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전부터 삐걱거리는 3집 < Treat Myself >의 싱글 곡이다. 2018년 3월 출시 예정이었던 앨범은 리드 싱글 ‘No excuses’를 시작으로 후속곡들의 잇따른 부진 때문에 결국 발매일을 2020년 1월31일까지 미뤘다. 대중의 미약한 반응은 메간 트레이너의 음악적 방향성에 의문을 갖게 했고, 지난 9월 다분히 라디오 에어플레이를 의식한 ‘Wave’를 통해 그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어두운 분위기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선보이게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번 ‘Blink’는 ‘Wave’의 변화를 따른다. 영국 출신 DJ이자 프로듀서인 시갈라(Sigala)와 작업한 곡은 목소리 샘플로 뼈대를 구성하여 전자음악의 문법으로 살을 붙인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만들어진 노래는 목소리로 쌓인 화음으로 반복되는 후렴구를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귀에 억지로 새기려는 듯한 진행에 메간 트레이너의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레트로를 기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설파했던 그의 매력이 사라진 이번 곡 역시 미지근한 흥행으로 흘러갈 확률이 낮지 않다.
진중함과 성숙도에 역점을 둔 < Purpose >였기에 실망감이 더 크다. 아내 헤일리와 행복한 나날을 담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런 방향일 줄이야. 노골적인 성행위를 나타내는 표현 ‘Yummy’가 틱톡(Tik Tok)을 노린 듯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가사의 절반이다. 멜로디 역시 드레이크의 ‘Hotline bling’과 비슷하고 밋밋한 구성은 반전 없이 진행된다. 남은 것은 여전히 미성을 지닌 그의 음색뿐이다. 4년 만에 돌아와 내놓은 곡은 < Purpose >에서 올려놓은 기대치를 끌어내린다.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스포츠 게임 타이틀을 닮은 신곡은 필라델피아 출신의 젊은 랩퍼가 2019년 12월에 신년을 향해 던진 출사표다. 겉으로 보이는 의미와 달리 ‘Futsal Shuffle’은 그가 SNS를 통해 이름 붙인 춤이며, 이 춤과 노래로 ‘2020’년을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담은 것이 제목의 뜻이다. 작년 마지막 빌보드 싱글 순위에서 단번에 5위에 올랐던 노래는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새해 첫 주 40위권까지 떨어졌다.
2016년 미고스의 ‘Bad and boujee’에 참여해 빌보드 HOT 100 정상을 찍으며 인터넷상에 패러디가 유행처럼 퍼지는 밈(Meme)의 효과를 봤던 릴 우지 버트는 밈의 힘이 세짐에 따라 댄스를 이용해 직접 나선 것이다. 타일러 더 크리에어터의 공연 클립을 도입부에 넣는 등 다양한 요소까지 더했으나 부담스러운 신시사이저만이 반복될 뿐 특별한 흡인력이 전해지진 않는다. 곧 나올 두 번째 앨범 < Eternal Atake >에 대한 기대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라틴 팝 스타를 향한 카밀라 카베요의 원대한 항해가 위기에 처했다. 최근 십 대 시절 SNS에 남긴 인종차별 발언이 화제가 되고 다베이비(DaBaby)와 부른 ‘My oh my’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논란의 도마 위로 올라선 것이다. 이는 성공적인 솔로 데뷔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온 그의 이미지와 커리어에 동시다발적으로 받은 큰 타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말한 몇 가지 논란을 감안하더라도 < Romance >는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Havana’의 메가 히트를 중앙에 두고 다소 평이한 곡으로 주변을 메운 전작 < Camila >에서 훨씬 다채롭게 힘을 실은 변화가 서두에 드러난다. 첫 트랙인 ‘Shameless’는 강렬한 예시로, 간결한 기타 스트링으로 가벼운 긴장을 유도한 뒤 고음으로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이른바 예열의 단계를 완벽히 수행한다.
이어지는 곡들은 몰입에 가속을 붙인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도입부에 삽입한 ‘Living proof’로 진부함을 벗어나거나,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의 ‘All night long (All night)’을 레게톤으로 둔갑한 ‘Liar’로 본인의 라틴 캐릭터를 그려내기도 한다. 게다가 앨범 이름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더욱 강화된 사랑 표현과 확신에 찬 당돌한 노랫말은 그가 매튜 허시(Matthew Hussey)와의 이별과 숀 멘데스(Shawn Mendes)와의 만남을 토대로 써 내려간 생생한 ‘로맨스’의 기록을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도구다.
다만 ‘Dream of you’의 불안한 고음 처리를 시작으로 작품은 집중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평범한 어쿠스틱 ‘This love’을 지나 무난의 극치를 달리는 ‘First man’까지.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특기인 카멜레온 같은 음색과 농밀한 라틴의 향취가 전무한, 한 마디로 카밀라 카베요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곡들이 쏟아져 나온다. 딱히 존재 이유를 느끼기 힘든 짐 같은 트랙들이다.
< Romance >는 영민한 시작으로 이목을 사로잡으며 기대감을 한껏 올려놓았으나 뒤로 갈수록 다시 평범한 결과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숙을 요구한 < Camila > 이후로도 여전히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마무리가 바로 화근이다.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Havana’와 ‘Señorita’가 대중이 원하는 라틴 사운드를 충족시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인이 가진 쿠바의 피를 좀 더 활용하려는 작전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논란을 딛고 반성하는 태도. 항해를 재개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건 오만과 욕심을 덜어낸 선체다.
– 수록곡 – 1. Shameless 2. Living proof 3. Should’ve said it 4. My Oh My (Feat. DaBaby) 5. Señorita (Feat. Shawn Mendes) 6. Liar 7. Bad kind of butterflies 8. Easy 9. Feel it twice 10. Dream of you 11. Cry for me 12. This love 13. Used to this 14. First man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는 2018년 노스탤지어를 연출한 데뷔곡 ‘1950’을 발표하며 화제를 모았다. 원 디렉션 출신 솔로 해리 스타일스가 ‘1950’의 가사를 트위터에 공유할 정도로 인상적인 데뷔였다. 이렇게 이름을 알린 그는 젠더퀴어이며 동성애자인 자신의 위치를 첫 정규 앨범인 < Cheap Queen >으로 공고히 한다.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 자신의 정체성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노래한다.
‘싸구려 여왕’의 독특한 문법은 특수한 사랑의 방식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Ain’t together’에서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귀지는 않는’ 관계를 담고, ‘Tough on myself’에서는 친구에 대한 욕망과 이에 대한 자책을 노래한다. ‘Isabel’s moment’에서는 친구와 애인 사이의 선을 왜 그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혼란을 도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가사에서 화자와 청자의 성별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뜻 평범한 이성 간의 이별 발라드 ‘Watching my phone’과 ‘Prophet’, ‘You destroyed my heart’ 등도 퀴어 연애를 전제로 한다. 비교적 간소한 편성의 다른 곡들 사이에서 이 세 곡은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소리를 풍성하게 확장시켜 감정의 높낮이를 섬세히 표현한다. 비정형적인 인간관계가 터부시되는 풍조 속에서 이처럼 진솔한 노래들은 킹 프린세스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곡들의 정서적인 출발점이 특수할지언정, 그 결과물은 낯설거나 거북하지 않다. 메시지는 진보적이나 음악은 과거의 유산에 튼튼히 발을 디디고 있는 덕이다. 기타 팝에 기반을 두며 치밀하게 설계된 1980년대의 사운드로 곡을 풀어내는 작법은 프로듀서 마크 론슨 (Mark Ronson)의 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타이틀곡 ‘Ain’t Together’에서는 애절함을 강조하기 위해 기타 사운드를 강조하는가 하면, ‘Hit the back’은 디스코를 추억하는 댄서블한 팝이다. 앨범의 모든 곡들이 선명한 멜로디를 중심에 갖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팝스타를 지향하는 만큼 어려운 실험보다 어렵지 않은 음악을 선보이며 안전한 선택을 했다.
킹 프린세스의 당당함은 세대의 변화를 반영한다. 빌리 아일리시와 할시, 클레어오 등의 Z세대 뮤지션들은 기성 팝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두려움 없이 진솔하게 감정을 표출한다.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에서도 자유롭다. 2000년대 밀레니얼 여성 팝스타들의 페르소나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주제 의식이다. 킹 프린세스는 인디의 감성을 레트로의 유행에 결합시켜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쉬운 팝의 형태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제 쿨함은 Z세대의 영역이 되어간다.
– 수록곡 – 1. Tough on myself 2. Useless phrases 3. Cheap queen 4. Ain’t together 5. Do you wanna see me crying? 6. Homegirl 7. Prophet 8. Isabel’s moment (Feat. Tobias Jesso Jr.) 9. Trust nobody 10. Watching my phone 11. You destroyed my heart 12. Hit the back 13. If you think it’s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