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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모어(Paramore) ‘This Is Why’ (2023)

평가: 3.5/5

분명 쉬운 길이 있었다. 팝 펑크가 2020년대 들어 알음알음 유행으로 떠오르면서 파라모어는 그 주축의 일원으로 인정받았고, 특히 프론트우먼 헤일리 윌리엄스는 새로이 부각되는 여성 뮤지션의 발원지로 포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조명의 기쁨 너머 도사린 자가복제의 함정을 가볍게 간파했다. < This Is Why >는 출항 20년을 목전에 둔 밴드가 택한 낯설지만 지혜로운 항로다.

1980년대 뉴웨이브 풍의 전작 < After Laughter >에서 포스트 펑크로의 전환은 겉보기에 급작스러운 면이 있다. 변화의 예고편은 리드 보컬 헤일리 윌리엄스가 2020년 발표한 < Petals For Armor >였다. 신보는 솔로 앨범의 엔지니어 카를로스 드 라 가자(Carlos de la Garza)를 프로듀서로 데려와 염세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강렬한 기타 리프를 덧붙였다. ‘Cinnamon’, ‘Creepin” 등이 겹치는 첫 싱글 겸 오프닝 트랙 ‘This is why’는 제목처럼 변신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곡이다.

헤일리 윌리엄스의 직설적인 화법만은 변치 않았다. 다만 격정적인 사운드와 중첩되다 보니 분노의 감정을 다 담기에는 표현의 지름이 부족한 면이 있다. 높은 설득력은 극도로 핵심만을 남긴 ‘Big man, little dignity’나 오랜 파트너에서 연인이 된 테일러 요크에게 바치는 진솔한 ‘Liar’ 등에서 나타난다. 레퍼런스로 삼은 블록 파티의 < Silent Alarm > 느낌을 벗어나 속도를 줄이고 서정성을 높였다는 공통점이 밴드의 흡수력보다는 독자성에 힘을 실어 준다.

거시적인 그림에서 봤을 때 큰 불편이 없는 것은 파라모어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요동치지 않는 유기적 트랙 배열 덕분이다. 경쾌한 댄스 펑크로 출발해 차츰 무게를 늘려가는 후반부로의 흐름이 듣는 이를 정서적으로 작품에 동화되게 만든다. 직전 앨범의 처절한 넋두리나 2013년 셀프 타이틀 < Paramore >처럼 험난한 서사 없이도 동일한 수준의 흡인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밴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단단한 내공을 증명한다.

< After Laughter >가 넝마가 된 마음을 형형색색의 신스팝으로 덧칠해 감췄다면, < This Is Why >는 밴드 사상 가장 안정적인 체제에서 나왔음에도 잿빛 칼날을 빼 들었다. 단단해진 팀워크로 처음으로 멤버 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태평성대에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진리를 깨우친 셈이다. 이끼 낄 틈도 없이 열심히 구르는 돌, 수없이 재건되는 테세우스의 배. 파라모어가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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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라 텡고(Yo La Tengo) ‘This Stupid World'(2023)

평가: 3.5/5

척박한 노이즈의 토지 위로 나지막이 드리운 서정의 꽃밭. 아이라 카플라와 조지아 허블리 부부를 주축으로 1984년 결성한 요 라 텡고(Yo La Tengo)의 음악은, 늘 이 모순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 빚어내는 카타르시스를 자극하곤 했다. 예를 들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반항스런 슈게이즈에 콕트 트윈스의 아스라한 드림 팝을 섞어내는 식이다. 이들은 열여섯 장의 정규작 가운데 여러 장르의 정수를 배합하며 매번 새로운 논리 구조를 가져왔고, 어느덧 인디 록의 ‘절충주의’라는 독특한 수식마저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밴드의 인기 요인은 불변함에 있었다. 낙관적 따스함이 웃돌던 <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1997)과 슬로코어의 자줏빛 밤 산책을 품은 <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2000), 두 작품이 명반으로 평가받는 이유 역시 러닝타임 내내 일관된 아늑함을 조성한 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속 혼란과 우울을 요동치는 드론(Drone) 사운드로 표현한 직전 실험작 < We Have Amnesia Sometimes >를 제외하면 이들의 음악은 항상 변화 속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적정선에 위치했다. 득을 취하면서도 능숙하게 중용의 자세를 고수해온 안정적인 작업 방식이 곧 특색을 결정한 비결이 된 것이다.

그런 < This Stupid World >는 디스코그래피에서 아홉 개의 표본을 선별한 모종의 아카이브 앨범과도 같다. 때론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지고, 때론 온화하게 어루만지던 나날의 기록을 차곡차곡 찍어 발행한 사진첩인 셈이다. 걸걸한 잔향과 반복적인 구성을 내세우며 일말의 타협 없이 내달리는 드라이브 대곡 ‘Sinatra drive breakdown’과 슈게이즈 작법에 안온한 보컬을 입혀 중화 작용을 펼친 ‘Fallout’, 크라우트록을 위시한 모토릭 리듬에 간결한 어쿠스틱을 수놓은 ‘Tonight’s episode’가 차례로 등장한다.

눈여겨볼 지점은 분위기를 반전하고 준비한 온기를 공유하는 포크 록 ‘Aselestine’과 지난날을 회상하듯 장대한 몽환경을 설치하며 마지막을 능숙하게 장식하는 ‘Miles away’다. 각각의 곡에서 코트니 바넷의 ‘Depreston’에 담긴 기분 좋은 무료함과 뷰욕의 ‘Hyper-ballad’ 같은 점멸하는 주마등이 스치듯 떠오른다. 즉흥 잼과 변칙적 박자 가운데 적적하게 죽음을 읊조리는 ‘Until it happens’ 역시 독특한 존재감을 남긴다. 40년 경력에 달하는 베테랑의 가지각색 노하우가 발현하는 순간이다.

다양한 장르 운용 기법을 가져온 비슷한 계열의 정산 작품 <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 >(2006)에 비하면 소모성이 조금 짙기도 하다. 개별 트랙의 소구력보다 작법 구현에 집중하며 활동의 당위성을 부여하려 하자 특유의 담백함만큼이나 밋밋함이 동반하는 구간이 생긴다. 그럼에도 여타 협업의 편법 없이 오래도록 색감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범접하기 힘든 감탄이 몰려온다. 위태로이 흔들리지만 절대 꺼지지 않는 촛불, 현재와 저편 사이의 공백을 계속 상상하게 만드는 얇은 장막. 요 라 텡고의 영역은 건재하다.

– 수록곡 –
1. Sinatra drive breakdown
2. Fallout

3. Tonight’s episode
4. Aselestine
5. Until it happens
6. Apology letter
7. Brain capers
8. This stupid world
9. Miles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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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스킨(Måneskin) ‘Rush!'(2023)

평가: 2.5/5

“록 그 폭발하는 젊음의 미학”이란 불멸의 타이틀이 모네스킨만큼 잘 어울리는 근래 밴드는 없다. 사운드는 ‘쎄’고, 의상은 화끈하며, 무대는 뜨겁다. 젠더 구분을 무너뜨린 스타일리쉬한 의상과 모든 규범에 반기를 들려는 듯 바삐 악기를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 이들에게 마음까진 몰라도 시선을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다. 록스타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1999년에서 2001년 출생의 평균 연령이 낮은 그룹이지만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가 베테랑급이다. 이게 이들의 한방이다. 2015년 로마에서 고등학생 시절 결성한 그룹이 2021년 유로비전 송테스트에서 우승하고, 2023년 그래미 시상식 신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성장한 데에는 남부럽지 않은 무대 매너가 한몫했다. 에너지. 강렬한 록을 기반으로 공연장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관하는 에너지는 단숨에 이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신보는 이러한 세간의 관심에 대한 영리한 화답이다. 2장의 정규 음반을 가득 채웠던 모국어 이탈리아어의 비중은 확연히 줄었고, 사운드 질감은 조금 더 ‘팝’스러워졌다. 강하게 밀어 부딪히던 과거와 달리 메인 선율에 공을 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히트곡 메이커 맥스 마틴이 프로듀서로,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수록곡 ‘Gossip’에 참여하며 힘을 보탠 것 역시 앨범 변화에 일조했다.

시작부터 ‘내 마음을 가지고 싶으냐’ 물으며 내달리는 ‘Own my mind’, 톤 다운된 록 발라드 ’Time zone’, 비장미 넘치는 펑키한 기타 연주와 후킹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Baby said’가 정신없이 교차한다. 곡 러닝타임도 짧아 앨범에 박진감이 넘친다. 자유분방한 외침과 너절하지 않은 가사. 음반명처럼 ‘Rush’한 서두름이 여기저기 용솟음친다.

이 치기의 끝에 ‘Bla bla bla’, ‘Kool kids’가 서 있다. 이 곡들은 에너지로 밀고 나가던 이들이 여기에 함몰 됐을 때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가에 대한 나쁜 예다.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며 코러스로 멋진 음악 감각을 보여주는 ‘Gasoline’이나 뇌쇄적 매력을 펄펄 풍기는 ‘Feel’이 메시지, 이미지적 측면에서 질 좋은 성과를 낸 데 반해, 상기한 노래를 비롯한 몇몇 곡은 껍데기만 있고 내용물이 없다.

그리하여 껍데기는 가라. 단타로 훅훅 선율을 내리꽂으며 부각한 음악 파워에 같은 농도로 호응하는 수록곡 부재에 틈이 생긴다. 농도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관건은 여기에 있다.

– 수록곡 –
1. Own my mind
2. Gossip (Feat. Tom Morello)
3. Timezone
4. Blab la bla
5. Baby said
6. Gasoline
7. Feel
8. Don’t wanna sleep
9. Kool kids
10. If not for you
11. Read your diary
12. Mark chapman
13. La fine
14. Il dono della vita
15. Mammamia
16. Supermodel
17. The lonel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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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 루이스(SG Lewis) ‘Audiolust & Higherlove’ (2023)

평가: 3.5/5

복고주의가 공고해진 이상 방법론이 중요해졌다. 어떠한 프로덕션으로 이질감을 최소화하느냐가 소통의 열쇠. 모던과 레트로의 교차점을 꿰뚫은 SG 루이스는 29세 나이가 무색하게 노련하다.  과거의 음악을 현대화한 두 번째 정규 앨범 < Audiolust & Higherlove > 속 음파는 파도 위 서퍼처럼 자유롭고 감각적이다.

SG 루이스는 제시 웨어의 2020년 수작 < What’s Your Pleasure? >과 같은 해를 휩쓸었던 두아 리파의 < Future Nostalgia >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신보는 이들의 음악에서 보여줬던 댄서블한 디스코/하우스를 깊게 탐구했고 팝의 이름 아래 재단했던 음악적 모험을 풀어헤쳤다.

래퍼 채널 트레스(Channel Tres)와 알앤비 음악가 샬롯 데이 윌슨(Charlotte Day Wilson)이 참여한 ‘Fever dreamer’는 플로어의 달굼과 개인 감상으로 병용될 곡이다. 휴먼 리그의 1984년 작 ‘Louise’가 떠오르는 ‘Oh Laura’와 펫 샵 보이즈 풍의 속도감 넘치는 ‘Missing you’는 1980년대를 향한 헌사. 존재의 현시를 의미하는 ‘Epiphany’와 팔세토가 돋보이는 ‘Another life’ 등 디스코와 신스팝의 해협을 넘나드는 고품질 음향은 2021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 Times >를 상회한다.

소수자의 음악으로 시작했던 디스코는 비지스와 도나 섬머에 의해 세계를 제패했다. 원류와 그 모양은 다를지언정 2010년대의 캘빈 해리스, 2020년대의 두아 리파가 상업적 성공을 통해 장르 명맥을 이어갔다. 값싼 댄스 음악이라는 오명을 벗긴 쉭처럼 영국의 젊은 프로듀서는 2020년대 디스코의 작가주의를 선언했다.

-수록곡-
1. Intro
2. Infatuation
3. Holding on
4. Call on me
5. Oh Laura
6. Missing you
7. Another life
8. Fever dreamer
9. Epiphany
10. Lifetime
11. Palin sailing
12. Vibe like this (Feat. Ty Dolla Sign)
13. Different light
14. Something about your love
15. Hon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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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맥스(Ava Max) ‘Diamonds & Dancefloors’ (2023)

평가: 2.5/5

유독 산전수전이 많았다. 2022년 4월부터 연속된 싱글의 부진 속 9월로 예정되었던 발매일은 이듬해 1월로 넘어갔고, 그 사이 바이닐이 발송되어 전 트랙이 유출되는 사고도 벌어졌다. 아트워크까지 바꾸고 비수기를 노려 겨우 세상의 빛을 본 차기작의 차트 순위는 빌보드 앨범 차트 34위. 상업적인 성과가 전부는 아니나 치열한 팝 전선에서 적잖은 인지도를 쌓은 에이바 맥스이기에 결코 달가운 숫자는 아니다.

‘천국’과 ‘지옥’ 콘셉트를 잡았던 전작 < Heaven & Hell >과 비교하면 신보 < Diamonds & Dancefloors >는 훨씬 간결하다. 춤으로 치환한 이별의 아픔과 1980년대 복고 댄스 사운드가 그 키워드다. 전자의 발상은 로빈(Robyn) 이후로 막대한 범람을 겪고 있으며, 후자는 후발주자 프레임에 넣기 민망할 정도로 지속 유행 중이다. 본래 낯익은 멜로디를 통한 접근성 최대화가 에이바 맥스의 히트 전략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기획은 그의 캐릭터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앨범은 전적으로 보편성에 의존한다. 장점은 전반적으로 고르게 뽑힌 멜로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로댄스 장르의 채택을 통한 이른바 ‘뽕끼’의 구현이다. 고급화를 추구하는 대신 시작부터 끝까지 흥의 주입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어 감상의 복잡함은 없다. 2010년대 초중반 팝 히트 싱글을 여럿 주조한 프로듀서 서쿳(Cirkut)을 비롯해 크레딧을 빽빽하게 채운 제작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부분의 곡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담보한다.

뼈아픈 한계는 ‘에이바 맥스여야 하는’ 근거의 부재다. 트렌드와 과거를 이리저리 결합한 그의 음악은 라디오와 알고리즘에 걸렸을 때 스킵할 이유는 없으나 그렇다고 구태여 찾아 들을 유인책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엇비슷한 트랙 사이 그나마 강하게 각인되는 구간은 ‘Weapons’의 난데없는 호통 ‘Stop! using your words as weapons’ 정도인데, 이 또한 ‘Kings & queens’, ‘Not your Barbie girl’ 등 아티스트의 고질병인 일차원적 가사와 연결되는 소모적인 밈(meme)에 가깝다. 딱히 본인이 바라던 바는 아닐 것이다.

공산품이라는 타이틀 하에 음악 자체를 애써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요는 지금의 브랜딩이 단기적인 상승과 화제 몰이는 가능케 했어도 차별성 획득과 장기적인 생명력 유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케이티 페리식의 범대중적 어필 또는 칼리 래 젭슨의 사례처럼 장르의 컬트 아이콘 노선을 노린다면 모를까, 그의 야욕이 가리키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가혹하지만 ‘괜찮은’ 수준의 음악으로 살아남기에 클럽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이미 만석이다.

-수록곡-
1. Million dollar baby
2. Sleepwalker
3. Maybe you’re the problem
4. Ghost
5. Hold up (Wait a minute)
6. Weapons
7. Diamonds & dancefloors
8. In the dark
9. Turn off the lights
10. One of us
11. Get outta my heart
12. Cold as ice
13. Last night on Earth
14. Dancing’s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