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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웬티 포 케이 골든, 릴 테카(24KGoldn, Lil Tecca) ‘Prada’ (2021)

평가: 3/5

떠오르는 신예 래퍼가 돌아왔다. 작년 틱톡의 혜택을 받은 ‘Mood’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주인공이 된 2000년생 신인 트웬티 포 케이 골든(24kgoldn)의 신곡이다. 너드 래퍼로 유명한 릴 테카를 피쳐링으로 낙점했다. 올해 초 발매한 정규 앨범 < El Dorado >를 조국에서 50만 장 팔아치우며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에서 골드 인증을 받은 데에 이어 또 한 명의 유망주와 함께 자신이 원 히트 원더가 아님을 입증하고자 한다. 

소재는 돈 자랑이다. ‘Mood’가 로맨스와 권태를 주제로 한 것과 내용의 측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얼개는 비슷하다. 중독성 강한 후렴이 귀를 사로잡고 비슷한 리듬의 벌스가 채워진 뒤 2절에서 힘껏 목을 긁어 싱잉을 전달한다. 잘 들리는 훅(Hook)에서 오는 흡인력이 강하다. 히트 이상의 개성은 모호할지라도, 제법 괜찮은 곡을 쓸 줄 아는 뮤지션임은 톡톡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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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돌풍 속 대중음악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 레디 플레이어 원 >은 모든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람들이 신음하는 2045년 지구, 척박한 일상 속 가상 세계 ‘오아시스’만이 피난처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게임에 참가하며, 고전 영화를 배경으로 한 퀘스트와 대중문화 속 전설적인 캐릭터를 만나는 등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허물고 비로소 모두의 꿈을 실현하는 인류의 새로운 생태계, ‘메타버스(Metaverse)’다.

먼 미래처럼 보이던 모습이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는 이미 금융, 의료, 교육 등 사회 다방면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뜨겁게 동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2’로 애플의 초기 아이폰과 맞먹는 판매량을 기록한 페이스북과 하이엔드 VR 헤드셋을 발표할 예정인 애플, 그 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도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기 위해 저마다 발 빨리 움직이고 있다.

메타버스가 새 시대의 문명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핵심이 ‘콘텐츠’에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최첨단 기술을 겸비해도 그 속에 즐길 거리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이야기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의 성패도 참신한 놀잇거리가 있는지에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음악계 역시 이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 너머의 광활한 땅을 맞아 조금씩 시류에 탑승하고 있는 국내외 팝 신의 면면을 살펴본다.

에스파, 무한한 가상 세계의 광야로

K팝 신에 화끈한 신기술의 돌풍이 인다. 2020년 11월 ‘Black mamba’로 데뷔한 에스파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월 ‘Next level’로 공개 32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하며 매서운 기세를 입증했다. 국내 음원 사이트 정상에 안착하는 것은 물론 독특한 팔 꺾기 ‘디귿 춤’은 각종 SNS에서도 유행했다. ‘Next level’은 이렇게 끝난다. “Next level /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그룹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장대한 이상을 그려가는 기획사의 미래관까지 압축한 한 줄이다.

에스파는 현재로서 K팝이 다다른 세계관의 절정이다. 인원 구성부터 독특하다. 실제 멤버 네 명에 그들의 분신 넷이 공존한다. 개인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제공된 데이터로 설계된 각 멤버의 아바타들이다. ‘싱크(Synk)’를 통해 이들과 교감하고 그를 방해하는 악당의 존재를 찾아 가상의 땅 ‘광야’로 떠나는 등 그 스토리도 장대하다. 어느 순간 멤버들과 교차되고 무대 위에서 직접 춤추기도 하는 아바타. ‘삶의 기록’을 뜻하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과 ‘가상 세계’ 메타버스를 결합했고 이를 뒤받치는 건 최첨단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이다.

SM은 세계관을 음악에 한정하지 않겠다는 야심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 SM 콩그레스 2021에서 ‘음악을 기반으로 이전에 없던 경험을 만들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모션 그래픽, 아바타, 소설의 앞글자를 딴 ‘CAWMAN’을 자사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콘텐츠가 디지털 세상에서 팬들을 통해 확장해 가수와 대중이 그 속에서 호흡할 것이라는 귀띔이다. K팝 산업 최전선에 선 SMCU의 미래, 그 중심에 메타버스가 있다.

새 시대의 콘서트 컬쳐,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

팬데믹으로 부닥친 일상 구금은 공연 업계에 큰 타격이었다. 가수는 무대 뒤에서 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메타버스가 대중음악계에 관심사로 급부상한 것도 사실 이런 사정에서였다. 메타버스는 멈춰버린, 그리고 앞으로 크게 바뀔 콘서트 업계에 방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게임 산업이었다.

미국의 에픽게임즈가 제작한 ‘포트나이트’는 온라인 게임에서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로 거듭난 플랫폼이다. 지난해 4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이곳에서 가상 공연을 펼쳐 큰 화제를 모았다. 2,770만 명의 관객, 200억 원이 넘는 수익으로 오프라인 공연보다 더 많은 돈을 번 대규모 쇼였다. 방탄소년단도 ‘Dynamite’의 새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에서 최초 공개했고, 올해 8월에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리프트 투어’로 유행의 열기를 이어갔다.

월간 사용자 수 1억5000만 명에 달하는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작년 래퍼 릴 나스 엑스는 로블록스 내에서 물리 기반 렌더링, 안면 인식 기술 등을 앞세운 빼어난 몰입감의 가상 공연으로 3,600만 명의 접속자를 모았다. 이 밖에도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콘서트에서는 밴드를 콘셉트로 한 미니 게임과 퀘스트도 펼쳐졌다.

로블록스는 대형 음반사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기업이기도 하다. 연초 워너 뮤직에 5억 2천만 달러를 투자받은 데에 이어 7월에는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더 많은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로블록스 안에서 울려 퍼질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K팝 팬들의 새로운 소통 창구

미국에 로블록스가 있다면 한국에도 이에 뒤처지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개발한 제페토다. 증강현실 기반의 3차원 아바타 플랫폼이자 글로벌 10대들에게 하나의 소셜 미디어 앱으로 자리매김한 서비스로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유저가 뛰어놀고 있는 새 시대의 놀이터다.

제페토는 K팝 신과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회사는 YG엔터테인먼트다. 지난해 9월 블랙핑크는 제페토에서 멤버들의 아바타를 앞세운 가상 팬 사인회를 개최해 4,600만 명의 세계 팬을 끌어모았다.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현한 ‘블핑하우스’는 연일 팬들이 사진을 찍고 춤을 추는 ‘블링크(BLINK)’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기존에 있던 단상에 가수의 아바타를 올려놓은 것은 비교적 간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자체적인 온라인 팬 플랫폼 제작에도 열성을 다한다. 재작년 하이브는 팬 커뮤니티 서비스 ‘위버스’를 론칭해 팬과 가수의 다양한 교류 방식을 하나의 채널에 취합하는 전략을 펼쳤다.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가 카카오 산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합작한 ‘유니버스’도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팬들은 아티스트의 아바타를 코디하거나 직접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메타버스가 선사한 K팝 신 스타와 팬들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다.

다시 음악을 소장하는 시대로? NFT를 만나다

메타버스가 일상에 고착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시장과의 연결이다. 가상 세계가 가상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과 상호운용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수익 모델을 창출해 판매하고 화폐를 벌어들이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이에 최근 몇 년 사이 가상자산 N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소유권, 판매 이력 등의 정보가 블록체인에 저장되어 위조가 불가능하고, 각각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인식 값이 부여되어 대체 역시 불가능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대중음악계에도 NFT를 활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Blinding Lights’의 스타 위켄드는 예술 경매 플랫폼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에서 낙찰자만 소유할 수 있는 미공개 음원을 판매했다. 수익은 229만 달러(한화 약 26억 원)였다. 이 밖에도 린제이 로한, 미국 밴드 킹스 오브 리온, DJ 저스틴 블라우도 앨범 발매에 NFT를 적용했다. 음원 스트리밍이 절대적인 음악 청취 방식이 된 지금 다시 과거처럼 노래를 개인이 소장하는 형국이 도래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K팝 산업의 발걸음도 바쁘다. JYP엔터테인먼트는 7월 블록체인 업체 두나무와 NFT 플랫폼 사업을 위한 업무 제휴를 맺었다. 국내에서는 산업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최초 기획사다. 보이그룹 에이스는 4월 미국 블록체인 플랫폼 왁스(WAX)를 통해 멤버들의 사진 등이 담긴 굿즈를 선보였다. 가수뿐만 아니라 인플루언서, 화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품을 다루는 K컬쳐 전문 NFT 마켓 플레이스 스노우닥도 등장했다.

NFT 시스템은 가수와 팬 모두에게 윈윈(win-win) 될 수 있다. 아티스트는 무분별한 복제를 막아 창작물의 희소성을 지킬 수 있고,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독점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아 대중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투기성 거래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고민해볼 만하다. 대중음악계와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체적인 적정선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케팅 수단 그 너머로, 라디오헤드의 특별한 전시회

앞서 언급했듯 미국의 에픽 게임즈는 메타버스와 대중음악을 연결할 방법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포트나이트에서 유저들은 트래비스 스콧의 신곡을 들었고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디오헤드다. 엥? 라디오헤드? 의외의 인물이다. 라디오헤드가 아바타로 변신해 포트나이트에서 오징어 춤을 추면서 ‘Creep’을 연주하기라도 하는 걸까?

뭐, 그것도 재미있겠다만 정확히는 아니다. 기술 혁신과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세기의 록 밴드는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지난 9월 8일 에픽 게임즈와 콜라보한 < Kid A Mnesia Exhibition > 프로젝트의 티저가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공개됐다. 밴드의 2000년대 걸작 < Kid A >와 < Amnesia >의 20주년과 21주년을 기념하는 가상 전시회다.

오는 11월 플레이스테이션5, 맥, PC를 통해 정식 출시 예정이지만 아직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어 정확히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고편에서부터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리더 톰 요크와 비주얼 디자이너 스탠리 돈우드가 협업한 아트워크와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가 맡은 오디오 디자인이 지하 세계에서 1인칭 시점의 관람자를 디스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으스스한 전경으로 초대한다.

가상 공연이나 팬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와 달리 아티스트의 명작을 박물관 형식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라디오헤드는 매우 난해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어쩌면 그들이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팀의 예술 세계를 메타버스에서 구현할 지도 모를 일이다. 메타버스가 단순 마케팅 수단을 넘어 뮤지션의 내면과 감정을 보다 정교하게 채색하는 캔버스로 진화할지. 결과는 11월에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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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김윤아, 원슈타인 ‘진심으로 너를 위해 부르는 노래’ (2021)

평가: 2.5/5

컨텐츠랩 비보가 음악 프로젝트 ‘2021년을 잘 보내는 방법’의 다섯 번째 곡을 발표했다. 가볍고 장난기 많던 이전 곡들과 결이 다른 가을맞이 위로 송이다. 히트 작곡가 로코베리가 선사한 곡조에 진하고 성숙한 냄새가 가득하며 기타와 묵직한 드럼을 앞세운 굴곡 있는 사운드로 삶에 진 응어리를 격파하고자 한다.

조합의 승리다. 공고한 팬층과 인지도를 지닌 자우림의 김윤아와 < 쇼미더머니9 >에서 요즘 힙합 신에 보기 드문 ‘착한 캐릭터’로 사랑받은 원슈타인의 콜라보는 그 자체로 신뢰감을 준다. ‘진심으로 너를 위해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 아래 휴식을 제안하는 상냥한 노랫말은 노골적이지만 둘의 매끈한 목소리 덕에 유치함으로 전락하지는 않는다. 무난한 만듦새의 노래를 이 시너지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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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The College Dropout’ (2021)

평가: 5/5

한 시대를 이끌어갈 천재의 등장

대중이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2000년대 초, 카니예 웨스트는 칼을 갈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프로 활동을 시작해 로카펠라의 스태프 프로듀서로서 신생 레이블의 도약을 도모하며 업계의 제일가는 작곡가로 성장한 그이지만, 그 이상을 꿈꿨다. 제이 지의 < The Blueprint >, 앨리샤 키스의 ‘You don’t know my name’ 등 많은 히트작을 낳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야심은 무대 뒤가 아닌 비트 위, 직접 가사를 뱉는 데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힙합 신은 카니예 웨스트에게 래퍼 자리를 내어줄 만큼 분위기가 자비롭지 못했다. 거칠고 마초적인 래퍼가 공고하게 주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제이 지가 있었고, 피프티 센트를 비롯한 갱스터 랩이 인기였다. 그에 반해 카니예의 배경을 보자. 대학교수인 어머니와 미술 대학까지 진학한 나름의 학력을 가진 중산층이지 않은가. 안정적인 환경이 래퍼가 되는 데에는 제동을 거는 법이다. 모두가 그에게 비트만 따내려 했지 로커스(Rawkus Records)도, 캐피톨(Capitol Records)도 래퍼로 그를 원하지 않은 이유다.

신예의 도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인 로커펠라와 그 수장 데이먼 대시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해 이 데뷔작의 제작은 결정적인 한 사건에 기인한다. 2002년 가을, 카니예 웨스트는 늦은 새벽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마주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거의 그를 죽일 뻔한 사고로 턱과 다리에 심한 골절을 입고 입원 신세를 졌다. 본의 아니게 맞이한 시간과 자유. 스물다섯 열정 많은 청년은 이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쯤으로 여긴 듯하다. 사고 후 2주 만에 선공개 싱글 ‘Through the wire’ 작업에 나섰고, 이는 힙합 역사를 영원히 뒤바꾸어 놓을 앨범의 신호탄이 됐다.

< The College Dropout >의 파급력은 여러모로 막강했다. 우선, ‘칩멍크 소울(chipmunk soul)’ 프로덕션을 대중화하는 데에 기여한 앨범이다. 칩멍크 소울이란 알앤비&소울 보컬을 샘플링해 음정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해체, 재배열을 거쳐 비트에 녹여내는 작법을 말한다. 저스트 블레이즈와 함께 제이 지의 < Blueprint >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 주특기가 본작에서야말로 제대로 꽃피었다는 게 중론이다. 1990년대 중반 우탱 클랜의 프로듀서 르자가 방법을 제시했다면 카니예는 그걸 일정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수록곡 열두 곡에 사용된 열네 개의 샘플에서 공동작곡 두 곡을 제외하면 모두 셀프 프로듀싱. 래퍼로서의 출사표이지만, 이를 아우르는 프로듀로서의 압도적인 역량이 우선이다.

진가는 당시 힙합 신의 주된 내용을 크게 벗어난 랩에서도 두드러졌다. 16세기 삽화 책에 영감받은 배경에 앙증맞은 곰 인형으로 마감질한 커버와 줄무늬 폴로 셔츠를 빼입고 나온 외형처럼 앨범은 곧 힙합 관습의 타파를 의미했다. 향락과 폭력성의 철저한 배제! 그는 여기서 ‘갭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Spaceship’) 평범한 대학 중퇴생 신분을 감추지 않는다. 그 보통의 시선을 당당히 드러내며 인종,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담았다. 이는 나아가 후대 힙합이 포용하는 캐릭터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졸업식에 쓸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 ‘Intro’를 돈벌이에 찌든 또래의 넋두리 ‘We don’t care’로 맞받아치는 순간 작품에 대한 예고는 끝난 것이다. 예사롭지만 이 뼛속까지 삐딱한 젊은이의 날 선 비판과 유머는 로린 힐 ‘Mystery of iniquity’를 흥겹게 가져온 ‘All falls down’에서 미국 사회의 물질주의를 꼬집고, ‘Two words’에서는 사랑도 브레이크도 없는 무자비한 조국(‘United States, no love, no brakes’)을 쥐어뜯는다.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만 부자들이 가장 자존감이 낮’고 ‘마약 거래로 백인들만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는(‘All falls down’) 사회는 청년의 눈에 그저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결정타는 ‘Jesus walks’다. ‘예수만 빼고 다 이야기해도 된대'(‘They say you can rap about anything except for Jesus’)라 미디어의 획일화를 비판하고 종교적 가치관을 축약하는 곡이다. 총과 마약으로 득실대던 힙합 신에 신실한 찬송가다. 그는 아무래도 ‘쿨’해 보이는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듯하다. ‘Never let me down’에서 민권 운동 시대를 싸운 선조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매우 유기적인 배치로 학력주의를 비꼰 여섯 개의 스킷 트랙으로 이 모든 전개가 실제로 대학을 중퇴한 그의 시간적 배경을 뒤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Family business’가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화자와 청자 사이의 묘한 유대감을 만드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이 걸작의 가치는 단 한 순간, ‘Through the wire’를 거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교통사고 일화를 세밀하게 풀어놓는 노래 속 그의 랩은 실제로 ‘턱에 철사를 단’ 채 녹음해 발음마저 어눌하다. 놀라운 수준의 입체감, 실재감이다. 샤카 칸의 히트곡 ‘Through the fire’를 샘플링해 치밀하게 피치와 위치를 매만진 비트는 힙합 역사상 가장 멋진 칩멍크 프로덕션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비극을 승리로 맞바꾸는 챔피언'(‘But I’m a champion, so I turned tragedy to triumph’)의 자세로 음악을 향한 열의를 강변하고 있는 이 데뷔곡을 카니예 커리어 사상 최고의 싱글이라 칭하고 싶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히트 싱글 ‘Slow jamz'(1위), ‘All falls down'(7위), ‘Jesus walks'(13위)를 배출했으며 판매고는 400만 장을 넘겼다. 평단의 호응은 그 이상이었다. < 스핀 >과 < NME > 등 다수 매체가 입을 모아 음반을 그해 베스트 앨범 리스트에 상위권으로 안착시켰고 그래미는 최우수 랩 앨범과 최우수 랩 노래 등 3개 부문 상을 안겼다. 롤링스톤이 작년 개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에서는 74위에 오르며 후대에 끼친 파급력을 인정받았다. ‘All falls down’에 피쳐링한 실리나 존슨과 로카펠라 A&R 키암보 조슈아(Kyambo Joshua)는 ‘제이 콜과 켄드릭 라마 등 리리시즘 래퍼에게 큰 영향을 준 클래식’이라 평가했다.

극적인 인생 서사나 거친 자기과시 없이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자기에 대한 기록과 사회 참여, 눈앞에 펼친 현재의 담담하고도 날카로운 저술. < The College Dropout >은 힙합 신에서 관습에 섣불리 매몰되거나 음악적 자아와 실제 자아가 충돌해 ‘가짜’가 되고 마는 뮤지션이 범람할수록 그 위력이 거대해질 앨범이다. 확실한 주무기, 선구적인 문법으로 옹골차게 메꾼 히트 넘버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또 놀랍다. 21세기 힙합을 선도할 천재는 이토록 영민하고도 화려한 등장으로 그가 일으킬 파장을 예고했다.

– 수록곡 –
1. Intro (Skit)
2. We don’t care 
3. Graduation day
4. All falls down (Feat. Syleena Johnson) 
5. I’ll fly away
6. Spaceship (Feat. GLC, Consequence) 
7. Jesus walks 
8. Never let me down (Feat. Jay-Z, J. Ivy) 
9. Get em high (Feat. Talib Kweli, Common)
10. Workout plan (Skit)
11. The new workout plan
12. Slow jamz (Feat. Twista, Jamie Foxx) 
13. Breathe in breathe out (Feat. Ludacris)
14. School spirit (Skit 1)
15. School spirit
16. School spirit (Skit 2) 
17. Lil Jimmy (Skit)
18. Two words (Feat. Mos Def, Freeway, The Boys Choir of Harlem) 
19. Through the wire 
20. Family business 
21. Last 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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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Donda’ (2021)

평가: 3.5/5

인생이 시험의 연속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를 향한 열렬한 사랑과 그의 몰락, ‘노예제도는 선택이었다’ 망발과 직접 출마한 2020년 대선. 테일러 스위프트와 질긴 싸움과 탈진으로 인한 입원, 킴 카다시안과 이혼까지. 어디서부터 콕 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카니예 웨스트는 숱한 기행과 사건으로 스스로 자초한 논란 속 씨름을 이어왔다. 아티스트는 음악으로 난항을 딛고 도약한다지만 < The Life Of Pablo > 이후 5년간 기억할만한 개인 커리어 상의 수작도 없었다는 것이 설상가상이었다. 연속된 물의와 부진 속 그는 대중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괴짜’, ‘관심병 종자’쯤으로 치부되는 데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개의치 않다는 듯 음악적 이상은 장대해져 갔다. 현실 세계에 싫증이 난 그에게는 주의를 돌릴만한 무언가, 의지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종교에 집중했다. 신앙심을 공고히 다져 가스펠 힙합의 장을 선포했다. 2016년 < The Life Of Pablo >가 그 예고편이었고 < Jesus Is King >은 나아갈 선로를 선명히 각인한 서막이었다. ‘Lost in the world’의 길 잃은 영혼과 어머니를 부르짖은 ‘Only one’ 이후 자신을 신(‘I am a god’)이라 칭하는 거만 속 내재한 나약한 자아를 거대한 영적 존재에 영합하여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 Donda >는 그러한 카니예 웨스트의 최근 행보를 집적하는 앨범이다. 성형 수술 부작용으로 2007년 사망한 어머니 이름이 제목의 영감이며 문법 역시 가스펠 힙합이다. 직전작과 비교해 훨씬 풍성한 들을 거리와 힙합 요소를 부각한 점은 반갑다. 그러나 그의 열 번째 정규 앨범이라는 점, 그것도 지난 한 달 내내 소셜 미디어 피드를 장악한 경기장 크기의 리스닝 파티와 세 번 연기 끝에 마침내 세상에 나온 야심작이라는 기대치 앞에 앞서는 실망감이 있어 우선 언급하고 싶다.

첫째로, 몹시 길다. < Ye >가 7곡 23분이었던 것과 극명히 비교되는 < Donda >의 2시간가량 방대한 분량은 일순 환대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내 피로감에 휩싸인다. 모든 노래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Jonah’에서 ‘Junya’로 이어지는 초중반부가 가장 허점으로, ‘Jonah’의 연속적인 친구 사망과 자신 처지를 노래하는 릴 더크와 보리(Vory)의 가사는 분명 뜻깊지만 강성의 스웨그 곡들 사이에 배치돼 스쳐 지나가고 만다.

오르간 사운드에 간소한 랩을 엮은 ‘Junya’는 ‘준야 와타나베가 내 손목 위!’ 훅을 반복하며 ‘음, 음’ 추임새로 마디를 채우지만 여타 카니예 노래들만큼 치밀하지 않다. 신실한 신앙 곡 사이 급작스럽게 흐름을 깨는 ‘Tell the vision’, 신심과 과시를 경유하는 ‘Praise god’의 언어도 의도가 불분명하다. 종교에 영향받은 영묘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한 비트 두 갈래로 크게 나뉜 음향적 콘셉트는 거친 < Yeezus >와 최근 가스펠 사이의 타협점을 마련하려는 취지나, 양 축을 왔다 갔다 하는 탓에 메시지는 흐려지기 일쑤다.

둘째로, 그의 랩이다. < Donda > 속 어디에도 의자에 허리를 바짝 당겨 듣게 하는 카니예의 킬링 벌스가 없다. 콘셉트에 맞춰 노래로 승부를 거는 곡이 상당수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활달한 랩 트랙 ‘Off the grid’마저 플레이보이 카티와 파비오 포린의 젊은 에너지에 주객을 전도해버린다. 사정이 이러니 트래비스 스캇과 베이비 킴에게 벌스를 양보한 ‘Praise god’이 아쉽고, ‘Donda’와 ’24’에서 의지한 선데이 콰이어 서비스 합창과 ‘Pure souls’의 로디 리치, 셴시아(Shenseaa) 대용도 포용과 화합이라는 기독교적 이치에는 부합할지라도 상당히 장식적으로 느껴진다. 5년 전 < The Life Of Pablo >에서 켄드릭 라마를 눌러버린 벌스의 ‘No more parties in LA’와 경건한 랩을 뽐낸 ‘Saint pablo’를 상기하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약점이다.

그래서 음반은 거대한 담론이나 의미에서 통째로 청취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듣기 적합한 백화점식 구성이 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면에서 작품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이다. ‘Hurricane’은 후렴의 예쁜 선율을 어루만지는 위켄드 보컬과 어두운 악기 편성으로 산뜻했던 전작과의 차이를 새기며 유의미한 변곡점을 마련한다. 로린 힐 ‘Doo wop’을 간편하게 재해석한 ‘Believe what I say’도 상기한 모호한 트랙 뒤에서 상반된 날카로움을 전한다. 다소 상투적이지만, 안정적인 팝 코드 진행에 웨스트사이드 건의 처절한 랩을 얹은 ‘Keep my spirit alive’의 감흥도 짙다.

노골적으로 신을 예찬하는 후반부 곡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완성도로 < Jesus Is King >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점도 좋다. 완벽한 목사 빙의의 ‘Jesus lord’는 9분가량 복음을 전파하는데, 편안한 사운드에 모친과 사별 뒤 생의 마감까지 고민한 메시지가 맞물려 부담 대신 감명으로 다가온다. ‘Come to life’는 카니예의 현재를 압축한다. 킴 카다시안과 파경에서 파생된 감정을 매끄러운 싱잉과 순백한 피아노 연주로 연출한 노래에서 그는 꿈꾸는 음악적 이상을 상당수 실현해낸다. 그 도모 방식이 새로운 스타일 개척이나 혁신적 문법 도입 대신 안정화 전법에 가까워 이전만큼 파급력을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 Donda >는 나오기 전에도, 나오고 나서도 말이 많다. 발매 후 카니예는 SNS에 음반사 유니버셜 뮤직 그룹이 자신 허락 없이 음반을 공개했다고 주장했으며 혹자는 이에 < The Life Of Pablo >에서 실행된 앨범 업데이트 현상을 기대한다. 해외 다수 평론 매체가 비판 근거로 제시하는 마릴린 맨슨과 다베이비 섭외 논란도 토론해볼 만하다. 각각 성폭행 혐의와 동성애 혐오 논란으로 규탄되고 있는 둘을 피쳐링으로 대동한 것은 회개와 성화(聖化)의 언약이 되어야 할 앨범에 설득력을 상당 부분 떨어뜨리는 방해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그리고 그 외적 화젯거리에도 한 가지는 자명하다고 말하고 싶다. 상한선에 오른 것 같았던 카니예의 역량에 아직은 한계가 임박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고히 시사한다는 것을 말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전체 커리어에서 유의미하게 기록될 음반일지는 두고 봐야 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그에게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한 걸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 수록곡 –
1. Donda chant
2. Jail 
3. God breathed
4. Off the grid 
5. Hurricane 
6. Praise god
7. Jonah
8. Ok ok
9. Junya
10. Believe what I say 
11. 24
12. Remote control
13. Moon
14. Heaven and hell 
15. Donda
16. Keep my spirit alive 
17. Jesus lord
18. New again
19. Tell the vision
20. Lord I need you
21. Pure souls
22. Come to life 
23. No child left behind
24. Jail pt 2
25. Ok ok pt 3
26. Junya pt 2
27. Jesus lord p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