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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엠(RM) ‘Indigo'(2022)

평가: 3.5/5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가득하다. 2022년 방탄소년단의 단체 활동 중단 선언 이후 내놓은 리더 RM의 정규 음반 < Indigo >에는 인간 김남준의 생각과 사고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팝스타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 혹은 평온한 일상의 필요성과 타인에게 전하는 위로가 동시에 교차하는 식이다. 지난 솔로작 < Mono. > 역시 직접 가사를 쓰며 ‘나’를 적극 드러냈지만 이번 음반만큼의 ‘듣는 맛’은 부족했다. 전작이 모노톤의 단조로운 사운드를 바탕으로 감정을 토해냈다면 신보는 적소에 록, 일렉트로닉, 포크 등을 배치해 듣는 즐거움을 높였다.

이 같은 장르의 다양성은 ‘Still life’, ‘건망증’, ‘들꽃놀이’와 같은 트랙에서 빛을 발한다. 펑키한 힙합곡 ‘Still life’는 클랩 사운드, 관악기 등을 밀도 있게 배합해 ’94 livin’ in 한남대로 91 look at my 탄탄대로 / 갈 일이 없어 이젠 강남대로 월세 밀린 넌 빨리 당장 방 빼고’ 노래하며 스웨그 넘치는 삶을 그린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 포근한 멜로디를 얹은 ‘건망증’은 자칫 건조할 수 있는 노래에 맑고 청아한 뮤지션 김사월의 보컬과 따뜻한 가사를 엮어 매력을 높이고, 빌보드 싱글 차트 83위까지 오른 록 트랙 ‘들꽃놀이’는 힘 있는 곡 전개로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묶어낸다.

여러 장르를 끌어왔지만 핵심은 치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언급한 < Mono. >를 비롯한 RM의 이전 작품과 슈가(Agust D), 제이홉이 발표한 솔로 음반 등이 강렬한 음악적 이미지 제공에 일차적 목표를 뒀다면 신보는 음악 청취의 난이도를 낮추고 ‘이지 리스닝’을 대표 키워드로 내세운다. 그 결과 현재의 상념을 표현한 작품의 메시지가 생생히 귀에 걸린다. 해외 팬들을 고려한 듯 영어 가사로 전반을 채색한 ‘Closer’가 전형적인 팝송의 부드러움을 따라가고, 날카로운 전자음이 부서지는 ‘Change pt.2’가 다소 이질적 인상을 전하기는 하나 이를 상쇄할 대중성이 이 음반엔 있다.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한 이후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행보는 ‘대중 지향적’이었다.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 ‘Yet to come’ 등 근래 그들의 히트곡은 분명 쉬웠고, 편했으나 음악적으로 평이했다. RM의 이번 음반은 쉽고, 편함 사이 적절한 음악성까지 겸비한다. 정신없이 바쁜(‘Hectic’) 삶 속에서 호텔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외로움(‘Lonely’)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 시대 대표 팝스타가 전하는 이야기가 좋은 음악 위 쉬운 선율을 타고 전해진다.

“No lookin’ back, no / 이젠 니가 널 지켜줄 거야”

끝 곡 ‘No.2’의 뒤돌아보지 말고 뮤지션인 ‘내’가 아닌 ‘너’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외침까지 작품엔 선명한 위로가 스친다. 조타를 쥐고 움직일 줄 아는 뮤지션 RM의 현재를 매끄럽게 녹이며 그가 지닌 음악성, 대중 감각을 증명했다.

– 수록곡 –
1. Yun(with Erykah Badu)
2. Still Life (with Anderson .Paak)
3. All Day (with Tablo)
4. 건망증 (with 김사월)
5. Closer (with Paul Blanco, Mahalia)
6. Change pt.2
7. Lonely
8. Hectic (with Colde)
9. 들꽃놀이 (with 조유진)
10. No.2 (with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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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혁 ‘Error'(2022)

평가: 4/5

에러, 죽음, 대중성

악동뮤지션에서 ‘악뮤(AKMU)’로 8년여간 활동을 이어간 끝에 발매한 이찬혁의 첫 번째 솔로 작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꽃폈다. 그 관심은 음악이 아닌 ‘행동’에서 발아한다. 음반이 공개되기 전, 의외의 장소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목격되는가 하면 몇몇 음악 방송에서 보여준 예측 불가의 퍼포먼스는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보고, 읽게만 했다. 노래와 음반이 화제가 되지 않았고, 이찬혁의 행동이 연일 텍스트화 되어 온라인을 떠돌았다.

‘다리꼬지마’, ‘라면인건가’ 등 일상적인 소재로 노래를 만들던 그가 사랑(‘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자유(‘Bench’), 그리고 신보와 같이 죽음을 노래하기 시작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 변화를 따라올 만큼 민첩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찬혁에게선 과거가 보이지 않았다. 대중은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땀난 손을 연신 닦으며 통기타를 쥐던 ‘찬혁이’를 기억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때 그 시절의 찬혁이는 이 자리에 없다.

이를 바로 보지 못할 때 대중과 이찬혁 사이의 에러(Error)가 극심해진다. 음반의 내러티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번뜩이는 퍼포먼스가 ‘기행’, ‘예술병’ 등의 단어로 격하되는 것이다. 유독 이찬혁의 일거수일투족이 밈(meme)으로 소비되는 현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매끈한 선율, 유기적인 수록곡, 담백한 무게감으로 죽음을 회고하게 하는 압축적 서사까지, 작품마다 완숙한 성장을 보였지만 상찬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신보는 지난했던 과거와의 완벽한 이별이자 이찬혁 성상 서사의 확실한 변곡점이다. 파워풀한 일렉트릭 기타로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을 다룬 ‘목격담’, 완연한 EDM으로 사고 현장을 묘사하는 ‘Siren’, 생의 마지막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복고풍의 신시사이저 선율 위에 녹여낸 ‘파노라마’. 앨범을 수놓은 11개의 수록곡은 사고, 죽음의 문턱, 이별, 죽음, 장례의 과정을 착실히 좇아가며 이야기를 쓴다.

하나의 콘셉트 음반으로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를 쓰지만 대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이찬혁은 늘 대중적이며 친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작곡 능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귀에 감기지 않는 멜로디가 하나도 없다. 앨범의 중간 위치에서 삶의 후회를 논하는 ‘뭐가’는 발라드로 마음을 울리고 착하고 따뜻한 후크송 ‘내 꿈의 성’은 아기자기한 초창기 악뮤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또, 웅장한 가스펠로 작품의 문을 닫는 ‘장례희망’은 짜릿하다. 예상치 못한 가스펠이 터져 나올 때 저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터트릴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마음을 졸이던 어린 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를 인정하고 이제 이찬혁을 다시 읽어야 한다. 죽음을 사유하는 철학적 접근에선 신해철이 엿보이고, 다양한 장르를 매끈하게 저울질하는 모습에선 윤상이 떠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글감으로, 이토록 근사한 음반을, 주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음악가라니. “찬혁이 바라보는 모든 것은 음악이 된다”. 탈피, 환골, 변태. 에러 없는 성장이 가속도를 탔다.

– 수록곡 –
1. 목격담
2. Siren
3. 파노라마
4. Time! Stop!
5.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6. 마지막 인사(Feat. 청하)
7. 뭐가
8. 부재중 전화
9. 내 꿈의 성
10. A day
11. 장례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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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즈(Bronze) ‘Skyline’ (2022)

평가: 3.5/5

몇 년간 시티팝에 집중해온 프로듀서 브론즈가 전작 < East Shore >, < Aquarium >에 이어 다시 한번 레트로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간의 음악적 시도를 알뜰하게 조합한 < Skyline >은 어떤 장르를 사랑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역할에 깊이 있게 몰입하고, 그 끝에 다다르려 노력한 음반이다. 시간 여행의 타이밍이 장르 유행이 지나가는 시기에 있기에 우직한 노력의 현실적 의미를 돌아보게 하지만 단단한 음악적 매무새가 앨범을 둘러싼 여러 걱정을 잊게 한다.

앨범 전반적으로 다양한 사운드를 깔끔하게 묶어 낸 모습이다. 흥겨운 리듬의 퓨전 재즈 ‘Odyssey’와 재규어 중사(SFC.JGR)의 부드러운 알앤비 터치가 귀에 들어오는 ‘Laundry’가 대표적이다. 시티팝이라는 문법으로 쓸 수 있는 작문의 한계를 시험하는 모양새다. 어떤 사운드를 내겠다는 당위가 선제적으로 추구해야 할 곡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앞서있는 부분이 종종 귀에 들어오나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일관성 있게 지속했다는 측면에서 그 뚝심이 더 도드라진다.

함께한 보컬들의 음악적 성과가 돋보인다. 감각적인 장식음을 얹어내는 보컬 이하이의 절제된 그루브와 빈 공간의 미학을 들려주는 가수 후디의 매력이 간간하다. 1997년 데뷔한 일본의 아티스트 히야조 아츠코가 참여한 곡을 앨범의 마지막에 배치한 모습에서 얼마간의 자부심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유행이 시티팝의 특별한 면모를 새롭게 조명했다는 것을 본토의 뮤지션에게 인정받는 장면이다.

과거 지향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이 히로시의 앨범 커버 등 1980년대를 그대로 재현한 분위기가 바이닐 열풍에 힘입은 전작들의 마케팅 전략을 스치게 한다. 시간이 보정한 추억을 조명하는 모습을 볼 때 상업적 복고 경향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바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삶의 속도 조절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까닭에 생겨난 전략이다. 지금까지 나온 브론즈의 모든 정규 앨범은 많은 이가 느끼는 이러한 헛헛함을 포착한다.

1985년생 아티스트가 장르의 전성기인 1980년대에 음악을 깊이 있게 향유했을 리는 없다. 그런 뮤지션이 이전에 유행한 스타일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현실이 가쁘기 때문이 아닐까. 브론즈의 음악에선 순수했던, 혹은 순수했을 것 같은 과거에 대한 동경이 있다. 앨범 소개에서 알 수 있듯 이 음반은 긴 여행을 마친 후 우리들의 도시 속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시티팝 리바이벌의 끝자락에서 브론즈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그때의 눈으로 지금을 갈무리한다. 과거가 꼭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아는 눈치다.

– 수록곡 –
1. Touch (with Jue)
2. Illusion (with Kim Sarang, Jason Lee)
3. Milk (with Amin)
4. Ondo (with LeeHi)
5. Odyssey (with Jason Lee, Mogawaa, Hookuo) 
6. Without the star (with Hoody) 
7. Time slip (with YUKIKA)
8. Laundry (with SFC.JGR)
9. Smooth flight (with Atsuko Hiya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