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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Album

어거스트디(Agust D) ‘D-Day’

평가: 3/5

팀 동료 알엠의 솔로 활동이 여러 인디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특유의 지적인 면모를 강조했다면 슈가의 또 다른 자아 어거스트 디의 그것에 온기는 없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날 서 있고, 세다. 래퍼로서의 인정에 목마른 듯 그간 두 장의 믹스테이프를 발매해 왔으며 < D-DAY >는 그의 첫 번째 정규작이다.

힙합에 대한 열띤 연구와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구성이 알차다. 최신 유행의 드릴과 편안한 알앤비, 무게감 있는 붐뱁으로 이어지는 트랙들은 두루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하고 있다.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가 어색한 이모 힙합 트랙 ‘Amygdala’처럼 겉도는 구간도 있지만 매끈한 훅의 ‘D-Day’나 견고한 선율 감각을 뽐내는 ‘Life goes on’처럼 귀에 또렷이 맴도는 곡이 다수를 차지한다.

가사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대취타’의 잔상을 잇는 ‘해금’은 국악기 해금을 활용해 자유와 방종에 대해 설파하며 대중을 묶어놓는 사회의 사슬과 억압을 해체하는 ‘해금(解禁)’의 곡이다. 깊게 가라앉는 붐뱁 트랙 ‘극야’의 날 선 질문처럼 그의 컨셔스함은 날카롭지만 누군가를 할퀴지 않는 친절함에서 비롯된다. 냉소적인 래퍼와 불특정 다수를 보듬는 아이돌로서의 면모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것이다.

힙합 신의 쟁쟁한 경쟁 상대들과 비교해 호불호를 내포하던 특유의 긁는 톤도 한결 가라앉혀 자연스러워졌고 ‘사람 Pt.2’와 ‘Sdl’에서는 보컬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일본 영화 음악 거장 고(故) 류이치 사카모토와 협업해 고풍스러운 비트를 완성한 ‘Snooze’처럼 그이기에 가능한 시도와 결과물이 현 케이팝 신에서 그가 올라있는 독보적인 위치를 각인시킨다.

< D-DAY >는 결코 가벼이 치부하기 어려운 랩 앨범이다. 그룹 활동이 잠정 중단된 그에게 솔로 행보의 청신호를 켜는, 두 장의 믹스테이프와 수련을 거쳐 탄생한 단단한 ‘오늘’이다.

– 수록곡 –
1. D-Day 
2. 해금 
3. Huh?! (Feat. j-hope)
4. Amygdala
5. Sdl
6. 사람 Pt.2 (Feat. 아이유)
7. 극야
8. Interlude : Dawn
9. Snooze (Feat. Ryuichi Sakamoto, 김우성 of The Rose) 
10.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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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웨이체드(Way Ched) ‘뚝 (Feat. 릴러말즈, 빅 나티)’ (2023)

평가: 3/5

더 콰이엇이 이끄는 앰비션 뮤직이 영입한 최초의 프로듀서일 만큼 웨이체드는 준수한 작곡 실력을 갖췄다. 트렌디한 힙합과 부드러운 알앤비를 모두 쉬운 곡조로 풀어내는 대중적 감각은 ‘Why do u say’, ‘Everything’과 같은 곡을 통해 이미 충분히 드러낸 바 있다.

‘뚝’도 그의 기량을 여실히 증명할 곡이다. 우선 도처에 재미 요소가 가득하다. 보사노바 리듬을 차용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한 물기 있는 비트, 전화 다이얼 소리를 악기로 치환하고 의성어 ‘뚝’의 이중적 의미를 가사로 활용한 시도 등이 신선하다. 히트 보증수표 릴러말즈와 빅 나티의 호흡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반가운데, 둘의 목소리가 유독 빛나는 건 이렇게 감도 높은 멜로디와 재치 있는 표현을 뽑아내는 프로듀서의 번뜩이는 감각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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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모쉬핏(Lil Moshpit) ‘To go (Feat. 박재범, 소울스케이프)’ (2023)

평가: 3/5

그루비룸 휘민이 탄생시킨 그의 또 다른 자아 릴 모쉬핏은 ‘팝’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 페르소나 안에는 오로지 힙합, 그리고 힙합에 대한 아티스트의 사랑만이 존재한다. 이번에는 현재가 아닌 과거로 간다. 트렌디한 곡들을 포진했던 작년 정규 앨범 < AAA >와 달리 신곡은 반복되는 비트와 디제이 스크래치, 빈티지한 사운드에 박재범의 촘촘한 랩을 엮어 그가 사랑했던 옛 힙합 요소들을 펼쳐 놓는다. 힙합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 발현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인 만큼 대중적 소구력은 강하지 않으나 릴 모쉬핏의 행보는 이렇게 장르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아티스트의 큐레이팅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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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페퍼톤스(Peppertones) ‘Freshman’ (2023)

평가: 3/5

편안한 멜로디, 산뜻한 밴드 사운드 곳곳에 봄 햇살이 내리쬔다. 새 학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소재를 표현하기 위해 밴드는 뮤직비디오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다시 교복을 꺼내 입었고 이는 청자에게 숨겨놨던 동심을 꺼내보는 기쁨, 그 아련한 향수를 선사한다. 청춘이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감대가 존재하는 이들의 음악은 이렇게 변하지도, 늙지도 않는다. 페퍼톤스는 여전히 페퍼톤스만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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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2023)

평가: 4/5

환상적이다. 다채로운 사운드와 영롱한 목소리의 합동 일격이 단숨에 청자를 매혹하고 고장 난 비행기처럼 탑승객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는 변칙적인 구조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미국의 인디 밴드 체어리프트의 프론트우먼을 거쳐 2019년 발매한 < Pang >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개시한 캐롤라인 폴라첵의 음악 세계다. 신인처럼 보이지만 비욘세, 트래비스 스콧에게 곡을 써준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는 소포모어에서 팝 음악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도, 확고한 개성, 담대한 실험 정신을 모두 눌러 담는다.

독특한 철학과 개성 강한 사운드로 사랑받는 PC 뮤직(PC Music)의 프로듀서 대니 엘 할과 협력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정교하고 변덕스럽다. 로킹한 비트와 처절한 비명이 울리다가(‘Welcome to my island’) 새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Bunny is a rider’), 충돌과 긴장의 전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합창이 메아리친다(‘Billions’). 갑작스럽게 플라멩코의 후끈함을 가져오는 ‘Sunset’, 부유하는 전자음에서 소극장의 어쿠스틱 밴드 차림으로 얄궂게 변조되어 장엄한 백파이프 솔로로 종결되는 ‘Blood and butter’까지 모든 전개가 예측을 벗어나 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는 총천연색 구성은 감상을 넘어 차라리 체험에 가깝다.

그가 뷰욕과 케이트 부시 같은 선배 거장 옆에 거론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려한 멜로디, 공들인 편곡으로 귀를 즐겁게 하면서도 무엇보다 장르를 겁 없이 훨훨 넘나든다. 신스팝 혁명가 그라임스의 맹랑함을 빌려와 말끔한 드럼 앤 베이스 비트를 버무린 ‘Fly to you’와 UK 개러지 트랙 ‘I believe’가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증명하고, 명상적인 발라드 ‘Crude drawing of an angel’에서는 남다른 멜로디 주조 능력을 뽐낸다. 캐치한 ‘Smoke’를 비롯해 대부분의 곡이 감도 높은 선율로 저마다의 위치에서 확실한 퍼즐 조각으로 기능한다. 롤러코스터, 퍼레이드가 연상되는 저돌적인 전개에도 선명히 살아 숨 쉬는 송라이팅의 정교함이 경이와 감탄을 부른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트 부시보다 세련되고 뷰욕보다 부드러운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그의 목소리는 선배의 영향을 자신만의 색깔로 승화하기 위한 가수 노력의 결실이다. 압도적인 보컬 레인지로 급작스레 상승해 귀를 찌르는 칼날 같은 소프라노, ‘Pretty in possible’에서 선보인 기묘한 발음법 등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요소가 가득하다.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나른한 오르간 사운드로 데이비드 보위의 잔상을 피워내는 파워 발라드 ‘Butterfly net’의 보컬 연기는 특히 열정적. 전자음이 뿅뿅거리고, 각종 자연의 소리가 윙윙대는 광경 속에서도 중앙에 선연히 빛나는 건 명창의 백옥같은 목소리다.

캐롤라인 폴라첵을 새 시대 팝의 선두주자로 규정할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이다. < Pang >이 일궈낸 애호가들의 호응과 평단의 찬사에도 여유롭게 자신의 한계를 한 걸음 더 뛰어넘으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격파했다. 거대한 야망을 담은 담대한 음악적 모험. 캐롤라인 폴라첵은 팝 음악계에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기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중이다.

– 수록곡 –
1. Welcome to my island 
2. Pretty in possible
3. Bunny is a rider
4. Sunset 
5. Crude drawing of an angel
6. I believe
7. Fly to you 
8. Blood and butter 
9. Hopedrunk everasking
10. Butterfly net
11. Smoke
12. Bill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