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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살리아(Rosalía) ‘Motomami’ (2022)

평가: 4/5

단단한 오토바이 헬멧을 쓴 머리와 국소 부위만을 가린 나체의 몸이 이루는 대비가 곧 음악을 대변한다. 신보의 제목으로 바이크를 뜻하는 ‘Moto’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Mami’의 합성어를 내건 스페인 출신의 가수 로살리아는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를 통합한다. 온갖 요소가 어우러진 혼돈 속의 아름다움이다.

끊임없이 몸을 뒤틀며 < Motomami >는 전작 < El Mal Querer >에 의해 이미 희미해진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완전히 파괴한다. 절반 가까이 아카펠라로 채운 플라멩코 ‘Bulerias’와 역동적인 레게톤 리듬에 ‘치킨 데리야키’를 훅으로 투척하는 ‘Chicken teriyaki’가 대표적이다. 전통과 트렌드, 자전적 이야기와 도발적인 언어, 차분함과 공격적인 태도가 혼재한 예측불가능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기존의 관습은 자연스레 무너지고 만다.

다층적인 구조는 곡 단위로도 드러난다. 가냘픈 피아노에 일본 성인 만화를 키워드로 한 ‘Hentai’는 말미에 총격을 복제한 드럼 머신 사운드를 갑작스레 등장시켜 쾌락의 순간에 폭력의 역전극을 덧씌운다. 반대로 ‘Cuuuuuuuuuute’의 애절한 브릿지는 기계적인 비트 사이로 순간적인 인간성을 부여한다. 복잡한 전개 속 산만함의 여지를 차단하는 무기는 역시 목소리. 랩과 가창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보컬이 전반을 아우르며 다양한 스타일과 메시지를 질서 있게 묶어낸다.

첫 트랙 ‘Saoko’에서 선포한 거듭되는 변신과 탈피의 근거는 팝스타의 유한성을 쓸쓸하게 토로하며 음반을 매듭짓는 ‘Sakura’의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다. 단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불은 아름답다’는 가사다. 일찌감치 끝을 직시한 젊은 아티스트는 망설이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화려하게 타오르는 길을 선택한다. 계속되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행보의 불씨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방향은 전진을 가리키지만 뿌리는 과거에 존재한다. ‘Motomami’, 유년기 친구들이 공유하던 이름이자 바이크를 타고 다니던 어머니의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다. 지난날의 추억은 아티스트의 철학이 되어 하나의 음반으로 귀결된다. 뒤돌아본 개인의 역사에 미래가 있었고, 이 둘을 연결 지으니 현재가 되었다. 더 이상의 수식어는 불필요하다. < Motomami >는 바로 지금 로살리아의 음악이다.

– 수록곡 –
1. Saoko
2. Candy
3. La fama (Feat. The Weeknd)
4. Bulerías
5. Chicken teriyaki
6. Hentai
7. Bizcochito
8. G3 n15
9. Motomami
10. Diablo
11. Delirio de grandeza
12. Cuuuuuuuuuute
13. Como un g
14. Abcdefg
15. La combi Versace (Feat. Tokischa)
16. Sak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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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살리아(Rosalia) ‘El Mal Querer'(2018)

평가: 4.5/5

199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로살리아는 13살 학교 근처 공원에서 플라멩코를 처음 접했다. 이성과 언어의 절제를 벗어던지고 고독과 회한, 통곡과 절규, 절정의 감정을 한스러운 노래와 굽이치는 기타 리듬, 무용의 본능으로 토해내는 민족 예술은 십 대 소녀에게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을 제시했다. 16세부터 바르셀로나 예술 학교에서 플라멩코 깐따오라(Cantaora) 훈련을 받아온 그는 2013년부터 플라멩코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로살리아의 이름이 자국을 넘어 세계에 알려진 건 젊은 명창을 넘어 팝스타를 꿈꾼 그의 지향 덕이다. 플라멩코의 핵심 요소를 팝의 감각과 혼합하는 플라멩코 팝, 뉴 플라멩코는 전통의 확장과 변용을 꿈꾼다. 그의 음악 세계에는 2000년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밀레니얼 팝과 첼리스트 아서 러셀, 제임스 블레이크 스타일의 전자음 파편과 힙합, EDM이 평화롭게 호흡을 맞춘다.

2018년 발매와 동시에 평단의 일치된 극찬을 획득한 < El Mal Querer >는 13세기 중세 문학 ‘플라멩카(Flamenca)’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사랑하는 여인을 높은 탑에 가둔, 질투 많은 남자의 이야기를 여성의 문법으로 전환하여 총 11개 트랙의 매혹적인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고전을 현대적 ‘걸 파워’로 변용함과 동시에 비련의 음악 구조와 멜로디는 과거를 계승한다. 현명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다.

앨범을 시작하는 ‘Malamente’부터 이 아티스트의 비범함에 중독된다. 불길한 목소리로 불길한 징조를 예감하는 이 곡에서, 가녀림과 비통을 오가는 로살리아의 목소리와 반복적인 신스 루프, 거듭되는 추임새는 영적인 경험을 이끈다. 간명하고 중독적인 멜로디 라인은 의식하기 전 이미 입가에 맴돌고 있다. 시작부터 탁월한 감각으로 듣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오해와 집착, 분노와 체념의 창(唱)은 과거의 씨줄과 현재의 날줄로 인간의 운명을 수놓아간다. ‘Que no salga la luna’의 박수 리듬, 단출한 기타 멜로디와 절정에 치닫는 합창으로 전통의 색을 진하게 칠하는가 싶더니, 이어 ‘Pienso en tu mira’로 ‘Malamente’의 화자를 재소환하여 명료한 구성의 팝과 몽환의 합창을 교차한다. 숨이 턱 막힐 때쯤 부드럽게 으르다 다시금 목을 조여드는 카타르시스의 연속이다.

보컬을 사운드 샘플로 활용하는 일렉트로닉 ‘De aqui no sales’ 다음 트랙은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Reniego’다. 비정한 신디사이저가 인도하는 ‘Maldicion’은 제임스 블레이크의 차기작에 본인의 이름이 오른 것을 납득시키며 작품을 마무리하는 ‘A ningun hombre’는 뷔욕의 플라멩코 깐따오라 데뷔라 해도 믿음이 간다. 틀을 부수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진보적일 수 있다.

‘Bagdad’는 상반되고도 일관된 이 아름다운 모순의 레코드를 대표하는 곡이다. 중동의 리프와 그레고리안 성가의 영향을 받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밀레니얼 히트 ‘Cry me a river’와 플라멩코의 혼합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형용하기 힘든 새로운 감상을 안긴다. ‘Bagdad’의 총명함은 민족 예술의 영험과 팝의 문법을 교배하여 신세계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좋은 예다.

< El Mal Querer >는 중세 플라멩코의 언어로 쓴 21세기의 팝 앨범이다. 고전의 숨결을 21세기 스트리밍 시대의 대중음악, 디지털 아트로 옮기는 과정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역과 민족, 인종의 국경을 해체하고 그 잔해 위에서 새로움을 건설하려는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할 작품이기도 하다.

가장 전통적인 예술로 토해낸 가장 세계적인 음악. 온전히 느껴라! 거대한 삶이 다가올지니.

– 수록곡 –

  1. Malamente (Cap. 1: Augurio)
  2. Que no salga la luna (Cap. 2: Boda)
  3. Pienso en tu mirá (Cap. 3: Celos)
  4. De aquí no sales” (Cap. 4: Disputa)
  5. Reniego (Cap. 5: Lamento)
  6. Preso (Cap. 6: Clausura)
  7. Bagdad (Cap. 7: Liturgia)
  8. Di mi nombre (Cap. 8: Éxtasis)
  9. Nana (Cap. 9: Concepción)
  10. Maldición (Cap. 10: Cordura)
  11. A ningún hombre (Cap. 11: Po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