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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드(Pond) ‘9’ (2021)

평가: 3.5/5

21세기의 네오 싸이키델리아는 호주가 꽉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멀록스와 테임 임팔라,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같은 호주 출신 밴드들은 1960~1970년대 사이키델릭 뮤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하나의 조류를 형성했다. 퍼스 출신의 14년 차 밴드 폰드 역시 우주에 접속하는듯한 소리샘과 그에 상응하는 4차원적 가사로 위 대열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9번째 정규 앨범 < 9 >는 곡 구성과 연주 방식에 있어서 통상적인 규격을 벗어났던 과거 익스페리멘털 록의 전위성을 품은 전작들에 비해 현대적인 전자음악의 비트를 수용하여 시대적 흐름과 조응했다.

책임감과 원망, 사랑을 주제로 2019년에 내놓은 콘셉트 앨범 < Tasmania >에 비해 신보는 사운드의 통일성에 덜 구애받는다. 늘 그래왔듯 광범위한 스타일을 다루되 전반적으로 빠른 비트가 돋보이고 댄스플로어에 울려 퍼질 ‘Pink lunettes’와 MGMT가 연상되는 ‘Human touch’가 전자 음향의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했다. 록의 색채가 옅어진 자리에 일렉트로니카가 들어서는 구도는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플레이밍 립스의 2010년대 작품들과 비슷하다.

폰드의 동력은 자유분방함과 유연성이다. 작·편곡, 프로듀싱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일차 목표로 한 이들은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로서의 강점을 살려 독창적인 음악성을 구축했다. 독특한 코드 진행의 사이키델릭 팝 ‘Amerca’s pop‘과 월드비트를 수용한 ’Rambo’의 악곡은 정해진 규칙은 없다는 양 자유롭게 뻗어 나가고 ‘Song for Agnes’의 일그러지는 괴팍함도 잔상을 남겼다. 그간 5장의 정규 앨범에서 프로듀싱을 담당한 테임 임팔라의 케빈 파커에게서 독립한 이번 앨범은 개성파 밴드의 온전한 음악색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폰드는 킹 기저드 리저드 위저드의 난해함과 테임 임팔라의 감수성을 절충했고 소리의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현대성을 끌어안아 대중과의 접점을 남겨두었다. 일견 백화점식 구성의 산만함을 수반하는 음악 스타일이지만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사운드적 요소와 다양한 장르를 몽환적인 음향으로 매듭지어 일관된 수준을 보증해왔다.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악곡 전개가 전자음악의 잔향을 강하게 드리운다는 점에서 폰드의 < 9 >는 현대적 감성을 향한 지향점이 명확하다.

– 수록곡 –
1. Song for Agnes
2. Human touch
3. America’s cup
4. Take me Avalon I’m young
5. Pink lunettes
6. Czech locomotive
7. Rambo
8. Gold cup / plastic sole
9. To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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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나스 엑스(Lil Nas X) ‘Montero'(2021)

평가: 3.5/5

정면돌파, 정면돌파, 정면돌파
2019년 ‘Old town road’로 릴 나스 엑스가 전 세계 음악 신을 강타할 때 그의 장기 집권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느새 음악 세일링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틱톡(TikTok) 등의 바이럴 마케팅이 크게 작용해 만든 빌보드 싱글 차트 19주 연속 1위란 새역사가 그저 시대와 시류가 우연히 만나 빚어진 결과로 읽혔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원 히트 원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점치지는 않았다.

갖은 인식과 편견을 뒤집었다. 데뷔 후 처음 발매한 EP < 7 >(2019)의 수록곡 ‘Panini’가 차트 5위에 안착하는가 하면 이후 내놓은 싱글 역시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다. 이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일은 그의 음악 행보의 한 분기점이다. 1999년생으로 어린 나이에 이룩한 성공과 흑인 그리고 성 소수자로서 안고 지녀야 했던 고통, 고민이 음악의 핵심이 됐다. 사랑의 대상이 남성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내면의 불안감 감추지 않고 꺼낸다. 속내를 다 비추는 거리낌 없는 정면돌파가 두꺼운 팬덤을 일궜다.

본명을 음반의 제목으로 삼은 것 또한 그가 택한 또 하나의 정면돌파다. 메간 더 스탈리온과 함께한 ‘Dolla sign slime’에선 자신을 ‘달러($) 기호’에 비유하고 도자캣과 함께한 ‘Scoop’은 뜻대로 화제의 중심에 선 나를 과시한다. 시쳇말로 요새 잘나가는 래퍼들과 손잡고 시원하게 성공을 자축했다. 반면 음반의 후반부에 위치한 ‘Tales of Dominica’, ‘Void’를 비롯해 특히 ‘Sun goes down’은 상처와 아픔에서 나아가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괴롭힘을 보다 적극적으로 노래한다. 다운 템포의 자전적 발로가 그를 지상 세계로 끌어내렸다.

즉, 릴 나스 엑스는 손 닿을 수 없는 스타가 아니라 ‘나’를 투영해 볼 수 있는 내 옆에 있는 스타다. 퀴어 영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을 끌어와 만든 리드 싱글이자 차트 1위 곡 ‘Montero’는 차세대 퀴어 앤섬으로 손색없을 거침 없는 비유로 중무장했다. 남자 뱀과 만난 대가로 지옥에 떨어진 주인공이 사탄을 유혹하고 끝내 정복한다는 설정의 뮤직비디오는 퀴어에게 쏟아지는 일면의 조롱을 전복한다. ‘Industry baby’도 용감무쌍하다. 핑크색 죄수복을 입고 때로는 알몸으로 춤을 추며 ‘또다시 히트곡을 냈다’ 외치는 모습에선 아티스트의 면모가 빛난다.

음반에는 스웨그와 소울이 교차한다. 마음껏 화려하고 또 마음껏 우울한 온전한 고백이 가득 차 있다. 또한 ‘That’s what I want’와 같은 곡에선 인상적인 래핑으로, ‘One of me’에선 중저음의 목소리를 살려 멜로디를 부각, 다양한 장르를 고루 들여왔다. 이에 덧댄 단단한 퍼포먼스 역시 일품. 지금 릴 나스 엑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가끔 그 방법이 도발적이고 그래서 위태롭게 보일지언정 핵심의 메시지와 노래의 주인공인 나를 잃지 않는다. 약하고도 강한 음악 신의 라이징 스타. 그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수록곡 –
1. Montero(Call Me By Your Name)
2. Dead right now
3. Industry baby
4. That what I want
5. The art of realization
6. Scoop(Feat. Doja Cat)
7. One of me(Feat. Elton John)
8. Lost in the citadel
9. Dolla sign slime(Feat. Megan Thee Stallion)
10. Tales of Dominica
11. Sun goes down
12. Void
13. Dont want it
14. Life ater salem
15. Am I dreaming(Feat. Miley C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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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스(CHVRCHES) ‘Screen Violence’ (2021)

평가: 3.5/5

스코틀랜드 출신 3인조 신스팝 밴드 처치스의 등장은 화제에 가까웠다. 이 신인의 주 화법은 과거 라 루로 시작해 당시 퓨리티 링과 그라임스에게서 방법론적으로 계승되던 ‘정제되지 않은 과잉의 신시사이저’와 그 위로 얹히는 ‘카랑카랑한 여성 보컬’의 조합이었지만, 폭발적 인기의 정확한 근원은 독창적인 멜로디 메이킹으로 점칠 수 있었다. 선율과 청량감을 무기로 내세운 데뷔작 < The Bones Of What You Believe >는 양질의 신스팝에 목말라 있던 이들을 단숨에 지지층으로 사로잡았다.

정규 4집 < Screen Violence >의 단상은 이러한 초창기 선명함의 복구다. 대중에게는 더 익숙할 EDM 공식을 접목하였으나 되려 창작의 고갈이라는 평을 받은 전작 < Love Is Dead >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외도가 아닌 정도(定道)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다시 한번 순수주의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신시사이저와 비장한 로렌 메이베리의 보컬을 병행하며 극적인 랠리를 성사한다. 유려한 시작에서 점차 고조를 가하는 ‘Asking for a friend’를 시작으로 여느 때보다 강렬한 록 사운드가 골조를 장식하는 ‘Final girl’까지 트랙 곳곳에는 노골적인 함의가 가득하다.

날선 각오는 콘셉트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스크린 폭력’이라는 제목처럼 수많은 공포의 단면을 다루는 앨범은 절대악과 같은 개념이 아닌 여러 익숙한 형태로 우리 곁에 만연한 두려움을 포착한다. 매일 밤 악몽의 모습으로 찾아오거나(Violent delights), 공포 영화의 클리셰처럼 조여오고(Final girl), 때론 사회적 기준과 고정관념으로 당신을 옥죄어오는(Good girls) 것들. 역설적이게도 여기에는 명랑하고 직선적으로 설계된 멜로디가 자리를 잡는다. 기분 좋은 의외성을 선사하며 듣는 재미를 배가하는 반전적 요소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초기작의 아성에 미치지 못한다. ‘How not to drown’에 참여한 큐어의 보컬 로버트 스미스는 비교적 불안한 무드인 크리스탈 캐슬의 ‘Not in love’ 경험에 초점을 맞춘 듯 뻗어나가야 할 곡 분위기와는 어그러진 합을 낳는다. 완급을 위해 안정을 도모한 후반부 구간은 초반부 강하게 휘어잡은 기세에 비해서나, 또는 곡 자체로도 변화의 메리트를 크게 주지 못한다. 동일 재료를 이용한 작법과 파격적인 노랫말은 앨범의 주장과는 일치하지만, 공격성을 줄이고 환기의 효과를 가져온 전작들의 ‘Recover’나 ‘Afterglow’와 비교하면 다소 무던하게만 다가올 뿐이다.

관계에 관한 고뇌와 군상을 밝게 열창하던 처치스가 어둡고 무거운 주제 선택을 통해 다른 활로를 개척했다는 점은 괄목할만하다. ‘California’나 ‘Good girls’ 등 번뜩임이 가득한 킬링 트랙의 존재 역시 뚜렷하다. 비록 꿈을 거닐던 < The Bones Of What You Believe >의 부드러운 판타지도, 혹은 오로지 찬연하기만 한 < Every Open Eye >의 희망주의도 이제는 찾을 수 없지만, 이상에서 내려와 현실적 지면에 우뚝 선 이들의 매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선명한 신시사이저의 광채에 은은한 스릴러를 적신 적색 경보 < Screen Violence >가 울린 것은 다름 아닌 밴드의 건재한 생존 신고다.

1. Asking for a friend
2. He said she said
3. California 
4. Violent delights 

5. How not to drown (Feat. Robert smith)
6. Final girl 
7. Good girls 
8. Lullabies
9. Nightmares
10. Better if you d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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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랭글러스(The Stranglers) ‘Dark Matters’ (2021)

평가: 3.5/5

1977년에 데뷔한 영국 밴드 스트랭글러스는 난해한 아트 록과 과하게 장식된 글램 록의 반발에서 탄생한 퍼브 록으로 여러 포스트 펑크 밴드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립했다. 멜로디가 선명하지 않은 까끌한 소리와 히트 싱글의 부재로 국내엔 알려지진 못했지만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23곡을 UK 차트 40위권 내에 진입시키며 역사를 이어왔다. 2012년도 음반 < Giants >로부터 9년 만에 발표한 18번째 정규 앨범 < Dark Matters >는 펑크와 퍼브 록을 섞은 밴드 고유의 정체성을 현대적인 울림으로 풀어내 대중과 호흡한다.

스트랭글러스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키보드의 소리가 두드러지고 건반 연주자 데이브 그린필드는 카바레 풍의 유쾌한 연주는 그들의 개성을 확립하는데 공헌했다. 1977년에 발표한 ‘No more heroes’와 ‘Something better change’에서 그가 주조한 댄서블한 사운드는 프란츠 퍼디난드와 블록 파티 같은 21세기 영국의 록 밴드들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린필드는 2020년 5월 코로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이번 앨범은 그에게 유작이 됐다. ‘No man’s land’의 구불거리는 미니무그 선율과 ‘The last men on the moon’의 해먼드 오르간 솔로는 밴드 초기의 간결한 연주에 비해 진일보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그가 발전을 거듭해온 뮤지션이었음을 증명했다.

펑크와 로큰롤, 일렉트로니카 등 여러 스타일이 혼합된 수록곡들은 길고 짧은 러닝타임이 조화를 이루며 음반을 유기적인 형태로 건설했다.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곡의 확장성을 견지한 ‘Water’와 질주감 넘치는 편곡에 현악 세션과 성악을 더한 ‘White stallion’은 풍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지향하는 후기 스트랭글러스를 보여준 반면 1970년대의 까칠하고 공격적인 스타일은 3분 내외로 짧게 끊어 치는 ‘This song’과 ‘Payday’가 그 향수를 대신한다.

음악적 다변화는 동시대 밴드들이 명멸했던 긴 시간 속에서 스트랭글러스를 지탱해왔다. 펑크의 거친 속성을 드러냈던 초창기와 더욱 대중적인 곡조를 선보였던 1980년대를 거쳐 정교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변화를 지속했다. 원년 멤버인 제트 블랙이 떠나고 새 드러머 짐 맥컬로이가 참여한 첫 앨범, 키보디스트 데이브 그린필드의 마지막 참여란 면에서 이 앨범은 그들 경력의 분기점이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대신 음악적 시도와 야심을 택한 < Dark Matters >는 새로운 스트랭글러스의 첫 번째 시작점이다.

– 수록곡 –
1. Water
2. This song
3. And if you should see Dave…
4. If something’s gonna kill me (it might as well be love)
5. No man’s land
6. The lines
7. Payday
8. Down
9. The last men on the moon
10. White stallion
11. Brea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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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The College Dropout’ (2021)

평가: 5/5

한 시대를 이끌어갈 천재의 등장

대중이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2000년대 초, 카니예 웨스트는 칼을 갈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프로 활동을 시작해 로카펠라의 스태프 프로듀서로서 신생 레이블의 도약을 도모하며 업계의 제일가는 작곡가로 성장한 그이지만, 그 이상을 꿈꿨다. 제이 지의 < The Blueprint >, 앨리샤 키스의 ‘You don’t know my name’ 등 많은 히트작을 낳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야심은 무대 뒤가 아닌 비트 위, 직접 가사를 뱉는 데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힙합 신은 카니예 웨스트에게 래퍼 자리를 내어줄 만큼 분위기가 자비롭지 못했다. 거칠고 마초적인 래퍼가 공고하게 주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제이 지가 있었고, 피프티 센트를 비롯한 갱스터 랩이 인기였다. 그에 반해 카니예의 배경을 보자. 대학교수인 어머니와 미술 대학까지 진학한 나름의 학력을 가진 중산층이지 않은가. 안정적인 환경이 래퍼가 되는 데에는 제동을 거는 법이다. 모두가 그에게 비트만 따내려 했지 로커스(Rawkus Records)도, 캐피톨(Capitol Records)도 래퍼로 그를 원하지 않은 이유다.

신예의 도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인 로커펠라와 그 수장 데이먼 대시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해 이 데뷔작의 제작은 결정적인 한 사건에 기인한다. 2002년 가을, 카니예 웨스트는 늦은 새벽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마주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거의 그를 죽일 뻔한 사고로 턱과 다리에 심한 골절을 입고 입원 신세를 졌다. 본의 아니게 맞이한 시간과 자유. 스물다섯 열정 많은 청년은 이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쯤으로 여긴 듯하다. 사고 후 2주 만에 선공개 싱글 ‘Through the wire’ 작업에 나섰고, 이는 힙합 역사를 영원히 뒤바꾸어 놓을 앨범의 신호탄이 됐다.

< The College Dropout >의 파급력은 여러모로 막강했다. 우선, ‘칩멍크 소울(chipmunk soul)’ 프로덕션을 대중화하는 데에 기여한 앨범이다. 칩멍크 소울이란 알앤비&소울 보컬을 샘플링해 음정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해체, 재배열을 거쳐 비트에 녹여내는 작법을 말한다. 저스트 블레이즈와 함께 제이 지의 < Blueprint >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 주특기가 본작에서야말로 제대로 꽃피었다는 게 중론이다. 1990년대 중반 우탱 클랜의 프로듀서 르자가 방법을 제시했다면 카니예는 그걸 일정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수록곡 열두 곡에 사용된 열네 개의 샘플에서 공동작곡 두 곡을 제외하면 모두 셀프 프로듀싱. 래퍼로서의 출사표이지만, 이를 아우르는 프로듀로서의 압도적인 역량이 우선이다.

진가는 당시 힙합 신의 주된 내용을 크게 벗어난 랩에서도 두드러졌다. 16세기 삽화 책에 영감받은 배경에 앙증맞은 곰 인형으로 마감질한 커버와 줄무늬 폴로 셔츠를 빼입고 나온 외형처럼 앨범은 곧 힙합 관습의 타파를 의미했다. 향락과 폭력성의 철저한 배제! 그는 여기서 ‘갭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Spaceship’) 평범한 대학 중퇴생 신분을 감추지 않는다. 그 보통의 시선을 당당히 드러내며 인종,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담았다. 이는 나아가 후대 힙합이 포용하는 캐릭터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졸업식에 쓸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 ‘Intro’를 돈벌이에 찌든 또래의 넋두리 ‘We don’t care’로 맞받아치는 순간 작품에 대한 예고는 끝난 것이다. 예사롭지만 이 뼛속까지 삐딱한 젊은이의 날 선 비판과 유머는 로린 힐 ‘Mystery of iniquity’를 흥겹게 가져온 ‘All falls down’에서 미국 사회의 물질주의를 꼬집고, ‘Two words’에서는 사랑도 브레이크도 없는 무자비한 조국(‘United States, no love, no brakes’)을 쥐어뜯는다.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만 부자들이 가장 자존감이 낮’고 ‘마약 거래로 백인들만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는(‘All falls down’) 사회는 청년의 눈에 그저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결정타는 ‘Jesus walks’다. ‘예수만 빼고 다 이야기해도 된대'(‘They say you can rap about anything except for Jesus’)라 미디어의 획일화를 비판하고 종교적 가치관을 축약하는 곡이다. 총과 마약으로 득실대던 힙합 신에 신실한 찬송가다. 그는 아무래도 ‘쿨’해 보이는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듯하다. ‘Never let me down’에서 민권 운동 시대를 싸운 선조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매우 유기적인 배치로 학력주의를 비꼰 여섯 개의 스킷 트랙으로 이 모든 전개가 실제로 대학을 중퇴한 그의 시간적 배경을 뒤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Family business’가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화자와 청자 사이의 묘한 유대감을 만드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이 걸작의 가치는 단 한 순간, ‘Through the wire’를 거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교통사고 일화를 세밀하게 풀어놓는 노래 속 그의 랩은 실제로 ‘턱에 철사를 단’ 채 녹음해 발음마저 어눌하다. 놀라운 수준의 입체감, 실재감이다. 샤카 칸의 히트곡 ‘Through the fire’를 샘플링해 치밀하게 피치와 위치를 매만진 비트는 힙합 역사상 가장 멋진 칩멍크 프로덕션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비극을 승리로 맞바꾸는 챔피언'(‘But I’m a champion, so I turned tragedy to triumph’)의 자세로 음악을 향한 열의를 강변하고 있는 이 데뷔곡을 카니예 커리어 사상 최고의 싱글이라 칭하고 싶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히트 싱글 ‘Slow jamz'(1위), ‘All falls down'(7위), ‘Jesus walks'(13위)를 배출했으며 판매고는 400만 장을 넘겼다. 평단의 호응은 그 이상이었다. < 스핀 >과 < NME > 등 다수 매체가 입을 모아 음반을 그해 베스트 앨범 리스트에 상위권으로 안착시켰고 그래미는 최우수 랩 앨범과 최우수 랩 노래 등 3개 부문 상을 안겼다. 롤링스톤이 작년 개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에서는 74위에 오르며 후대에 끼친 파급력을 인정받았다. ‘All falls down’에 피쳐링한 실리나 존슨과 로카펠라 A&R 키암보 조슈아(Kyambo Joshua)는 ‘제이 콜과 켄드릭 라마 등 리리시즘 래퍼에게 큰 영향을 준 클래식’이라 평가했다.

극적인 인생 서사나 거친 자기과시 없이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자기에 대한 기록과 사회 참여, 눈앞에 펼친 현재의 담담하고도 날카로운 저술. < The College Dropout >은 힙합 신에서 관습에 섣불리 매몰되거나 음악적 자아와 실제 자아가 충돌해 ‘가짜’가 되고 마는 뮤지션이 범람할수록 그 위력이 거대해질 앨범이다. 확실한 주무기, 선구적인 문법으로 옹골차게 메꾼 히트 넘버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또 놀랍다. 21세기 힙합을 선도할 천재는 이토록 영민하고도 화려한 등장으로 그가 일으킬 파장을 예고했다.

– 수록곡 –
1. Intro (Skit)
2. We don’t care 
3. Graduation day
4. All falls down (Feat. Syleena Johnson) 
5. I’ll fly away
6. Spaceship (Feat. GLC, Consequence) 
7. Jesus walks 
8. Never let me down (Feat. Jay-Z, J. Ivy) 
9. Get em high (Feat. Talib Kweli, Common)
10. Workout plan (Skit)
11. The new workout plan
12. Slow jamz (Feat. Twista, Jamie Foxx) 
13. Breathe in breathe out (Feat. Ludacris)
14. School spirit (Skit 1)
15. School spirit
16. School spirit (Skit 2) 
17. Lil Jimmy (Skit)
18. Two words (Feat. Mos Def, Freeway, The Boys Choir of Harlem) 
19. Through the wire 
20. Family business 
21. Last c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