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빨간사춘기가 일 년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멤버의 탈퇴에서부터 시작된 각종 루머들과 악성 댓글들은 심리적인 괴롭힘이 되어 건강까지 악화시켰고 급기야 활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한 심경의 변화는 고스란히 음악에 영향을 주었으며 신보 < Butterfly Effect >에는 작년부터 겪은 마음고생과 생채기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앨범의 표지부터 기존의 러블리한 색감과 달리 완연한 회색빛으로 뒤덮였다.
‘썸 탈꺼야’, ‘나만, 봄’, ‘여행’의 발랄하고 톡톡 튀던 볼빨간사춘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몽환적인 건반 연주를 중심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한층 담백해진 창법으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비슷한 색깔을 지닌 ‘나의 사춘기에게’, ‘Mermaid’ 같은 곡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후렴구에 거친 일렉 기타 기반의 풍성한 록 사운드를 더해 이전에 없던 폭발력을 처절하게 토해낸다. 결국 그에게 아픔이었을 시간들은 오히려 음악적 성장을 불러와 긍정의 나비효과를 일으킬 작은 날갯짓이 되었다.
그룹 에프엑스로 활동했던 루나가 10년간 몸담았던 SM을 떠나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선 첫 싱글이다. 2016년 퓨처 하우스 장르에 도전했던 솔로 데뷔곡 ‘Free somebody’ 이후 줄곧 서정성 짙은 곡들을 발매해 왔지만 다시금 댄서블한 사운드를 선보이며 퍼포먼스와 가창을 함께 선보였던 무대의 화려함 속으로 돌아갔다. 파워풀한 보컬과 싱잉 랩 사이를 오가는 목소리의 다채로운 변화에서 공백기 동안 응축되어 있던 가수의 기량이 한껏 드러난다.
지난 5년간 활발한 음반 활동을 하지 못했던 그는 가수를 꿈꾸던 시절 동경했던 ‘Madonna’를 떠올리며 당당한 디바의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 1980년대 마돈나의 곡들을 오마주한 후렴구는 과도한 레퍼런스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파워 발라드 풍의 도입부, 이국적인 선율로 트렌디함을 연출한 프리코러스 등의 변주를 시도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쉴 새 없이 분위기가 전환되는 곡의 중심을 루나의 폭발력과 에너지가 탄탄하게 잡아주며 ‘남 눈치 보지마’라는 가사 속 당찬 기세를 극대화한다.
‘달라달라’로 쾌조의 출발을 알렸던 있지의 여정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난해한 사운드로 글로벌 시장을 노렸던 ‘Not shy’부터 조금씩 경로를 이탈하더니 주체적이고 당당한 ‘나’에서 ‘마피아’라는 특정 타자로 분했던 < Guess Who >에서는 방향의 좌표마저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룹을 지탱해 온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혼돈의 시기에 내놓는 첫 정규앨범은 정체된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이는 결과물이다.
전작의 혹평을 만회하기 위한 정공법으로 초심을 택했다. 그룹의 대표곡 ‘달라달라’와 ‘Wannabe’를 탄생시킨 별들의 전쟁과 다시 손을 잡고 힙합, 라틴, 뭄바톤이 합쳐진 화려한 사운드로 성공 공식을 또 한 번 따르고자 한다. 타이틀곡 ‘Loco’는 히트곡의 형태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뽕끼 어린 멜로디가 후렴구에 등장하며 몰입을 떨어뜨린다. 한껏 미쳐야 하는 곡이지만 튀는 구간 없이 안전하게 흘러가는 구성을 취해 저돌적인 메시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
타이틀곡이 끊은 불안정한 시작은 무던한 수록곡들의 전개를 통해 여유를 되찾는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떠오르는 기분 좋은 멜로디의 틴 팝 ‘Sooo lucky’는 있지를 상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며 벅차오르는 리듬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효과까지 살린다. 몽환적인 건반 연주에 호소력 짙은 보컬을 조명한 ‘Love is’, 이매진 드래곤스의 ‘Thunder’를 연상시키는 톡톡 튀는 박자감의 ‘Chillin’ chillin’’ 등 산뜻한 기운을 지닌 곡들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밝은 팝 장르에서의 소화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남에도 전작에 이어 여전히 힙합에 포커스를 둔다. 미국 여성 래퍼 사위티(Saweetie)의 ‘Best friend’와 비슷한 ‘Swipe’는 틱톡에서 인기를 끌 법한 사운드의 전형에 가깝고 ‘#Twenty’는 빠른 템포의 트랩 비트와 래핑이 엉성한 조화를 이룬다. 한마디로 전문 래퍼가 아닌 멤버들의 어색한 랩과 곡이 부조화를 일으킨다. Z세대 다운 솔직한 가사로 위트를 더했지만 소재의 재미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남들보다 일찍 맞이한 성공은 이른 성장통이 되어 돌아왔다. 당당한 틴프레시 이미지를 기반으로 발랄한 댄스 음악을 넘어 스펙트럼의 확장을 시도했으나 그룹에게 맞아떨어지는 해답은 여전히 탐색 상태에 놓여있다. 향후 안정적인 포지셔닝을 위해 강박적으로 콘셉트와 장르 변화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정한 틀에 이들을 끼워 맞추려는 행보는 오히려 그룹의 색깔을 가리고 있다. 그룹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난 나야’가 자연스럽게 돋보일 때, 있지는 진정으로 미칠 수 있다.
– 수록곡 – 1. Loco 2. Swipe 3. Sooo lucky 4. #Twenty 5. B[oo]m-boxx 6. Gas me up 7. Love is 8. Chillin’ chillin’ 9. Mirror 10. Loco (English ver.) 11. 달라달라 (Inst.) 12. Icy (Inst.) 13. Wannabe (Inst.) 14. Not shy (Inst.) 15. 마.피.아. In the morning (Inst.) 16. Loco (Inst.)
1세대 걸그룹의 태동기를 연 소녀들의 두 번째 행보는 뻔하지 않았다. 데뷔곡 ‘I’m your girl’의 발랄한 이미지를 답습하는 안전한 경로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몽환적인 색채를 덧입힌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하며 아이돌 그룹의 격전지에서 차별화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들의 두 번째 정규작은 시류를 따라 십 대 소녀들의 전형성을 내세운 팀들 사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결정적 음반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매 앨범마다 다른 차원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성장의 밑바탕을 마련했다.
현재까지도 그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신비로운 요정 콘셉트를 구축한 앨범이다. 핀란드의 여성 듀오 나일론 비트(Nylon beat)의 ‘Like a fool’로부터 탄생한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가 품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낯선 향취는 마치 세이렌의 목소리와 같은 멜로디로 매혹을 풍겼다. 같은 원곡자로부터 가져온 ‘느낌’ 또한 고혹적인 건반 연주가 사운드를 압도한다. 당시 국내에 익숙지 않던 유로 팝 스타일의 음악은 이질감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룹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일상적인 틴에이저의 모습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새로운 노선의 개척과 함께 1집의 풋풋한 이미지를 반영한 대중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힙합 비트 위에 소녀들의 수줍은 사랑 고백 노래를 더한 후속곡 ‘너를 사랑해’는 1집의 ‘I’m your girl’, ‘Oh my love’의 연장선에 놓여 있어 데뷔작의 인기를 이어가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통통 튀는 멜로디의 ‘애인찾기’는 십 대 특유의 솔직함과 유치함을, 위트 있는 래핑과 청아한 보컬 코러스가 맑은 울림을 떨구는 ‘Kiss’는 첫 키스의 설렘을 담아 특유의 순수한 감성을 표현했다. 전작과의 격차를 줄여 이들이 도모하는 변화의 과정을 대중이 무던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파격과 모험을 감행한 소포모어 앨범은 65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Dreams come true’와 ‘너를 사랑해’가 음악방송 1위를 연일 싹쓸이하며 그룹은 데뷔 2년 만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해외로부터 공수한 세련된 감각은 이후 알앤비 발라드 ‘Love’, 재즈의 색깔을 가미한 ‘Be natural’ 등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확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비주얼로만 기억되는 소녀 그룹이 아닌 듣는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팀으로 발돋움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 수록곡 – 1. Shy boy 2. Dreams come true 3. Snow, x-mas 4. 너를 사랑해 5. 느낌 6. 비가 7. 애인찾기 8. 너에게 9. Kiss 10. Eternal love
시나위의 보컬을 시작으로 밴드 나비효과, 더 레이시오스, 아트오브파티스, 그리고 솔로 활동까지 20여 년간 가지각색의 영역에서 폭넓은 음악을 구사했던 김바다는 202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 바다(BAADA)를 결성했다. 보컬인 그를 필두로 베이스 유영은, 키보디스트 이민근, 드러머 박영진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는 1년간 청량한 신스팝 ‘Sun’, 강렬한 메탈 사운드의 ‘Hemisphere’, 레트로풍의 소프트 록 ‘눈길을 걸으며’ 등 록을 기반으로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선보여 왔다.
세 번에 걸쳐 진행되는 EP 프로젝트의 첫 번째가 사이키델릭 록을 기반으로 한 장르 간의 조화였다면 두 번째 EP는 타이틀곡 ‘Deja vu’를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편안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투박한 드럼 비트와 나른한 보컬이 언밸런스하게 매치되어 몽환적인 그루브의 기타 연주를 유영하는 듯한 잔상을 남긴다. 이전의 싱글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기 위한 밴드의 노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