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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 Album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평가: 3/5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 은밀하게 위대하게 >의 장철수 감독이 약 9년 만에 신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를 발표했다. 주연은 연우진(신무광) 지안(류수련)과 조성하(사단장). 엄격한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중국 소설가 옌롄커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장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성애(性愛), 저항 등 여러 가지 시선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중심엔 인간주의가 있다. 소재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파격적인 만큼 사운드트랙은 과하지 않게 영화를 받치고 있다.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의 영화 음악은 극의 맥락에 따른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인물 간의 내밀한 관계에 자리를 내준다. 음악이 흐를 때도 리얼 사운드와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도적 미니멀리즘이랄까. 무광과 수련의 첫 만남과 같은 중요한 사건조차 두 사람이 내뿜는 기운에 맡긴 채 음악이 들어서지 않는다. 첫 번째 정사 신에 흐르는 목관악기 위주의 기악곡이 예외에 해당한다.

전자 음향보다는 체온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해 고전적이며 피아노와 현악기에 종종 관악기가 합류한다. 무광의 군 생활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오프닝 시퀀스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그를 바라보는 수련의 관음에 신비감을 부여한다. 이 밖에도 사단장과 무광이 스쳐 갈 때 시곗바늘 소리로 심박을 표현한 듯한 대목이나 쩔꺽대는 현악기로 무광과 수련의 악몽을 청각화한 장면이 돋보인다.

무광과 수련이 사택을 몰래 빠져나와 숲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 음악은 잠시 이완하며 부드러운 피아노와 현악 세션으로 애틋함을 드리운다. 공유한 악몽을 지나 두 사람이 요리 대결을 펼치고 아침 식사할 때 흐르는 업 템포 피아노 연주에도 희망이 어린다. 전체적으로 서늘한 톤 사이의 몇 안 되는 달콤한 순간이다.

영화 속에서 수련이 직접 부르는 선전 가요 이외엔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가 없다. 영화가 배경으로 한 1970년대의 가요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점이 의미심장하다. 무광이 수련의 뱃속 아기를 쓰다듬을 때 영화는 비가(悲歌) 대신 연주곡을 택했다. 감정의 전달 매체가 되는 가요 대신 기악 연주로 사실감을 유지했다.

아름다운 선율의 엔딩 곡은 이내 모든 긴장이 풀린 마지막 시퀀스를 응집한다. 고정된 카메라가 무광의 뒷모습을 잡아 영원한 이별을 암시하지만 흩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흐르는 관현악 선율이 어느 때보다 포근하다. 그 순간 억눌린 서사 속 짧은 로맨스는 불멸의 무언가로 멈추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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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V.A(Various Artists)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Soundtrack)'(2018)

평가: 4/5

브루클린 출신 스파이더맨이 보여준 성장 스토리에는 지금의 대중음악과 젊은 세대의 문화가 함께 녹아있다.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는 골든 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을 비롯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도 5위에 안착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작품성과 트렌디한 음악을 동시에 품은 영화는 여러 평행 세계에서 나타난 다채로운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흑인-히스패닉 혼혈인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에게 어울리는 음악으로 오늘날의 모습을 데칼코마니처럼 펼쳐낸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10대 소년 마일스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한 Z세대의 특징을 갖췄다. 이들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는 자신의 작업물을 업로드한다. 앨범 참여진을 보면 잘나가거나 떠오르고 있는 힙합 뮤지션들이고, 1990년대에 태어나 앞서 언급한 플랫폼에서 인지도를 높인 래퍼들이 많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이러한 신예들의 음악은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영화 속에서도 포스트 말론(Post Malone)과 스웨 리(Swae Lee)의 ‘Sunflower’는 마일스의 ‘인생 곡’이자 긴급한 상황에서 편안함을 안겨주는 곡으로 쓰인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음악이 모인 앨범이라 더 의미가 있다. 히어로 영화에 어울리는 긴박한 분위기의 곡도 있지만 감성적인 이모(Emo) 힙합이 많다는 건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고려했다는 증거가 된다. 원하지 않는 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경찰차에 탄 마일스는 ‘Invincible’로 꿈과 친구들 그리고 자유를 외치며 불안정한 그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렇듯 앨범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끌릴 수밖에 없는 음악들로 채워진 근사한 플레이리스트이자 캐릭터의 심리를 대변하는 역할로 확장된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가 담긴 ‘Scared of the dark’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가 스파이더맨의 세계로 진입하는 전환점에 등장해 별다른 대사 없이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료들과 달리 능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없어 좌절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Hide’는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마일스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진한 인상을 남긴 곡들도 있다. 공식 예고편에 삽입되어 주목을 받은 ‘Home’과 마일스가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장면에 쓰인 ‘What’s up danger’는 둔탁한 비트와 웅장한 편곡으로 속도감, 빛나는 도시의 밤을 탁월하게 묘사한 음악이다.

주인공의 방 안에서 목격할 수 있는 챈스 더 래퍼의 < Coloring Book >은 유형의 음반을 내지 않아도 그래미상을 받을 수 있고, 주목받는 래퍼가 될 수 있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플랫폼 속 콘텐츠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은 다시 생산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성장한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이뤄진 스파이더 슈트를 검은색으로 칠해버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정해진 정답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젊은 세대의 음악을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가 그려낸다.

– 수록곡 –

1. What’s up danger – Blackway, Black Caviar 
2. Sunflower – Post Malone, Swae Lee 
3. Way up – Jaden Smith
4. Familia – Nicki Minaj, Anuel Aa (feat. Bantu)
5. Invincible – Amine 
6. Start a riot – Duckwrth, Shaboozey
7. Hide – Juice WRLD (feat. Seezyn) 
8. Memories – Thutmose
9. Save the day – Ski Mask The Slump God, Jacquees (feat. Coi Leray, lougotcash)
10. Let go – Beau Young Prince
11. Scared of the dark – Lil Wayne, Ty Dolla $ign (feat. XXXTENTACION) 
12. Elevate – DJ Khalil (feat. Denzel Curry, YBN Cordae, SwaVay, Trevor Rich)
13. Home – Vince Stap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