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수록곡이 담긴 짧은 EP다. 노래 수는 적지만 흔적만은 짙다. 전자음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곡의 쫀쫀한 질감을 살려냄은 물론, 다층의 코러스, 휘파람 사운드, 볼륨감 있는 신시사이저를 적절하게 사용해 각 곡이 저마다 뚜렷하다.
‘사랑을 자각한 소년들이 강제적인 금기에 반항하고 본능에 이끌려 사랑을 쟁취해 나간다’는 콘셉트에 충실하다. 엑소의 ‘Love shot’이 연상되는 타이틀 ‘Roar’는 훅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악’, ‘타락한 천사’, ‘낙원’, ‘욕망’과 같은 단어를 쓴 콘셉츄얼한 가사 사이 힘있게 직선적으로 내리꽂히는 전자음과 미드템포로 흘러가는 선율의 이중적 맞부딪힘이 좋다. 브릿지 부분에 두껍게 쌓이는 코러스까지 노래 곳곳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퓨처베이스를 적당히 녹여낸 첫 곡 ‘Awake’, 후반부 베이스 리듬과 신시사이저의 의도적 어긋남이 흥미로운 ‘Savior’과 같은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러 발음을 뭉게거나 마치 연기를 하듯 가창에 이미지를 덧씌워 음반이 만든 이야기에 농도를 높인다. 가사, 퍼포먼스, 비주얼 한 곳에서 조금만 더 나가거나 덜 나갔다면 세계관의 응집력이 떨어졌을 것이나, 신보는 그 중심을 잘 잡는다.
달콤한 사랑 노래인 ‘Blah blah’에서 ‘블라블라(Blah blah)’, ‘울라라(Ou la la)’ 등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음율을 만들거나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 선율을 만드는 발라드 ‘숨’에서 ‘울고 있던 내 곁에서 / 수평선이 되어 준 / 넌 나의 모든 숨’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등 인상적인 가사도 많다. 날 선 전자음이 주도하는 끝 곡 ‘Diamond life’ 역시 단어의 리듬감과 후렴구 멤버들이 교차하며 노래의 합을 끌어내는 깔끔하고 담백한 구성을 지녔다.
소년의 성장과 사랑. 단계적으로 세계관을 풀어가는 와중, 이를 뒷 받칠 노래들이 탄탄하다. 무엇보다 세계관에 귀 기울이게 하는 곡 단위 호흡이 음반의 승리 요소. 잘 정돈된 음악으로 그룹의 성장 서사를 조명했다.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요소를 말끔하게 세공한 최신형의 포맷을 들려준다. 청량한 소년미와 성숙함을 오가던 더보이즈의 행보 속 ‘Maverick’은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팀의 진화 의지를 표명한 노래로 기억될 곡이다. 유쾌하던 전작 ‘Thrill ride’와는 결이 다르다. ‘개성 강한 사람’을 뜻하는 제목만큼이나 청각을 장악하려는 저돌적인 태세가 가사에서, 촘촘한 랩 곳곳에서 드러난다.
반복되는 전자음 위 멤버들의 보컬과 화음을 겹겹이 쌓아 올려 K팝 특유의 집단성을 강조한다. 곡조에 힘을 풀고 인상적인 멜로디 대신 3연음 랩으로 마감질한 후렴구도 중독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긴장감 정도는 유지. 여타 보이 그룹들에게도 익히 접할 수 있는 소재라도 결과물은 뻔하지 않다. 정교한 버무림의 차이다.
현재 K팝 씬에서 두각을 보이는 신진 그룹들은 모든 멤버가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 아이돌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신세대 아이돌은 숏폼 콘텐츠와 메타버스, 스토리텔링으로 꽉 찬 노랫말을 활용해 더 다양하게 K팝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전략과 정체성으로 Z세대의 지지를 받는 8팀을 소개한다. 이들을 통해서 아이돌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에 국한되지 않는 변칙적인 K팝의 미래를 아래 그룹들을 통해 그려보자. 아이돌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신세대의 시대정신과 대중음악의 흐름을 모두 담은 이 기민함에 있다.
에스파 (æspa) SM에서 6년 만에 내놓은 신인 걸그룹의 화제성 위에 메타버스 세계관이 기름을 부었다. 에스파는 멤버들의 이름 앞에 아이(ae)를 붙인 4명의 아바타를 포함한 8인조 그룹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를 증명하듯 데뷔 직전 공개한 ‘MY, KARINA’ 영상에서 멤버 카리나는 아이-카리나와 대칭으로 앉아 대화하며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어려운 세계관은 노랫말에 녹아들어 대중에게 주입한다. 데뷔곡 ‘Black mamba’의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라는 가사는 온라인에서 두 자아를 대비하는 밈(Meme)으로 유명해져 그룹의 이름을 알렸다.
에스파는 세계관이 가진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과 춤의 무게를 덜었다. 영화 < 분노의 질주 : 홉스 & 쇼 >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Next Level’은 ‘I’m on the next level’이라는 가사를 쫀득하게 발음하여 듣는 재미를 더했고 디귿 춤 같은 독특한 포인트 안무가 쇼트폼 콘텐츠에서 돌풍을 일으켜 음원차트를 역주행해 1위에 올랐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에스파는 더욱 공격적인 기세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메타버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그룹은 최근 발매한 ‘Savage’을 통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트와이스의 ‘Cheer up’, ‘TT’ 등을 만든 프로듀서 블랙 아이드 필승이 6인조 걸그룹 스테이씨를 기획했다. 히트메이커가 만든 팀이라는 타이틀과 가수 박남정의 딸이자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박시은이 속했다는 사실로 데뷔 전부터 이목을 모았으나 확실한 임팩트를 남긴 것은 두 번째 싱글 ‘ASAP’이다. ‘ASAP 내 반쪽 아니 완전 카피’라는 중독적인 후렴구와 귀여운 ‘꾹꾹이 춤’이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챌린지로 급부상하며 뒷심을 발휘한 덕분.
최근 발매한 ‘색안경‘의 ‘난 좀 다른 여자인데 / 겉은 화려해도 아직 두려운 걸’과 같은 가사는 수동적인 소녀상을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강한 10대를 지향하는 팀은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요’라며 거침없는 자기표현으로 답습을 거부한다. 꾸밈없는 모습은 오히려 소녀의 생기발랄함으로 충만하다. 어떤 틀에도 끼워 맞출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Z세대가 스테이씨의 ‘틴 프레시’에 열광하는 이유다.
– 추천곡: ‘ASAP’, ‘색안경’, ‘So bad’, ‘Slow down’
위클리 (Weeekly)
학창 시절의 향수는 그 어떤 추억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K팝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 역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때에 대한 그리움과 맞닿아 있지만 2020년에 데뷔한 7인조 걸그룹 위클리는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되풀이되는 교복 컨셉트와 거리가 멀다. ‘언니’를 외치며 성인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내는 이들은 교복 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은 Z세대 여학생이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서 특정인을 부르거나 언급할 때 사용하는 태그(@) 기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Tag me’, 2000년대 초반 하이틴 록을 따르는 ‘Zig zag’와 ‘After school’ 등 활기 가득한 음악은 기존 걸그룹의 이미지를 빗겨나간다. 책걸상, 큐브, 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댄스컬 역시 교실 마냥 왁자지껄하다. 올해 초 발매한 ‘After school’은 쇼트폼 콘텐츠에서 10대에게 인기를 얻으며 스트리밍 플랫폼의 바이럴 차트 1위에 올랐다. ‘틴 크러시‘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대신 ’위드 틴‘을 지향하는 위클리는 윗세대의 향수와 또래의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세대를 이어준다.
– 추천곡: ‘‘After school’, ‘Zig zag’, ‘나비 동화’, ‘언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XT)
시작부터 특별했다. 방탄소년단의 동생 그룹으로 주목받은 다섯 소년은 신스팝, 뉴잭스윙 등 복고적인 음악과 청량한 기조를 내세우며 선배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대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하위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어린 연령의 팬덤과 북미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판타지 소설 < 해리 포터 >를 활용한 두 번째 타이틀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의 컨셉트와 가사, 장르 소설 스타일의 긴 제목은 K팝에 관심 없는 이들도 기억할 만큼 독특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격동기를 담은 세계관은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음악적 변화의 정당성까지 확립한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그린 < 꿈이 장 > 시리즈에서 밝은 분위기를 이어오던 이들은 올해 발매한 < 혼란의 장 > 시리즈에서 록 사운드로 비일상적인 세계를 깨고 나와 현실과 마주한 소년의 혼란을 표현했다. 빈틈없는 기획으로 짜인 밑그림을 따라 움직이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선배와 다른 방식으로 같은 미래를 좇고 있다.
– 추천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0X1=Lovesong’, ‘Blue orangeade’, ‘Angel or devil’
에이티즈 (Ateez)
연습생 시절 케이큐 펠라즈(KQ Fellaz)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콘텐츠를 선보였던 에이티즈를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빌보드의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이 ‘포스트 BTS’로 꼽은 8인조 그룹은 웅장한 퍼포먼스로 팬층을 형성했다. 또 블락비, 비에이피, 방탄소년단 등을 따라 힙합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은 팀이 가진 역동성마저도 담고 있다.
비투비의 ‘아름답고도 아프구나’를 쓴 이든이 팀의 프로듀싱을 전담하고 있으며 멤버들의 적극적인 작업 참여도 음악과 퍼포먼스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 일조한다. 더해서 음반의 상호유기적인 구성과 ‘해적왕’, ‘Wave‘, ‘Neverland‘ 등 해적 컨셉트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이들의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실력과 확실한 음악색으로 밀고 나가는 에이티즈의 기세는 어떤 외부적인 힘에도 기대지 않기에 더 강력하다.
– 추천곡: ‘Deja vu’, ‘Wave’, ‘Neverland’, ‘Answer’
있지 (ITZY)
있지는 ‘예쁘기만 한 애들과는 달라’라고 어필하며 데뷔했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다른 그룹과 다르지 않은 댄스곡, 걸크러시 컨셉트로 성공한 이들이 어딘가 남다르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후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입증하는 과정 역시 순탄했다. 쿨한 매력의 ‘Icy’, 자존감을 고취하는 ‘Wannabe’, 당돌한 사랑을 담은 ‘Not shy’까지 이들은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스타성을 강조하는 JYP 걸그룹 전통에 ‘힙’을 더해 여성들의 워너비를 자처했다.
차별성을 전면에 내세운 팀이 팬 위주의 K팝 씬에서 여전히 대중성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음악은 힙합, 하우스, 뭄바톤 등 대중적인 장르를 혼합했으며 ‘마.피.아. In the morning‘의 캣우먼 이미지는 기성 걸그룹을 따른다. 그런데도 특유의 에너지와 파급력이 있지라는 이름을 내세울 만한 근거를 형성한다. 뻔뻔함과 당당함이 매력적인 이들은 남들과 다르고 싶지만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도 않은 Z세대의 이중적인 면을 닮았다.
– 추천곡: ‘Loco’, ‘달라달라’, ‘Not shy’, ‘Nobody like you’
스트레이 키즈 (Stray Kids)
동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JYP 7인조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초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국내 K팝 팬들조차 데뷔곡 ‘Hellevator’의 반항기 어린 심오함과 ‘부작용’에서 계속 되뇌는 ‘머리 아프다’라는 직관적인 가사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 심상치 않은 해외 인기 지표를 보이던 이들은 일명 ‘마라맛 K팝’이라고 불리는 ‘神메뉴’를 발매하며 국내 입지를 넓혔다. 파워풀한 EDM 사운드와 음악을 신의 요리에 비유한 가사가 그룹의 유쾌한 매력을 성공적으로 어필한 결과다.
이 독특한 정체성은 팀 내 프로듀싱 그룹 쓰리라차(3RACHA)로부터 나왔다. 힙합과 EDM을 좋아하는 세 멤버는 연습생 때부터 함께 작업하며 그룹의 음악적 기둥으로 성장해 올해 엠넷에서 방영된 < 킹덤 : 레전더리 워 >의 우승까지 견인했다. 스트레이 키즈는 최근 발매한 ‘소리꾼’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며 K팝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퉤 퉤 퉤’하는 ‘소리꾼‘의 가사가 대중에게 개성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 이들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 추천곡: ‘소리꾼’, ‘神메뉴’, ‘Back door’, ‘청사진’
더보이즈 (THE BOYZ)
2017년 데뷔 이후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더보이즈는 작년 엠넷에서 방영된 < 로드 투 킹덤 > 출연으로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밀도 있는 기획을 바탕으로 360도 스테이지를 활용한 이들의 무대는 카메라의 시선이지만 맨눈으로 보는 듯 깊은 몰입을 유도했다. 그 결과 11인조 그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1위를 거머쥐며 무관중 퍼포먼스의 본보기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룹 이름에는 그 어떤 수식어도 없다. 더보이즈는 그저 소년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소화하며 팀의 신선함을 유지한다. < 로드 투 킹덤 >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태민의 ‘괴도’ 커버 무대를 벤치마킹한 ‘The stealer’의 퍼포먼스는 감탄을 자아내고 최근 발매한 ‘Thrill ride는 끌리는 멜로디의 청량감으로 가볍게 접근한다. 매번 새로운 전략과 이미지를 선보이는 더보이즈의 성장기는 소년만화 한 편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케이팝 왕좌를 향한 두 번의 여정에서 더보이즈는 값진 성과를 올렸다. 차별화된 무대를 통해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 로드 투 킹덤 >(2020) 우승과 < 킹덤 >(2021) 준우승을 거머쥐며 차세대 케이팝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오싹한 기운이 감도는 제목 ‘스릴링’만 보면 방송에서 보여줬던 태민의 ‘괴도(Danger)’ 커버 무대만큼 시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가 연상된다. 그러나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스릴러 장르에만 머물지 않는다.
리듬 게임에 나올 법한 사운드로 출발하는 ‘Thrill ride’는 후룸라이드처럼 시원한 물세례를 뿌리며 나아간다. 개성 넘치는 신시사이저와 두터운 베이스가 곡의 중심을 잡고 스크래치와 휘파람 소리 등의 부가 요소들은 흥미를 유발한다. 후렴구엔 따라 부르기 쉬운 ‘스-스릴 라이드/뚜뚜루루’를 반복하며 간결한 멜로디를 배치해 중독을 유도한다. 과거와는 다른 전개 양상이나 더보이즈만의 에너지로 계절적 특징을 살리며 이뤄낸 콘셉트 다각화다.
다만 ‘스릴’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설명하기엔 조금 단편적인 곡이다. 청량했던 EP < Dreamlike >와 몽환적이었던 일본 정규 음반 < Breaking Dawn >을 배합한 이번 신보는 청록색의 네온 빛을 내뿜고 있으나 타이틀 ‘Thrill ride’는 흥겹기만 해서 신비로운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싱글을 제외한 그간의 앨범들을 되짚어 봐도 전반적인 기조를 형성했던 1번 트랙이 활동곡이었던 적은 없었다. 때문에 옴니버스 구성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묘한 분위기의 테마파크로 안내하는 첫 번째 놀이기구는 차원 너머를 떠도는 듯한 ‘환상열차’가 더 어울린다.
정돈되지 않은 배치에도 각각의 뚜렷한 테마로 완성한 다각적 접근법은 본래 의도를 우수하게 실현한다. 도입부터 스산한 화음이 감싸는 ‘Nightmares (黑花)’는 공포스럽고 처절한 노랫말로 단조의 음울함을 극대화하며 꿈 세계관을 확장한다. 쓰러질 때까지 밤새 춤추자는 ‘Dancing till we drop’과 기타 연주를 곁들인 수줍은 고백 ‘B.O.Y (Bet on you)’는 팬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추억하며 얼굴을 마주할 언젠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데뷔 이후 쉼 없이 달려온 소년들은 여름휴가도 평범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는 중 동선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다채로운 구성의 파티엔 즐길 거리가 풍성했다. 탄탄한 성장세를 자축하는 자리에 축배가 빠질 수 없지 않을까. 톡톡 튀는 신인 시절의 활기와 첫 정규앨범 < Reveal >부터 쌓아온 성숙함을 흔들어 따라낸 달콤 쌉싸름한 칵테일 한 잔. 온몸이 떨리게 만드는 냉기가 마스크로 답답했던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 수록곡 – 1. Thrill ride 2. 환상열차 (Out of control) 3. Dancing till we drop 4. Nightmares (黑花) 5. Merry bad ending 6. B.O.Y (Bet on you)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하나는 이들이 벌써 3년 차 아이돌이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지금껏 완성도 높은 곡들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더보이즈’라는 그룹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뷔의 풋풋한 소년에서 ‘Reveal’로 보여준 성숙한 모습까지, 성장형 이미지를 취하면서 착실하게 정석대로 나갔으나 도약대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틀 ‘The stealer’는 팀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경연 프로그램 < 로드 투 킹덤 >의 ‘Checkmate’에서 가능성을 확인하여 밀고 나간 묵직한 사운드에 드럼 비트와 베이스라인이 비장하게 더해져 타격감이 다부지다. 청량감을 잔뜩 머금은 ‘Whiplash’는 4집 < DreamLike >의 타이틀 ‘D.D.D’의 연장선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는 경쾌한 중독성을 지녔다. 대중적으로 잘 들리면서 한 컨셉이나 장르로 치우치지 않은 곡들로, 여기서 상승 곡선을 향한 도움닫기의 순간을 캐치할 수 있다.
해외 작곡자들의 참여로 전반적인 앨범은 탄탄한 만듦새를 자랑하나, 타 보이그룹의 익숙한 잔상이 스쳐 지나간다는 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켄지의 손을 거친 ‘Shine shine’의 보컬 레이어링은 엑소, NCT의 향취를 물씬 풍기고 특히 ‘Insanity’의 도입부는 NCT U의 ‘Baby don’t stop’이 아른거린다. 안정적인 구성이라는 메리트는 확실히 존재하지만 그룹의 색깔이 명명하지 않기에 결국 기시감이 비교적 크게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군더더기 없는 결과물을 선보이며 그들의 영역을 탐색하는 과정을 내비친다. 이렇다 할 신선도나 충격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슈트를 걸친 어른으로 변화를 꾀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시도가 상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매끈한 노래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그래프를 이어가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결정적인 수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 대중의 뇌리에 ‘가장 깊숙한 곳’에 닿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수록곡- 1. Shine shine 2. The stealer 3. Insanity 4. Whiplash 5. Make or break 6. Checkmate (stage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