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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필자들이 뽑은 ‘내 가슴에 와닿은 노래 제목’

흔히 ‘인생 곡’이나 ‘인생 앨범’은 매체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반면, ‘인생 제목’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생소하다. 인생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담스러운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습관처럼 제목보다 내용에 더 큰 관심을 가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모든 분야를 불문하고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우리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분명 제목이다. 간단한 단어에서 긴 문장을 오가며 감정을 일렁이고 상상을 주무르는 예술의 일부이자 당당한 대변인인 셈이다.

세상의 위대한 ‘명제목’은 손에 꼽을 수 없이 많기에 조금 범위를 좁혔다. 이번 특집은 각 IZM 필진들의 꼬깃꼬깃한 추억과 모토가 담긴 지극히 개인적인 제목들을 소개한다. 오늘 한 번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평소 자주 듣던 음악들의 이름을 지긋이 바라보기를 권한다. 저변에 깔린 창작자의 의도는 물론, 마치 곡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한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Simple man’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처럼 단순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노래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진짜 심플하고 무지했다. 여기서 Simple은 ‘단순한, 간단한’이 아니라 ‘장식 없는, 검소한, 순수한’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으니까. 이 곡 때문인지 나는 화려한 것보다는 수수한 것, 복잡한 것보다 간단한 것,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좋다. 물건도 잘 버리고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도 싫어한다. 내 머리처럼 백지나 여백이 좋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너무 빨리 살려고 하지 마. 시련은 오겠지만 곧 지나간다.
부자들처럼 돈 욕심을 버려라. 너한테 필요한 건 네 영혼이야.
걱정하지 마. 너는 네 자신을 찾을 거야.
네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마라.’

대학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이 노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부모들이 “숙제 했니? 공부 좀 해라!” 대신 ‘Simple man’의 이 가사처럼 현명한 조언을 해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훌륭하고 바르게 자랄 것이다. (소승근)

3호선 버터플라이 ‘스물 아홉 문득’

나는 29살이 주는 멜랑콜리함에 취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이제 29이 넘었으니 취하지 않는 편 ‘이었다’가 맞는 표현인가? 어쨌든 나는 나이에, 숫자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제목만 보면 그렇게 마음 한 켠이 뜨거워진다. 20대 초중반, 스물아홉이 멀게만 느껴지던 때부터 듣던 곡을 이제 서른이 되어 듣고 있다. 세월의 격세지감이 또렷하게 ‘스물 아홉 문득’ 위에 흐르는 것이다!

돌아보면 매년 사는 게 쉽지 않음을 쓰게 배웠다. 경험의 폭이 얇았던 이십 대는 그래서 유난히 더 빡셌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 준 게 바로 이 곡이다. ‘그 동 안 너 수 고 했 다 고’라는 가사를 하나하나 힘주어 스타카토로 부르는 부분에서는 매번 코 끝이 찡 해진다.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에 진입한 지금까지 휴대폰 컬러링의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노래. 스물아홉이 주는 서정성은 (아마도) 딱 이 곡 안에서만 생긴다. (박수진)

팻보이 슬림(Fatboy Slim) ‘Praise you’

칭찬에 인색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들의 겸손한 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채택한 교육방식인 것을 지금은 백 번 이해해도 학창 시절엔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칭찬거리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는 고래도 춤추게 했던 칭찬 한마디가 결핍으로 남아 자화자찬을 남발해가며 거짓된 자존감을 채우기 급급했으니 이 직관적인 제목이 주는 쾌감은 꽤 어색하면서도 짜릿했다.

간단명료한 노랫말로 주입된 ‘칭찬 폭격’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동안의 갈증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5분 내내 ‘널 칭찬해줘야만 하겠어’라고 외치는 화자 덕에 말끔히 해소됐다. 경쾌한 비트와 팻보이 슬림 특유의 익살스러운 면모까지 그때는 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노래로 메웠던 스스로의 처지가 눈물겹다. (김성욱)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자유가 많아서 마음이 무거운 어떤 청년은 비싼 커피를 마실 돈이 없었다. 열심히 사는데도 가난해서 퍽 억울했지만 분노한다고 삶이 바뀌진 않았고 그렇다고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을 바라는 것도 요원했다. 그는 향이라곤 탄내가 전부인 싸구려 커피에 만족하는 법을 깨닫고 나서야 인생이 그럭저럭 버틸 만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똑똑하게 화내는 것도, 순진하게 명랑한 것도 싫어서 차라리 무력하길 선택한 청년은 그렇게 고급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다르게 썼다.

기껏 공들여 훈련한 음악을 접을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에 ‘싸구려 커피’를 다시 만났다. 곡에서 사용된 단어 중 가장 강한 가치판단이 담긴 싸구려라는 단어을 제목에 박아 넣은 의지에서 얼마간의 자기혐오가 느껴졌다. 가상의 화자가 궁상을 떠는 것에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싸구려와 나를 동일시하는 현상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실속을 따져 일부러 저렴한 커피를 마시지만 그때는 다른 수가 없었기에 이런 예상치 못한 자기 인식은 서글펐다. 비가 그친 후 개어가는 하늘을 희끄므레죽죽한 하늘 같지도 않은 무언가로 보았던 모든 사람은 이 곡의 제목을 보면 마음이 쓰다. 아! 첫 문단의 이야기는 절대로 내 이야기가 아니다. (김호현)

신인류 ‘한여름 방정식’

바람이 차가워지는 11월 중순. 애매한 거리를 유지한 채 여의도 한강 공원을 걷던 우리 둘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반쯤 드러내며 이어폰을 나누어 꼈다. 서로의 음악 취향을 알아가기 위해 차례로 선곡하려던 노래는 뒷전이었고 복잡한 관계의 해답을 찾으려 머리를 굴렸다. 연인 혹은 친구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모호한 사이에서.

내 차례가 왔고 신인류의 ‘한여름 방정식’을 재생했다. 해가 뉘엿하게 지고 있는 하늘과 곧 차가워질 것 같은 바람 앞에서 계속 속으로만 삼키던 말을 용기내 꺼냈다. 그렇게 영원히 좁혀질 것 같지 않던 평행선의 방정식은 ‘사랑해’ 라는 말로 풀렸다. 2020년 6월에 신인류는 해체를 알렸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날의 분위기와 함께 나의 가슴 한쪽에 자리 잡았다. (백종권)

최유리 ‘잘지내자, 우리’

‘잘 지내.’ 긍정을 머금은 작별 인사 한편에 확실한 불안이 맺힌다. 재회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떠나갈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안부엔 슬픔으로 저민 찌꺼기만이 남는다. 담담하게 감정을 되짚는 짙은의 오리지널보다 투명하게 우울을 드러낸 최유리 편곡 버전이 스며든 것은 내 상처가 갈무리되지 않고 울퉁불퉁해서. 가슴 곳곳에 뚫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잘 지내자, 우리’란 문장이 맴돈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닫혀버린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인연이 얼마나 특별할지. 만남이 기적이라면 반대로 헤어진 이 순간은 어찌나 고통스러울까. 위로해줬던 사람들이 자꾸만 곁에서 사라져 아직 가누지 못해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그럼에도 덜어내지 않으려 한다. 깊은 곳에 기억을 새겨 두고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손기호)

스텔라장 ‘환승입니다’

사랑이 곧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이십 대 초반에 연애의 끝은 씁쓸한 맛으로 남았다. 여유가 없어졌다며 하루아침에 작별인사를 건넨 사람에게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여러 밤을 지새웠던 고민은 나의 부족함과 서투른 감정을 향했고 원망 같은 건 쿨하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옥죄기도 했다. 잡생각을 잊으려 바쁘게 보낸 어느 날에도 늘 그렇듯 지하철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댔다.

“환승입니다.” 매일 듣는 기계 음성은 이 헤어짐에 황당한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스텔라장의 ‘환승입니다’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전철을 기다리며 전 연인의 SNS 피드가 주는 충격은 일말의 기대감마저 날려버렸다. 환승의 증거들이 명쾌한 이별의 이유였고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간의 행동도 납득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갈아타야 할 열차는 떠났고 나는 덩그러니 플랫폼에 남겨졌다. (손민현)

레인보우(Rainbow) ‘Black sheep of the family’

하얀 양들에 낀 검은 양은 튀어 보일 수밖에 없다. 골칫거리 혹은 이단자를 뜻하는 ‘Black sheep of the family’를 처음 접한 건 1970년대 영미권 하드록에 빠져있던 중학생 때다. 정신의 민감도가 떨어진 의무교육 시기엔 곡명과 무관하게 그냥 멜로디가 신명 나서 좋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듣는 횟수는 적어졌지만 언젠가부터 곡이 바늘처럼 나를 찔러왔다.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선이 조금씩 옥죄어왔고 ‘어느새 나 혼자 까만 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하는 의문도 가졌다. ‘넌 세후 월급이 얼마니?’ 부동산과 주식을 논할 때 주야장천 예술 얘기만 늘어놓는 것도 괜스레 철없게 느껴졌지만 고뇌도 잠시, 낙천주의와 한량 끼가 결합해 다시금 본연으로 돌아왔다. 그냥 검은 양인 걸 인정하기로 살기로 했다. 한번 사는 인생 남들에게 심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유별나 보는 게 어때, 이런 마음으로. (염동교)

김광석 ‘이등병의 편지’

현역 군인이라면 누구나 거쳐갔을 입대송이 와 닿은 건 입대 직전이었지만 제목이 주는 임팩트는 입대 후였다. 정확히는 ‘이등병의 편지’가 아닌 계급장을 달기 전 훈련소 때의 일이다. 자대로 갔을 때는 공중전화도,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도 있었기 때문에 사회와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했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하겠냐 싶어 외국에 있는 친구와도 편지를 나눴다. 덕분에 큰 외로움도 없었고 군 생활에 치여 그럴 틈도 없었다.

‘훈련병의 편지’가 슬프지는 않았다. 나는 받지 못했다. 같은 분대의 전우들이 2~3통씩 수령할 때도 내게 온 소식은 자취를 감췄다. 힘들었던 일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 머릿속에서는 지워버린지 오래다. 이제는 가족들이 왜 안 보냈는지, 왜 못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내 관물대에 얹어진 종이는 중대장에게 갔어야 할 서신이 내게 잘못 온 것뿐이었다. 아직도 이 노래의 제목만 보면 떠오르는 사연은 있지만 떠올리고 싶은 추억은 없다. (임동엽)

짱유 ‘Kiss my mouth all day’

래퍼 짱유가 오롯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프로듀서 제이플로우의 말처럼 ‘Kiss my mouth all day’는 내게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영롱한 오르골 소리가 시간을 잠시 멈추면 미소를 띤 짱유가 자유분방한 춤을 추며 아픔이 서린 가사를 덤덤히 내뱉는다. 마치 어떠한 삶의 곡절을 직면하더라도 이 노래 앞에서는 그저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될 것만 같은 기묘한 감정과 함께.

그래서일까, 자기혐오와 포기 욕구가 극에 달할 때마다 곡은 매번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으며 살아갈 힘을 주곤 했다. 매일 밤 새벽 막차에 지친 몸을 던져 취객들과 함께 엉키던 순간에도, 그렇게 도착한 집 앞 골목길 계단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순간에도, 돌이켜 보면 ‘하루 종일 스스로 키스를 건넬 수 있는’ 그를 상상하며 버틸 수 있었던 셈이다. 어딘가에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겪고 있는 모든 코리안 키드들에게 나의 저릿한 기억이 담긴 소중한 문구를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장준환)

샤이니 ‘I want you’

2017년, 우울에 잠식당한 채 애써 웃어보였던 한해였다. 다사다난했던 1년간의 악몽에서 탈출하고자 그해 끝자락인 12월에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맛있는 먹거리와 매서운 칼바람에 마음 속의 짐을 녹여 날려내는 듯했으나 그날 밤 여유가 생긴 나의 공간을 다시 꽉 채워 터뜨린 건 샤이니 종현의 비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그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던 내게 죄책감까지 들게 했고 복합적인 슬픔에 잠긴 나는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다 끝내 눈물을 쏟았다.

그날의 아픔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이듬해 여름, 남겨진 4명의 ‘너를 원한다’는 직관적인 한 마디가 겨우 마음을 추스른 나의 코끝을 다시 찡하게 만들었다. 몽글거리는 사운드 위에서 옛 동료를 회상하는 듯한 ‘I want you’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내 진심까지 대변했고 이젠 학창 시절의 워너비를 웃으며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눈앞에 네가 다시 다가와 그때와 다른 결말이 오길’ 바라는 마음엔 변함이 없지만 이젠 자유로이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있을 그의 얼굴에 미소만 가득하길 바란다. (정다열)

종현 ‘따뜻한 겨울’

겨울을 싫어한다. 여름만 있는 나라에 10년간 머물었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때문인지 그 이유는 찾지 못했다. 12월에는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추위나 외로움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발 끝에서 질척이는 눈은 짜증스러웠고 여름의 맑은 하늘과 햇살에서 나오는 활기가 그리웠다.

햇빛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음식을 상하게 한다. 여름의 열정을 즐길 때 마음의 끝은 조금씩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겨울을 완전히 내버리지 못하고 이 노래를 찾았다. 신선한 바람과 사람들의 온기를 동시에 머금은 ‘따뜻한 겨울’이 직사광선에 상해버린 마음을 달래 주니까. ‘다시 또 만날 그 날이 약속된 안녕인 거니까’ 추위가 수그러든 지금은 햇살을 맘껏 쬐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다시 만나기로 한다. (정수민)

Lady Gaga ‘Marry the night’

고등학교 3학년, 입시의 끝이 다가올수록 내 속에 있던 불안감은 커져갔다. 이러다 공부를 더 하게 될 것 같다는 걱정에 사로잡힌 나는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아마 주제가를 ‘Marry the night’으로 삼아야겠다는 자조적인 상상을 속으로 펼치곤 했다. 음반사에게 계약 해지를 당한 후 기회를 찾으며 분투하던 뮤직비디오 속 레이디 가가처럼 밤으로 함축된 고통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전진하리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대망의 첫 수시 발표날, 탈락을 확인한 나는 좌절을 이끌고 감독 선생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친구와 몰래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날 ‘Marry the night’을 열창하며 분을 풀었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도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다. 착잡함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날 나는 밤과 결혼했고, 아픔을 껴안았으며, 나를 조금 더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힘든 시간을 마주해야 그 다음의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한성현)

정리: 장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