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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규리 인터뷰

누구에게나 처음은 떨리는 순간이다. 하지만 열아홉 소녀의 시작엔 현재에 대한 걱정보다 미래를 향한 기대만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 듣던 노래에 이끌려 가수의 꿈을 키워온 규리는 2022년 11월 첫 EP < Open The Door >를 발표하며 어엿한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해 나갈 것을 알렸다. 조심스레 음악계의 문을 열어젖힌 만큼 앳된 느낌이 묻어나는 소곡집이지만 그간의 이력과 구석구석 닿아있는 노력의 흔적을 보고 그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신인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23년이 코앞에 다가왔던 12월의 어느 밤, 한창 10대를 마무리하느라 바쁠 규리가 이즘과의 인터뷰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대화 속에서도 수줍게 머금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는 아직은 그저 배우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며 내면의 순수한 열정을 차분히 내비쳤다. 새로운 나이대를 앞둔 음악 새내기의 당찬 포부를 공개한다.

첫 미니앨범 < Open The Door >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 Open The Door >, ‘내 음악의 첫 문을 연다’는 콘셉트로 그간 만들어둔 노래들 중에서 풋풋함이 묻어나는 곡 위주로 구성한 앨범이다. 지금만 남길 수 있는 기록을 온전히 내 힘으로 완성하고 싶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해내고자 했다. 나중에 더 커서 19살 규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한 노래가 많지 않음에도 곡마다 다채로운 음색이 흐르고 있다.
타이틀곡 ‘Open the door’는 조심스럽고 설레는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박자감을 살려 노래했고, 반면 ‘고양이’의 경우엔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귀엽고 상큼하게 불러 보려고 노력했다. 내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곡은 이번 앨범에 실리진 않았지만 기타 하나에 의지해 써 내려간 ‘사막’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사막’이란 곡으로 < 제3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어린 소녀가 노래하는 ‘사막’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사막’은 2021년에 기타 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쓴 노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던 2020년부터 코로나가 퍼져서 축제나 체험학습처럼 소중한 추억들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막막한 현실을 사막에 빗대었고 바다를 향해 가겠다는 이야기로 풀어내 지금보다는 나아질 상황 속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겠다는 의지를 가사에 녹여냈다.

보통 기획사 오디션이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계에 데뷔하는 편인데, 규리는 그 첫걸음으로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유재하라는 가수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경연에 참가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내가 만들었던 노래들을 들어보시고 나가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신 덕분에 경험 삼아 참가하게 됐다. 전년도에도 출전해서 예선 탈락을 했었던 탓에 큰 기대는 없었는데 2022년엔 생각지도 못한 값진 성과를 거두게 되어 그야말로 감사할 따름이다.

2015년 12살의 나이에 대선배인 양희은과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 적이 있다. 어떤 계기로 연이 닿은 건가.
사실 아버지께서도 음악계에 몸담고 계시다. 안치환 선생님의 ‘내가 만일’을 작사, 작곡하셨고, 양희은 선생님과도 몇십 년간 친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며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비롯한 많은 곡들을 함께 작업하셨다. (김영국, 과거 활동명 김범수) 두 분께서 워낙 친분이 두터우시다 보니 나도 유년 시절부터 자연스레 양희은 선생님과 사석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가 딸에게’는 아버지께서 프로듀싱을 맡은 양희은 선생님의 싱글 프로젝트 < 뜻밖의 만남 >을 통해 참여하게 된 곡이다. 당시에 어린아이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한번 녹음을 했었는데 선생님께서도 내 목소리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해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최근까지도 선생님 콘서트에 따라다니면서 ‘엄마가 딸에게’를 함께 부르곤 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양희은 선배에게 들었던 조언이나 배운 점이 있다면.
공연이 끝난 후에 가끔씩 손 편지를 써 주시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번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 본선 직전에도 기회가 생겨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대기실에서 즉석으로 ‘사막’을 들려드렸다. 내가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걸 선생님도 처음 보셨는데 기타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악기들이 좋으니 하모니카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들도 다양하게 배워보라고 알려주셨다. 최근에 있었던 12월 공연에도 찾아와주셨는데 무대 매너를 비롯한 현실적인 부분들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다.

음악에 흥미를 붙이게 만들어 준 가수나 노래가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테일러 스위프트의 4집 < Red >에 수록된 ’22’라는 곡을 처음 들었는데 막연하게 밝고 신나는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반복하며 따라 부르곤 했었다. 그렇게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직접 작곡한 노래에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가수였고 혼자서도 무대 위를 꽉 채우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게 되었다. 훗날 한국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되고 싶고 그렇게 유명해진다면 꼭 듀엣을 해보고 싶다.

테일러 스위프트 말고도 즐겨 듣는 아티스트가 있는지.
특별히 가리지 않고 넓게 접하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팝을 많이 듣는다. 혼네(HONNE)는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만들어서 들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고 비슷한 나이 또래인 빌리 아일리시도 자기만의 색깔이 확고해서 자주 찾게 된다.

국내에서는 악뮤를 좋아한다. 특히 < 항해 >라는 앨범을 자주 듣는데 가사나 스토리 라인이 잘 짜여 있어서 그런지 둘의 하모니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리고 작사, 작곡, 편곡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팀의 모든 노래를 책임지고 있는 이찬혁처럼 멋진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

크레디트 곳곳에 이름을 올린 것만 봐도 이미 다재다능한 것 같다. 이른 나이부터 음악 제작에 뜻이 있었는지.
어릴 땐 피아노랑 드럼을 배웠었고 중3 때는 미디까지 익히면서 직접 내 노래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전문적으로 장기간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작곡할 때 기타 코드를 모르는 게 아님에도 특별히 코드를 인지하지 않고 귀로 들었을 때 좋은 쪽을 찾아가는 편이다. 예전부터 계속 음악을 즐겨 들었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부모님께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항상 내 선택을 존중해 주면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직접 곡을 쓰다 보면 분명 창작의 고통을 느낄 텐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의외로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이 음악 작업이었다. 그래서 뭔가 힘들다는 인식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 앞으로 더 깊이 배워가면서 난관을 마주칠 수 있겠지만 되도록 즐긴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다.

음악으로 입시에 대한 압박을 덜어낸 덕일까 스페인어 과로 대학 진학을 한다고 전해 들었다. 음악이 아닌 쪽으로 전공을 택한 이유는.
그동안 음악을 좋아하긴 했는데 실용음악과를 간다거나 학업을 중단하고 음악에 매진하겠다는 생각까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하던 공부에 집중하여 일반 학과로 진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통해 더 많은 걸 다양한 시각으로 듣고 배우고 싶다.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나중에 라틴 음악을 비롯한 남미 지역의 문화까지도 잘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여러모로 기대가 된다.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음악 스타일이 있다면.
알앤비, 발라드, 록으로 나눌 것 없이 장르를 특정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이것저것 도전해 볼 생각이다. 당장엔 규리만의 스타일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면 언젠가 나만의 색깔을 확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2023년 드디어 20대를 맞이하게 됐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어떤 내용으로 써 내려갈 예정인지.
아직 특별히 정해둔 건 없지만 일단 스무 살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벅차다. 그저 멋지게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첫 번째 작품에선 마냥 맑고 명랑한 느낌이 강했다면 앞으로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질적으로 성숙한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고자 한다.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갈 작은 기록들에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다.

가요계에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과거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에게 별빛이고 싶다. 낮에는 밝아서 안 보일 뿐이지 별은 언제나 하늘 위에 떠 있다. 내 음악도 항상 사람들 곁에 머무르면서 그들이 지쳐 어두워졌을 때 옆에서 위로와 용기의 빛을 밝혀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고 싶다.

끝으로 규리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음악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막연한 글이 아니라 멜로디와 노랫말이 어우러진 내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아직은 들어주시는 분이 많이 없겠지만 나중에 더 알려졌을 때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다.

진행: 소승근, 장준환, 임동엽, 정다열
사진: 임동엽
정리: 정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