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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일 메일(Snail Mail) ‘Valentine’ (2021)

평가: 3.5/5

2018년에 나온 스네일 메일의 정규 1집 < Lush >는 스스럼없는 자기표현과 독창적 음악색으로 주목받았다. 그해 10월에 열린 내한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시나브로 쌓인 고독감에 마음이 곪아버렸다. 회복기와 자아 성찰로 보낸 3년은 음악적 성숙의 시간. 고통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서사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전형성을 벗겨냈고 외려 비타협적 태도와 대담성을 강화했다. < Valentine >은 세상을 알아가며 느끼는 아찔한 순간을 직면하고 그것을 음악화하는 사명까지 지켜냈다.

고독과 침잠의 시간은 심연으로 빠지지 않았다. ‘Ben Franklin’의 ‘재활 이후 나는 쪼그라들었어’란 구절은 자기연민과 거리가 멀고 곧바로 ‘당신은 나를 빚졌고, 나를 소유했어요.’(Glory)라고 말한다. 사랑을 좆아 우울을 쫓아내는 이미지는 이번 앨범 곳곳에 퍼져 있고 수기처럼 일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데뷔 앨범 < Exile In Guyville >로 1990년대 미국 인디 신을 뒤흔들었던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 리즈 페어와 닮았다. 페어가 젠더 고정 관념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스네일 메일도 보수적 틀에 갇히지 않는다.

2021년 대중음악계의 화두라고 볼만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약진. 줄리언 베이커, 루시 데이커스같은 뮤지션들과 스네일 메일을 구별 짓는 건 공격적인 펑크(Punk) 사운드다. 상대를 향한 집착과 자기 파괴적 성향을 펑크 록 스타일로 풀어낸 ‘Valentine’이나 밴드 부시가 연상되는 그런지 록 ‘Glory’를 통해 소리에도 감정의 명암이 공존한다.

연약과 강인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결의 중심은 가창이다. 스웨덴 출신 가수 매들린 케인의 디스코 넘버 ‘You and I’를 샘플링한 ‘Forever (sailing on)’ 에서 몽환성을 채색하는 한편, 진한 허스키 보이스에 어쿠스틱 기타가 어우러지는 ‘C. et a’로 운신의 폭을 넓힌다. 미세한 세기 조절을 통한 감정 표현이 섬세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던 < Lush >의 소녀는 강렬한 분홍빛 옷을 차려입고 정면을 바라본다. 성숙기를 거쳐 자아와 사랑을 논하는 메시지가 더욱 예리해졌고, 펑크와 어쿠스틱을 넘나드는 소리의 정체성 또한 완숙하다. 1999년생 싱어송라이터는 1990년대를 품은 < Valentine >으로 새로운 인디 록 영웅의 자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수록곡 –
1. Valentine
2. Ben Franklin
3. Headlock
4. Light blue
5. Forever (sailing)
6. Madonna
7. C. et al.
8. Glory
9. Automate
10.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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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처스(Blitzers) ‘Check-In’ (2021)

평가: 2.5/5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에 이어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이른바 ‘4세대 아이돌’의 등장이 가시권에 있다. 올해 5월 21일에 데뷔한 7인조 보이그룹 블리처스도 그들 중 한 팀이다. 지난해 말에 ‘우조 서클’이란 이름으로 게시한 ‘Blitz’가 유튜브 조회 수 100만을 훌쩍 넘기며 관심을 모은 그들은 그룹명처럼 ‘음악과 춤으로 세상을 향해 돌진하겠다(Blitz)’는 포부를 밝히며 첫 EP < Check-In >으로 예비 팬들과 인사를 나눈다. 신생 기획사 우조엔터테인먼트의 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동 판매량 9,300장을 기록했으니 출발이 산뜻하다.

연습생 시절 ‘우조 서클’로 쌓은 조직적인 안무는 뮤직비디오와 릴레이 댄스 비디오 등 각종 영상에서 빛을 발하면서 세계관으로 가득한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우리 자체가 세계관’이라고 말하는 리더 진화의 자신감을 지탱한다.

록과 힙합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비트의 수록곡들은 집단 군무와 상승효과를 낸다.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1983년에 발표한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 곡 ‘Rockit’의 사운드를 일정 부분 이식한 ‘Blitz(next level remix)’가 대표적이다. 3번곡까지 몰아치던 앨범은 희망적인 신시사이저를 채색한 ‘Dream pilot’로 강렬함 이면의 부드러움을 꺼내 보이며 여러 가지 음악 색을 아우르겠다는 지향성도 내비친다.

블락비를 소환하는 강성 댄스음악은 인상적이나 확성기를 덧댄 후렴구로 외려 어색함을 가중한 타이틀곡 ‘Breathe again’과 ‘Ocean blue’의 어눌한 멜로디 전개는 역설적이게 음악 본연에 내실을 기해야한다는 숙제를 남긴다. 타이틀곡의 가사처럼 숨이 헐떡여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정이 아이돌 과포화 시대에 블리처스가 취해야 할 생존전략이다.

– 수록곡 –
1. Blitz(next level remix)
2. Check-in
3. Breathe again
4. Ocean blue
5. Dream pilot
6. 도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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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렉사 ‘Better Mistakes'(2021)

평가: 3/5

‘Meant to be’와 ‘I’m a mess’라는 히트 싱글을 배출했던 메이저 데뷔작 < Expectations >의 흥행은 계속되지 못했다. 이후 비비 렉사는 3년의 공백 기간을 가졌고 조울증 진단까지 받아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인고의 시간을 겪은 그는 비로소 자신의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며 솔직함을 담은 노래로 극복을 시도한다. 소포모어 앨범 < Better Mistakes >는 다채로운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비비 렉사의 강점에 주력하기 보다는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자신의 감정과 맞닿은 음악들을 선보인다.

심리적 고통에서 파생된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띠는 가운데 앨범을 관통하는 레트로 팝 사운드가 돋보인다. 포문을 여는 ‘Break my heart myself’는 날카로운 가창의 팝 록 스타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떠올리게 하며 광기 어린 가사와 함께 처절한 감성을 드러낸다. 강렬한 업 템포 리듬의 ‘Sacrifice’는 중독성 강한 1990년대 하우스 음악의 분위기를 풍기며 팝 펑크 스타일의 ‘Death row’는 도입부의 앓는 듯한 창법과 시원한 후렴구가 대비되는 독특한 구성으로 과거의 정취를 들려준다.

감정선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은 다른 가수들과의 협업과 여러 장르를 통해 더욱 거세진다. 릴 우지 버트의 반항적인 랩핑과 비비 렉사의 툭툭 내뱉는 가창이 특징인 ‘Die for a man’은 단순한 멜로디를 가진 전작의 히트곡 ‘I’m a mess’의 흐름을 이어간다. 도자 캣의 피처링으로 화제를 모은 리드 싱글 ‘Baby I’m jealous’는 중독성 강한 신시사이저 리듬으로 재치 있는 말재간을 표현하며 타이 달라 사인의 감미로운 싱잉 랩과 울적한 스트링 선율이 이끄는 ‘My dear love’에는 그런지 록의 색채가 담겨 있다. 상이한 장르들의 반복적인 교차는 앨범을 지탱하는 불안정한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각 수록곡에는 비비 렉사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열 세 가지의 각기 다른 감정이 하나의 앨범으로 결합하면서 긴밀한 유기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화롭지 않은 곡 구성은 듣는 이의 불편한 감상만을 불러일으킨다. 이 의도적인 부조화는 비비 렉사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 자기 표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달리 한다. < Better Mistakes >는 스스로를 규정하는 음악적 특징과 주위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화법으로 담아낸 자전적인 이야기다.

– 수록곡 –
1. Break my heart myself (Feat. Travis Barker)
2. Sabotage
3. Trust fall
4. Better mistakes
5. Sacrifice
6. My dear love (Feat. Ty Dolla $ign & Trevor Daniel)
7. Die for a man (Feat. Lil Uzi Vert)
8. Baby, I’m jealous (Feat. Doja Cat)
9. On the go (Feat. Pink Sweat$ & Lunay)
10. Death row
11. Empty
12. Amore (Feat. Rick Ross)
13. 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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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그래머(London Grammar) ‘Californian Soil'(2021)

평가: 3.5/5

2013년 성공적인 데뷔작 < If You Wait >를 발표한 영국의 혼성 트리오 런던 그래머는 2집 < Truth Is A Beautiful Thing >으로 차트 1위를 석권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결성 당시부터 민주적인 방식을 고수한 그들은 세 번째 앨범 < Californian Soil >을 통해 팀의 보컬리스트 한나 레이드를 밴드의 리더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며 변화를 도모했다.

무아지경의 영적 인트로를 시작으로 트립합의 대표자 매시브 어택의 ‘Teardrop’과 유사한 ‘Californian soil’을 타이틀로 건 이유는 먼저 자신들의 지향점을 짚기 위함이다. 2000년대 알앤비와 앰비언트 팝을 융합한 ‘Missing’으로 전작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며 여전히 음울한 정서가 지배하는 듯 보이나 과감한 역동성을 도입하며 전보다 새로워진 에너지를 체감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는 대담한 서정과 생동감을 결합한 보컬리스트 한나 레이드가 있다. 안정적으로 쌓아 올린 그의 보컬이 구축한 몽환적인 ‘Lose your head’가 그 결과물이며 런던을 무대로 활동하는 전자음악 프로듀서 조지 피츠제럴드의 참여도 주 요인이다. 간결하면서 웅장한 시그니쳐 사운드를 일렉트로닉 팝 요소로 주조한 ‘How does it feel’과 ‘Baby it’s you’는 신선한 호흡이 일군 걸출한 합작품.

< Californian Soil >은 미니멀리즘을 앞세운 오묘한 클래식 사운드가 감각적인 여백을 그려낸 앨범이다. 런던 그래머만이 연출할 수 있는 덜어냄의 미학이 여기 있다. 적절히 형성된 균형을 유지하고 화려함을 첨가한 < Californian Soil >은 단조롭고 정제된 흐름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활력이자 매끄러운 잔향이다.

-수록곡-

  1. Intro
  2. Californian soil
  3. Missing
  4. Lose your head
  5. Lord it’s feeling
  6. How does it feel
  7. Baby it’s you
  8. Call your friends
  9. All my love
  10. Talking
  11. I need the night
  12.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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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소녀 ‘Unnatural'(2021)

평가: 3/5

우주소녀가 성숙해졌다. 전작 < Neverland > 속 자유를 향해 비상하던 당찬 포부도, 데뷔이래 처음 시도했던 유닛 우주소녀 쪼꼬미가 내세운 발랄한 귀여움도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 차갑게 무장한 그들은 ‘맘에 안 들어 이런 내 모습 /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난 방법을 몰라’라며 무심해진 낯선 태도를 보이면서도 숨겨지지 않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한다.

변화된 컨셉트지만 ‘Last dance’에서 묘사되듯이 보컬 라인을 뚜렷하게 녹여내는 익숙한 경로를 택한다. 멤버 각각의 개성을 보존하는 적절한 파트 분배가 더해지며 여전히 유효한 우주소녀의 최대 장점으로 작용한다. 복고풍 신시사이저로 옷을 갈아입는 ‘원하는 모든 걸(Super moon)’도 수년간 이어온 이들의 색깔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강렬한 베이스 톤이 주도하는 타이틀 곡 ‘Unnatural’은 강조한 음색의 매력에 비해 감흥이 약하다. 연이어 몰아치는 훅의 사전준비 과정부터 사후 과정까지 연결되는 이음매에 윤활유가 부재하기 때문. 변칙적으로 몰아치며 여려 질감을 감각적으로 더하려는 의도는 과한 템포의 전개와 섬세함의 결여로 변질된 채 겉돈다.

< Unnatural > 은 우주소녀 성장기의 단편이다. 표면적으로는 작사 작곡에 참여해 크레디트 에 이름을 올린 설아와 엑시의 활약이 가장 돋보인다. 성장한 음악과 고혹적인 외형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우주소녀는 성숙기에 안착했다.

-수록곡-
1. Unnatural
2. Last dance
3. 원하는 모든 걸 (Super moon)
4. New me
5. 음 (Yalla)
6. 잊지 마 (나의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