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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2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든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를 딛고 일어난 국내 문화계가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동시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되고 삶은 흘러가니까.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스플래시와 함께 2022년 가요계를 돌아본다.

배신 또는 오해, 표절 논란
시작은 유희열이었다. ‘생활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관련 의혹이 빠른 속도로 불거졌다. 그가 작곡한 성시경의 ‘Happy birthday to you’, < 무한도전 > 가요제 프로젝트 곡인 ‘Please don’t go my girl’ 등도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무진 등 여러 뮤지션에게 표절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2022년 상반기는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레퍼런스’나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반론도 곳곳에서 등장했고, 논란을 조회수 삼으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 다소 억지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도 나타났다. 예술의 특성상 문제를 깔끔하게 종결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표절’이라는 키워드가 모두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돌아온 페스티벌과 공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공연 문화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택트 공연 등 대체 수단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서울 재즈 페스티벌부터 인천 펜타포트, 부산 록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고, 빌리 아일리시와 잭 화이트를 비롯해 여러 굵직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졌다. 풀리지 않은 규제로 마스크의 답답함은 있었으나 열정과 사랑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예열과 시동 단계일 테지만, 억눌렀던 마음만큼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렌드의 중심이 된 1990년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19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펑크(Funk) 열풍은 2020년대 본격적인 폭발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팝 펑크(Pop Punk)다. 2021년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를 주축으로 영미권의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이끈 장르의 재부흥을 K팝 또한 재빠르게 수용했다.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와 최예나의 ‘Smiley’, 우즈(WOODZ)의 ‘난 너 없이’ 등이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이모(Emo) 감성을 일부 벤치마킹한 비주얼을 내세웠다. 정점은 단연 (여자)아이들의 ‘Tomboy’. 앨라니스 모리셋 등 록 여성 뮤지션의 정신을 받아들여 매혹적인 팝 선율, 거침없는 펑크(Punk)의 태도를 모두 끌어안았다. 음원에는 삭제된 욕설까지 함께 소리치던 대학 축제 풍경은 화끈함의 극치였다.

가지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나갔다. 아이브의 ‘After like’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 리듬을 기반 삼았고, 뉴진스의 ‘Attention’과 ‘Cookie’는 비슷한 시기의 힙합과 알앤비 장르를 채택했다. 큰 유행이 된 Y2K 콘셉트를 여러 팀이 전격 채택한 것은 덤. 윤하의 ‘사건이 지평선’이 역주행한 원인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2000년대 초 TV 만화 채널을 추억하는 젊은 층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1990년대생의 문화가 차츰 향수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는 현상을 음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인드 셋, 거장의 귀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음악에서는 그렇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돌아오면서 오랜 세월 쌓은 관록만큼이나 식지 않은 에너지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먼저 꾸준한 바이닐과 시티팝 유행에 힘입어 5월에는 빛과 소금이 2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 Here We Go >를 발표했다. ‘공유’의 시대를 거슬러 음악을 ‘소유’하려는 자연적인 수요와 맞닿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송골매 또한 ‘열망’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며 기성세대 못지않게 젊은 세대까지 관객석으로 초대했다. 7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인천 공연까지 성행하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업계에서도 컴백은 이어졌다. KBS의 < 불후의 명곡 >이 2012년 은퇴 선언을 했던 패티김을 초청해 3부에 걸쳐 특집을 꾸렸고, 그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 또한 TV조선의 러브콜을 받아 데뷔 63주년 기념 특별 공연을 개최했고, MBN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심수봉을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가왕’은 ‘가왕’. 조용필이 스무 번째 정규 앨범의 예고편으로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선보인 데에 이어 KSPO 돔에서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혀 늙지 않은 음악으로 돌아온 그, ‘영원한 오빠’ 수식어는 2020년대에도 공고했다. ‘물리적 나이보다 마인드 셋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느껴본다. 어찌 보면 키워드는 ‘귀환’이 아니라 ‘소통’이다.

여성 아이돌 르네상스
엠넷 < 프로듀스 > 시리즈의 성공 이후 여러 그룹이 팀 단위보다는 개별 멤버 위주의 팬덤 구축과 세계화에 힘을 서서히 쏟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세계관’과 가끔 난해하기도 한 콘셉트에 여성 아이돌이 예전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돌아온 2022년 걸그룹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Love dive’와 ‘After like’를 연속 히트시킨 아이브가 선두 주자로 올라선 가운데 같은 아이즈원 파생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초 여러 논란을 딛고 ‘Antifragile’을 흥행에 성공시키며 재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남다른 방식으로 첫선을 보인 뉴진스 또한 ‘Attention’과 ‘Hype boy’로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세 자리를 놓고 전투를 벌였다. 스테이씨의 ‘Run 2 u’, 있지의 ‘Sneakers’,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Nxde’ 등 신세대 걸그룹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바쁜 1년이었다.

선배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으로 클래식 샘플링 트렌드를 이끌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한편 블랙핑크는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모두 올라 글로벌 시장 점령을 이어 나갔다. 트와이스의 나연은 숏폼 플랫폼에서 안무 챌린지를 적극 활용해 첫 솔로 싱글 ‘Pop!’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Forever 1’으로 15주년을 풍성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와 7년 만에 다시 모인 카라까지, 신예들과 익숙한 이름의 공존에 2022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에 반해 타겟층이 일반 대중에서 구매력이 높은 팬덤으로 많이 기울어진 남성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싱글 차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소비자층이 세분화됨에 따라 ‘국민가수’나 ‘국민가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애초에 보이그룹의 목표가 공연이나 음반으로 옮겨간 지도 오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보이그룹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꺾이지 않는 장기 지배, 힙합 정권 40년
얼마 전, 요즘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한다면 남학생들은 지코의 ‘새삥’ 챌린지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힙합이 이제 하나의 별종이 아니라 굳건한 주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올해 무려 열한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 쇼미더머니 >와 여러 밴드가 나선 경연 프로그램 <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의 시청률 차이만 봐도 명확하다. 해외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도권은 힙합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타고 본격 유입을 겪은 힙합/알앤비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넓히며 세력을 키웠다. 비오의 ‘Love me’,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 그리고 크러쉬의 ‘Rush hour’ 등 차트에는 아직도 여러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록 페스티벌의 부활 사이 함께 돌아온 대구 힙합 페스티벌까지, 어느덧 익숙해진 힙합 강국의 면모다.

BTS 병역 논란
엄밀히 말하면 ‘가요’계 사건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가 올 한 해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다. 국위선양의 공로를 높게 사 병역 면제를 논하는 입장과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며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유승준과 MC몽 등 남성 뮤지션의 입대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른 문제였다.

사안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끝을 맺었다. 맏형인 진이 12월 13일 최전방인 연천 지역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 같은 날 솔로곡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던 멤버 슈가는 어깨 수술을 근거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멤버들의 계획은 아직 미정이나 그룹 활동의 중단 이후 여러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개인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른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와 엮이며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까지 나왔던 주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성별과 세대 갈등까지 연결되는 두 글자, ‘군대’. 그러나 병역이 아직까지 ‘의무’인 국가에서 이를 일종의 ‘형벌’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 100분 토론 >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에게서 기억되고,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특혜’ 아닐까.

사각지대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티스트 착취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뉴스에서 떠오른 헤드라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11인조 보이그룹 오메가엑스의 갑질 피해 소식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멤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이 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온갖 피해 내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코로나19 감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무대를 섰다는 사실, 온갖 폭언과 협박 내역이 밝혀졌다.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한때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승기 또한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에게서 음원 수익을 전혀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언론에 드러났다. ‘적자 가수’라는 비하 발언을 했던 대표는 현재 수익 횡령 의혹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창 여러 방송에서 활약 중인 가수 츄가 소속 그룹 이달의 소녀에서 강제로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중립적인 언어로 계약 해지 사실을 밝혔던 여러 선례에 비하면 ‘제명’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 블록베리 엔터테인먼트의 글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반박되며 나머지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계약 해지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퍼진 사이, 1월로 예정된 그룹의 컴백 소식이 갑작스레 공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

한때 범람했던 가요계 계약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음악과 뮤지션이 돈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착잡함을 안긴다. 정녕 음악이 순수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을까, 바란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조금 더 깨끗하고 공정한 음악 산업 소식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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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0

올해를 돌아보면 온갖 날카로운 단어들이 떠오른다. 전염병, 자연재해, 거리두기. 격변의 한 해였다. 새로운 10년을 여는 2020년은 코로나 19의 창궐로 전 세계를 움츠러들게 했고, 우리 삶에 여러 변화를 안겼다. 대중음악계에도 피할 수 없는 지각 변동의 순간이 있었다. 혼란의 시기에도 계속해서 구르며 기억할만한 이슈를 남긴 2020년의 가요계를 돌아본다.

세계 정상 방탄소년단,
보통명사가 된 케이팝.

더 오를 곳이 없다. 적어도 차트 성적에서는 그렇다. 방탄소년단이 세계 정상을 정복했다. ‘Dynamite’ 이전 네 개의 노래를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진입시키고 네 장의 음반을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은 데에 이어 빌보드의 왕관이라 할 수 있는 싱글 차트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영어 가사가 가진 범용성의 이점과 코로나 19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이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밝고 경쾌한 디스코 리듬을 주무기로 ‘Dynamite’는 2주 연속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그 이후에도 조시 685(Jawsh 685),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와 꾸민 ‘Savage love’ 리믹스와 한국어 가사의 ‘Life goes on’를 같은 성적에 안착시키며 멈출 줄 모르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케이팝의 세계화를 이끈 그룹은 방탄소년단뿐만이 아니다. YG의 블랙핑크는 올해 정규 음반으로 미국 시장에 확실한 출사표를 내던지고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싱글 차트 13위에 이름을 새겼으며, SM의 슈퍼엠과 엔시티 127 역시 각각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와 5위에 올랐다. 더욱 많은 뮤지션이 세계에서 입지를 다지며 케이팝은 도약에 도약을 거듭,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올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케이팝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확장이다. 2020년 해외 케이팝 팬들은 미국 사회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관련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해당 캠페인에 대한 지지 의사로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원)를 기부했는데, 그것을 본 팀의 팬덤 아미(A.R.M.Y)가 그들과 똑같은 금액을 모금, 쾌척하며 흑인 인권 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BLM을 비꼬기 위해 탄생한 백인 우월주의 집단의 ‘White Lives Matter’ 인스타그램 해시 태그를 좋아하는 케이팝 뮤지션의 사진으로 도배해 범람시키는 등 인종 갈등이 심화한 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케이팝 팬들이 국제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활동 범위가 넓어졌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 뉴욕 타임스 >는 이들이 감행하는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을 ‘팬덤 문화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노력’이라 진단했다. 진보적이고 비교적 소수의 인종이 모여 있으며, 해외 문화에 개방적인 이들이 기존 아이돌 문화가 가지고 있던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문화’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대에 의미 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케이팝의 도약은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더욱더 유의미하다.

완벽한 과거 시제,
가뭄 속의 실험.

올해도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과거를 탐색했다. 팝 시장의 주축이었던 디스코 음악에 위켄드(The Weeknd)와 두아 리파(Dua Lipa), 방탄소년단 등이 발맞췄고, 최근 새로 개정한 < 롤링스톤 500대 명반 >은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 등 지금의 대중음악에 중심으로 녹아들어 있는 흑인 음악을 대거 재조명했다. 계속되는 레트로 유행에 이제는 옛 것이 옛날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가요계도 완벽한 과거 시제를 지향했다. 작년이 시티팝의 해였다면 올해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단연 트로트. TV 조선의 < 미스터트롯 >이 임영웅, 영탁 등의 스타를 낳으며 지난 해 < 미스트롯 >으로 ‘트롯 바람’이 난 대중에게 성인가요의 인기를 더욱 불어넣었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전파를 타며 부캐 열풍을 일으킨 <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쿨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 슬기로운 의사생활 > OST 조정석의 ‘아로하’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댄스, 발라드를 재현한 복고의 영역이다.

트로트와 댄스, 발라드는 비교적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는 더욱 화끈한 복고 바람이 불었는데, 국악이 그 주인공이다. 소위 ‘굿 음악’이라 불리는 무가(巫樂)를 재즈, 펑크(Funk), 레게의 요소로 재탄생시킨 추다혜차지스와 ‘국악계 이단아’로 불리며 전통 음악의 정격을 깨부순 오방신과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 수궁가 >를 현대적 댄스 리듬으로 재해석한 이날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올해의 인물. 이들의 음악은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공익 광고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더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계 네티즌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켜 현재 도합 2억 3천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이 가장 쉽게 그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홀대했던 옛것 중 좋은 것을 발굴해 새 흐름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독창적인 창작에 목마른 현 음악계에 가뭄 속의 실험과도 같다.

코로나 여파,
멈춰버린 인디 공연.

거리가 텅 비었다. 번화가의 화려한 불빛도, 클럽가를 메운 북적이는 음악 소리도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차가운 말 앞에 공연이 줄줄이 무산됐고 음악가들은 팬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2020년 대중음악계 모습이다.

사태의 장기화는 누구보다 인디 뮤지션과 공연 관계자에게 직격탄이 됐다. 인디 뮤지션들에게 공연은 단순 수익의 매개체를 넘어 자신이 새로 쓴 노래와 준비한 기획을 선보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온라인 공연 등을 열면 언제든 홍보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대형기획사와 달리 작은 레이블 아티스트나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에게는 그럴 방법이 한정적이다. 유흥업소를 제한한 정부의 지침에 비해 이들을 향한 실질적인 지원은 병행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5월 이태원발(發) 코로나는 결정적이었다. 이태원 클럽을 시작으로 확산한 2차 대유행은 이태원 클럽을 향한 인식 악화를 낳았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그 일대를 무대 삼아 활동하던 디제이들과 관계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태원 공동체는 서로 뭉쳐 연대했다. 6월 소프가 이끈 ‘서포트 이태원(Support Itaewon)’ 프로젝트와 클럽 케이크샵이 주도한 ‘리플라이 이태원(Reply, Itaewon)’ 커뮤니티 기획은 혼돈의 시기에도 이들이 끈끈한 연결고리를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홍대와 이태원 등 개성 강한 뮤지션과 여러 장르가 집결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는 가요계의 다양화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역동적인 활기로 가득하던 그들의 모습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언택트 시대의 대안,
온라인 콘서트.

한숨이 깊어지는 공연 업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온라인 콘서트였다. ‘방방콘 더 라이브’로 무산된 월드투어를 대체한 방탄소년단, SM 엔터테인먼트가 네이버와 손잡고 진행한 ‘비욘드 라이브’ 시리즈. 그리고 지난 8월에는 JYP와 SM이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위한 전문 회사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Beyond LIVE Corporation·BLC)을 설립하며 양 소속사가 이례적인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 밖에도 CJ ENM이 기획한 한류 축제 ‘케이콘택트 2020 서머’ 등도 성공리에 막을 올리며 사태와 장기간 공생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인 만큼 대형 기획사들이 앞으로의 공연 문화를 앞장서 주도했다.

케이팝 온라인 공연은 다양한 IT 기술을 동반한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3인칭의 화려한 시각 연출을 자아내고, 다중 화상 연결 시스템으로 팬들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댓글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단순 오프라인 공연 실황 비디오와는 구분되는, 비대면 공연만의 대안적인 차별화를 더한 ‘새 시대의 쇼’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온라인 콘서트는 관객과 떨어져 진행되는 만큼 생생한 열기를 실현하기 어렵다. 또한 조명과 연출 등에 많은 돈이 드는 데에 비해 티켓 가격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저조한 것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용 인원에 제한이 없어 언뜻 무한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방방콘’처럼 75.6만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교적 팬덤 규모가 작은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고, 오히려 적자가 날 수 있는 장사다.

코로나 19가 끝나도 온라인 공연이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시대의 공연 문화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은 적합한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산업에 대한 대중음악계 전체의 면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