상치 못한 가스펠이 터져 나올 때 저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터트릴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마음을 졸이던 어린 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를 인정하고 이제 이찬혁을 다시 읽어야 한다. 죽음을 사유하는 철학적 접근에선 신해철이 엿보이고, 다양한 장르를 매끈하게 저울질하는 모습에선 윤상이 떠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글감으로, 이토록 근사한 음반을, 주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음악가라니. “찬혁이 바라보는 모든 것은 음악이 된다”. 탈피, 환골, 변태. 에러 없는 성장이 가속도를 탔다.

– 수록곡 –
1. 목격담
2. Siren
3. 파노라마
4. Time! Stop!
5.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6. 마지막 인사(Feat. 청하)
7. 뭐가
8. 부재중 전화
9. 내 꿈의 성
10. A day
11. 장례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