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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스래시 메탈 명곡 13선(2)

테스타먼트 – First strike is deadly / The Legacy(1987)
1983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조직된 테스타먼트는 40년간 메탈월드를 종횡무진 누빈 메탈계 큰형님이다. 괴물 보컬 척 빌리(Chuck Billy)와 전 드림 시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와 함께 메탈 공동체 메탈 얼라이언스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 등 실력파로 구성된 테스타먼트는 ‘성서’란 그룹명만큼 진중하고 깊은 음악성을 펼쳐냈다.

데뷔 앨범 < The Legacy >(1987)는 이듬해 나온 2집 < The New Order >와 함께 테스타먼트의 가장 우수한 음반으로 꼽힌다. 원래 밴드명도 더 레거시였으나 앨범 녹음 전 테스타먼트로 바뀌었고 보컬 스티브 소우자가 엑소더스로 떠났다. ‘The haunting’과 ‘Burnt offerings’같은 대표곡이 수록된 < The Legacy >는 소우자 특유의 강렬하고 무거운 가사가 돋보이니 떠나기 전 큰 선물을 남긴 셈이다. 균형감 있는 수록곡 사이에서 국내 팬들에겐 ‘First strike is deadly’가 선명할 수밖에 없다. 기타리스트 이태섭이 서태지 ‘하여가’에서 ‘First strike is deadly’의 기타 간주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애니힐레이터 – Alison hell / Alice In Hell(1989)
‘소멸자’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애니힐레이터는 보이보이드, 레이저, 새크리파이스와 더불어 캐나다 스래시 메탈의 사천왕으로 군림했다. 1984년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결성된 이래 40년 가까이 활동 중인 애니힐레이터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를 방불케하는 이합집산에도 리드 기타리스트 제프 워터스(Jeff Waters)가 굳건히 중심을 지켰다.

메탈 명가 로드러너에서 발매된 < Alice In Hell >(1989)는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다. 워해머로 퉁퉁 내리치는 듯한 기타 리프의 ‘W.t.y.d’와 꿈틀거리는 리듬의 ‘Schizo’ 등 다채로운 곡들엔 워터스와 밴드의 또 다른 창립자 빅 존 베이츠(Big John Bates)의 역량이 빛을 발했다. 워터스는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를 역임하기도 했다. 짧은 인스트루멘탈 ‘Crystal Ann’에서 ‘Alison hell’로 이어지는 구성은 초반부터 밀어붙이겠다는 공포문과도 같아 아찔하다. 부기맨에 대한 소녀 앨리스의 공포감을 담은 ‘Alison hell’은 잔혹동화스런 분위기와 물 흐르는 듯한 구성을 지닌 애니힐레이터의 역작이다.

세풀투라 – Arise / Arise(1991)
브라질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 벨루오리존치에서 결성된 세풀투라는 브라질 헤비메탈의 뿌리 격인 밴드 스트레스와 파워 메탈의 최강자 앙그라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브라질 메탈 밴드로 인정받는다. 메탈 팬들에게 그루브 메탈의 명작 < Roots >(1996)과 빌보드 200 32위까지 오른 < Chaos A.D. >(1993)가 익숙하나 1984년부터 오랜 공력을 쌓아온 팀이다. 1986년 블랙 메탈과 데스 메탈을 섞은 듯한 데뷔작 < Morvid Visions >로 출사표를 끊은 세풀투라는 로드러너에서 발매한 1991년 작 < Arise >로 남미 스래시 메탈의 최고봉에 올랐다.

라틴 리듬에 거친 펑크적 특성을 부여한 < Arise >는 3분대의 짧은 곡들과 리드 기타리스트 안드레아스 키써(Andreas Kisser)가 쓴 ‘Desperate cry’와 ‘Altered state’ 같은 6분대 대곡들이 균형을 맞췄다. 황야에서의 합주를 담은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인 ‘Dead embryonic cells’과 더불어 싱글로 발매된 ‘Arise’는 시종일관 내달리는 브라질 종마 같은 에너자이저다. ‘Territory’, ‘Roots bloody roots’과 더불어 세풀투라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크리에이터 – Extreme Aggresion / Extreme Aggresion (1989)
독일은 록 음악 강국이다. 크라프트베르크와 캔을 위시한 크라우트 록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스콜피온스, 멜로딕 스피드 메틀의 대표주자 헬로윈과 ‘Du hast’의 람슈타인 모두 독일 출신이다. 스래시 메탈 방면에서도 ‘저먼 스래시 메탈’의 분파가 생길 정도로 입지가 확고하다. 소돔과 탱커드, 디스트럭션과 함께 저먼 스래시 메탈의 판타스틱 포를 구축한 크리에이터는 1982년 결성된 이후 40년 현역을 이어가고 있다.

스피드 메탈과 인더스트리얼 등 시대에 조응하는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역시 스래시 메탈에 중심을 두었다. 스래시 메탈 클래식 < Pleasure To Kill >(1986)로 일찌감치 입지를 확고히 한 이들은 < Terrible Certainty >(1988)와 < Extreme Aggresion >(1989)로 기세를 이어간다. 기타리스트 요르그 트리에비아토프스키(Jörg Trzebiatowski)와 드러머 벤토(Ventor)의 기량을 고스란히 반영한 < Extreme Aggresion >은 명료한 편곡과 연주로 성숙기를 나타냈다. 미국에서 사랑받았던 ‘Betrayer’와 더불어 타이틀 곡 ‘Extreme aggression’은 기승전결이 또렷한 곡 전개와 밀레 페트로자(Mille Petrozza )의 고음 보컬로 크리에이터의 전성기를 압축했다.

디스트럭션 – Curse the gods / Eternal Devastation (1986)
독일 소도시 바일 암 라인에서 1982년 결성된 디스트럭션은 2022년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 Diabolical >을 발표할 만큼 정력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초기엔 기타 트레몰로 피킹과 스크리밍, 조악한 음질 등을 특질로 하는 메탈의 하위 장르 블랙 메탈의 성향도 드러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내놓은 일련의 음반들로 독일 스래시 메탈의 선봉에 섰다. 멤버 교체가 잦았으나 밴드의 중심축은 베이시스트 겸 보컬리스트 마르셀 시머(Marcel Schimer)와 기타리스트 마이크 시프링거(Mike Sifringer)였다.

비교적 낮은 완성도의 데뷔작 < Infernal Overkill >(1985)을 무색하게 할 만큼 2집 < Eternal Devastation >과 3집 < Release From Agony >의 위용은 대단하다. ‘Confound games’와 ‘Life without sense’등 대표곡이 몰려 있는 < Eternal Devastation >은 드러머 토마스 샌드만(Thomas Sandmann)의 마지막 참여작으로 원년 멤버 간의 화양연화를 남겼다. “신을 저주한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Curse the gods’는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개가 일품이며 결코 화려한 연주라고 할 순 없지만 시머의 고음 보컬과 중독적인 기타 리프가 곡의 레벨을 한 층 끌어올렸다.

소돔 – Agent orange / Agent Orange (1989)
독일 제조업 중심지 겔젠키르헨에서 결성된 소돔은 기독교 역사에 근거한 죄악의 도시라는 팀명처럼 강렬한 음악을 뿜었다. 원년 멤버로 끝까지 밴드를 지키고 있는 보컬 겸 베이시스트 탐 엔젤리퍼(Tom Angelripper)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한 소돔은 특유의 음산하고 악마적인 기운으로 독일 블랙 메탈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2020년 열일곱번째 정규 음반 < Genesis XIX >로 스태미나를 과시한 소돔은 자국 후배들에 존경을 사는 독일 메탈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1989년 작 < Agent Orange >는 1987년 발매한 < Persecution Mania >와 함께 소돔의 양대 명작으로 통한다. 후자가 블랙메탈에서 스래시로 이동하는 과도기였다면 전자는 스래시 메탈을 파고들었다. 개틀링 건이 그려진 앨범 재킷은 전쟁 사상자의 추모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고 소돔은 어느 때보다 광포한 연주로 주제의식을 부각했다. 베트남전에 사용된 주홍색 고엽제에서 착상한 타이틀 곡 ‘Agent orange’는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와 변화무쌍 전개로 곡의 서사를 구축했다. 크리스 위치헌터(Chris Witchhunter)의 드럼 속주와 안젤리퍼의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보컬이 극적 효과를 연출했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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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스래시 메탈 명곡 13선(1)

메탈리카 – Master of puppets / Master Of Puppets(1986)
9회의 그래미 수상과 약 1억 2천 5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수확한 메탈리카는 어느 스래시 메탈 밴드도 범접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스래시 인장을 땐 록으로 범위를 넓혀도 대중음악 역사상 위대한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이들은 2023년 현재에도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 Kill Em All > 속 잠재력은 ‘For whom the bell tolls’와 ‘Creeping death’가 수록된 소포모어 작 < Ride The Lightning >의 소구력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 음반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복잡한 구성으로 더욱 깊은 음악성을 표현한 4집 < And Justice For All….>(1987)은 때에 따라 최고작으로 꼽히기도 하나 상징성의 측면에서 3집 < Master Of Puppets >를 따라가기 힘들다. 스래시 메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음반으로 메탈리카는 메탈 최강자가 되었다.

거칠게 내달리는 오프너 ‘Battery’와 비장한 ‘Welcome home (sanitarium)’, 짜임새 있는 연주곡 ‘Orion’까지 완벽한 구성을 자랑한다. 앨범의 타이틀 곡 ‘Master of puppets’는 오랜 기간 공연 셋리스트의 피날레를 장식할 만큼 메탈리카를 상징하는 곡. 전율의 도입부터 으스스한 웃음소리의 결말에 이르는 8분 35초에 이르는 대곡 지향적 구성은 드림 시어터와 핀란드 심포닉 메탈 밴드 아포칼립티카 등 다양한 밴드들이 리메이크했다.

메가데스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 Rust In Peace(1991)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은 절치부심 이를 갈았다.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엘렙슨(David Ellefson)과 결성한 메가데스의 1집 <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1985) 엔 메탈리카 ‘Four horseman’의 원곡 ‘Mechanix’를 수록하며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 냉소와 자조 등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한 1986년 작 < Peace Sells… But Who’s Buying? > ‘Peace sells’와 ‘Wake up dead’, ‘The conjuring’으로 메탈리카와는 완연히 다른 음악색을 선보이며 진정한 리벤지에 성공했다. 쌍뱀처럼 절묘하게 엮어들어가는 머스테인과 크리스 폴란드(Chris Poland)의 기타 연주는 치밀한 악곡에 날개를 달았고 원년 멤버 엘렙슨은 저 유명한 ‘Peace sells’의 베이스 인트로와 리듬 섹션을 책임졌다.

2집으로 더 올라갈 고지가 안 보이는 듯했지만, 인스트루멘탈 록 밴드 캐코포니 출신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의 영입은 메가데스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안내했다. 1980년대 말 메탈 뮤직의 마지막 불꽃과 너바나의 < Nevermind >(1991)가 위시한 그런지 사이에 있는 1990년, < Peace Sells >와 더불어 밴드의 양대 명반으로 회자되는 걸작 < Rust In Peace >가 발매된다.

절정에 달한 머스테인의 곡 구성 능력에 마티 프리드먼의 동양적 선율을 얹은 음반은 인트로 곡 ‘Hangar 18’부터 숨 막힐 정도로 밀어붙인다. 기타리스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속주곡 ‘Tornado of souls’와 재즈 퓨전 향취가 묻어나는 ‘Five magics’ 등 개성적인 곡들로 가득하지만 3부로 구성된 ‘Holy wars… The Punishment Due’는 메가데스 음악성 정점이다.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곡 전개와 이스라엘과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랫말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사운드가 어우러진 이 곡은 202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100곡’ 중 28위에 선정되었다.

슬레이어 – Raining blood / Reign in blood (1986)
DC코믹스 < 왓치맨 > 로어셰크의 음산함 풍기는 밴드 슬레이어는 확고한 콘셉트로 팬베이스를 다졌다. 사타니즘과 테러리즘의 주제의식에 맞물리는 미국 화가 래리 캐롤의 앨범 재킷은 어둡고 불길한 슬레이어만의 색채를 확립했다. 메탈계 최고의 드러머로 언급되는 데이브 롬바르도(Dave Lombardo)와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 케리 킹(Kerry King)의 기타 듀오는 콘셉트를 받칠 굳건한 대들보였다.

2017년 롤링스톤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메탈 앨범’ 6위로 선정된 1986년 작 < Reign In Blood >는 1990년 작 < Seasons In The Abyss >와 더불어 이들의 명반으로 공인받는다. 롬바르도표 스피드 드러밍이 구현한 펑크 질감과 데스메탈의 광포(狂暴)를 접붙인 사운드는 탄탄한 송라이팅과 만나 스래시 메탈 마스터피스를 제창했다. 피비린내를 흩뿌리듯 사악한 기운의 ‘Raining blood’는 육중한 기타 리프와 톰 아라야(Tom Araya)의 보컬 퍼포먼스로 ‘Angel of death’와 더불어 앨범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앤스렉스 – Caught in a mosh / Among The Living(1987)
슬레이어를 듣다가 앤스렉스를 접하면 ”이게 스래시 메탈이야?’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상기한 밴드들이 헤비급이라면 앤스렉스는 크루저급 혹은 라이트헤비급이랄까? 역설적으로 이 경량화가 차별점이 되었다. 스래시 메탈의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능글맞고 유쾌한 사운드를 확립한 앤스렉스는 메탈이 ‘창궐’하던 1980년대의 몇 안 되는 메이저 밴드로 기록되었다.

실패한 1집 < Fistful Of Metal >(1984)를 끝으로 떠난 보컬리스트 닐 터빈(Neil Turbin)의 공석을 넓은 음역의 파워 보컬 조이 벨라도나(Joey Belladonna)가 채운 건 신의 한 수였다. 빌보드 200 113위에 오른 2집 < Spreading The Disease >(1985)로 전기를 마련한 앤스렉스는 2년 후 그들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 Among The Living >을 발매한다.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의 존경을 는 실력파 드러머 찰리 베난테(Charlie Benante)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음반은 ‘I am the law’와 ‘Indians’ 등 또렷한 멜로디와 대중성도 챙겼다. 박자 변화로 다이내믹스를 강조한 ‘Caught in a mosh’는 리듬과 선율을 동시 포획한 메탈 명곡이다.

판테라 – Cowboys from hell / Cowboys From Hell(1990)
판테라는 드림 시어터, 메탈리카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1990년대 메탈 집단이다. 기타리스트 다임백 데럴(Dimebag Darrell)과 프론트퍼슨 필립 안젤모(Phillip Anselmo)의 원투펀치에 비니 폴(Vinnie Paul), 렉스 브라운(Rex Brown)의 리듬 섹션을 결합한 당시 판테라는 천하무적의 위용이었다. 스래시 메탈로부터 헤비메탈의 원초적 파워에 넘실대는 리듬을 더해 그루브 메탈을 모색한 이들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연주력으로 메탈헤드를 규합했다.

멤버들이 흑역사로 여기는 1~4집을 지나 실질적 정규 데뷔 음반에 해당하는 1990년 작 < Cowboys From Hell >은 그루브와 스래시 메탈 양 진영에서 명반 대접을 받는다. 다임백의 면도날 기타와 리듬섹션의 유연성까지 확보했고 중간중간 뿌려주는 안셀모의 그로울링은 판테라의 상징이 되었다. 이 곡과 더불어 ‘Domination’, ‘Cemetery gates’ 등 수작을 포함한 < Cowboys From Hell >은 미국에서만 13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 Vulgar Display Of Power >(1992)와 < Far Beyond Driven >(1994)으로 이어지는 전성기의 시발점을 끊었다. 현재 판테라는 필립 안셀모와 렉스 브라운의 원년 멤버에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였던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Zakk Wylde)와 앤스렉스의 드러머 찰리 베난테와 함께 북미 투어를 진행중이다.

엑소더스 – Bonded by blood(1985)
1979년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에서 결성된 엑소더스는 미국 스래시 메탈 계의 상위 4개 팀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엑소더스까지 껴서 빅5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앤스렉스 대신 엑소더스가 들어가야 한다” 등의 논쟁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메탈리카의 기타 플레이어 커크 해밋(Kirk Hammett)이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엑소더스는 테스타먼트에 재적했던 스티브 소우자(Steve Souza)와 원년 멤버인 드러머 톰 헌팅(Tom Hunting) 기타리스트 게리 홀트(Gary Holt)의 라인업으로 2021년 < Persona Non Grata >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다.

스티브 소우자와 드러머 겸 리드 보컬 톰 헌팅, 현재 제너레이션 킬에서 활약 중인 롭 듀크스(Rob Dukes) 등 많은 보컬이 거쳐 갔지만, 최고작의 영광은 데뷔작 < Bonded By Blood >(1985) 이후 곧바로 해고된 폴 발로프(Paul Baloff)에게 돌아간다. 수록곡 대부분의 작사를 하기도 한 발로프의 정제되지 않은 가창은 열악한 레코딩과 맞물려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이 확연하다. 혈맹을 의미하는 타이틀 곡 ‘Bonded by blood’는 가창보다 연기에 가까운 발로프의 보컬 퍼포먼스에 둔기를 연상하게 하는 블랙 사바스 풍 사운드를 장착했다.

오버킬 – Elimination / The Years Of Decay(1989)
1980년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결성된 오버킬은 보컬 바비 엘스워스(Bobby Ellsworth)와 베이시스트와 배킹 보컬을 겸하는 카를로 디디 베르니(Carlo “D.D.” Verni )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활동 중인 장수 밴드다. 상업적 성과는 미약했지만 스래시 빅4와 더불어 장르의 기틀을 닦았다. 엘스워스의 폭넓은 보컬 레인지와 바비 구스타프손(Bobby Gustafson)의 빽빽한 기타 연주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1988년 작 < The Years Of Decay >는 전작들보다 한층 더 진화한 음악성으로 3년 후 발매한 < Horrorscope >와 더불어 밴드의 고점을 경신했다. 육중한 기타 톤에서 블랙 사바스의 영향이 감지되는 10분짜리 대곡 ‘Playing with spiders/skullkrusher’와 장엄한 분위기의 ‘Who tends the fire’ 등 대곡 지향적인 곡이 수록된 야심작이다. < The Years Of Decay >의 두 번째 트랙 ‘Elimination’은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주요 리프와 닮았다는 결함에도 브레이크 장치 없이 몰아붙이는 직선 에너지가 강력하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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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애쉬 아일랜드(ASH ISLAND) ‘Rose'(2023)

평가: 2.5/5

처절한 고독을 울부짖었던 ‘Paranoid’부터 잔망스러운 리듬으로 풋풋한 청춘을 그려낸 ‘멜로디’까지, 한 꺼풀씩 어린 시절의 아픔과 고독의 그림자를 벗겨온 애쉬 아일랜드는 순차적인 자기 치유를 이뤄냈다. 이에 발맞추어 편집증이나 악몽을 외치던 음울한 힙합은 옅은 무채색의 틀만 남겼고, 사랑과 이별을 읊는 팝으로 영역을 넓혔다. 힘이 강한 멜로디와 일반적인 주제로 꾸며진 < Rose > 역시 이러한 접근성을 더 높여 다가간다.

단짝 프로듀서 토일 대신 지휘봉을 잡은 보이 콜드는 특유의 친화력과 수용성으로 아티스트의 확장을 꾀한다. 팝과 힙합을 넘나드는 중심부는 일견 비슷해 보여도, 선이 굵은 기타 스트로크나 짙은 서정성의 난립은 분명 낯설다. 애쉬 아일랜드는 거친 야성은 감추고 목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며 이에 대응했다. 밴드 사운드를 비롯해 기존 기조는 유지하되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 우회로, 여리여리한 목소리를 강조한 ‘Rose in the heart’와 ‘시간은 왜 앞으로만 가’가 신보의 이러한 변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그리하여 그가 도달한 이상향은 팝도, 록도, 힙합도 아니다. 물론 장기인 캐치한 후렴구를 삽입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으로, 감성적인 선율과 쉬운 글감으로 귀결된 이 종착지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작별인사’와 ‘Wonder’에서 그는 록 밴드의 프론트 맨으로 귀에 쉬이 남을 만한 멜로디를 쏟아내고, ‘Drop top’과 ‘Trapped’에서는 표류하는 이모(Emo)와 트랩의 흔적을 찾으며 충실히 노래한다. 과감한 결단이었다. 래퍼로 업을 시작한 그가 랩은 최대한 요약한 채 보컬만으로 승부를 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단순히 정체성의 문제만이 아닌 근본적인 논점이 발화한다. 본질은 곡 하나하나가 단일로는 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꿰어진 상태로는 소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U know it’ 등 몇몇 수록곡에서는 촘촘한 음계가 눈에 띄나 벌스로 갈수록 그 힘은 떨어지고, 청취 시간을 흥미롭게 채워 넣기에는 대부분의 트랙 분위기가 비슷하다. 칠린 호미의 타이트한 랩이나 루이의 공격적인 피쳐링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사실은 앨범의 단조로운 흐름을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작별인사’의 기세는 오래도록 뜨거울 테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너른 장르 수용에 기반한 일반화는 그가 지닌 차별점을 뭉툭하게 다듬었고, 동시에 범용성까지 넓혀 왔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일찍이 팝 지향성을 선포했던 < Island >부터 예견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일관된 방향과는 별개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 Rose >라는 낭만적인 도전장을 팝에 전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애쉬 아일랜드 장르 자체의 정당성에는 의문을 남겼다.

– 수록곡 –

  1. 작별인사
  2. Wonder
  3. Rose in the heart
  4. Trapped (Feat. 칠린 호미)
  5. U know it (Feat. 루이)
  6. Drop top (Feat. 더 콰이엇)
  7. 거짓말이라도
  8. Bad words (Feat. 비오)
  9. 시간은 왜 앞으로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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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열정의 청춘 로커, 팬들의 마음에 도킹하다!

음악 예능 < 싱 어게인 – 무명가수전 >의 우승으로 무명 세월을 극복한 이승윤은 도리어 곡 작업에 매진했다. 2021년에 나온 실질적 데뷔 앨범 < 폐허가 된다 해도 >와 2022년 3월 첫 단독콘서트 < DOCKING >의 열띤 행보는 2023년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발견상’으로 귀결했다. 올해 1월 정규 2집 < 꿈의 거처 >를 발매한 그는 지난 2월 18일과 19일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 DOCKING > 전국투어의 대장정을 알렸다.

2시간 50분과 27곡. 단독 콘서트로서도 흔치 않은 숫자다. 쪼그려뛰기의 열정적 무대 매너는 후반부의 경기장 질주로 치달았다. 공연 후 마주친 그는 지침과 동시에 행복해 보였다. 공연 중 재차 공식 팬덤 ‘삐뚜루’를 언급했고 ‘달이 참 예쁘다고’의 환호와 합창에 감격했다. 팬과의 소통을 강조한 콘서트였다.

스케일이 큰 편곡 지향점은 여러 대의 악기와 사운드 이펙트를 동원했다. 핸드볼 경기장의 고질적 음향 문제에도 인디 록 밴드 바닐레어 소속 지용희의 파워 드러밍과 싱어송라이터 복다진의 건반 연주가 돋보였다. 이승윤도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사용하며 기타 로커의 이미지를 굳혔다.

정규 앨범 두 장과 더불어 2019년 EP < 새벽이 빌려 준 마음 >과 음악 집단 알라리깡숑 시절의 곡을 총집합했다. < 싱 어게인 > 전후로 축적한 경험치는 노련한 퍼포먼스로 이어졌고, ‘교재를 펼쳐봐’ 와 ‘꿈의 거처’, ‘영웅 수집가’의 강력한 소리망 사이로 문학적이고 섬세한 노랫말이 피어났다.

록의 시대가 지났기에 이승윤의 존재는 더욱 반갑다. 기타 기반의 사운드스케이프에 열광하는 남녀노소를 보며 록의 대중성을 재확인했다. 1990년대 브릿팝을 흡수한 청년 로커는 2020년대 한국 팝 록의 중심에 섰다. ‘야생마’처럼 사상과 자의식을 풀어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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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한요한 ‘Time Machine’ (2022)

평가: 3/5

스윙스와 버벌진트가 속해 있던 힙합 크루 오버클래스의 기타 세션맨으로 출발한 한요한은 힙합 신과 연을 철저히 다졌다. 래퍼 릴보이와 루이가 결성한 긱스의 ‘Wash away’를 작곡해 음원차트를 휩쓸었고 2015년에는 솔로앨범 < Selfmade >를 발매하며 직접 마이크를 쥐기 시작했다. 스윙스의 힙합 레이블 저스트뮤직과의 계약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솔로가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기타리스트로서 음악계에 발을 들인만큼 정규 4집 < Time Machine > 역시 ‘월화수목금토일’, ‘지킬게’ 등에서 전기 기타와 특유의 시원한 발성으로 록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꾸준히 반복해온 작법이지만 시간이라는 주제 위에 자전적 이야기를 전개하며 지난 디스코그래피와 차별점을 만든다.

직접 앨범 소개 글에 밝힌 바처럼 3집 < 초희귀종 > 발매 이후 찾아왔던 슬럼프를 회고한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인간적 어려움을 드러내고 성공 이후 찾아온 번아웃을 호소하며 음악 내외로 밝은 모습을 보여줬던 한요한의 그늘진 뒷면을 비춘다. 음반의 서사를 집약하는 ‘버킷리스트’와 알앤비 가수 따마가 참여한 ‘Ring ring ring’은 강렬한 사운드로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데에 전념했던 지난 음악들에 비해 진지한 모습이다.

포스트 말론, 머신건 켈리의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도 록과 힙합의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한요한만의 개성은 옅어졌다. 한정된 장르로 인해 자기복제에 대한 비판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만듦새지만 프로듀서로서 두각을 나타낸 전적이 있는 만큼 다른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빌려 매너리즘을 극복하려는 전략이 높은 타율을 기록한다.

약 5년에 걸쳐 발매한 4장의 정규음반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산물이다. 덕분에 한요한은 한국에서 랩과 록을 결합한 얼터너티브 힙합 아티스트 명단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고착화된 음악 스타일을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뚝심을 견지하며 만들어낸 그의 < Time Machine >은 제대로 작동한다.

-수록곡-

  1. I don’t know (Feat. Don Malik)
  2. 버킷리스트 (Feat. Skinny Brown)
  3. 월화수목금토일 (Feat. 김승민)
  4. Ring ring ring (Feat. Thama)
  5. 멀어지는 너
  6. 너의 곁에 숨을 쉬고 있었어 (Feat. Jayci yucca & Skinny Brown)
  7. 지킬게 (Feat. JAEHA)
  8. 거슬려 (Feat. Ron)
  9. 컸어 (Feat. WYBH)
  10. (Bonus Track) Righ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