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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일 ‘Psalms’ (2021)

평가: 4/5

음악인 동시에 언어이고, 노래이지만 절규이며, 비극이자 눈물이다. 수많은 민중이 겪어낸 시대의 고통과 그 잔해, 빗발치는 총성에도 소리내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의 아우성.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약 30년이 흐른 지금 정재일의 < Psalms >에서 다시 한번 재현된다. 21곡이라는 방대한 수록곡 안에서 우리는 그때의 슬픔을 귀로 듣고, 소리로 느낀다.

앨범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년에 헌정하는 음악 ‘내 정은 청산이오’에 이어 장민승 작가와 함께한 시청각 프로젝트 ‘둥글게 둥글게(round and around)’에서부터 시작됐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거쳐,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아카이빙한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음악을 재구성한 것. 2020년의 정재일은 5.18의 현장에 철저히 뛰어들었으며, 이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기 위해 외면하고 싶은 역사를 기꺼이 용기 내 마주했다. 그렇게 태어난 < Psalms >는 ‘둥글게 둥글게(round and around)’와 달리 오롯이 ‘듣는 것’을 위한 결과물이나, 놀랍게도 상처의 파편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쓰라린 경험을 선사한다.

앨범의 흐름을 주도하는 건 시편의 기도문이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책인 시편은 찬양, 기쁨, 좌절, 희망, 복수 등 다양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는 ‘좌절’에 집중한다.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편 22:21)’라는 비극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시편 26:10)’라는 정권을 향한 증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편 10:1)’라는 신에 대한 원망.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시편 38:6)’는 무기력한 절망까지. 당시의 처참한 심상을 시편(Psalms)을 통해 반추한다.

시편의 장과 절에 기반한 노래들은 합창단의 아카펠라와 정은혜의 구음(구강으로 기류만 통하게 하여 내는 소리)으로 구현된다. 노랫말은 희미하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구체적인 가사를 전달하기보다는 만트라처럼 계속해서 욀 수 있는 음악”이라는 취지 때문이다. 라틴어 기도를 차용해 알아듣기 어려운 노랫말과 울부짖음에 가까운 정은혜의 구음이 만나,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과거의 아픔을 극대화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소리는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를 거친 손길로 쓰다듬고, 또 위로한다.

긴 러닝타임 속에서도 뚜렷한 서사를 지니고 있다. 절제된 아카펠라 ‘26.9’로 시작해 처절한 울부짖음과 꺽꺽대는 고통의 신음으로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드는 ‘be not depart from me’, 일렉트로닉의 굉음으로 암담한 공포의 현장이 연상되는 ‘Why do you stand afar’. 비극 속의 고요 ‘before the face of my foolishness’는 모두가 죽고 난 뒤의 난 뒤의 허탈함이 황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모든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는 ‘memorare’는 앨범의 절정이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메모라레(memorare)’의 노랫말이 노래 내내 반복되며, 현악기의 웅장함이 그날의 사건을 다시금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 앨범은 뒤틀린 역사의 기록이자 뼈아픈 기억의 산물이다. 수없이 들어온 과거의 아픔이 다양한 형태의 소리를 통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정재일은 듣는 음악을 넘어 보이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가 5.18을 기억하는 방법, 그날이 기록된 걸작이 탄생했다.

-수록곡-

1. 26.9
2. 22.21
3. 26.10
4. Be not depart from me
5. 10.1
6. Why do you stand afar
7. 6.7
8. Before the face of my foolishness
9. 30.10
10. 38.6
11. Remember
12. His days are like a passing shadow
13. 89.48 I
14. 144.4
15. 89.48 II
16. How brief life is
17. 38.22
18. 34.21
19. 38.8
20. Memorare
21. How frail the sons of man you have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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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릴고트 ‘죽을힘을 다하여’ (2021)

평가: 3.5/5

아우릴고트가 자리한 작은 공간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2020년 8월 첫 번째 정규 <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 > 이후 6개월여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 죽을힘을 다하여 >는 곰팡이 속에서 피어난 처절한 생존 일지이며, 적어 내려가는 그의 펜촉은 미세한 흔적도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해 먼지 한 톨 털어낼 여유가 없다.

타인이 아닌 오로지 자신을 세상에 남기려는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직관적인 제목 아래 어두운 트랩 비트 위 의도적으로 긁는 목소리가 늘어뜨리는 가사엔 목표를 두고 가장 밑바닥부터 기어오른 아우릴고트의 손톱자국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뚜렷하게 파트를 나누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인공’을 시작으로 성공이란 단 하나의 이유가 더 깊게 앨범을 파고든다.

그런 점에서 아우릴고트의 승리 공식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현실의 벽은 안 피해 / 아직도 여전하게 난 깨’란 말처럼 그에게 현재는 탓할 대상이 아니며, 고난의 벽을 부수기 위한 유일한 주체는 ‘바닥에서부터’ ‘죽을힘을 다해’ 묵묵히 ‘행동’하는 그여야만 한다. 배고팠던 과거를 양분 삼아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가능한 선언이다.

완벽하게 빚어내지 않고 음악으로써 작동하는 그의 문장은 운율을 살리기 위해 삭제 혹은 배열의 과정을 거친다. ‘계절 변했고 나이를 먹어’ ‘현실 인지 못 해 온통’ 등 조사의 생략과 ‘필요 없어 유치한 논쟁 / 바퀴를 굴려 없어 공백’의 도치법으로 리듬감을 다지며 이는 훅을 만들어내는 능력과도 연결된다. ‘한 번 사는 생’의 ‘하다 말아 죄다 컨셉 / 즈려밟고 가 난 벌레’를 비롯해 이어지는 2음절 혹은 3음절 단어를 단락 마지막에 배치하는 고전적인 작법은 아우릴고트 특유의 톤과 뭉개지는 발음과 어우러져 고유해진다.

앨범의 일관된 기조로 수록곡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악착같이’에선 싱잉으로 후렴구를 표현하고, ‘시간은 금’의 불투명하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더 거친 음색을 선보이는 ‘버프’ 등 다양한 방식과 호미들, 릴러말즈, 제네 더 질라, 이그니토란 수준 높은 참여진으로 신선도를 유지한다. 편곡을 넘어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직접 주도한 아우릴고트의 프로듀싱이 돋보인다.

짧은 활동 기간이 믿기지 않는 필모그래피다. 목적에 대한 순수한 열망은 다작이란 노력으로 발현되며 그 결과물에 대한 설득력을 뒷받침하는 건 온전한 그의 재능이다. < 죽을힘을 다하여 >란 아우릴고트의 바른 몸가짐이 허황을 좇는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수록곡-
1. 주인공
2. 진저리 (Feat. 릴러말즈, 제네 더 질라)
3. 바닥에서부터
4. 악착같이 (Feat. 호미들)
5. 처방책
6. 한 번 사는 생
7. 죽을힘을 다하여
8. 단독 (Feat. IGNITO (이그니토))
9. 무덤덤
10. 시간은 금
11. 행동
12. 버프 (Feat. Dbo (디보))
13. 목표로 빼곡한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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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아 ‘우리의 방식'(2021)

평가: 3/5

최근 여성 뮤지션들의 약진은 주로 인디 신에서 돋보였다.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던 정밀아와 김사월이 양질의 앨범을 선보였고, 민수, 문선 같은 신인 인디 뮤지션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백지영, 린, 다비치 등 발라더가 주름잡던 2000년대 초, 중반과 달리 지금 음악 신의 흐름은 뒤바뀌고 있다. 이러한 동향 속에서 발라드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는 권진아의 행보는 유독 돋보인다.

권진아의 중심은 바깥이 아닌 안을 향한다. 세상이 향하고 있는 방향, 대중이 원하는 음악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집중한다. 타고난 보편적 음악성이 대중을 사로잡으면서도, 동시에 큰 히트를 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여러 유행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고집 있게 자신의 정체성인 발라드와 알앤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정체는 2019년에 발매한 정규앨범 < 나의 모양 >.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발라드가 수록곡 대부분을 차지했다. < 우리의 방식 >은 그 스타일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하며 본인의 색깔을 명확히 짚고자 한다.

조금 더 뚜렷해지고, 조금 더 깊어졌다.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브리티시 록 기반의 ‘우리의 방식’은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노래한다. ‘잘 가’는 토이(Toy)가 그랬던 것처럼 장면을 연상시키는 노랫말이 인상 깊다. 안테나 작곡가인 서동환이 편곡을 맡아 매끈하게 다듬어진 웰 메이드 발라드를 완성한다. ‘어른처럼’의 파트너를 죠지로 택한 것도 탁월하다. 둘의 절제된 알앤비 보컬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감정을 담담하게 마주한다.

음반의 의미는 ‘자생의 능력’에 있다. 소속사의 신뢰를 지지대 삼아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펼치며, 유행에 올라타지 않고 굳건히 영역을 지킨다는 것이다. 권진아의 흔들림 없는 행보는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색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태어난 < 우리의 방식 >은 그 어떤 앨범보다도 ‘권진아스러운’ 음반이 되었다.

– 수록곡 –
1. 우리의 방식 
2. 잘가

3. 꽃말
4. You already have
5. 어른처럼 (With. 죠지) 
6.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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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아 ‘더 궁금할 게 없는 세상에서’ (2021)

평가: 3/5

이설아의 음악은 보편적이지 않다. 오리엔탈 무드의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와 장엄한 편곡이 돋보이던 ‘시간의 끈’ 등 다소 난해하던 첫 번째 미니앨범 <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 ‘말’에 대한 단상을 한없이 느린 템포로 노래하던 < 못다한 말들, Part. 1 >까지. 리듬에 몸을 맡기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노랫말을 미처 흡수하지도 못한 채 음악은 단지 유유히 흘러간다. 철저히 비(非)대중의 지점에 서 있는 그의 음악,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삶’이다.

품어내는 삶과 사랑의 폭이 넓다. ‘그대 인해 나의 슬픔은 도망갔지만 그댄 나의 가장 큰 슬픔이 되었어요'(있지)의 대상은 이성을 향하는 연애 감정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사랑에 가깝고, ‘허튼 생각은 그만하고 / 우리 이렇게 웃고 / 우는 시간 여한이 없다 / 지금 이대로 그냥 살아주라'(집28)는 삶에 대한 간절한 애원은 가지런한 낱말로 치장되지 않았다. 감정에 접근하는 태도는 거침이 없고 그래서 더 묵직하다.

이설아의 이야기는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곡을 쓰는 것부터 프로듀싱까지 모든 과정이 이설아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었다. 음악적 완성도와 메시지 모두 출중하다. 단출한 미니앨범 형식 안에 폭넓은 짜임새를 구성했다는 점. 앨범 설명에서 예고했듯 외로움과 희망의 발견,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과 마침내 반짝이는 것들에 도달하기까지 다양한 구성으로 극의 전환을 유도한다. 노랫말 없이 피아노 연주로만 진행되는 연주곡 ‘고립’, ‘사랑의 모양’과 동양의 멜로디가 돋보이는 ‘보물찾기’, 그리고 잠잠하게 흘러가는 ‘있지’와 ‘집28’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서사를 그려낸다. 하나의 수필집과 같다.

이는 몰입도로 이어진다. 1분가량의 짧은 곡부터 5분에 달하는 긴 길이의 곡이 혼재하지만 유연한 진행으로 앨범 단위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앨범 전반을 지배하는 주된 정서는 외로움이다. 자욱한 피아노 페달 소리가 삐거덕거리는 ‘고립’은 날 것의 질감으로 ‘오늘 하늘엔 별이 없’다는 쓸쓸함을 내뱉는다.

뭉근한 아날로그 패드 사운드로 곡과 곡 사이를 이어낸 ‘보물찾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민요스러운 멜로디와 노랫말(‘먼 길을 돌아 이곳에 오신 줄을 압니다’)은 없던 과거의 향수까지 불러오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대중에게는 낯설지만, 이설아에게 전혀 새롭기만 한 작법은 아니다. 그의 첫 싱글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도 오리엔탈 성향을 빌려왔다. 그가 좇는 것이 확실히 대중성은 아님을 방증하는 대목.

잘 짜인 곡의 구성과는 별개로 연주곡 등 동양적 스타일의 곡들이 대중에게 낯선 것은 당연하기에 소구력 또한 배제된다. 그럼에도 꾸준하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에서의 금상 수상도, < K팝 스타 >에서의 굵직했던 주목도, 과거의 영광과는 무관히 그의 음악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설아이기에 설명 가능한 이설아만의 앨범.

-수록곡-
1. 고립 
2. 보물찾기 

3. 빠바바
4. 사랑의 모양
5. 있지 
6. 집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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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피(ESP) ‘ESP'(2021)

평가: 3/5

기이하다. 한국과 서양의 악기가 결합한 많은 음악 중에서도 이 음반은 악센트를 강하게 주지 않는다. 2017년 미국의 인기 유튜브 채널 < 엔피알 뮤직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Music Tiny Dest Concert) >에 출연하며 큰 관심을 받은 씽씽을 비롯해 추다혜차지스, 잠비나이, 고래야, 악단광칠, 이희문이 만든 오방신과(OBSG), 그리고 최근 ‘범 내려온다’로 인기를 끈 밴드 이날치까지. 많은 퓨전 국악 그룹들이 사랑받았다. 대부분 한국인의 댄스 디엔에이를 가감 없이 저격하는 ‘뽕삘’을 내세웠다. 그렇지 않으면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의 강렬함을 배합해 거친 사운드를 쏟아냈다. 음악의 폭이 넓어졌으며 선율이 선명해졌다. 그만큼 대중에게 다가갈 지점이 생겨난 것이다.

자신을 ‘모던 가야그머’라 부르는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전자 음악 프로듀서 이상진이 만나 ESP를 꾸렸다. ESP는 Electronic Sanjo Project의 준말. 한국 전통 기악 독주곡인 산조와 전자음악이 만났음을 이름부터 내비친다. 보컬 없이 악기의 부딪힘으로만 이루어진 연주곡으로 전반을 채웠다. 쨍하고 화려한 색감보단 흑백의 무채색이 어울리는, 반복적이고 몽롱한 트랜스(Trance)가 이들의 핵심. 무언가에 취한 듯 지독하게 길어지는 ‘The whimori’, 머릿곡 ‘Gaya DNA’ 등 수록곡의 몇 곡만 만나도 그룹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레트로, 뽕삘 사운드를 가미했다는 설명이 적혀있긴 하지만 그 특징이 잘 살진 않는다. 오히려 ‘Electro chemical’에서 살짝 우회해 선보이는 흔히 말하는 ‘까까류’의 EDM 즉, 2010년대 초반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사운드 소스를 사용해 변주한 지점이 더 귀에 들어온다. 시류를 반영한 ‘Pandemic’은 영화 < 매트릭스 >시리즈에 넣어도 손색없을 만큼 4/4박자 하우스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고 ‘밤 산책’은 서정적인 가야금의 음색이 이야기를 품은 듯한 멜로디와 잘 맞아떨어져 귀 기울이게 한다. 조급함이 없고 그리하여 묵직하게 끌어가는 두 연주자의 호흡 역시 특기할 만하다. 조금 더 강하게 치고 기세를 몰고 갈 법도 한데 멈춘다. 전체의 무게중심 맞추기를 위한 과정으로 느껴진다.

이 절제가 음반의 ‘더하기’이자 ‘빼기’다. 이제는 익숙해진 국악과 서양 악기의 만남이지만 이를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분위기로 풀어냈다. 다 같이 뛰어 보자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 수 있는 침착한 리듬의 반복. 분명 새롭고 일면 신선하다. 하지만 중심 악기가 가야금으로만 이뤄진 상황에서 힘이 빠지기도 한다. 특히 ‘모던 휘모리’, ‘골방환상곡’, ‘Raindrops’으로 이뤄지는 후반부, 곡사이 기조의 반복이 들린다. 한정된 재료로 비슷한 질감을 뽑아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룹의 특징이 동전의 양면처럼 허와 실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럼에도 매력적이다. 적어도 ESP가 원했던 방향으로 첫발을 뗐다. 여러 면에서 색다른 퓨전 국악 밴드.

– 수록곡 –
1. Gaya DNA
2. The whimori
3. Electro chemical
4. Urban Noise
5. Pandemic
6. 밤 산책

7. 모던 휘모리
8. 골방환상곡
9. Raindro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