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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심야 ‘Dog'(2020)

평가: 3/5

김심야의 다음 목적지는 개인 작업물이다. 프로젝트 그룹을 거치며 쌓아온 굵직한 커리어에서 벗어나, 10월경 발표된 믹스테입 < Bundle1 >과 정규 1집 < Dog >에는 그의 이름 세 글자만이 오롯이 걸려있다. 달라진 주체는 곧 달라진 음악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는 고착화된 힙합 씬에 개혁을 외치던 < LANGUAGE >의 ‘분노’나, 혹은 주류를 이탈한 선각자의 섬뜩한 스침을 기록한 < Moonshine >의 ‘허무’와 같이 단순 소재의 차이로 구분되는 일차원적인 다름이 아니다. 변화 가운데서도 묵묵하게 고수해오던 지독한 탐미주의, 그 아티스트를 지탱하는 신념의 붕괴에서 나오는 근본적 다름이다.

‘열심히 싸워 / 난 싸워온 이유를 잊었어(Drive slow)’라는 회고처럼 긴 투쟁에도 바뀌지 않은 현실은 모든 전의를 앗아갔다. < Dog >가 지닌 단상은 홀로 ‘내려놓기’다. 가사는 목표를 겨냥하더라도 기존보다 훨씬 유한 성격을 보이고, 무엇보다 이러한 태도가 강하게 적용되는 곳은 사운드의 영역이다. 5일간의 송캠프 가운데 완성된 앨범은 무작위의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믹싱만을 거친 습작의 형태를 띤다. 작품을 한데 묶으려는 치밀한 계산이나 연출은 그저 선택일 뿐이다.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형상화한 < Dog >는 예술가의 덕목이라 여겨지던 음악의 태생적 방향성을 과감히 포기한다.

앨범은 변주를 최대한 줄이고 최대한 원초적인 반복을 가하는 방식으로 로-파이(Lo-Fi)적 수면을 부유한다. 2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랩이 뒤로 물러나고 지저분하고 잡음에 초점이 맞춰지는 점은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 Some Rap Songs >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느긋한 진행의 ‘Drive slow’는 준수한 시작이다. 허심탄회한 심정을 토로하며 욕심을 ‘내려놓는’ 가사, 그리고 라드 뮤지엄(Rad Museum)의 몽롱한 발라드 라인으로 넘어가는 전개는 전작의 인트로 ‘Moonshine’과 같은 불씨를 남긴다. 다만 미니멀한 덥(Dub) 인스트루멘탈이 절반을 넘어가는 ‘0 Balance’는 브라스 충격과 충돌하며 부조화를 이루고, 음침한 트랩 베이스에 훅이 거듭되는 ‘Okay, dial it up, call me’와 스킷 격의 랩 트랙 ‘Does it matter’는 클리셰가 산재한 탓에 소비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회의적인 가사 아래 < Moonshine >의 은은한 네온사인 빛을 빌린 ‘Butting on the glass’, 그리고 카랑카랑한 끊어치기로 존재감을 알리는 와이투케인나인틴투(Y2K92)과의 탄력적인 호흡을 선보인 ‘Uainrealli’의 기조 변화는 꽤 성공적이다. 그러나 쓸모없는 공백과 고조 구간이 속출하는 전자는 굴곡이 산만해 집중을 깨트리며, 일상의 소리를 포착하고 토속적인 박자감을 내세운 ‘When the right is wrong’의 경우 전면에 위치한 비트가 심히 가라앉는 탓에 김심야의 랩마저 같이 전복되는 위기에 처한다.

분기점은 씨엘(CL)이 참여한 ‘Loooose controlla’일 것이다. 놀랍게도 곡은 긴박한 드럼을 그루브하게 넘나드는 조화를 선보이며 국면을 한 번 더 뒤집는다. 샘플링 기법이 두드러진 후반부 트랙은 < Dog >가 상징하는 ‘내려놓기’에 설득력을 덧붙이고 생동감을 회복하는 구간이다. 드레이크 ‘Nice for what’의 타법과 보이스 활용을 연상케 하는 ‘Walking on thin ice’, 카니예 웨스트의 가스펠 조각을 끈적하게 조립한 선공개 싱글 ‘Forgotten’. 특히 마지막 트랙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은 전술한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며 독보적 자태를 자랑한다. 여러 겹의 화음 가운데 여유롭게 단어를 내뱉으며 페이드아웃 되는 모습은 무릇 해탈처럼 보이기도 한다.

< 하입비스트 >와의 인터뷰에서 김심야는 본작을 두고 대중성을 고려한 작품이라 밝혔다. 실제 초기 작풍에 비하면 난이도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대중적’이기엔 여전히 거리가 멀기에 간혹 비칭이나 고해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김심야 역시 결국 대중의 일부가 아닌가. < Dog >는 항상 증명하고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너의 마음 가는대로 춤을 추’는 것이 아닌 ‘나의 마음 가는대로 춤을 추’는 것도, 그가 이름을 내걸면서까지 얻고자 한 것도 결국 본능에 가장 가까운 소리에서 얻어낸 철저한 해소의 도구다.

이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김심야의 랩이 얽히는 접점이 성긴 탓에 대체로 모호하게 붕 뜬 감상이 앞선다. cjb95, ccr, 250, DJ 소울스케이프 등 다양한 프로듀서가 참여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비트는 개개의 매력과는 별개로 유기적인 배치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결과적으로 가공이 덜 된 인상을 선사한다. 병역 문제로 데드라인을 재촉받은 것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다만 첫 정규작인만큼 작품의 주인인 김심야가 그 중심축을 단단히 지탱했어야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태도 또한 미완의 상태를 방치하기 보다는 작금의 강점을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정돈된 영감으로 승화할 수 있었으리라는 입장이다.

천재성이 잘게 흩뿌려진 < Dog >는 그가 힙합 씬에 가져온 파장을 부정하고 폄하할 만큼 불온한 앨범은 아니다. 하나 김심야라는 아티스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매개체로도 부적합하다. 여러 갈래를 열어둔 이 문제작은 훗날 후속작의 계단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퍼즐 조각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또한 대중에게 혼동을 주기 위한 짓궂은 장난의 일부라면, 소비자 역시 기호에 맞춰 즐기면 될 뿐이다.

– 수록곡 –
1. Drive slow (Feat. Rad Museum) 
2. 0 Balance
3. Okay, dial it up, call me
4. Does it matter
5. Butting on the glass
6. Uainrealli (Feat. Y2K92)
7. When the right is wrong
8. Looooose controlla (Feat. CL)
9. Walking on thin ice 
10. Forgotten
11.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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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심야 인터뷰 (2018)

XXX의 도발은 새로웠고 손대현과의 작업은 허망하고도 당돌했다. 이센스의 < The Anecdote > 앨범 유일한 피쳐링으로 주목받은 김심야는 두 장의 작업으로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루키가 됐다. ‘아직도 내게 인정받을 앨범 그건 한국엔 없으니’라 선언하며 그간의 회의감을 날카롭게 도려낸 < Moonshine >으로 그는 2017년 말을 서늘하게 관조하면서 여타 래퍼들이 쓰지 않은 가사를 썼고, 하지 않던 말을 했다. 허무한 클럽에서의 하룻밤을 스토리로 엮어낸 < KYOMI >로부터 더 직설적인 데카당스의 세계를 끌어낸 재능은 확실히 흔치 않았다. 지난 1월 중순 합정동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BANA)에서 만난 김심야의 눈빛은 허허실실 하면서도 날카로웠다.

2018년이 밝았다. 새해 근황은 어떻게 되나.
요즘 운동만 하는 것 같다. 피쳐링 위주로 음악 작업도 틈틈이 한다.

올해는 XXX의 새 앨범 < Language >가 예고되어있다.
이미 앨범은 작년에 다 완성했고, 올해 중순 정도 발매할 예정이다. 뮤직비디오 촬영 정도가 남은 정도다. 사실 < Moonshine >보다 일찍 다 만들었다.

< KYOMI > 와 비교해서 정규 앨범은 어떤 작품이 될 것인지 들을 수 있을까.
만든지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웃음) 내가 막 ‘싸지르고’, 진수형(FRNK)이 정리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랩 했다는 건 아니다. 특정한 스토리 없이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들을 일기처럼 쓴 것이다. 그걸 음악으로 엮어내는 일은 진수형이 다 했고.

프랭크와의 작업 과정은 어떤가?
내용상으로 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나도 편곡 부분은 안 건드린다.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결과물에 맞춰가는 식으로 작업한다. 이를테면 메시지가 좀 다른 의도로 나오면 진수형이 그에 따라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진수형 비트가 어렵다고 생각되면 내가 그 느낌에 맞춰서 새로운 가사를 쓰는 식이다. 진행 방향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중국에서 아이폰 만드는 사람들처럼 착착착. 이렇게 만든다.

XXX의 스타일을 생각하던 이들에겐 < Moonshine >은 다소 의외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 Language >가 먼저 나오길 바랐다. 스토리라인 상으로는 < KYOMI >의 나, < Language >의 나, 그리고 < Moonshine >의 순서대로 들어야 맞다. 회사의 아이디어로 < Moonshine >을 먼저 발표했다. 회사의 방침을 신뢰한다.

그렇다면 < Moonshine >이 마지막 이야기가 되는 건데, 다소 허무하고 자조적으로 마무리가 된다.
< Language >는 ‘허무한 것인가?’에 대한 작품이라 보면 된다. < KYOMI >는 ‘와! 내가 드디어 래퍼가 됐다.’고, < Language >에선 ‘어? 래퍼가 별거 아닌가?’, 그리고 < Moonshine >에서 ‘별거 아니군…’ 하고 결말이 난다.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짜치지 않는 사랑 노래’를 하고 싶었단 얘기가 있는데.
악행으로 이어지는 관습 같은 거랄까. 음악계를 둘로 나눠서 잘 나가는 매체들에서 다루는 음악과 소위 말하는 ‘소수가 좋아하지만 무브먼트 있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나눈다고 치면, 그 언더에 있는 사람들이 좀 뻔한 대중적인 사랑 노래를 ‘짜친다’라 표현했다. 뭐랄까…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까지 가져다가 다 먹여주는 느낌이라 보면 되겠다. 찰리 카우프먼의 영화 < 시네도키, 뉴욕 >같은 느낌이 ‘짜치지 않는다’와 유사하다.

‘사랑 같은 건’이 대표적인 곡일까. ‘나중에 해, 뭐 그리 급해’라는 건조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안 짜치는 사랑 앨범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진짜 드레이크(Drake)의 < Take Care >같은 앨범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다보니 아티스트의 성격, 자라온 환경을 보면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구나’를 느껴서 다른 사랑을 말해보고 싶었다. 근데 사실… 사랑 앨범은 아니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웃음)

‘Dance’도 그런 ‘짜치지 않는 사랑 노래’랄까. 조금 튀는 느낌이 있지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래도 좀 짜치는 것 같다. 사실 ‘Dance’는 제작년 말에 만든 노래고 나머지 곡들은 작년 말에 만든 노래라 결이 좀 다르다.

이제 사랑 얘기는 그만하자 (웃음). 앨범을 듣고 나서 ‘심야가 XXX때 못한 말이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KYOMI > 발매 후 느낀 점들이다. 사실 음악 하다보면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지어내서 쓰기보다는 평소에 생각하고 느끼는 걸 본능적으로 풀어내는 습관을 들이면서 할 말이 더 많아진 것 같다. < Moonshine >을 만들 때 ‘이런 내용을 담아야겠다’를 미리 정하진 않았다. 원래 내 성격이 누굴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짜증도 많이 낸다. 만약 내가 엄청난 부잣집에 태어나서 비싼 옷 입고 돈 많이 쓰고 차도 한 세 네 대 갖고 있는 상황에서 < Moonshine >을 만들었다면 아마 세련된 팝 앨범이 나왔을 거다. 평소에 하는 생각, 느낀 점,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시장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작품이다. 의도는 딱히 없었다.

‘힙합 앨범’ 대신 ‘대중음악’으로 봐달라는 말도 그런 의도인가.
힙합 음악보다 대중음악이 돈을 더 많이 벌지 않나(웃음). 단순한 뜻이다.

레드 벨벳의 ‘Dumb dumb’과 ‘Ice cream cake’로 살짝 끼기도 하지 않았나(웃음).
가이드 곡이 먼저 오고 그 바탕으로 가사를 입힐 때도 있고 랩 메이킹을 할 때도 있고… 기획사와의 협업은 회사에서 전담하는 일이라 잘 모른다.

다시 앨범으로. 디 샌더스(손대현)가 TDE(Top Dog Entertainment) 소속이라 그런지 비트 스타일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 DAMN. >앨범과 비슷하기도 하다.
디샌더스가 찍은 비트를 들어보면 무조건 켄드릭이 랩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업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긴 한데, LA 프로듀서에게 멤피스 스타일, 더티 사우스를 찍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딱히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 KYOMI >가 본능적인 분노나 공격이라면 < Moonshine >은 냉소적이고 패배, 허무주의다.
< Language >를 잘 만들었다면 아마 그 앨범을 통해 < KYOMI >가 < Moonshine >으로 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다. 그래도 대충 얘기를 하자면, < KYOMI >를 내고 많이 힘들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정신상태도 불안정해서 안정을 취하려 이리저리 노력하다 베스트셀러 한 권을 읽었는데 아들러의 < 미움받을 용기 >였다. 되게 뻔할 수도 있는데 그 철학대로 살아보려고 하니까 화를 계속 내서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해봤다.

‘Moonshine’과 ‘Money flows’에서는 결국 잘 팔리는 건 돈,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음반이라는 등 자조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 KYOMI > 내고 나서 그런 걸 많이 느꼈다. 처음으로 낸 앨범, 래퍼의 꿈을 이뤄준 앨범이고 외국에서 연락도 많이 오고 공연도 하고 하니까 진수형과 같이 ‘우리가 정말 미친 걸 만들었나봐!’하는 생각도 했다. 근데 외국과 한국의 반응이 너무 달랐다. 처음에는 한국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려면 이게 팔릴지 안 팔리지 정도는 계산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XXX 활동으로 해외 매체의 주목을 받았을 때는 어땠나.
진짜 신기했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접하면 되게 신나하고 되게 멍청해진다. 분석을 못하고 우와우와 하다가 빨리 질리는 편이랄까. < KYOMI >와 < Moonshine >사이의 인터뷰가 그런 멍청해진 시간을 지나서 어느 정도 계산을 했을 때다. 뭐 근데 내가 정말 외국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면 지금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다. 외국에 있었겠지. 방탄소년단을 보면서 외국에서의 관심과 한국에서의 관심이 그렇게 다른 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한국 스케일로 따져서 내가 한국에서 받는 관심과 외국 스케일로 외국에서 받는 관심은 똑같았다. 정말 잘 됐을 거라면 방탄소년단 정도는 됐어야지.

‘Manual’과 같은 트랙들에서 힙합 씬 전체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도 견지된다.
이제 스물넷밖에 안돼서 제대로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중고등 학교 때부터 7년 정도 지켜보니까 우리나라는 문화의 씨앗 자체를 심을 수 없는 땅 같다. 좋은 땅에 뭔가를 심으면 뭐든 잘 자라겠지만, 한국같이 아무 양분 없는 땅에는 건물을 올리기가 너무 좋다. 환경을 파괴한다는 느낌도 잘 안 들지 않나. 한국에서 문화 운운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계속 움직이고 바쁘고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게 문화랄까… 떨어지기 싫어서 뭐라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앨범을 듣다 보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래퍼들 상당수를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가장 큰 건 취향 차이다. 예를 들면 나는 제이지(Jay-Z)를 영웅으로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영웅으로 여기는 래퍼가 다른 거다. 이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내고자 하는 사운드가 내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거기도 개인이 노력하고 능력이 들어간 결과물이지만…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항상 가난한 사람이 화나 있지 않나. 내 상황을 따지면 가난한 상태인거다.

< 쇼 미 더 머니 >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나는 거기 나간 래퍼들이 가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짜’였었다’라고 생각하지. 힙합을 한 게 아니라 유행에 맞춰서 흘러가는 거다. 사실 내 잘못이 크다. 5~6년 전 소위 ‘진짜’라 불리던 음악을 보고 저게 진짜인가보다 하면서 가사를 다 믿고 하다가 갑자기 변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던 거다.

< 쇼 미 더 머니 > 얘기가 나왔는데, 심야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일단 힙합이 유행인 게 아니라 < 쇼 미 더 머니 >가 유행인 건 확실하고, 방영을 안 하니까 힙합의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도 확실하다. 그럼 < 쇼 미 더 머니 >가 나쁜 건가? 나는 그 프로그램을 욕하던 사람들이 거기 나가서 성공을 하고 그 후광을 얻어서 ‘나는 진짜 음악을 한다.라고 말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뒤가 다른 사람이나 말을 잘 바꾸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힙합은 가사에서 쓴 대로 행동하지 않거나 어기거나 하면 욕을 먹는 문화인데,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비판을 했다면 그걸 지키는 게 소위 말하는 ‘간지’ 아닐까.

사실 < 쇼 미 더 머니 >를 하고 나서 제대로 된 앨범을 낸 래퍼도 없고 그 전의 커리어보다 뛰어난 앨범을 낸 사람도 별로 없다. 그 사람들은 예전에 그냥 그런 가사가 유행을 했기 때문에 가사를 쓰고 랩을 한 거다. 그리고 유명해진 다음엔 한국 힙합 씬 전체보다는 자기 앞가림만 하려고하니 나나 내 회사 같은 사람들만 문화를 계속 유지해가는 거다. 그래서 그들이 가짜였었더라고 말한 거다.

맘에 드는 한국 힙합 앨범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거나 인정하는 아티스트가 있을 텐데.
자이언티의 < Mirrorball >은 우리나라 최고의 R&B 앨범이다. 빈지노는 뭐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 중 한 명이고. 사실 항상 내 마음 속에선 버벌 진트가 내 영웅이었다. 트로트 앨범을 내도 응원할거다. 버벌 진트가 좀 더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센스 형(이센스)은 굳이 얘기 안해도.

< The Anecdote >에 유일한 피쳐링을 했고 ‘한국에서 김심야가 제일 랩을 잘한다’라는 칭찬도 받았다. 이센스의 후광이 있다는 얘기에 부담은 없나.
센스 형이 저를 대한민국 1등이라고 하는 걸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무래도… 센스 형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닐까?(웃음) 거품이라는 것도 사실 잘 모르겠고… 만약에 거품이 꼈다고 하면 다른 래퍼들처럼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아야 하지 않을까. 적당히 알바 하는 대학생 정도만 버는데 그것마저 거품이면 좀 문제다.

심야가 말하는 이센스라는 사람은 어떤가.
진짜 생각이 엄청 많고, 염세적이거나 짜증 많이 내는 거 보면 나랑 비슷한 점도 많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의리있는 사람이다.

‘Bitch’단어를 많이 써서 장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나는 그 단어가 발음이 예뻐서 쓰는데 요즘에는 자제하고 있다. 다른 한국 래퍼들에 비해 발음이 좋다고 생각해서 많이 쓴 것도 있다. 그런데 해외에서 공연을 하는데 좀 부끄러웠다. 동양에서 온 어떤 애가 ‘개년 개년’하는데 얼마나 웃겼겠나.

단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직도 가사 한영혼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있다.
내 가사에서 영어를 다 뺀다면 한국 느낌이 안 나는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영어를 써야 내가 원하는 음악의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딜레마는 느끼고 있다.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에서 음악을 파는 입장이면 당연히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는데… 어렵다.

릴 우지 버트, 포스트 말론 등 멈블 랩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멈블이 유행할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변화돼서 들어오는 것 같긴 한데 멈블 랩을 제대로 하려면 한영혼용을 꼭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한국에서 멈블이 유행한다면 그걸 한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인정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섞어서 하는 거라면 그걸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긴 하다.

정확한 딜리버리가 강점인 심야는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난 죽어도 안 듣는다. 멈블 특유의 리듬감을 좋은 랩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요즘 걸 들을 필요가…(웃음)

XXX, 디 샌더스와의 프로젝트 이후 심야가 추구하는 음악 방향은 무엇일까.
일단 생각이 읽히는 음악을 할 것 같다. 일단은 음악 하는 것 자체에 흥미가 좀 떨어져서 그걸 다시 불러일으키는 게 필요할 듯싶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김심야가 꼽는 인생의 3대 앨범?
현재로는 클립스(Clipse)의 < Hell Hath No Fury >, 제이지(Jay-Z)의 < Magna Carta… Holy Grail >, 빅 데이터(Big Data)의 < 2.0 >.

인터뷰 : 이택용, 김도헌
사진 : 김도헌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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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엑스엑스(XXX) ‘ SECOND LANGUAGE’(2019)

평가: 3.5/5

유연한 XXX의 두 번째 발화는 이들이 염세주의 속 일말의 희망도 품고 있었음을 들려준다. 직선적인 분노와 비타협 기조로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렀던 전작과 비교해 < SECOND LANGUAGE >의 사운드는 탄성 있게 휘어지고 메시지 전달 역시 격렬한 호통에서 허무한 조소로 옮겨왔다. 전작보단 3부작의 마무리 < Moonshine >의 기조와 가까우며 전례 없는 대중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18 거 1517’의 지독한 염증은 당구장의 ‘무뢰배’들로 옮겨와 여유를 느끼게 한다. 잘게 쪼갠 샘플의 인스트루멘탈 인트로는 원시적인 퍼커션 리듬과 불규칙한 신스 리프의 ‘우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그래서 우린 뛰어야 해 / 그래서 우린 긁어야 해’로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는 목소리가 피치 조절 및 해체되며 듣는 재미를 더한다. 

김심야의 메시지는 < LANGUAGE >처럼 과격하진 않지만 < Moonshine >의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기성 문법의 나태한 아티스트들과 ‘We do not speak the same language’라 선을 긋는 ‘Language’, ‘예술가 오명은 씻고 가 / 같은 취급이 기분 나빠’라 일갈하는 ‘우아’가 대표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음악 시장의 모순에 분노를 쏟아내다 고독한 이방인의 숙명을 깨닫고, 갈 길을 걸어가겠다는 태도다. 

높아진 자존감은 새로운 형태의 태도를 가능케 한다. 인맥과 자본 없이도 ‘Bougie’라 외칠 수 있고, ‘Scale model’에선 ‘안 바뀔 거야’라 단언하면서도 ‘누구도 내 프라이드는 못 건드려(Nobody can ever touch my pride)’라 단언한다. 

그렇다고 비판적인 태도가 누그러진 건 아니다. ‘괜찮아’는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자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반어법이고 ‘난 계속 뻔한 얘기를 해’라는 ‘다했어’는 그 추태를 상세히 고발한다. 창작의 고뇌를 풀어놓는 ‘사무직’은 숱하게 은퇴를 고민한 이 듀오의 확실한 마무리 선언이다. 근면 성실하게 창작에 임하며 안이한 생각, 게으른 태도, 기이한 시스템과 작별하겠다는 뜻이다. 

심야와 함께 ‘미쳐 날뛰었던’ 프랭크 역시 재기는 살리되 공격 수위를 낮췄다. 차분한 피아노 연주 위 부피 큰 사운드 샘플을 쪼개 올려놓는 ‘Bougie’, 반복되는 리프의 ‘FAD’ 등은 이지 리스닝이 가능하다. 간결한 루프 위 리듬 변칙으로 특이점을 주는 ‘Scale model’과 ‘Fine’ 역시 랩을 훌륭히 보좌하며 독창적인 매력을 뽐낸다. 보컬 파편과 사운드 샘플을 불안하게 쌓아 올려 가다 급격히 쏟아버리는 방식으로 메인 리프를 각인하는 ‘Language’로 앨범의 대표곡을 주조하는 것 역시 훌륭하다.

반골 성향을 누그러뜨린 < SECOND LANGUAGE >는 전작만큼 독창적이진 않으나 XXX의 음악이 단발성으로 소모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대중적 접근 속 회의적인 시각 역시 정답이었다. < 피치포크 >의 호평과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출연 등 국제적 인정에도 음악계는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더는 타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 수록곡 –
1. 무뢰배
2. 우린
3. 우아
4. Bougie
5. FAD
6. Scale Model
7. Language
8. 괜찮아
9. 다했어
10. 사무직
11. About it (한정반 Bonus)
12. Melody loops (한정반 Bo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