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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IZM 필자가 사랑하는 뮤직비디오 (해외편)

팻보이 슬림(Fatboy Slim) – ‘Weapon of choice’ (2001)
< 007 뷰 투 어 킬 >의 미치광이 빌런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워컨,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 존 말코비치 되기 >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 펑카델릭의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 그리고 빅 비트의 시대를 주도한 팻보이 슬림의 앙상블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중하고도 자유로운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다. 정장 차림의 크리스토퍼는 적막과 공허함이 감도는 호텔 로비에 멍하니 앉아 있다. 이윽고 ‘Weapon of choice’의 비트가 울려퍼지자, 호텔은 댄스플로어가 된다. 3분 40초간 리듬을 타고, 움직이고, 점프하고, 회전하고, 날아오르면서 가사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껏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삭막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일탈이다. 2001년, 그렇게 팻보이 슬림은 수많은 샐러리맨 겸 내적 댄서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김태훈)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 ‘The pretender’ (2007)
파괴는 순간이다. 푸 파이터스의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The pretender’의 뮤직비디오에 복잡한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 건 이때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상징하는 바를 해석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대립 구도, 저항 정신을 밀도 있게 표현한 음악의 색채, 비트와 밀접하게 닿아 있어 타격감이 넘치는 장면전환 등 영상의 모든 요소가 펑크(Punk) 그 자체다. 이 세상 모든 위선자를 부숴버리는 푸 파이터스의 카운터 펀치가 4분 30초간 신나게 작렬한다. (김호현)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 – ‘Girls/girls/boys (Director’s cut)’ (2013)
원 테이크의 아슬함을 즐긴다. 수백 번의 리허설을 거친다 해도 기어코 발생하고야 마는 돌발 상황, 그 무한한 변수를 극복한 필름이 포착해 낸 귀한 찰나를 좋아한다. 이 곡 또한 단 한 번의 촬영으로 기세를 이어 나간 원 샷(one-shot) 뮤직비디오다. 이십여 년 전 제작된 미국의 알앤비 가수 디안젤로의 아이코닉한 뮤비 ‘Untitled’를 그대로 리메이크했다. 알몸의 남성 뮤지션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열창하는 와중, 그 신체를 샅샅이 핥아 내리는 카메라가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가다 장골 근처, 기막힌 타이밍에 시선을 거둔다. 간단한 촬영 기법만으로도 재치와 긴장감을 더한 것은 물론 주인공의 연기도 강렬하다. 사랑의 애환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프론트맨 브랜든 유리가 피사체의 힘만으로 끌고 가야 하는 원 샷 필름의 약점을 온몸으로 보완했다. 바이섹슈얼을 암시한 가사에 맞춰 디렉터스 컷 클라이맥스에 삽입된 약간의 반전이 곡을 독특한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박태임)

레이디 가가(Lady Gaga) – ‘Born this way’ (2011)
사랑하는 것을 떠나 충격과 깨달음을 안겨준 뮤직비디오다.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인 어쩌면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출산을 묘사한 도입부로 인해 눈을 깜빡이게 하는 시작을 지나면 이후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강력 메시지의 집합체다. 속옷 정도만 입고 ‘Don’t be a drag, just be a queen’ 그러니까 ‘행세하지 말고, 그냥 네가 돼라’는 간단하고 위대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밀어붙인다. 시선을 뗄 수 없는 영상 속 캐릭터 및 시각 효과도 출중하다. 유니콘을 타고 내려온 레이디 가가가 제목 그대로 ‘태어난 대로 살자’며 전 세계 많이 어른이들의 “마더 몬스터(Mother monster)”가 된 작품. 이 뮤직비디오가 마음에 들었다면 2011년 53번째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가 펼친 공연도 추천한다. (박수진)

시저(SZA) – ‘Doves in the wind’ (2017)
화려한 비주얼이나 파격적인 연출로 시선을 끄는 뮤직비디오가 있는가 하면 시각적 쾌감이 부족해도 코믹하고 컨셉츄얼한 시도로 재미를 주는 영상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최고의 알앤비 앨범으로 손꼽힌다고해도 손색이 없을 시저의 < Ctrl >에 수록한 ‘Doves in the wind’가 그렇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가사와 켄드릭 라마의 컨셔스랩, 서정적인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까지. 음악만들어서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상상하기 힘들다. 무림고수들의 대결이라는 스토리를 짧고 전형적인 연출과 빈티지 질감의 대사, 어설픈 와이어 액션으로 담은 영상은1980년대 무협영화를 고증한다.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시저와 켄드릭 라마의 유쾌한 면모에 집중하자. (백종권)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 ‘Star guitar’ (2002)
사람들은 30초 정도 지났을 때 이 뮤직비디오의 패턴을 눈치 챘겠지만 그 시간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은 예측 불가능한 시각적인 충격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유는 감독이 미셸 공드리이기 때문. 가사 없는 차갑고 날카로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건조한 영상이 만나 제3의 공간을 창조한 이 명작은 돈이 아닌 아이디어의 승리이자 영광이다. 때로는 ‘Star guitar’처럼 음악과 화면이 어울리지 않는 뮤직비디오가 충격과 감탄을 선사한다. (소승근)

맥 밀러(Mac Miller) – ‘Good news’ (2020)

‘Good news’ 뮤직비디오의 맥 밀러는 초연했다.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된 < Swimming >에서 비극적 고통을 토해낸 젊은 아티스트에겐 ’삶‘에 대한 미련은 사라졌고, 고민이 떠난 자리엔 < Circles >란 텅 빈 허무가 머물러있다. 타인을 향해 미소 짓던 그였지만 당장 자신의 내일은 캄캄했고 이는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형태로 변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혼란을 뒤로하고 도달한 곳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 맞이한 순간이 위안이었을까? 확신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가 마련한 무(無)의 공간에서 단지 유영할 뿐이었다. 6분 30여 초. 한 사람의 생을 판단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 다만 여과되지 않은 고뇌와 해방의 과정이 세상에 묵직이 내려앉았다. 맥 밀러가 견딘 무게가 큰 만큼 모두의 상처도 깊게 파였지만, 그가 느낀 우울의 끝엔 남은 이들을 위해 심은 위로가 작게 싹트고 있었다. (손기호)

에미넴(Eminem) – ‘Stan’ (2000)
누군가의 사랑은 잔인하고 강렬하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Stan’은 뮤지션과 그에게 집착하는 팬의 시선을 빌려 비극적인 이야기로 엮었다. 1인 2역을 소화한 에미넴의 랩이 먼저 애증의 분노를 토해내고, 노랫말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광적인 스토킹 현장이나 강물에 차가 들이받는 컷이 차례로 입혀지면 이 서사는 곧 생동감 넘치는 현실로 다가온다. 비극으로 치닫는 이 울적한 영상은 감상자들에게 시커멓게 타버린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을 뇌리에 강하게 남겨버린다. 참, 이왕 ‘Stan’을 챙긴 김에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닥터 드레가 맡았다는 사실과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엘튼 존과 함께 한 라이브 버전도 잊지 말길. (손민현)

자넬 모네(Janelle Monae) – ‘Dirty computer’ (2018)
자넬 모네의 4집 < Dirty Computer >와 함께 제작된 동명의 장편 SF 필름은 규범에 맞지 않는 소수자들을 ‘오염된 컴퓨터’로 간주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제인 57821’로 분한 자넬 모네 역시 강제로 기억을 삭제 당할 위기에 놓이지만 그의 기억은 오히려 시스템을 교란하는 저항의 도구로 작용한다. 그것이 기억과 꿈, 환상의 경계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며 형식적으로는 다름 아닌 뮤직비디오였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필름과 뮤직비디오의 절묘한 결합, 정점에 오른 모네의 음악적 성취,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메시지까지. 시학, 미학, 주제 모든 면이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다. (신하영)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 ‘Sledgehammer’ (1986)
정신 착란적이고 기괴하지만 놀랍고 감탄스럽다. 프레임 단위로 촬영물을 연결해 움직임을 구현하는 픽셀레이션과 점토를 이용한 클레이메이션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한 ‘Sledgehammer’는 가브리엘이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 시절부터 제공한 시각적 충격파의 연장선상이며, 아하 ‘Take on me’와 더불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 영상이다. 아르침볼도의 환상화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개구진 동심(머리둘레를 횡단하는 기차)과 고약한 장난(치킨 댄스)이 뒤섞인 유미주의 종합선물 세트는 가브리엘 뇌 속 상상계의 출력물. 곡의 펑키(Funky) 리듬을 살린 스티븐 R. 존슨의 연출력은 < So >의 수록곡 ‘Big time’에서도 이어진다. (염동교)

케로 케로 보니토(Kero Kero Bonito) – ‘Break’ (2016)
음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음악에는 시공간 이상의 힘이 있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도 음악과 함께 종종 특별한 경험으로 완성되곤 하니 말이다. 케로 케로 보니토의 프론트우먼, 사라 보니토는 과연 음악의 이런 마법같은 힘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하트 모양 선글라스, 정체 모를 음료 한 잔과 함께 런던 곳곳에 걸터앉은 뮤직비디오 속 사라는 그 존재만으로 주위를 휴양의 한복판으로 바꿔 버리며 이 흥미로운 현상을 몸소 시각화해 보인다. 바쁜 일상 속 찰나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Break’를 재생해 보자. 그곳이 어디든 친절한 가이드 사라 보니토가 당신을 달콤한 휴양지로 안내할 것이다. (이승원)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 ‘Welcome to the black parade’ (2006)
죽어가는 남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감성적인 피아노 선율. 단숨에 이목을 잡아끄는 오프닝이다. 거기에 아버지에 대한 가사의 언급과 화려한 사후세계가 등장하면 이 뮤직비디오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병원에서 숨을 거둔 환자가 저승으로 연결되어 자신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이들을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죽음이 삶과 별개가 아닌 또 하나의 연장이라는, 노래의 가사 ‘Carry on’의 의미가 가슴에 꽂힌다. 저승의 악단 ‘블랙 퍼레이드’로 분한 멤버들의 격정적인 연기, 돈 냄새 나는 세트와 각종 효과 장치, 배경을 가득 메운 엑스트라 귀신들이 완성한 시각적 아름다움도 압도적인데, 무엇보다 그러한 삶과 죽음을 어루만지는 메시지가 따뜻하다. 마이 케이멀 로맨스의 ‘Bohemian Rhapsody’? 아니, 구태여 어떤 곡과 비교할 필요 없는 2000년대 최고의 록 명곡. (이홍현)

오케이 고(OK Go) – ‘Here it goes again’ (2009)
뮤직보다 뮤비! 음악보다 영상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오케이 고 덕에 뮤직비디오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무표정으로 진지댄스를 춘 ‘A million ways’, 스톱 모션을 이용한 ‘End love’, 그리고 화룡점정 러닝머신 퍼포먼스를 보여준 ‘Here it goes again’을 대표로 밴드는 지금까지도 기발한 작품을 찍어오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정성을 다하는 이미지 탓에 라이브를 못 할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지만, 몇 년 전 국내 록 페스티벌에서 본 그들의 실력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오해는 풀렸고, 오케이 고는 음악을 못하는 게 아니라 영상 제작을 더 잘할 뿐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임동엽)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 ‘Cousins’ (2009)
기발하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커리어 중 가장 통통 튀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 < Contra >에서도, 그중 가장 복잡하고 급진적인 곡인 ‘Cousins’의 뮤직비디오는 더할 나위 없이 밴드가 가진 활기와 상상력의 역동성을 내포한다. 골목길 위에 놓인 트레일을 반복 움직이며 간단한 변주를 주는 구조부터 충동적이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의 감독 가스 제닝스가 구현한 독창적 프레임 속 원색 그라피티와 접착 테이프, 각종 저예산 소품들, 꽃가루마저 휘날리는 투박한 판타지가 현실과 화려하게 충돌한다. 큰 의도를 찾을 수 없어도 정신없이 빠져든다. ‘인디’가 가진 불특정 유쾌함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군말없이 이 영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장준환)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 – ‘This is America’ (2018)
팝과 힙합, 어디에도 접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알고리즘은 이 충격적인 아수라장 한가운데로 나를 안내했다. 합창과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도입부만 들으면 평화로운 찬가에 가깝지만, 주인공이 뒤춤에서 총을 꺼내들어 기타리스트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내 머리도 함께 터졌다. 투신, 총기 난사, 집단 폭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중에도 ‘이게 미국이야/정신 바짝 차려’라며 뚝심 있게 현장 고발을 이어 간다. 트랩 비트 위에 실제 흑인들이 겪었던 참상을 그린 덕분에 성찰의 탄환 한 발이 즉각 신체를 관통한다.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재차 불을 지폈던 차일디쉬 감비노 조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종종 드러냈다는 게 아이러니. 분개해선 안 된다. 당장 주변의 약자들만 돌아봐도 달라진 게 없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게 모두의 현실이다. (정다열)

펄프(Pulp) – ‘Bad cover version’ (2011)
“네가 누굴 만나든 내 아류일 뿐”이라 말하는 프론트맨 자비스 코커의 심보 고약한 가사와 달리 뮤직비디오의 정서는 사뭇 따뜻하다. 유명 뮤지션을 초빙해 녹음 광경을 포착하는 캠페인 송의 형식을 비틀어 진짜 아티스트 대신 그들의 닮은꼴을 초대했고, 심지어 음원에는 이들의 어설픈 노래까지 담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이 우스꽝스러움 속에 공동체의 가치가 피어난다. 사실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각각 불완전한 엉터리, 가짜일 수는 있어도 한데 모여 화합하는 순간 삶은 어느덧 ‘진짜’가 되며 형편없는 모창은 사랑스러운 찬가로 바뀐다. “가짜들의 세상”이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다. 마음만 순수하다면. (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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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열정의 청춘 로커, 팬들의 마음에 도킹하다!

음악 예능 < 싱 어게인 – 무명가수전 >의 우승으로 무명 세월을 극복한 이승윤은 도리어 곡 작업에 매진했다. 2021년에 나온 실질적 데뷔 앨범 < 폐허가 된다 해도 >와 2022년 3월 첫 단독콘서트 < DOCKING >의 열띤 행보는 2023년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발견상’으로 귀결했다. 올해 1월 정규 2집 < 꿈의 거처 >를 발매한 그는 지난 2월 18일과 19일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 DOCKING > 전국투어의 대장정을 알렸다.

2시간 50분과 27곡. 단독 콘서트로서도 흔치 않은 숫자다. 쪼그려뛰기의 열정적 무대 매너는 후반부의 경기장 질주로 치달았다. 공연 후 마주친 그는 지침과 동시에 행복해 보였다. 공연 중 재차 공식 팬덤 ‘삐뚜루’를 언급했고 ‘달이 참 예쁘다고’의 환호와 합창에 감격했다. 팬과의 소통을 강조한 콘서트였다.

스케일이 큰 편곡 지향점은 여러 대의 악기와 사운드 이펙트를 동원했다. 핸드볼 경기장의 고질적 음향 문제에도 인디 록 밴드 바닐레어 소속 지용희의 파워 드러밍과 싱어송라이터 복다진의 건반 연주가 돋보였다. 이승윤도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사용하며 기타 로커의 이미지를 굳혔다.

정규 앨범 두 장과 더불어 2019년 EP < 새벽이 빌려 준 마음 >과 음악 집단 알라리깡숑 시절의 곡을 총집합했다. < 싱 어게인 > 전후로 축적한 경험치는 노련한 퍼포먼스로 이어졌고, ‘교재를 펼쳐봐’ 와 ‘꿈의 거처’, ‘영웅 수집가’의 강력한 소리망 사이로 문학적이고 섬세한 노랫말이 피어났다.

록의 시대가 지났기에 이승윤의 존재는 더욱 반갑다. 기타 기반의 사운드스케이프에 열광하는 남녀노소를 보며 록의 대중성을 재확인했다. 1990년대 브릿팝을 흡수한 청년 로커는 2020년대 한국 팝 록의 중심에 섰다. ‘야생마’처럼 사상과 자의식을 풀어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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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뮤즈(Muse) ‘Will Of The People’ (2022)

평가: 3.5/5

2018년 작 < Simulation Theory >는 전자음악의 경도로 팬들을 당혹게 했다. 폭발적 화력의 2015년 작 < Drones >에서 옛 향수를 자극한 터라 더욱 그랬으나 장르 하이브리드가 정체성이 된 지도 오래, 십수년간 이어온 실험을 한 프레임에 가두기 어렵다. 이제 중요한 건 설득력. 사반세기를 함께한 트리오의 아홉 번째 정규앨범 < Will Of The People >은 농익은 기량으로 의문부호를 지웠다.

‘베스트 앨범을 만들라’는 워너레코드의 압박에 대한 응답이다. 하드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일렉트로니카를 경유하는 ‘신곡 컴필레이션’으로 경력을 회고했다. ‘Knights of Cydonia’와 ‘The globalists’의 대곡 지향적 풍모는 옅어졌지만, 개별 곡의 응집력이 탁월하다. 글램 록 시대의 코러스에 전자음을 버무린 ‘Will of the people’부터 마지막 트랙 ‘We are fucking fucked’까지 기력 쇠잔의 기미가 없다. 높은 밀도 덕분에 ‘You make me feel like it’s Halloween’과 ‘Verona’ 같은 다소 키치한 곡들도 의외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베이스 기타리스트 크리스 볼첸홈이 닦아놓은 지반 위로 매튜 벨라미의 기타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Plug in baby’와 ‘Hysteria’ 같은 인장이 될만한 곡들에 강도를 높여 앨범 전반에 헤비메탈 사운드를 구축했다. ‘Stockholm syndrome’을 연상하게 하는 ‘Kill or be killed’ 섹시하고 날카로운 뮤즈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압축했고 ‘Euphoria’ 같은 댄서블한 신스팝 넘버도 기타로 특색을 더했다.

목줄을 꽉 움켜쥐었다가 달래주는 구성은 능력치의 방증이다. 기타와 드럼의 중음 합동작전으로 타격감을 주다 일렉트로니카로 선회하는 ‘Won’t stand down’과 퀸을 오마주한 ‘Liberation’으로 피아노와 보컬이 중심적인 ‘Ghosts (how can I move on)’로 부드러이 흘러간다. 펑크(Punk)와 오페라 록이 공존하는 ‘We are fucking fucked’로 ‘변주’의 테마를 요약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장르 하이브리드가 내공을 증명했고 강력한 기타 사운드로 앨범의 밀도를 유지했다. 절정기의 순도에 못 미칠지언정 밴드의 경력을 조각모음 한 듯한 소구력 높은 곡들로 저력을 드러냈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태를 주제로 한 < Will Of The People >은 역설적으로 뮤즈의 역량을 다시금 증명했다.

-수록곡-
1.Will of the people
2.Compliance
3.Liberation
4.Won’t stand down
5.Ghosts (how can I move on)
6.You make me feel like it’s Halloween
7.Kill or be killed
8.Verona
9.Euphoria
10.We are fucking fu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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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프로그레시브 록 입문곡 10선

로큰롤은 흑인 교회의 열정적 의식에 어원을 두나 ‘몸을 야하게 움직인다’라는 속뜻도 있다. 원초성과 본능에 뿌리 둔 음악이 로큰롤이다. 단순명료했던 1950년대 초기 로큰롤은 196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로 분화했고 그 중심엔 비틀스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은 록 음악의 예술적 전성기였다. 도전적인 밴드들은 고전 음악, 재즈와 전위음악의 양식을 도입해 록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레시브 록은 복잡한 구조의 대곡(大曲) 지향적 음악, 다채로운 악기 사용과 소리의 실험 등을 특징으로 예술성의 극한에 다다랐다.

태생적 한계도 있다. 장르명이 주는 왠지 모를 차별감, 록의 기본 속성에서 빗나가버린 현학적인 스타일로 인해 대중과 멀어졌다. 이후 마릴리온을 위시한 1980년대의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드림 시어터를 필두로 1980년대 후반부터 점화된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나왔으나 대중적 장르로 보긴 어려웠다.

록의 여러 하위 장르 중에서 현대의 대중 음악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고 3~4분 러닝타임에 익숙한 리스너들에게 복잡다단한 곡들은 생경하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이 바라본 아득한 예술성은 마니아들의 지지와 함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수한 장르 명곡 중 국내에서 특히 사랑받았거나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작품들을 열 곡으로 간추렸다. 아무쪼록 이 리스트가 프로그레시브 록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Time’ /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비단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핑크 플로이드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 중 하나다. 가장 유명함과 동시에 조금은 이질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데 다른 밴드들과 비교 불가한 압도적 상업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네 차례 1위를 기록했고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록밴드’ 리스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약 28년만의 신곡 ‘Hey, hey, rise up!’ 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도 했다.

1973년 작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은 빌보드 앨범차트에 무려 962주간 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성에 알란 파슨스가 매만진 초현실적 사운드는 청취를 초월한 음악적 체험이다. 동전 소리로 시작하는 ‘Money’는 배금주의에 메스를 대고 클레어 토리(Clare Torry)의 처절한 가창이 ‘The great gig in the sky’를 수놓았다. 서늘한 자명종 소리와 몽환적인 코러스,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를 지닌 ‘Time’은 덧없는 시간을 향한 비관주의다. 1980~90년대 공익 광고의 BGM으로 쓰이며 국내에 알려졌다.

킹 크림슨(King Crimson) ‘Epitaph’ / < In The Court Of The Krimson King >(1969)

강렬한 인상의 앨범 커버에 담긴 음악은 진중하고 깊었다. 1969년 발매 당시 킹 크림슨의 < In The Court Of The Krimson King >은 비틀스의 < Abbey Road >를 밀어내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와전되었으나 대신 역대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오로지 가사만 담당했던 작사가 피터 신필드와 윈도우 효과음을 창조한 기타 철학자 로버트 프립, 후에 AOR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 밴드 포리너에 합류하는 이언 맥도널드의 ‘1기 킹크림슨’ 유일 작이다.

플루트로 서정 미학을 확립한 ‘I talk to the wind’와 전위적인 재즈 록 ‘21st century schizoid man’ 등 앨범의 수록곡 전부가 걸출하지만 국내에선 의심의 여지 없이 ‘Epitaph’였다. 죽음에 대한 신필드의 철학은 비틀스가 ‘Strawberry fields fover’ 도입부에 사용한 건반악기인 멜로트론 연주와 어우러지며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렉 레이크의 보컬은 어느 때보다 처연하다. 검열 정책으로 예술 작품이 난도질당했던 1970~80년대에 역설적으로 인기를 끈 이 곡은 어떠한 주술처럼 당대의 청년들을 홀렸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A whiter shade of pale’ / < Procol Harum >(US version)(1967)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은 고전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차용한 ‘A whiter shade of pale’은 영국 1위, 미국 5위까지 오른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 히트곡이 되었고, 바로크풍의 오르간 선율과 밴드의 창립자 개리 브루커의 절절한 음성이 장르의 형식적 규범을 세웠다. 영화 < 빅 칠 >과 < 락앤롤 보트 >가 이 곡을 사용해 인지도 효과를 보았다.

춤을 추다가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갈피를 잡기 힘든 노랫말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섹슈얼한 관계의 은유와 신비라는 통설은 1967년의 히피 시대와 맞물려 설득력을 얻었으나, 곡의 작사가 키스 라이드는 “퇴폐를 직설적으로 이미지화했다.”라며 반박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이 명곡은 사라 브라이트만과 유리스믹스의 애니 레녹스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커버되었고 브릿 어워드가 선정한 ‘1952년부터 1977년 사이에 발표된 가장 뛰어난 영국 싱글’에 퀸의 ‘Bohemian rhapsody’와 함께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디 블루스(Moody Blues) ‘Nights in white satin’ / < Days Of Future Passed >(1967)

1세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무디 블루스는 ‘For my lady’과 ‘Your wildest dreams’, ‘Melancholy man’ 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다수 발표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험적이었다. 이들은 고전 음악과 록을 5 대 5 비율로 섞어 심포닉 록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룬 < Days Of Future Passed >로 콘셉트 앨범의 미학을 드러냈다. 활기찬 분위기의 ‘Lunch break: peak hour’와 건반 연주가 리드미컬한 ‘Tuesday afternoon’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탁월하다.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저스틴 헤이워드가 작사 작곡한 ‘Nights in white satin’ 은 여자친구가 선물한 새틴에서 착상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전형적인 역주행 곡으로 발표 당시에는 차트 입성을 못 했지만 3년 후 1972년엔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건반 주자 마이크 핀더는 멜로트론으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며 악기의 효용성을 입증했다. 3~4분대의 싱글 버전들이 존재하지만 후반부 시 낭독이 포함된 7분여의 앨범 버전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제쓰로 툴(Jethro Tull) ‘Living in the past’ (1969)

메탈리카를 제치고 1989년 제31회 그래미 어워드의 헤비메탈/하드록 부문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한 제쓰로 툴은 목가적인 포크부터 헤비메탈까지 방대한 음악 세계를 품었다. 수십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재주꾼 이안 앤더슨은 밴드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기괴한 표정과 율동이 제스로 툴의 진중한 음악과 묘한 마찰을 일으킨다.

‘Living in the past’는 1969년에 영국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른 히트곡이다.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처럼 독특한 5박자 리듬은 이안 앤더슨의 플루트 연주와 어우러져 신비감을 발산한다. 프랑스 68운동을 비롯한 반문화, 반체제의 혁명 시대를 부정하고 “너와 사랑을 나누겠다.”라는 본능에 충실한 가사는 곡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이 곡 이외에도 최고의 기타 리프 중 하나로 거론되는 ‘Aqualung’ 등 명곡을 다수 보유했고 국내에선 전설적인 라디오 프로그램 < 전영혁의 음악세계 >가 배출한 연주곡 ‘Elegy’가 사랑받았다.

예스(Yes) ‘Roundabout’ / < Fragile >(1971)

1983년 빌보드 1위 곡 ‘Owner of a lonely heart’의 매끈한 사운드로 거장 밴드의 귀환을 알렸지만 이들의 진면목은 1970년대에 있다. ‘Roundabout’가 수록된 < Fragile >은 1971년 11월에 나왔고 ‘Starship trooper’가 수록된 < The Yes album >이 1971년 2월, 로저 딘이 구상한 몽환적인 앨범 커버에 단 세 곡이 들어간 < Close To The Edge >가 1972년 9월에 발매되어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창작력을 폭발시켰다. 변화무쌍한 악곡 전개를 소화하는 최정상급 연주력은 후배 밴드들에 절망과 자극을 동시에 안겨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가는 길에서 만난 교차로를 모티브로 한 8분여의 대곡은 잘 짜인 곡 구성과 선명한 선율로 빌보드 싱글차트 13위까지 올랐다. 도입부를 비롯한 악곡의 중심엔 많은 후배에게 영감을 준 크리스 스콰이어의 베이스 연주가 있고, 마술 같은 릭 웨이크먼의 건반 연주가 힘을 보탰다. 지속적인 멤버 교체가 있었으나 팬들은 이 곡을 연주한 존 앤더슨(보컬), 스티브 하우(기타), 크리스 스콰이어(베이스), 빌 브루포드(드럼), 릭 웨이크먼(키보드)의 라인업을 최고로 친다. 영화 < 스쿨 오브 락 >의 잭 블랙은 피아노를 다루는 동양계 학생 로렌스에게 < Fragile > CD를 건네며 “’Roundabout’의 건반 솔로를 필청하렴.” 라며 강조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Lucky man’ < Emerson, Lake & Palmer >(1970)

‘키보드계의 지미 헨드릭스’ 키스 에머슨은 건반으로 기타에 맞먹는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거대한 신시사이저에 칼을 꽂는 퍼포먼스로 충격을 선사했다. 사이키델릭 록 그룹 나이스부터 후기 영화음악 작업까지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으나 2016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기타 대신 키보드 연주를 전면으로 내세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는 무소르그스키와 바흐를 재해석하고 거대 아르마딜로에 대한 콘셉트 앨범 < Tarkus >를 발표하는 등 실험적 행보를 보였다.

시작부터 비범했다. 1970년에 나온 1집 < Emerson, Lake & Palmer >의 첫 곡 ‘The barbarian’은 ‘야만인’이라는 제목처럼 야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줬고 ‘Knife edge’ 속 에머슨의 해먼드 오르간 연주도 날카롭게 빛났다. 각각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과 바흐의 작품을 편곡해 고전 음악의 변용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베이스 주자 그렉 레이크가 12살에 작곡한 간결한 코드 진행의 ‘Lucky man’은 드러머 칼 파머의 연주가 리드미컬하고 에머슨의 무그 신시사이저 후주는 그 어떤 건반 악기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두께감을 선사했다. 국내에선 ‘C’est la vie’와 ‘From the beginning’이 애청곡이었다.

카멜(Camel) ‘Long goodbyes’ / < Stationery Traveller >(1984)

눈물 떨구는 낙타와 똬리 튼 백조, 설원 위 마법사의 뒷모습까지 카멜의 앨범 이미지는 음악만큼 다채롭다.  빌보드 앨범차트 100위권 안의 앨범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위의 밴드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옅지만 특유의 서정미로 국내에서 특히 사랑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한 조류인 캔터베리 신을 대표하는 밴드 카라반과 멤버를 공유해, 재즈의 즉흥성을 수용했으며 심포닉한 곡 구성으로 마릴리온 같은 1980년대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의 음악적 전성기는 < The Snow Goose >와 < Moonmadness >가 나온 1970년대 중반이지만 국내에선 1984년 작 < Stationery Traveller >가 주목 받았다 . 서독과 동독의 이념 갈등을 담은 이 콘셉트 앨범에서 ‘Long goodbyes’ 는 차분한 전개와 아름다운 선율로 라디오 친화적인 노래가 되었다. 단 두 장의 앨범에만 참여했던 크리스 레인보우의 보컬이 인장을 남겼고, 밴드의 구심점 앤드류 레이티머의 플루트와 기타 연주가 곡 분위기를 살렸다.

뉴 트롤즈(New Trolls) ‘Adagio’ / <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1971)

영국이 불 붙인 프로그레시브 록 열풍은 전 유럽을 걸쳐 퍼져나갔다. 카약과 포커스 등이 네덜란드서 활약했고 독일은 ‘크라우트록’(1960년대 말 서독에서 탄생한 실험적인 록 음악)이라는 파생 장르로 캔, 노이! 같은 밴드를 배출했다. 유럽 프로그레시브 록 지형도의 큰 대륙을 형성한 이탈리아 밴드들은 독일과 반대되는 서정미로 국내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디제이 성시완의 레이블 시완레코드는 라떼 에 미엘레, 방코, PFM 등 이름도 독특한 밴드들을 소개했고 지금도 마니아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고전 음악가 토마소 알비노니의 작품을 록으로 재해석한 ‘Adagio’는 < 햄릿 >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한 대목을 ‘To die, to sleep, maybe to dream(죽거나, 잠들거나 꿈꾸거나)으로 변용했다. <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의 다른 곡 ‘1° Tempo: Allegro’는 기타와 바이올린의 거친 매력을 보여줬고 20분이 넘는 마지막 곡 ‘nella’로 즉흥 연주의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국내에선 프랑스 가수 질베르 베코의 샹송을 하모니가 강조된 록으로 커버한 ‘Let it be me’가 유명하다.

러시(Rush) ‘Tom Sawyer’ / < Moving Pictures >(1981)

캐나다의 국민 밴드 러시는 초기에 레드 제플린 스타일의 카랑카랑한 하드록을 들려줬지만 가상도시 메가돈(Megadon)을 배경으로 한 콘셉트 앨범 < 2112 >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앨범은 강력한 금속성 사운드로 드림 시어터와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그룹을 예언했다. 단 세 명이 주조해낸 완벽한 연주력은 추종자를 양산했으나 대중친화적인 발라드 곡의 부재로 국내 인지도는 저조하다.

캐나다 앨범차트에서 1위, 미국에서 3위를 차지한 1981년 작 < Moving Pictures >는 가장 높은 상업적인 성과를 거뒀다. 상대적으로 컴팩트한 악곡 전개와 뉴웨이브 신스팝을 접목한 사운드로 접근성을 높였고 2020년 작고한 닐 피어트의 드러밍이 돋보이는 연주곡 ‘Yyz’와 대중적인 ‘Limelight’ 등 명곡을 다수 포함했다. 닐 피어트와 캐나다 출신 시인 겸 작사가 파이 뒤부아가 함께 작사한 ‘Tom sawyer’는 마크 트웨인 소설 속 주인공의 모험 정신과 꽉 찬 연주로 캐나다 국가(國歌)의 위상을 넘봤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바다는 넓고 깊어 미처 언급 못한 밴드들이 많다. 연극적인 무대 장치와 노랫말의 문학성으로 장르의 심연을 파고들었던 제네시스는 피터 가브리엘과 필 콜린스라는 1980년대 대표 뮤지션을 배출했다. 브라이언 페리와 브라이언 이노라는 독보적 캐릭터를 보유했던 록시 뮤직은 흥겨운 카바레 풍 사운드 아래 놀라운 실험성을 숨겨두었고 따스한 선율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하드 록 전설 딥 퍼플도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되곤 한다.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적인 밴드들인 캔사스와 스틱스도 빼놓을 수 없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위의 열 곡은 국내에 잘 알려졌거나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작품들을 개인적 시선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더욱 다양한 선택지와 객관성 확보를 위해 영국 미디어 회사 퓨처(Future)의 프로그레시브 록 전문 잡지 프로그(PROG)의 2017년 3월호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100곡’ 중 상위 10곡을 소개한다. 영미권 전문가들의 시각과 국내 감상자들의 성향을 비교하며 감상의 폭을 넓혀보길 바란다.

아티스트 – 곡명 / 앨범명(발표연도)

1. 제네시스 – ‘Supper’s ready’ / < Foxtrot >(1972)

2. 예스 – ‘Close to the edge’ / < Close To The Edge >(1972)

3. 제네시스 – ‘Firth of fifth’ / <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4. 핑크 플로이드 – ‘Shine on your crazy diamond pt.1’ / < Wish You Were Here >(1975)

5. 킹 크림슨 – ‘21st century schizoid man’ /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6. 핑크 플로이드 – ‘Echoes’ / < Meddles >(1971)

7. 예스 – ‘Awaken’ / < Going For The One >(1977)

8. 제쓰로 툴 – ‘Thick as a brick pt.1’, ‘Thick as a brick pt.2’ / < Thick As A Brick >(1972)

9. 킹 크림슨 – ‘Starless’ / < Red >(1974)

10. 러시 – ‘2112’ / < 2112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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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랭글러스(The Stranglers) ‘Dark Matters’ (2021)

평가: 3.5/5

1977년에 데뷔한 영국 밴드 스트랭글러스는 난해한 아트 록과 과하게 장식된 글램 록의 반발에서 탄생한 퍼브 록으로 여러 포스트 펑크 밴드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립했다. 멜로디가 선명하지 않은 까끌한 소리와 히트 싱글의 부재로 국내엔 알려지진 못했지만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23곡을 UK 차트 40위권 내에 진입시키며 역사를 이어왔다. 2012년도 음반 < Giants >로부터 9년 만에 발표한 18번째 정규 앨범 < Dark Matters >는 펑크와 퍼브 록을 섞은 밴드 고유의 정체성을 현대적인 울림으로 풀어내 대중과 호흡한다.

스트랭글러스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키보드의 소리가 두드러지고 건반 연주자 데이브 그린필드는 카바레 풍의 유쾌한 연주는 그들의 개성을 확립하는데 공헌했다. 1977년에 발표한 ‘No more heroes’와 ‘Something better change’에서 그가 주조한 댄서블한 사운드는 프란츠 퍼디난드와 블록 파티 같은 21세기 영국의 록 밴드들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린필드는 2020년 5월 코로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이번 앨범은 그에게 유작이 됐다. ‘No man’s land’의 구불거리는 미니무그 선율과 ‘The last men on the moon’의 해먼드 오르간 솔로는 밴드 초기의 간결한 연주에 비해 진일보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그가 발전을 거듭해온 뮤지션이었음을 증명했다.

펑크와 로큰롤, 일렉트로니카 등 여러 스타일이 혼합된 수록곡들은 길고 짧은 러닝타임이 조화를 이루며 음반을 유기적인 형태로 건설했다.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곡의 확장성을 견지한 ‘Water’와 질주감 넘치는 편곡에 현악 세션과 성악을 더한 ‘White stallion’은 풍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지향하는 후기 스트랭글러스를 보여준 반면 1970년대의 까칠하고 공격적인 스타일은 3분 내외로 짧게 끊어 치는 ‘This song’과 ‘Payday’가 그 향수를 대신한다.

음악적 다변화는 동시대 밴드들이 명멸했던 긴 시간 속에서 스트랭글러스를 지탱해왔다. 펑크의 거친 속성을 드러냈던 초창기와 더욱 대중적인 곡조를 선보였던 1980년대를 거쳐 정교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변화를 지속했다. 원년 멤버인 제트 블랙이 떠나고 새 드러머 짐 맥컬로이가 참여한 첫 앨범, 키보디스트 데이브 그린필드의 마지막 참여란 면에서 이 앨범은 그들 경력의 분기점이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대신 음악적 시도와 야심을 택한 < Dark Matters >는 새로운 스트랭글러스의 첫 번째 시작점이다.

– 수록곡 –
1. Water
2. This song
3. And if you should see Dave…
4. If something’s gonna kill me (it might as well be love)
5. No man’s land
6. The lines
7. Payday
8. Down
9. The last men on the moon
10. White stallion
11. Brea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