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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 ‘Killing me’ (2021)

평가: 3.5/5

아이돌 경연 방송 < 프로듀스 101 >의 아이오아이를 거쳐 발라드 스타일의 ‘월화수목금토일’로 솔로 데뷔한 청하는 ‘Roller coaster’, ‘벌써 12시’에 이어 올해 초 21곡의 대작 < Querencia >를 발매하며 보컬, 댄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 밖에도 ‘Meteor’의 창모, ‘Bad’의 크리스토퍼 등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여러 뮤지션과 협업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활동 5년 만에 첫 정규 앨범을 내놓은 2021년을 특별하고도 기억에 남을 한해로 마무리 짓기 위해 그가 꺼낸 카드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보컬은 곡의 중심이 청하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물 흐르듯 흘러 단숨에 도착한 후렴에서는 매끄럽고 유려한 반주와 멜로디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매력도를 높이고, 되풀이되는 일상을 긴 터널에 비유해 그 끝이 밝을 것이라 노래하는 가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족을 줄여 창자(唱者)의 의도와 청자의 감상을 통일시킨 청하의 ‘희망’ 전하기가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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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 ‘Querencia’ (2021)

평가: 2.5/5

스물 한 곡 규모가 순간 놀랍지만 환호가 오래가지 못한다. 퍼포먼스, 댄스, 실험, 인간미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구성은 2017년부터 전개한 솔로 커리어의 집대성이며 청하의 ‘멀티 페르소나’ 면모를 각인하고자 하는 의도다. 정작 광활한 캔버스 위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흐릿하다. 웬만한 완성도가 아니고서야 과욕으로 잊히고 마는 대작(大作)의 운명이다.  

모든 분야를 고르게 잘 해내는 청하의 강점은 넓기만 한 신보에서 무난하나 특색이 없다는 단점으로 퇴색된다. ‘Bicycle’이 문제를 집약한다. 강렬한 기타 리프로 출발하며 아티스트의 첫 정규작을 상징하는 해방의 송가가 되어야 할 곡이지만, 인상적인 멜로디도 없고 중반부 영어 랩은 어떤 매력적인 구절이나 당위가 없어 진부한 주제 의식에 머무른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강해야 할 추임새와 팔세토 보컬로 구성된 후렴부의 힘이 가장 약하다. 무대 없이 노래 자체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곡이다.

깊은 탐구의 결과도 아니고 주체적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두리뭉실한 이미지, 자주 언급되는 고정관념에 뮤지션을 고정하여 여러 재료를 나열한 작품처럼 들린다. 출발점 ‘Noble’ 사이드가 가장 치명적으로, ‘Masquerade’와 ‘Flying on faith’, ‘Luce sicut stellae’ 모두 무난한 완성도의 곡이지만 특별하지도 않고 곡의 주도권을 청하가 확실히 잡고 있지 않다. 아티스트의 것으로 체화되기 전의 해외 케이팝 데모곡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다. 

앨범을 지탱하는 부분은 청하와 오래 함께한 프로듀서 빈센초(VINCENZO)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는 사이드 B와 사이드 C다. 타이틀곡의 정체성이 애매하긴 하나 빈센초는 ‘고귀한 야만인’과 조이 디비전의 명작을 쪼갠 각 사이드 인트로와 주요 곡에 참여하며 형식을 잡는 인물이다. 선공개 싱글이 대거 포진된 이 파트에서 청하는 애매한 팝스타나 케이팝 아이돌을 넘어 댄스 디바로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확보한다. 

‘Stay tonight’이나 리햅(R3HAB)의 ‘Dream of you’ 같은 곡들에 개별 싱글보다 앨범 단위 감상에서 더 좋은 평을 내릴 수 있는 이유다. 어두운 댄스 플로어로 향하는 듯한 사이드 B ‘Savage’와 연결되는 노래들에서 청하는 확실한 보컬 플레이 없이도 유행과 힙의 중간지대에서 균형을 잡으며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수민과 슬롬이 참여한 ‘짜증 나게 만들어’와 콜드의 ‘Lemon’, 백예린과 구름의 ‘All night long’처럼 새로운 매력을 더하며 ‘만인의 뮤즈’ 포지션을 입증해 보이기도 한다. 

마마무의 ‘너나 해’ 이후 흥미로운 라틴 풍 케이팝 트랙으로 기억될 ‘Play’에 이어 스페인어 가사와 푸에르토리코 래퍼 과이나(Guaynaa)와 함께한 ‘Demente’를 통해 또 다른 세계에 손을 건네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작품은 마지막까지 모던한 질감을 이어나가는 대신 팬송 ‘별하랑’과 발라드 ‘솔직히 지친다’ 등으로 끝까지 통일보다 확장을 의도한다. ‘X (걸어온 길에 꽃밭 따윈 없었죠)’라는 흥미로운 서사가 존재하는 마지막 ‘Pleasure’ 사이드가 ‘Comes n goes’ 같은 매력적인 댄스 팝에도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이유다.

결정적 순간을 기대하나 결과는 베스트 음반이다. 아티스트의 다재다능한 면모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프로덕션은 번뜩이는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주어진 곡을 성실히 수행하는 청하 역시 열정적인 댄스 퍼포먼스와 반대로 노래에서는 수준급 이상을 넘보지 않는다. 정직하게 나열된 콘셉트와 많은 수록곡이 어느 순간부터 피로하게 다가오며, 압축과 선별 과정의 부재는 ‘양보다 질’을 언급하게 만든다.

무던함에 대해 청하도 할 말은 있다. < W >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을 본인의 ‘케렌시아’라 언급하며 도전보다는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꿈을 향해 고난을 딛고 10대 시절을 모두 바친 그가 붉은 피와 망토의 투우 경기장 같은 케이팝 시장에서 유일한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뜻은 이해된다. 하지만 과연 < Querencia >가 상처 입은 자아를 쉬게 할 안정적인 피난처인지는 의문이다. 아직 최후의 순간 급소에 칼을 꽃아 넣는 투우사 마타도르(Matador)도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자신을 틀에 가두는 것은 아닌지. 

– 수록곡 –
1. SIDE A {NOBLE}
2. Bicycle
3. Masquerade
4. Flying on faith
5. Luce sicut stellae
6. SIDE B {SAVAGE}
7. Stay tonight
8. Dream of you (with R3HAB)
9. 짜증 나게 만들어
10. Chill해
11. SIDE C {UNKNOWN}
12. Play (feat. 창모)
13. Demente (Feat. Guaynaa)
14. Lemon (Feat. Colde)
15. 별하랑 (160504 + 170607)
16. SIDE D {PLEASURES}
17. X (걸어온 길에 꽃밭 따윈 없었죠)
18. All night long
19. 솔직히 지친다
20. Comes n goes
21. Querencia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