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고, 그로 인한 공백은 ‘코로나 블루`라는 마음의 병을 낳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공연 업계가 입은 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코로나19는 라이브 음악과 관객을 철저히 멀어지게 했으며, 뮤직 페스티벌은 열두 번의 계절을 보낸 뒤에야 다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일상 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5월의 끝자락, 마침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음악 팬들을 맞이했다. 축제의 둘째 날인 28일, 3년 동안 비워뒀던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은 오랜 갈증을 풀기 위해 모여든 만여 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에도 저마다 돗자리를 펴 놓고 둘러앉아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한 관객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보다 웃음기가 가득했다.

느즈막이 도착한 88 잔디마당에선 악뮤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즈 선율을 느낄 수 있는 ‘200%’, ‘Re-bye’를 비롯해 다양한 히트곡이 울려 퍼졌고 남매를 향한 떼창과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페스티벌인데 굉장히 흥분되네요’라고 소감을 밝힌 이들은 공연 내내 노련한 팬 서비스로 공연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다음 순서는 단연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던 호세 제임스의 무대. 재즈 명가 블루노트의 간판 싱어인 그는 전설 빌 위더스의 명곡들을 커버한 트리뷰트 앨범 < Lean On Me >을 중심으로 셋리스트를 구성했다. ‘Ain’t no sunshine’, ‘Lovely day’, ‘Lean on me’ 등의 위대한 유산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선 연이어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연주였다. 재즈의 즉흥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합주를 선보인 밴드 멤버들은 앵콜곡 ‘Just the two of us’로 무대를 끝맺는 순간까지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저녁 8시를 넘은 시각, 어둑해진 밤하늘을 배경으로 헤드라이너 알렉 벤자민의 무대가 펼쳐졌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 그는 과거의 소년미를 벗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청량한 음색과 서정적인 감성의 팝이 선선한 저녁 공기와 어우러져 나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관객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일요일, 작열하는 태양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 건 다름 아닌 선우정아의 퍼포먼스였다. 유튜브 내 유행 중인 재즈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의 밈(Meme),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그는 명품 스캣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관록을 뽐낸 베테랑 재즈 보컬리스트의 공연이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무대는 4년 만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재방문한 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 펑크(Funk)와 재즈를 결합한 마성의 멜로디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들은 스탠딩 존으로 모여든 팬들에게 ‘오랜만입니다 서울, 감사합니다!’라고 익숙하게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관객들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낭만적인 시티팝 선율에 몸을 맡겼다. 밴드 특유의 여유 넘치는 그루브는 잠시였지만 88 잔디마당에 운집한 관객들을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변으로 옮겨놓았다.

페스티벌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은 올해도 엇갈렸다. 주최 측은 다양한 기호를 가진 음악 팬들의 만족도를 고려해 넓은 장르를 포용하며 대중성을 강화했다. 한국 팬들의 취향을 섬세하게 고려한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 타이틀에 걸맞은 라인업 구성이냐는 재즈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럼에도 올림픽 공원에 모인 만여 명의 관객들은 모처럼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 꿈같은 3일을 보냈다.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인원 제한, 한 개의 스테이지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 등 여러 악조건 속에 개최된 점을 참작했을 때 이만하면 성공적인 마무리다.
움츠렸던 음악 팬들의 연례행사가 다시금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단절과 소통의 과도기에서 만난 2022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규제들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내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그저 코로나 사태로 누적된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줄 뮤직 페스티벌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사진 제공 : 프라이빗 커브(Private Cur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