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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웨어(Jessie Ware) ‘That! Feels Good!’

평가: 3.5/5

꾸준하다. 2012년 데뷔작 < Devotion >을 발매한 삼십팔 세 싱어송라이터는 5장의 정규작을 모두 UK 앨범 차트 10위안에 올렸고, 섬세한 편곡으로 작품성을 공인받았다. 오는 7월 발매 예정인 블러의 아홉 번째 음반 < The Ballad Of Darren >의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와 합작한 신작 < That! Feels Good! >는 ‘Spotlight’가 수록된 포스트 디스코 수작 < What’s Your Pleasure? >(2020)의 가도를 잇는다.

마빈 게이와 필라델피아 소울이 연상되는 ‘Hello love’의 부드러운 현악 세션과 아프로비트 그룹 코코로코가 참여한 ‘Begin again’과 ‘Beautiful people’의 라틴 리듬이 다채롭다. 곡 안에서의 유연한 하이브리드는 포드와 웨어의 소통으로 가능했고, < What’s Your Pleasure?  >의 힙한 느낌 대신 여유로움을 강조했다.

중심 트랙도 굳건하다. 타이틀 곡 ‘That! feels good!’은 스티비 원더 풍 건반 리프와 브라스가 흥겹다. 크레디트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카일리 미노그와 영국 전자음악 듀오 몰로코의 로신 머피가  겹겹이 쌓은 육성이 연대를 이뤘다 해방감을 연출한 ‘Free yourself’와 댄스 본능의 클럽 뱅어 ‘Freak me now’는 전작의 밀도를 계승했다.

‘앨범형 아티스트’란 말이 어울릴까. 싱글 차트와 비교해 높은 앨범 성적이 완성도를 설명한다. 디스코 퀸의 이미지가 생경한 알앤비 < Devotion >(2012), 팝에 전자음악을 혼합한 소포모어 작 < Tough Love >(2014)과 모두 질적 수준을 유지했다. 전환과 현상 유지의 기로엔 주체성과 음악적 기틀이 있었고 < That! Feels Good! >에도 이 공식은 적용되었다.

-수록곡-
1.That! feels good!
2.Free yourself
3.Pearls
4.Hello love
5.Begin again
6.Beautiful people
7.Freak me now
8.Shake that bottle
9.Lightning
10.These 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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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아이콘(iKON) ‘U’ (2023)

평가: 3/5

실력파 보이밴드 아이콘은 2018년 작 ‘사랑을 했다(Love scenario)’로 전국민적 히트송을 기록했다. 다사다난에도 꿋꿋했던 이들은 힙합과 댄스를 고루 섞은 카리스마로 팬덤을 확보했고, ‘취향저격’과 ‘죽겠다(Killing me)’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명맥에 한몫했다.

전자음악 성향이 강한 ‘덤앤더머(Dumb & dumber)’와 ‘왜 또’, 부드러운 ‘사랑을 했다(Love scenario)’ 등 이전 타이틀 곡에 비해 5월 4일 발매된 세 번째 정규 앨범 < Take Off >의 ‘U’는 펑키(Funky)하다. 골고루 퍼진 리듬기타가 세련미를 획득했고, 동혁과 준회의 고음 도입부와 진환의 “Just for you” 이후 일시 정지하는 듯한 구간, 함께 외치는 “Only for you”의 또렷함이 밀도를 유지했다. 랩과 가창에 두루 능한 멤버들은 반복 리듬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노련미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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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메탈리카(Metallica) ’72 Seasons’

평가: 3/5

2023년 4월 12일 목요일, 메탈리카의 신보 < 72 Seasons >의 글로벌 리스닝 파티가 열렸다. 트랙별 영상에 멤버들의 곡 설명을 첨부한 영화 < 메탈리카: 72 시즌스 >가 신보 발매 하루 전에 개봉한 것이다. 극도로 과격한 마니아 장르 스래시 메탈로 범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메탈리카만이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1983년 데뷔 음반 < Kill’Em All >을 발표한 이래 메탈 킹덤을 지배했다. 소포모어작 < Ride The Lightning >(1984)부터 < Master Of Puppets >(1986), < And Justice For All >(1986)의 밀도감에 소위 4대 스래시 메탈 밴드로 일컬어지는 메가데스와 앤스렉스, 슬레이어와 격차를 벌렸다. ‘Enter sandman’이 수록된 1991년 작 < Metallica >는 메탈 밴드로 드물게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

전관예우는 비겁하나 전성기의 순도를 재현하리라고 기대하는 팬들도 많지 않았다. 극강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헤비메탈은 육체적 장르며 세월과 기량이 비례하곤 한다. < 메탈리카:72 시즌스 >에서 제임스 햇필드는 “예전처럼 다운피킹이 안 된다”며 세월 무상을 토로했다.

메탈 거장이 세운 < 72 Seasons > 성탑은 장대하다. 과도하게 축소된 현시대 메탈신에서 메탈리카만의 묵직한 덩어리로 밀어붙였다. 5~7분대 대곡 ‘Sleepwalk my life away’와 ‘You must burn!’은 과거 명작들의 매서움과 펀치력은 무뎌졌을지언정 비교적 정교하게 건설되었다. 인생 초반부 18년을 의미하는 ’72 seasons’ 속 지적인 가사는 메탈리카의 강점이다.

훅과 선율은 메탈리카의 차별화 전략이다. 슬레이어와 판테라에 비해 취약한 연주력을 리프메이킹과 악곡 전개로 극복했다. 과격한 음향 기저 선율은 흡사 팝송처럼 대중적이고도 매끈하다. ‘Shadows follow’의 “Seethin’, breathin’ nightmares grow on I run still my shadows follow(숨쉬는 악몽이 커지는데도 여전히 내 그림자가 따라다닌다)”와 “Temptation(유혹)”의 외침으로 떼창을 유도하는 ‘If darkness had a son‘이 스타디움을 채울 것이다.

21세기에 발표한 3장의 음반 < St. Anger >(2003)와 < Death Magnetic >(2008), < Hardwired… To Self-Destructed > 와 신보 < 72 Seasons >까지 모두 러닝타임이 70분을 넘겼다. 엘피로 따지면 더블엘피의 규모며 7~8분대 트랙이 대부분이다. 언뜻 피로할 수 있는 구성은 선공개 싱글 ‘Lux æterna’로 완급 조절되었다. 3분대의 몰아치는 펑크(Punk) 스타일은 전작 < Hardwired… To Self-Destruct >의 ‘Hardwired’와 맥을 같이한다.

메탈리카 경력 사상 단일 곡 최초로 10분을 넘긴 ‘Inamorata’는 다변적 악곡 전개로 러닝타임의 압박감을 상쇄했다. 베이스 기타리스트 로버트 트루히요는 가입 이후 가장 만족스러운 곡이라며 ‘Inamorata’를 자찬했다. < Kill’Em All >의 40주년을 자축한 < 72 Seasons >는 그들의 연료(Fuel)와 건전지(Battery) 파워가 여전함을 증명했다.

-수록곡-
1.72 seasons
2.Shadows follow
3.Screaming suicide
4.Sleepwalk my life away
5.You must burn!
6.Lux æterna
7.Crown of barbed wire
8.Chasing light
9.If darkness had a son
10.Too far gone?
11.Room of mirrors
12.Inamor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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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Interview

[시인과 음악] #1 허연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노랫말처럼 노래와 시는 가깝다. 언어의 리듬을 품은 낭독의 문학이란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근래 대중음악이 소리의 중독성에 집중하나,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의 조화는 대중가요의 본질적 매력이다. 많은 이들이 김광석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시)와 이동원 박인수의 ‘향수’(정지용 시)처럼 시를 모태로 한 가요 명곡을 사랑했다.

이즘은 2023년 연간 특집으로 ‘시인과 음악’을 기획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의 작품 세계와 그들이 사랑하는 대중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삶과 예술을 향한 세계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은 이즘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음악’ 첫 순서는 세련된 언어의 미학주의자 허연 이다.

중견 시인 허연의 1995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 >은 섬세한 표현에 기반한 유미주의로 호오가 갈렸다. 두 번째 시집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가 나오기까지 13년간의 공백기, 세상은 변했고 젊은 시인들은 허연의 영향을 언급했다. 용기를 얻은 그는 신문사 기자와 시인을 겸하며 시작의 집념을 이어갔다.

허연은 자신의 시를 뼈라고 규정했다. 조각가 권진규의 테라코타처럼 모든 장식품을 떼고도 본질이 뚜렷한 예술을 꿈꿨다. 때로 개인주의자라고 비판받을지언정 종교와 이념 같은 상징체계를 벗어난 예술적 개인성에 집중한다. 그가 미학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 이유기도 하다. 봄이 막 시작할 무렵 만난 그는, 시만큼이나 남다른 언어와 감각의 소유자였다.

시집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2020년에 나온 다섯 째 시집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는 제목이 독특하다.
보통 시집은 시집에 수록된 시 하나의 제목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가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고 생각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며 생의 마지막에 선 환자들을 보살피는 의사와 대화한 적이 있다. 환자들이 몸도 힘들고 진통제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노래방 애창곡을 들려주면 미소 짓는단다. “인생은 결국 노래구나!”라고, 생각했다.

시집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에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시는 무엇인가
14p ‘어떤 거리’와 20p ‘슬픈 버릇’이다.

66p ‘트랙’이라는 시가 궁금하다.
턴테이블 위로 돌아가는 엘피의 트랙과 육상 선수들이 달리는 트랙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인생과 예술가의 길을 함축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트랙이 아닌 곳에 더 많은 노래가 내리기도 했다”는 어떤 의미인가?
어느 공인되지 못한 인생도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네 인생이 모두 노래 아니겠는가.71p ‘절창’에서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을 위해선 노래하지 않겠다”란건 무슨 뜻인가?
사람은 소통하는 동물로서 서로를 자극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자극을 실제보다 작거나 크게 보여주는 건 과장이며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내 옆구리 어디쯤을 강렬하게 찌르는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만 노래하겠다고 결심했다.

역시 시는 운율의 미학일 것이다.
지구가 시속 1,600km 로 자전해도 인간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건 수많은 행성이 인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리듬 운동을 하는 덕분이다. 밀어내고 끌어들이는 힘의 조화를 통해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 아침과 밤이 있다. 따라서 우주 만물이 리듬으로 구성된 것이다.

과거의 정형시는 리듬이 제한적이었다. 끊임없이 분화하는 현대사회의 수많은 현상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방향성을 택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내재율을 고민했다. 결국 우주와 내 몸이 함께 가는 리듬을 추구한다.

그간에도 그런 자연스러움을 추구했겠지만, 이번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됐는지? >에서 그 측면을 강조한 듯싶다.
예술 창조에 관해 오만했다. 다 내가 잘해서 얻은 결과라고 착각했다. 그런 오만과 착각이 깎여나가며 세상 어디에 있는 리듬 하나를 내게로 가져와 시어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아 받았다고 믿게 되었다. 세상에 던져진 내 좌표를 인식하고 존재 이유를 파악하는 계기였다.

‘눈물이란 무엇인가’ 연작도 독특하다.짧은 광고를 보고 울 정도로 평소 잘 운다. 눈물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눈물에 대해 고찰했다. 군대 작전이 끝나고 귀대하는 날 내리는 눈을 보며 최양숙의 ‘가을편지’를 들었다. 우는지도 모르는 채 꺼이꺼이 울었다. 옆에 분대장도 울고 있더라.

눈물과 더불어 강물도 허연 시의 중요 소재인 듯싶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수진리의 강’과 조용필 ‘한강’을 비롯해 대중음악에서도 많이 쓰인다.
줄곧 강 옆에 살았다. 예전엔 강 근처에 가난한 집들이 많았는데 아프고 힘들어도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온갖 것들이 다 모여있는 강변은 세상이 축소된 모형과도 같다.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는 점에서도 시와 음악과 닮았다.

‘무반주’와 ‘계시’는 음악과 관련한 것인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무반주 피아노곡에 충격받았다. 이렇게 뼈대만 남겨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허세는 지워버리고 본질만 남기는 것이다.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핵심 가치인 것 같다. 빌 에반스는 1년 전부터 깊게 좋아하게 된 재즈 피아니스트다. 사티와 마찬가지로 에반스에게서도 본질 혹은 이상을 봤다. 역시 어느 경지에 다다른 예술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허연의 작품 세계

데뷔작 < 불온한 검은 피 >에서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까지 13년 공백이 있었다.
1990년대 초 발표 당시 비난에 시달렸다. 무국적, 미학주의자를 한국 사회가 견디기 어려웠나 보다. 미시간 주립 교도소의 무기수를 다룬 ‘미드나잇 스페셜’은 미국 포크송 그룹 브라더스 포의 노래에서 따온 것인데 그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후렴구에 영어가 나온다는 이유로 지탄받았다.

당시엔 무슨 미학에 국경이 있고, 세상이 왜 날 이해하지 못하냐, 하나 난 내 방식으로 살겠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밥 먹고 살 길이 만만찮아서 잡지사와 신문사를 다녔다. 중간중간에 단편 발표 하나 안 했다. 근데 십여 년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는지 김경주 같은 젊은 시인들이 스승으로 저를 지목하며 미래파의 시초가 되었다. 사회 구성 제도의 논쟁이 잦아들고 개인의 목소리가 용인되기 시작했다.

신문사 부장까지 했다. 시를 쓰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인간이 단일유기체다 보니 다른 부류의 글을 연속선상에서 쓰는 게 어려웠다. 장르 전환을 위해 작업실을 얻어 시를 썼다. 인터넷도 연결하지 않을 정도로 오롯이 시에만 집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기에 2008년 시집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를 대부분 썼다.

얻은 것도 있다. 신문사에서의 안정적 보수 덕에 시를 팔지 않아도 되었다. 즉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기자가 되기 전에 이미 시인 활동을 했고 시작 이외의 별다른 취미도 없었기에 기자 업무 이외의 시간을 시에 투자할 수 있었다.

신부를 향한 꿈이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접은 건가?
나이 제한이 있기에 물리적으로 불가하나 정체성의 일부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다만 신부가 되었다면 시는 못 썻을 것 같다.

무소속에 가까워 보인다.
어딘가에 속해 그 방향성만 부르짖는 건 어렵지 않다. 한 국가에서 역적이었던 사람이 몇 킬로미터 떨어진 국경을 넘으면 영웅이 된다. 그저 기준과 관점이 다를 뿐, 편 가르기는 무의미하다. 무언갈 너무 쉽게 단정하고, 정의해 버리지 않았는지 자신에게 되물어 보고 후회하곤 한다. 성찰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예술과 창조라는 건 결국 본질을 보는 행위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만든 규칙 혹은 이념으로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사랑의 본질을 담아내긴 쉽지 않다. 훌륭한 예술은 과녁 없는 공간에 외친 외마디 비명과 같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의 말이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연 시인의 시를 흔히 수식하는 ‘가여움’과 ‘연민’은 결국 진실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상들인가
시의 한자를 해석하면 ‘말의 사원’ 혹은 말의 깨달음’이 된다. 즉 진실에 말의 경지를 더하는 작업이다. 진실을 표현하되 시어를 사용해 언어의 맛을 살리는 것이다. 서정주 ‘신록’의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에서 시적 언어가 두드러진다고 보기 어렵지만 깨달음과 자기성찰로 폐부를 찌른다. 경지에 오른 시인의 시가 영물인 이유다.

허연의 시 세계를 규정한다면?
‘뼈’라고 말하고 싶다. 살다보니 ‘살’은 장식이었다. 수천년이 지나 개체의 본질을 밝혀주는건 살이 아닌 뼈다. 시를 통해 본질을 남기고 싶다는 의미다. 조각가 권진규의 테라코타를 보며 나도 본질을 남기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시들과 비교해 가끔 어렵다는 비판도 받지만 20세기 서울과 현재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고 행동 양식과 사회의 양상이 복잡다단해질 수밖에 없다. 시는 시대의 산물인 만큼 현대의 시가 비교적 난해한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허연과 음악

인상적이었던 대중가요 노랫말을 알려달라
어느 일요일 내무반에 누워있다가 김혜림의 ‘D.d.d’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당시 그런 정서가 없던 것 같다. “한 번을 만나도 느낌이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란 가사가 일종의 자기 선언 같았다.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왜 하필 수요일에 빨간 장미인지는 알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단 그렇게 설정해 놓고 난 후 서사를 조립해 나가는 것이다.

즐겨 듣던 음악을 소개해달라
구창모 ‘희나리’와 강인원, 김현식, 권인하가 부른 ‘비 오는 날의 수채화’도 감성적으로 와닿았다. ‘깨끗한 붓 하나로 색칠하지, 초코렛색 물감으로’ 같은 가사가 기억에 남는다.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압권이었다.

1985년에 나온 들국화 1집 < 들국화 >다. 딱 성인이 되었던 해고 당시 모든 청춘이 이 음반에 영향을 받았다. 낮에는 시위가 벌어졌고 밤에는 들국화 노랠 불렀다. 조하문이 노래했던 마그마도 좋아한다. 1981년 작 1집만 내놓고 해산했으나 ‘해야’와 ‘잊혀진 사랑’이 수록된 그 앨범이 꽤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가 수록된 산울림 1집 < 산울림 새노래 >와 ‘떠나가 버렸네’가 수록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3집 < 빗속의 연가 / 비처럼 음악처럼 >(1986), ‘가시나무’를 비롯한 시인과 촌장의 음악도 좋아했다.

팝송도 들었나
비지스와 이글스, 딥 퍼플을 좋아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로 대표되는 포르투갈의 파두나 스페인의 볼레로, 누에바 칸시온 같은 월드뮤직 계열도 즐겼다. 민요에서 풍기는 인간미나 각국의 문화가 독특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도 빼놓을 수 없다.

허연 시인 작품 목록
불온한 검은 피(1995)
나쁜 소년이 서 있다(2008)
내가 원하는 천사(2012)
오십미터(2016)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2020)

진행 : 임진모, 염동교, 정다열
정리 : 염동교
사진 :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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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해’ (2023)

평가: 3/5

장기하와 얼굴들을 졸업한 장기하는 고민에 빠졌다. 음악적 방향성에 관해 많은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밴드 편성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그간 장얼이 줬던 신선함의 선도를 유지할지에 관한 고심.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 >를 거친 휴지기 끝에 내놓은 ‘부럽지가 않어’ 속 어리둥절한 사운드는 절차탁마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부럽지가 않어’가 담긴 EP < 공중부양 > 이후 약 1년 만에 내놓은 싱글 ‘해’는 밴드 음악으로 회귀했다. 영미권 펑크(Punk)와 포스트 펑크에 1970년대 한국 사이키델릭 록을 섞은, 영향을 밝혀온 장르들을 향한 오마주와 같다. 템포 변화에 기타와 키보드의 유니즌 등 곳곳에 포인트를 준 편곡은 밴드 포맷의 강점이다.

‘해봤어?’, ‘할래?’의 리듬감과 언어유희는 장얼 시절 ‘ㅋ’와 ‘그건 네 생각이고’를 상기하고, 자유로운 상상의 여지를 남겨뒀다. 핀포인트 하나로 곡을 꾸려나가는 장기하의 스토리텔링은 함께 발표된 직선적 펑크 록 ‘할건지 말건지’와 연결된다. 장얼 때 해왔던 음악의 연장선상이지만 곡 자체는 여전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