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슈퍼그룹’이란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일종의 드림팀을 일컫는 말로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시아처럼 오랜 기간 유지되는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맺음했다. 인디 포크계의 걸출한 세 작가 피비 브리저스와 줄리언 베이커, 루시 데이커스가 조직한 보이지니어스는 보기 드문 여성 슈퍼그룹으로서 21세기의 문화적 담론의 향방을 제시하며, 첫 번째 정규 앨범 < The Record >는 시작점의 선언문과도 같다.
2018년에 발매한 데뷔 EP < The Rest > 이후 4년 반 동안 구성원 각자 쌓은 음악적 성숙은 < The Record >의 완성도를 높였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된 3인조 활동은 존중과 화합을 토대로 한 긴 소통을 거쳐 < The Record >로 완주되었다. ‘$20’부터 ‘Cool about it’까지 순차적 싱글 발매로 기대감을 끌어올린 측면도 영리했다.
보컬 하모니와 멤버별 인장이 공존한다. 데이커스의 True blue’가 온기를 드리운 반면 베이커의 음울과 침잠을 녹인 ‘Anti-curse’는 이십여년을 접어 피제이 하비의 얼터너티브 록을 모색했다. 브리저스는 ‘Emily I’m sorry’를 통해 < Punisher >(2020) 의 선율 감각을 드러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를 오마주한 ‘Cool about it’과 레너드 코헨의 ‘Anthem’을 부분 발췌한 ‘Leonard Cohen’처럼 영감의 대상에 존경도 표했다.
“네 집부터 리노(미국 네바다 주 도시)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지(It’s an all-night drive from your house to Reno)”로 해방감을 표현한 ‘$20’과 “천사일진 몰라도 신이 될 수 없어(Always an angel, never a god)”이란 의미심장한 구절을 담은 ‘Not strong enough’같은 강한 질감의 곡들은 부드러운 인디 팝에서 아메리카와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포크 록으로 영지를 확대했다.
밴드는 하나의 인격체다. 피비 브리저스와 줄리언 베이커, 루시 데이커스의 세 이름이 스르르 흐릿해진 40 여분의 시간에 보이지니어스의 활자가 음각된다. 공동체의 융합을 이룬 < The Record >는 담백하고도 담대한 음반명처럼 사상과 소리 그 본질에 천착한다. 보이지니어스는 이제 시작이다.
-수록곡-
1.Without you without them
2.$20
3.Emily I’m sorry
4.True blue
5.Cool about it
6.Not strong enough
7.Revolution 0
8.Leonard Cohen
9.Satanist
10.We’re in love
11.Anti-curse
12.Letter to an old po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