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에 창단 100주년을 맞은 LA 필하모닉은 각 분야의 스타들을 모아 혁신적인 공연들을 준비했다. 일렉트로니카의 거장 모비도 베네수엘라 출신의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함께 자신의 대표작들을 편곡하여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 협연을 계기로 최근 대중 아티스트들과 크로스오버를 선보이고 있는 독일의 유명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연락이 닿았고 값싼 신시사이저로 녹음했던 과거 곡들은 긴 세월 끝에 실제 악기 연주로 다시 태어난다.
밴드로 음악적 기본기를 다졌던 만큼 모비의 테크노 앨범들은 기계음으로 제작했음에도 인간미가 넘쳤다. 그 진가를 재조명하는 19번째 정규작 < Reprise >는 팬데믹이란 제약적 상황을 뚫고 실존하는 영혼들과 호흡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허밍으로 시작하는 ‘Everloving’부터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현악 4중주를 비롯한 오케스트라가 펼쳐지며 광활한 대지를 질주한다. 소울이 충만한 그레고리 포터와 애미시스트 키아의 듀엣곡 ‘Natural blues’도 퍼커션과 알앤비 질감의 백 보컬까지 가세하며 힘찬 울림을 전달한다.
히트작 < Play >의 시그니처 ‘Porcelain’이 템포를 낮추며 포크 스타일로 변모한 것처럼 악기 구성과 박자의 변화는 폭넓은 감상을 넘어 장르에 영향을 준다. 피아노와 드럼이 이끌었던 ‘Why does my heart feel so bad’는 바이올린과 팀파니로 리듬을 대체하며 합창단의 코러스와 더불어 가스펠의 요소를 끌어올린다. 모비의 리드 싱어 민디 존스가 노래한 ‘Heroes’는 원곡의 기타 리프와 상반된 잔잔함으로 시대의 영웅 데이비드 보위를 향한 그리움을 표한다.
전성기 시절 음악의 대부분은 샘플링 조각에서 결정적 한 방이 터졌지만 신보는 선배들의 유산을 온전히 체화하기 위해 과감히 과거를 지우기도 한다. ‘Natural blues’가 포크 가수 베라 홀의 ‘Trouble so hard’에 집중해서 다채롭게 리메이크한 것에 비해 끝없이 ‘Yeah’를 외쳤던 ‘Go’는 이 도돌이표를 지우며 완전히 탈바꿈한다. 영화와 TV에 자주 등장한 ‘Extreme ways’도 강렬한 현악기 샘플의 비중을 줄이며 서정적인 전개를 보인다. 샘플 없애기의 일환이었던 < Hotel >과 비슷한 기조로 볼 수 있으나 추억까지 들어낸 결단은 본연의 정체성을 약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전자음악과 함께 태동했던 모비는 예상과 달리 디지털과 거리를 두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웠다. 이번 작품에서 아날로그 시절의 영감을 실체화했던 기술력을 사용하지 않고 고전으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클래식 업데이트가 원작들에 필적할 만한 작업은 아니지만 30년 노하우를 담은 마에스트로의 지휘는 일렉트로닉 브랜드의 오랜 업력을 검증한다.
– 수록곡 –
1. Everloving
2. Natural blues (Feat. Gregory Porter, Amythyst Kiah)
3. Go
4. Porcelain (Feat. Jim James)
5. Extreme ways
6. Heroes (Feat. Mindy Jones)
7. God mov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Feat. Víkingur Ólafsson)
8. Why does my heart feel so bad (Feat. Apollo Jane, Deitrick Haddon)
9. The lonely night (Feat. Mark Lanegan, Kris Kristofferson)
10. We are all made of stars
11. Lift me up
12. The great escape (Feat. Nataly Dawn, Alice Skye, Luna Li)
13. Almost home (Feat. Novo Amor, Mindy Jones, Darlingside) 14. The last day (Feat. Skylar Grey, Darling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