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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Blur) ‘The narcissist’

평가: 4/5

블러답다. 음악도, 데이먼 알반의 나른한 보컬도, 무난한 팝 록 스타일도, 모든 면에서 블러다. 하늘에 먹구름이 낄지라도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모습을 포착한 앨범아트는 지극히 1990년대 브릿팝의 정서와 닮았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유쾌함과 스산함이 공존하는 전작 < The Magic Whip >과는 결이 다르다. 거칠게 뛰노는 ‘Song 2’, 통통 튀는 ‘Girls & boys’, 나른한 ‘Coffee & tv’와도 다른 모양새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다.

데이먼 알반의 음악 세계는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쩔 때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The narcissist’는 편안하다. 조급한 마음, 특별한 걸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은 전혀 없다. 그 대신 밴드의 정석만을 들려준다. 무심한 듯 감정을 쌓는 보컬, 그 뒤에서 같이 무던하게 얹는 코러스,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노이즈를 키워 천천히 공간감을 넓혀나가는 세션, 휘몰아치는 후반부, 짧은 여운까지, 평범한 밴드 음악을 범상치 않게 해낸다.

이제 블러는 블러를 실험실로 쓰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의 고향이다. 이제 블러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더 중요하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뻗어 나갔던 멤버들은 30여 년이 지나서야 < Leisure >의 수영장에 다시 모였다. 어린 날들의 어설픔과 불안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관록이 새롭게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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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제레미 주커(Jeremy Zucker) ‘OK’ (2023)

평가: 3/5

‘OK’는 온전히 행복하다. 삶에 대한 두려움을 타인의 사랑으로 의지하던 초기 히트곡 ‘comethru’와 대비된다. 제레미 주커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랑과 행복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주체가 되었다. 덕분에 밝고 경쾌하며 긍정적인 무드로 가득하다. 끊임없이 사랑을 노래하며 그 감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동안, 사운드도 점점 풍성해진 덕에 기존 곡들과도 결이 다르다. 미니멀한 어쿠스틱 팝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릴 요소를 적절히 고르면서 성장한 영리함의 결과물이다.

편안한 멜로디와 보컬, 단순한 표현의 직접적인 가사 등 다른 러브송 뮤지션들에 비해 딱히 차별화된 부분은 없지만, 자신의 팬들에게 바치는 응원과 감사인사를 굳이 특별하고 실험적인 모습으로 전할 이유도 없다. 삶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마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는 에필로그는 무난함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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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티나 터너, 용맹하게 살고 당당하게 떠나다

1939년 11월 26일 미국 테네시주에서 태어나 2023년 5월 24일에 눈을 감은 티나 터너는 다큐멘터리 같은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은 단거리 선수의 속도로 달리는 마라톤이었고 그만큼 굴곡지고 극적이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전 남편과 함께했던 그룹 아이크 & 티나 터너의 시기는 영욕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셀린 디온을 포함해 많은 가수들이 커버한 명곡 ‘River deep mountain high’와 씨씨알의 원곡을 소울로 환생시킨 ‘Proud Mary’만으로도 이 부부 듀엣의 음악적인 업적은 명징하다. 문제는 무대 밖이었다. 남편의 구타와 학대는 티나 터너를 옥좼고 주눅 들게 했다. 현생에서 기댈 곳이 없었던 그는 불교에 심취해 불교 신자가 됐다.

미국의 블루스 음악을 부활시킨 주인공이 1960년대에 활동했던 영국 뮤지션들이었던 것처럼 잊혀져 가던 티나 터너를 기억하고 그에게 도움과 용기를 준 사람들도 영국인들이었다. 롤링 스톤스의 보컬리스트 믹 재거와 데이비드 보위,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 기타리스트 제프 벡, 신스팝 그룹 헤븐 17의 멤버 마틴 웨어와 그렉 월시 등이 티나 터너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동참한 인물들. 그 결과물이 티나 터너가 44세였던 1984년에 발표한 명반 < Private Dancer >다. ‘Let’s stay together’,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Better me good to me’, ‘Show some respect’, ‘Private danc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에 올랐고 넘버원 싱글 ‘What’s love got to do with it’은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최우수 여성 팝 보컬을 수상했다. ‘Better be good to me’는 최우수 여성 록 보컬 부문에 낙점됐다. 그래미 위원들은 힘든 시간을 인내하고 고난을 극복한 티나 터너에게 트로피를 몰아주며 그의 인간승리를 기념했다. 이때부터 사자 갈퀴 헤어스타일과 미니스커트는 티나 터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1970년대에 뮤지컬 영화 < Tommy >와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에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1985년에는 멜 깁슨과 함께 < 매드맥스 > 2편에 출연했고 1990년대에는 007 시리즈의 17번째 작품 < 골든아이 >의 주제곡도 불렀다. 1986년에 공개한 자서전 < I, Tina >를 스크린으로 옮긴 자전영화 <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은 흥행과 평단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자서전과 영화를 통해 대중은 전 남편 아이크 터너의 진짜 모습을 보았고 티나 터너에게 동정 어린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휘트니 휴스턴을 죽음으로 내몬 바비 브라운 이전에 아이크 터너가 그 ‘썩을 놈’의 원조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2018년에 첫째 아들이 자살했고 2022년 12월에는 둘째 아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사람은 1986년에 처음 만나 2013년에 결혼한 EMI의 전 임원인 어윈 바흐였다. 결혼 전에 티나 터너가 건강이 안 좋았을 때 그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은 후에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것이 티나 터너의 진정한 결혼이었다. 결국 티나 터너는 남편을 따라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행복한 삶을 살다가 그곳에서 편히 눈을 감았다.

티나 터너의 인생은 마라톤이었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마지막에 영광의 월계관을 썼다. 2023년 5월 23일은 이 시대의 ‘로큰롤의 여왕’이 영면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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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웨어(Jessie Ware) ‘That! Feels Good!’

평가: 3.5/5

꾸준하다. 2012년 데뷔작 < Devotion >을 발매한 삼십팔 세 싱어송라이터는 5장의 정규작을 모두 UK 앨범 차트 10위안에 올렸고, 섬세한 편곡으로 작품성을 공인받았다. 오는 7월 발매 예정인 블러의 아홉 번째 음반 < The Ballad Of Darren >의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와 합작한 신작 < That! Feels Good! >는 ‘Spotlight’가 수록된 포스트 디스코 수작 < What’s Your Pleasure? >(2020)의 가도를 잇는다.

마빈 게이와 필라델피아 소울이 연상되는 ‘Hello love’의 부드러운 현악 세션과 아프로비트 그룹 코코로코가 참여한 ‘Begin again’과 ‘Beautiful people’의 라틴 리듬이 다채롭다. 곡 안에서의 유연한 하이브리드는 포드와 웨어의 소통으로 가능했고, < What’s Your Pleasure?  >의 힙한 느낌 대신 여유로움을 강조했다.

중심 트랙도 굳건하다. 타이틀 곡 ‘That! feels good!’은 스티비 원더 풍 건반 리프와 브라스가 흥겹다. 크레디트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카일리 미노그와 영국 전자음악 듀오 몰로코의 로신 머피가  겹겹이 쌓은 육성이 연대를 이뤘다 해방감을 연출한 ‘Free yourself’와 댄스 본능의 클럽 뱅어 ‘Freak me now’는 전작의 밀도를 계승했다.

‘앨범형 아티스트’란 말이 어울릴까. 싱글 차트와 비교해 높은 앨범 성적이 완성도를 설명한다. 디스코 퀸의 이미지가 생경한 알앤비 < Devotion >(2012), 팝에 전자음악을 혼합한 소포모어 작 < Tough Love >(2014)과 모두 질적 수준을 유지했다. 전환과 현상 유지의 기로엔 주체성과 음악적 기틀이 있었고 < That! Feels Good! >에도 이 공식은 적용되었다.

-수록곡-
1.That! feels good!
2.Free yourself
3.Pearls
4.Hello love
5.Begin again
6.Beautiful people
7.Freak me now
8.Shake that bottle
9.Lightning
10.These 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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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워커, 사샤 슬론(Alan Walker, Sasha Sloan) ‘Hero’ (2023)

평가: 2/5

데뷔곡 ‘Faded’부터 전작 < Walkerverse, Pt. I >까지 착실히 구축한 독자적 세계관의 연장선이다. 검은 복면의 다크 히어로 앨런 워커가 설계한 ‘워커버스’에서는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다. 연대와 연결을 강조하며 음악을 매개로 공동체 가치를 실현한 그는 ‘Hero’로 다시 한번 대중에게 용기를 건넨다.

싱글은 ‘Dancing With Your Ghost’로 주목받은 새드 팝 아티스트 사샤 슬론의 목소리를 빌렸다. 전면에 배치한 신비로운 음색이 특유의 극적인 사운드 구성과 맞물려 몰입감을 조성하고 정직한 베이스라인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보컬을 둘러싼 선율이 밋밋하다. 이전 히트곡 ‘Alone’, ‘All falls down’에 비해 눈에 띄게 평범해진 멜로디는 매력도뿐만 아니라 드롭 구간의 존재감마저 앗아간다. 현재 진행 중인 서사와 달리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