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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알피피(TRPP) ‘Here To Stay’ (2022)

평가: 3/5

대중적인 코드와 서브컬쳐 음악 사이에서 탄생한 티알피피(TRPP)는 전형을 거부한다. ‘부캐’와 ‘코리안 슈게이징’을 섞은 이 조합은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으로 인디 신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몽환적인 연주에 흐릿한 목소리를 얹은 < Trpp >의 질주는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숨 가쁘게 돌아온 < Here To Stay >는 등장의 들뜬 분위기를 잠시 잠재우며 느긋한 발걸음을 옮긴다.

따스한 감성으로 중심을 잡는 싱어송라이터 윤지영, 노엘 갤러거 내한 당시 오프닝 무대를 책임진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프론트 맨 정봉길, 유쾌한 밴드 일로와이로의 기타리스트 강원우. 새로운 지붕 아래 모인 인디의 선봉장들은 얼터너티브, 드림 팝 등의 재료들을 편견 없이 배합한다. ‘Clue’에서는 1990년대 다부지고도 처량했던 록의 대표주자 스매싱 펌킨스를 회상하고 ‘Rainbow spell’과 같이 잔잔한 곡에서는 브릿 팝의 서정성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혼탁한 사운드의 슈게이징이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첫 만남의 설렘을 풍기던 1집처럼 ‘Lifetime’과 ‘Higher than the sun’등의 트랙에서는 들뜨기도 하지만 다소 잠잠한 흐름이다. 이는 노이즈 록의 아들 격인 이 장르에 드나들 수 있는 편안한 출입문 역할을 하면서도 그 소음이 선사하는 미가공과 날것의 매력을 반감시키며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비슷한 부류의 음악과 다르게 안온한 감상을 선사하지만, 반항적인 구간의 결핍 탓으로 무료감에 빠지기도 쉽다.

스산하고 몽롱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그 아래 새겨진 정체성은 데뷔작에 비해 더 확고하다. ‘반사’와 ‘명상’ 등의 노랫말 안에는 티알피피만의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색깔이 선명하게 묻어나고, 삶의 윤회를 논하는 ‘Circle’과 ‘Here to stay’는 번역 그대로 이들의 기행이 ‘원’처럼 돌고 돌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선언한다.

엉성한 콘셉트 아래 감춰져 있던 티알피피의 실마리를 풀고 그 뜻을 설득하기 위한 해설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신보를 기점으로 이 기묘한 회합의 출발선을 되짚어보면 과거 음악의 짙은 향수로부터 비롯된 슈게이징의 매력을 다시금 눈치채고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발견으로 귀결되는 과정, 티알피피는 존재 자체로 흥미로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 수록곡 –

  1. Here to stay
  2. Clue
  3. Play
  4. Lifetime
  5. 반사 (Reflection)
  6. 명상 (Meditation)
  7. Higher than the sun
  8. Little boy / the darkest day
  9. Dodgy
  10. Rainbow spell
  11. Oblivion
  12. Furykawa
  13.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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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인 ‘Spells'(2022)

평가: 3.5/5

공들인 성장, 반짝이는 서사
2011년 즈음 홍대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코스모스 슈퍼스타’로 활동하던 그가 본명인 ‘한정인’으로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냈다. 앞서 발매한 2개의 싱글 ‘Extra’, ‘슬픔의 맛’을 포함한 총 14개의 수록곡. 음반은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성을 대변하듯, 많은 곡 수와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로 용솟음친다. 한 곡, 한 곡, 탄생 내막을 묻게 하는 노랫말. 매끄럽게, 또 때론 예상 밖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곡 배치도 힘 있다. 한정인이 주도권을 쥐고 듣는 이의 호흡을 이끈다.

전자음을 중심으로 어둡고 맑은 신시사이저를 교차하며 선율을 뽑았다. 이는 전작 < Eternity Without Promise >(2019)와 비슷한 구성이나, 그는 신보에서 목소리를 보다 앞으로 끌어온다. 어둡고 몽롱한 꿈속 한 가운데를 헤엄치던 것 같던 과거의 보컬 사용에서 탈피, 선창하듯 제 색을 내는 목소리의 운용은 더 이상 음악 뒤에 숨지 않으려는 뮤지션의 의지로 읽힌다. 이 의지는 외로움, 두려움, 괴로움, 사랑 등의 감정을 적극 드러내는 노래 속에서도 천명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친구가 아닌’ ‘특별한 단 한 사람’이라 말하는 ‘Listen & repeat’.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삶을 고백하는 ‘Borderline’,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슬픔의 맛’을 노래하는 ‘슬픔의 맛’ 등 곡 안에서 한정인은 노래와 함께 실컷 나를 풀어낸다. 이 적극적인 고백의 기조가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타이틀 ‘Wallflower’에서 ‘Badluckballad’를 지나 ‘도시전설’로 이어지는 전반부.

레트로한 댄스팝 ‘Wallflower’는 중무장한 대중 선율로 듣는 이를 댄스 플로어 위로 데려간다. 땀 흘리며 흠뻑 뛴 후 음반의 정체가 이 흥겨움 속에 놓여 있는가 할 때, 무너져 내리는 어두움으로 가격하는 ‘Badluckballad’가 흐르고, 반전되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침한 어조의 ‘도시전설’이 재생된다. 종잡을 수 없는 항해가 쫀쫀하고 쫄깃해 음반 단위 청취의 즐거움을 높이 끌어 올린다.

‘인디 음악’으로 통용되는 오늘날 인디씬에 내 색으로 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살아가고 있다. 긴 시간 공들여 쓴 이 음반으로 한정인은 자신이 독보적으로 맑고 청아한 창법에 뒤통수를 때리는 멜로디로 삶의 양가감정을 노래하는 음악가임을 증명한다. 그 제목도 웅장한 ‘Badluckballad’에서 ‘불행한 미신’에 의해 ‘행운을 불러온다는 미신을 믿는 마음’을 잃게 된 그가 앨범명을 Spells 즉, ‘주문들’로 지은 이 간극을 깨달을 때까지 앨범을 두 손에 꽉 쥐어 보길 추천한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 수록곡 –
1. Extra (Feat. 이이언)
2. Listen and repeat
3. Wallflower
4. Badluckballad
5. 도시전설
6. 차라리
7. Festival
8. Borderline(Feat. 천미지)
9. The boy named luke and the girl named lily(Feat. 김사월)
10. One second time machine (Prod. Piano Shoegazer)
11. 나나의 졸업식
12. 슬픔의 맛(remastered)
13. 하지
14. 묵시록(Feat.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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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30 이권형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서른 번째 주인공은 찰나의 단면을 노래하는 이권형이다.

암막 커튼 친 창작자의 방에서 통기타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느덧 데뷔 11년 차에 접어든 뮤지션 이권형이 음악을 만드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인디 음악’을 좇아 홍대에 발을 들인 그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일터에 나가며 시간을 쪼개 음악을 만든다. 얼마 전 정규 3집 < 창작자의 방 >을 내놓고, 틈틈이 < 인천의 포크 >와 같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음악을 위해 돈을 버는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음악을 “시행착오”, “과정 중에 있다”고 표현했다. 신보를 두고는 “기승전결 없이 딱 본론만 말한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잇기도 했다. 유달리 본인에게 엄격한 그는 순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내면에 아주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뒤집어 이권형의 음악을 다시 소개한다. 문을 열어놓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이권형. 두세 번씩 단어를 골라 정성스레 질문의 답을 이어가던 그와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해서 직접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인디 음악을 듣고 인디 뮤지션을 동경하다 보니 내 음악까지 직접 하게 되었다. (음악) 아직 나 자신이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천을 기반으로 음반을 기획해왔고 최근에 3집 < 창작자의 방 >을 발매한 뮤지션이다.

인디씬 혹은 음악씬의 데뷔는 언제인가?
19살이었던 2011년에 해방촌에서 처음 공연했다. 직접 기획해서 내놓은 공연이니 그때를 데뷔로 보고싶다. 따지고 보면 시작은 ‘바다비’ 등에서 펑크 공연을 보고 펑크 음악을 하던 때이지만 지금 하는 ‘포크’ 음악을 제대로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펑크에서 포크로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당시에는 씬에 진입해 누구든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펑크씬에 들어간 건데 막상 음악을 하다 보니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그럼에도 적은 코드로 음악을 만들고, DIY로 음악을 제작하는 등 포크와의 교차점에 있는 펑크의 태도는 아직도 간직하는 중이다.

10월 7일 발매된 정규 3집 < 창작자의 방 > 역시 정규 2집 < 터무니없는 스텝 >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장난기 어린 가사, 선율 등을 들려줄지 알았다. 막상 열어보니 그때보다 한층 차분해진 인상이 들었다.
3집은 특히 정돈된 방식을 지향했다. DIY로 만들되 조금 더 꼴을 갖추려 했다고나 할까? 2집은 정규라고 하기에 스스로에게도 창피하다. (이유를 물으니) 음반을 발매하고 군대에 가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시기가 늦어졌다. 결국 조금 조급하게 앨범을 묶어내게 됐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 전 과정을 혼자 담당하는가?
1, 2집은 막역한 동료 뮤지션 파제(Pa.je)의 집에서 기타를 녹음하고 작업실에서 마무리했다.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주로 주말에 녹음했는데 체력이 많이 소진됐다. 그러다 보니 3집은 동선도 다 줄이고 내가 혼자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일을 병행하며 짬짬이 음악을 스케치했다. 자다가 일어나서 조금씩 음악을 만든 거다. 그래서인지 음반을 관통하는 서사가 없고 본론만 딱 잘라내 말하는, 기승전결 없는 음반이 완성됐다.

물론 문을 열고 닫는 방식으로 구성한 작품도 있지만, < 창작자의 방 >은 아예 의도적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 오히려 재밌었다. 문을 열어 두고 계속해서 내 얘기를 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읽어주니 고맙다. 처음부터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재로 끌어당겨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록곡 ‘파크라이프’는 내가 쓰다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물과음’에게 의뢰했는데 오후의 공원 풍경을 그린 듯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다듬어주었다.

주로 일상의 어떤 것들을 음악적 소재로 삼는지.
1집이 내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말을 가득 채워 넣는 상당히 ‘포크’스러운 접근법이었다면, 2집과 3집의 방식은 ‘속도감 있게, 소리 나는 대로’에 가까웠다. 나의 말을 음악으로 옮겨 적다 보면 작위적이기도 하고 특별하게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인위적인 곡이 나온다. 그래서 이번에는 손 가는 대로 스케치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상을 지나쳐가는 모든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권형은 자신의 음악을 음반으로 묶어내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인 것 같다.
음악을 하게 만드는 동기는 앨범이라는 꼴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 어떤 기록으로 남는지가 또 중요하다. 대중적인 성과를 바란 것은 아니기에 앨범을 만드는 그 과정 자체가 내게는 참 중요하다.

3집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 창작자의 방 >이라는 음반 명은 어떻게 짓게 된 것인가?
앨범의 전체적인 방향성은 아트워크를 담당한 이려진 작가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대충 스케치한 것 같은데 그려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이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속도와 분위기가 음악에서도 풍기길 바랐다. 이 그림의 제목이 ‘창작자의 방’이다. 방에서 녹음하고 주변 소음, 오토바이 소리가 담긴 이번 신보의 작업 방식과 테마와도 맞아서 앨범을 < 창작자의 방 >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랑에 관한 짧은 스케치’를 들으며 감정 고조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 느꼈다.
1집 < 교회가 있는 풍경 >을 발매할 땐 어떻게든 내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애썼다. 내 커리어중 가장 다이내믹한 작품일 거다. ‘테이크 아웃 드로잉’ 등 젠트리피케이션 활동을 하며 내가 많이 변했다.

어떤 소재를 다루고 이야기할 때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을 절제하게 됐다고 할까?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감정 고조를 느끼지 못할 때도 많아졌고. 기승전결이 없는 음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이고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다 보니 음악에도 자연스레 나타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동료 뮤지션 예람, 천용성과 함께 한 ‘석촌호수’는 굉장히 메이저 지향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이 타이틀보다 더 좋다. 하하하. 후렴구 정도만 완성했을 때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게 작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맡겨 봐야지 정도 밑그림을 그렸었다. 막상 예람, 천용성에게 받은 부분을 합쳐보니까 더 재밌게 결과물이 나왔다. 플레이어보다 기획자 입장으로 접근한 곡이기도 하다.

이번 음반에서 제일 공들였거나, 혹은 듣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는지?
‘커피 토크’. 다른 수록곡과 코드를 다르게 접근했는데 제일 깔끔하면서도 독특하게 완성됐다. ‘경기도민 되기’도 추천하고 싶지만 어쩐지 부끄럽다.

‘경기도민 되기’는 <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에서 공개한 곡으로 알고 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인위적인 감이 있다. 이 곡을 만들 때 여러 개가 겹쳤다. 하나는 음반을 함께 만든 사람들의 주제가 비슷한 곡으로 < 인천평화창작가요제 > 공모에 제출하고자 만들게 된 노래다. 또 하나는 강남에서 경기도민들이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무표정한 모습이 ‘송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바치는 장송곡 콘셉트로 노래를 썼다.

< 창작자의 방 > 음반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그리고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만든 앨범이라는 게 내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혹은 일상에서 음반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리스너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렇게 계속 음악을 하면 될 수 있다는 ‘인디 음악 가이드’라고도 생각한다.

그럼 이 음악은 대중보다는 창작자들에게 다가가는 음반인가?
그렇다. 동료 창작자, 인디씬에서 순수하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또한 특히 3집은 제대 후에 빨리 완성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작업한 음반이기도 하다. 그래야 그다음도 있을 것 같았다고나 할까?

인천 지역 신문에 꾸준히 기고하는 칼럼도 그렇게 음악에서도 인천 출신이라는 것이 많이 소환된다고 느껴진다. 음악 안에 지역의 정체성을 묻어나도록 노력하는 편인가?
종종 펀딩 지원사업을 받기 때문에 요구받는 것과 음악의 합의점을 뽑아내고자 한다. 음악에 인천과 지역을 거는 것은 약간의 낚시, 유인책, 그리고 ‘이스터에그’ 정도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음악에 친밀감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출신 지역을 걸어 두었지만 안에 담긴 내용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가는 경우도 많다.

‘찐 음악가’. 음악 하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끔 저축하고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음악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음악을 하며 주위 사람들도 만나고 일상과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중요한 것 같다.

이권형을 음악으로 이끈 내 인생의 뮤지션, 앨범이 있다면?
이장혁 2집 < 이장혁 Vol.2 >. 한창 곡을 쓸 때 발매가 됐고 감명을 많이 받았다. 그때 이장혁 님이 하신 작은 카페 공연 ‘다방 투어’를 따라다니며 처음 맛있는 커피도 먹어보고 이렇게 간단하게 공연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들도 배웠다.

2011년을 데뷔라고 치면 벌써 11년 차 가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인천에 사는, 인천 출신의 뮤지션들이 합작한 < 인천의 포크 > 트릴로지의 마지막 컴필레이션 < 모두의 동요 >를 완성했을 때다. 당시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고 이제 내 음악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최근에 동료 뮤지션 파제가 운영하는 ‘카페 륙’에서 했던 페스티벌을 뽑고 싶다. 그때 모인 사람들이 < 인천의 포크 >에 참여한 뮤지션들이었고, 마침 내 생일이기도 하고 해서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 인천의 포크 >가 아니었다면 굉장히 외롭게 음악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았다. 지금 음반을 만들 때도 그들에게 들려주려,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이 들 만큼 말이다.

진행: 박수진, 손민현, 정다열
정리: 박수진, 손민현
사진: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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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Teen Troubles'(2022)

평가: 3/5

2008년, 어느 날 갑자기 인디씬에 등장한 검정치마는 데뷔작 < 201 >의 수록곡 ’강아지’에서 ‘시간은 29에서 정지할 거야 라고 친구들이 그랬어 / 오 나도 알고 있지만 내가 19살 때도 난 20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2022년, 스스로 ‘사랑 3부작’이라 이름 붙인 < TEAM BABY >(2017), < THIRSTY >(2019)를 지나 당도한 마지막 연작 < Teen Troubles >에서 그는 다시 과거를 소재로 택한다. 작품은 1999년 인간 조휴일이 17살이던 때로 돌아간다. 첫 곡 ‘Flying bobs’의 내레이션 ‘난 그저 열일곱을 살던 중이었어요 / 귀가 찢어질 듯 매미가 울던 1999년의 여름 밤’이 음반이 소환한 그때 그 시절이다.

그가 정리한 사랑의 종착은 보통의 보편적 사랑 < TEAM BABY >, 부정의 오도한 사랑 < THIRSTY >을 거쳐 젊은 날의 나에게로 향한다. 다시 표현하면 조휴일의 사랑 이야기는 ‘젊음’ 그리고 ‘나’로 매듭지어진다. 특히 < THIRSTY >에 강하게 묻어 있던 가상의, 상상을 덧댄 노랫말에서 보다 순도 높게 ‘나’를 바라본 이번 작품은 그렇기 때문에 더 ‘검정치마스럽다’. < 201 > 때도, 정규 2집 <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 때도 그의 음악은 명백히 화자인 나를 드러냈다. 그래서일까. 신보에는 ‘젊음’과 ‘사랑’과 ‘그 시절의 향수’를 능숙하고 투박하게 저울질하는 검정치마의 강점이 잘 담겨있다.

이를 증명하는 건 ‘Flying bobs’에서 ‘매미들’로 이어지는 앞부분의 수록곡이다. 업 템포로 폭발하는 검정치마 표 록의 진수를 보여주는 ‘불세례’는 ‘오늘은 너의 세상이 부서지는 날이야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춤과 노래는 갑자기 멈춰버렸고’ 외치며 식어가는 청춘을 그린다. 색소폰 선율로 감정을 끓게 하는 ‘어린양’,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데뷔 초를 떠올리게 하는 ‘Sunday girl’까지. 아니, 계단에서 40oz (알코올을) 하나씩 때려 박는다는 ‘Friends in bed’, 주문처럼 ‘밝고 짧게 타올라라’는 외침으로 치기 어린 젊음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매미들’까지 음반의 시작부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무뚝뚝하고 시크한 조휴일스러움이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은 그가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룰 때부터이다. ‘우리가 알던 여자애는 돈만 쥐여주면 태워주는 차가 됐고 /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가 되려나 봐 손을 댈 수 없게 자꾸 뜨거워’(‘강아지’), ‘나는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러 / 시집이나 보면서 뒹굴어 / 아가씨’(‘음악하는 여자’), ‘더러워질 대로 더러운 영혼 / 내 여자는 어딘가에서 울고 / 넌 내가 좋아하는 천박한 계집아이’(‘빨간 나를’) 등 전체 커리어 퍼져있던 솔직함(혹은 발칙함)으로 포장된 여성 비하적인 비유, 표현 등이 신보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은 그가 ‘John fry’에서 ‘통통한 손이 내 바지로 들어와 / 근데 니 생각이 났어 / 참 이상한 날이야’라며 야릇하게 사랑을 노래하거나, ‘Garden state dreamers’에서 ‘열일곱 내 생일을 막 지나서 나쁜 걸 좋아하게 됐을 때 / 그녀는 슬로우 머신처럼 날 다스렸고’하며 일면 과감하고 섹슈얼하게 속 얘기를 꺼내는 것과 명백히 분리, 단절된 문제이다. 조휴일이 소환하는 ‘사랑’은 늘 같은 표현과 비유, 통속적인 클리셰의 반복에서 피어난다. 사랑은 늘 ‘뜨겁게’ 몸과 마음을 달구고(‘Power blue’), ‘예술가’는 늘 여성의 마음을 빼앗는다(‘99%’). (그리고 그것을 은근하게 비하한다). 달아오른 화자를 ‘개’, ‘강아지’에 빗대는 비유 역시 마찬가지.

음반의 구성력, 선율의 흡입력 등으로 무장했지만 표현력이 제동을 건다. 더 정확하게 그 표현은 그가 이성 간의 사랑을 다룰 때 청자를 멈칫거리게 한다. 즐길 수밖에 없는 사운드, 내 청춘의 한 가운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과감하고 직접적인 개인 서사 앞에서 끝끝내 검정치마 음악의 한계점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후반부 ‘Ling ling’, ‘Our summer’가 17살 조휴일의 개인적인 회고에서 시작한 이 음반을 보다 범대중적인 ‘청춘에 대한 회고록’으로 끌어올릴 만큼 두꺼운 힘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몰입,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 역시 분명하다. 같은 방식으로 그려지는 어떤 사랑의 묘사가 점점 더 검정치마의 음악을 얇고 묽게 짓누른다.

– 수록곡 –
1. Flying Bobs
2. Baptized In Fire (불세례)
3. 어린양 (My Little Lambs)
4. Sunday Girl
5. Friends In Bed
6. Cicadas (매미들)
7. Garden State Dreamers
8. Follow You (따라갈래)
9. Jersey Girl
10. Love You The Same
11. Powder Blue
12. Electra
13. Min (미는남자)
14. Jeff & Alana
15. Ling Ling
16. John Fry
17. 99%
18. Our Own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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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녘 ‘새빛깔'(2022)

평가: 3.5/5

김새녘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은 나른한 기타 톤과 빼곡히 써 내려간 가사, 그리고 목소리다. 써놓고 보니 훌륭한 음악이 공통으로 지닌 요소들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첫 번째 음반 < 새빛깔 >은 자꾸만 묻고 싶은 것들을 만든다. 음악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새벽’과 활동명 ‘새녘’ 사이 의도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지. 기쁜 사랑보다는 슬픈 사랑을 풀어가는 각 수록곡은 어떤 상황에서 쓰인 것인지 등등. ‘새’로운 ‘빛깔’, 아니 ‘새’녘의 ‘빛’나는 색’깔’을 담은 작품은 이처럼 듣는 쪽에서 질문을 쏟아내게 할 만큼, 좋다.

‘좋다’는 감상은 새로움 속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독특하거나 새롭지 않다. 이를테면 ‘가느다란 사랑 하자며 / 나를 쫓아 따라오지 말아요 /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 같은 생각 나눌 수도 없어요’ 인상적인 노랫말로 문을 여는 ‘싫증’은 밴드 쏜애플의 멜랑꼴리함을 닮았고, 힘없는 보컬과 탱탱한 일렉트릭 기타 선율로 곡 흐름의 강약을 조절하는 끝 곡 ‘알람’은 신해경, 검정치마 음악과 같은 선로를 달리는 식이다. 새로움은 없지만 분명 ‘내 것’인 덕에 익숙함과 편안함이란 강점을 가졌다. 또한, 조급함 없이 ‘내 이야기’를 풀어낸 점 역시 완성도를 높인다.

6개의 트랙은 흥분하지 않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부유하는 일렉트릭 기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드럼 비트로 골격을 다진 비슷한 구성 사이 매 곡이 선명한 힘을 가진다. 특별히 색 강한 사운드 소스를 쓰지 않아 호흡이 늘어질 수도 있었지만, 앨범은 그 인과관계에서 벗어난다. 힘 있는 메시지와 완급조절의 맛이 살아있다. 김새녘표 사이키델릭. 지는 계절 속 슬픈 나를 회상하는 ‘Floor Flower’,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너의 이기심이야’ 비난하는 ‘갈증’ 등 앨범에는 꾹꾹 눌러 쓴 기억, 추억, 시간, 순간의 편린이 살아 숨 쉰다.

그를 ‘무드 메이커’라고 칭하고 싶다. < 새빛깔 >은 저마다의 감정 속으로 듣는 이를 떨어뜨린다. 혹자는 그 이유를 음악 앞에 ‘드림팝’이란 수식을 붙여 설명하려 들겠지만, 장르의 구분을 떠나 그저 쉽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작품이다. ‘나는 / 이런 / 오직 / 이런 / 다툼 / 그만 / 너와 / 하고 싶어’ 노래하는 ‘고집’과 ‘날 버리기 전에 다시금 떠올려봐요’ 붙잡는 ‘의심’ 사이 누군가는 또 어떤 기억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24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쓰거나 달지 않게 되묻는 사랑 노래가 흐르고 때에 맞춰 각자의 (히)스토리가 퍼져나간다.

– 수록곡 –
1. 고집
2. 싫증 
3. 의심
4. Floor Flower
5. 갈증 
6. 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