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서부 출신의 래퍼 로디 리치는 데뷔 싱글 ‘Die young’으로 주목을 끈 후, 디제이 머스타드(DJ Mustard)의 노래 ‘Ballin”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힙합 애호가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의 첫 정규작 < Please Excuse Me For Being Antisocial >은 갱스터의 삶에서 방황하던 그가 돈을 번 후의 감정을 담은 재력 과시 노랫말로 일관하고, 단조로운 플로우의 랩과 거칠한 트랩 비트를 더해 최근 힙합의 유행 요소를 모두 짚어낸다.
로디 리치의 가장 큰 무기는 듣기 쉬운 훅(Hook)을 뽑아내는 능력이다. 본작에서도 아티스트는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자극적인 수록곡들을 형성한다. 래퍼 거너(Gunna)가 지원 사격한 ‘Start wit me’의 질주하는 반주 위 속도감 있는 후렴, 목소리의 빈틈을 두면서도 명료한 운율로 몰입감을 끌어내는 ‘Tip toe’의 멜로디 라인은 대표적인 킬링 파트다. 더불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고 틱톡에서 밈으로 활용되는 등 대중의 호응을 저격한 음반의 대표곡 ‘The box’의 ‘I’ma get lazy’, ‘Trappin’ like the ’80’s’ 플로우도 세세한 리듬을 타며 중독성을 발휘한다. 뛰어난 작곡 역량을 지녔음을 작품 표면에 여실히 드러낸다.
프로듀싱의 감각도 영리하다. 균일한 트랩 힙합의 기조 아래에서도 곳곳에 각개의 악기를 버무려 곡들에 개별성을 부여한다. ‘Intro’에서는 피아노 연주에서 트랩으로 비트를 변조해 과거의 회상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극적인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Big stepper’의 미끄러지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 ‘Peta’의 경쾌한 플루트 차용도 음반의 감초 역할을 맡는다. 끝을 장식하는 ‘War baby’의 입체적인 합창단 사운드에서는 그의 실험적인 면모 또한 엿보인다. 저마다의 세션으로 포인트를 짚어준 덕에 적재적소의 강조점을 찾아 듣는 재미가 출중하다.
그러나 한결같이 거센 분위기로 일관한 탓에 작품 전체의 질감은 썩 매끄럽지 못하다. 투박한 음향 속 문법과 톤의 변화가 부재하고 유연한 리듬감이 적은, 직선적으로 거칠게 뱉는 랩이 꾸준히 이어져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확실한 중독성을 지닌 초반의 곡들을 지나 중후반부에 다다르면 청취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만다. 피아노 선율을 앞세운 ‘Gods eyes’와 몽롱하게 기운을 가라앉힌 ‘High fashion’ 같은 환기 트랙들이 자리했음에도 전체적인 느끼함 속 텐션을 살리지는 못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The box’와 다른 곡 간의 순위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이러한 킬링 트랙과 그렇지 않은 노래들의 흡인력 차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편 ‘War baby’에서 드러나는, 자전적 이야기를 작가적으로 풀어낸 가사는 신예 래퍼에게 고무적인 부분이다. 그가 단발성 인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롱런할 기본을 갖췄다는 방증이다. 완전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로디 리치는 힙합 애호가와 대중의 기호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준비된 래퍼다. < Please Excuse Me For Being Antisocial >은 그가 쏜 메인스트림으로의 신호탄이자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던 자신에게 들이부은 기름 같은 앨범이다.
– 수록곡 –
1. Intro
2. The box
3. Start wit me (Feat. Gunna)
4. Perfect time
5. Moonwalkin (Feat. Lil Durk)
6. Big stepper
7. Gods eyes
8. Peta (Feat. Meek Mill)
9. Boom boom boom
10. Elyse’s Skit
11. High fashion (Feat. Mustard)
12. Bacc seat (Feat. Ty Dolla $ign)
13. Roll dice
14. Prayers to the trap god
15. Tip toe (Feat. A Boogie Wit da Hoodie)
16. War b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