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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펠링(Spellling) ‘Spellling & The Mystery School'(2023)

평가: 3.5/5

스펠링(Spellling)은 아멘 듄스나 제니 발(Jenny Hval) 등 영묘한 기운의 퓨전 음악가들이 포진되기로 유명한 미국의 인디 레이블, ‘세크리드 본즈 레코즈’의 간판 아티스트 중 하나다. 모든 창작적 시도를 존중하는 환경에서 첫 음악 활동의 뿌리를 내린 만큼 아트 팝과 다크웨이브(darkwave) 등 다양한 결을 오가며 지평을 넓힌 음악가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정규 앨범이지만 단 하나의 신곡도 없는 구성부터 이단아적 성격을 내비친다. < Spellling & The Mystery School >은 장대한 오케스트라과 밴드 세션을 대동해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완전히 분해하고 다시 조합한 리메이크작이다. 더 정확히는 재작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준 입지적 분기점 < The Turning Wheel >의 풍부한 바로크 팝 문법을 더욱 강화해 용광로로 만들어 과거 작업물을 전부 털어 넣어 만든 응집체다.

언뜻 의아해 보이나, 그 속에는 히트곡 교열만이 아닌 예명 뒤에 존재하는 크리스티아 카브랄(Chrystia Cabral)이라는 한 인간의 분투가 기록된다. 치열한 자기 탐구로 마침내 시대의 주목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행착오의 궤적을 현재 시제로 개편해 2막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기 위한 고혹적 몸부림. 완벽주의에 의거한 소화 행위가 벌어지는 이유다.

분명 그의 초기작은 독특한 정체성을 가졌으나 영감의 원류가 명확히 드러나는 지점이 있었다. 데뷔작 < Pantheon Of Me >에는 뷰욕의 울렁거리는 앰비언스와 미니멀리즘이, 그리고 < Mazy Fly >에는 크라프트베르크의 투박한 신시사이저와 케이트 부시의 소프라노 창법이 웃돌았다. 그 둘이 지닌 모사적 성격을 지우고 < The Turning Wheel > 문법에 투입해 커리어 통합을 일궈내려는 시도는 어쩌면 주체성 쟁취를 향한 강한 열망으로 보인다.

중압감을 집요하게 파헤쳐 연약한 보컬과 대비를 이룬 ‘Walk up to your house’부터 사운드에 대한 집착이 선명하다. ‘Under the sun’과 ‘Haunted water’에서는 기존의 건조하고 댄서블한 분위기 대신 건반과 현악기를 교차로 드리워 아트홀 규모에 어울릴 법한 두터운 조성을 입혔다. 의도적이다 못해 광적으로 반복을 지향하던 ‘Choke cherry horse’는 코러스와 부드러운 변주를 섞어 친절한 팝 트랙 ‘Cherry’로 둔갑시킨다.

출세작의 그늘에 과거를 강제로 편입시키려는 강압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예술의 영역에 마치 선악 논리를 대입하려는 모순적 감상을 낳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 스펠링은 그저 일탈에서 비롯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듯 정규 앨범으로 내세우는 용기로 대답을 일관한다. 결국 양질의 수록곡을 전부 준수하게 결속한 창의적인 편곡과 라이브 녹음을 고수해 영롱하다 못해 익사할 만큼 깊어진 공간감으로 역량을 증명하는 데도 성공한다. 원곡과 대비해 보며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앨범의 또 다른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제2의 후예가 되는 것이 아닌 제1의 스펠링이 되는 것. 평범한 학교 교사에서 소리로 열망을 일깨우려는 선각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한 사람의 고심은 세 번의 도약을 거쳐, 마침내 한 편의 ‘스펠링 뮤지컬’로 환산되기에 이르렀다. 독특하지 않아도 탄탄하다. 그가 설립한 수수께끼의 학교에 입성하는 순간 진녹색 연기와 구속복에 채워진 채 차분히 열반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변심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 수록곡 –
1. Walk up to your house
2. Under the sun

3. They start the dance
4. Cherry
5. Haunted water
6. Hard to pretend (reprise)
7. Phantom farewell
8. Boys at school
9. Always
10. Revolution
11. Sweet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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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hoice

2021/06 Editor’s Choice

폴로 앤 팬(Polo & Pan) < Cyclor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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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곡 : ‘뱃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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