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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Jubilee’ (2021)

평가: 4/5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에는 확고한 본바탕이 있다. 신경질적인 슈게이징 사운드로 날 선 감정을 표출했던 < Psychopomp >, 심연으로 가득 찼던 <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 두 작품은 어머니와의 사별에서 파생된 비극적인 심리를 저술한 아티스트 내면의 발로였다. 그러나 3년 만에 돌아온 신보 < Jubilee >의 첫인상은 사뭇 다르다. 속의 감정보다는 선명한 멜로디와 음악, 그 기운찬 느낌이 우선 다가온다. 노란빛의 채도 높은 앨범 커버처럼, 다채로워진 구조로 새롭게 변신을 꿈꾸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다.

첫 트랙 ‘Paprika’부터 기존 노선과 선을 긋는다. 이전의 악 받친 보컬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우아한 곡조와 한껏 덩치를 키운 사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천천히 찾아온 제정신, 나는 큰 매듭을 푸는 꿈에서 깨어났다”(“Lucidity came slowly, I awoke from dreams of untying a great knot”)처럼 가사는 변화와 삶을 향한 긍정, 그리고 예술가로서 창작에 대한 기쁨을 중첩한다. 축제의 한 폭을 도려내 오선지에 그린 듯 활달한 마칭 밴드의 소용돌이에서 심박수를 기막히게 떨어트리는 중반부의 완급조절, 그 위로 케이트 부시가 떠오르는 생동감 넘치는 멜로디와 가창으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감행한 도전을 성취로 맞바꾸어 놓는 데에 성공한다.

이어지는 수록곡도 과감하다. 저마다 개성적인 기악 편성과 곳곳에 변칙을 부여하는 능력이 절정에 달했다. 둔중한 베이스와 감칠맛 나는 기타의 그루브로 첫 트랙의 신선함을 길게 끌고 가는 1980년대 신스팝 스타일 넘버 ‘Be sweet’, 뜻밖의 발랄함을 발산하는 ‘Savage good boy’는 모두 예측을 깨부수는 곡들이다. 어쿠스틱한 ‘Kokomo, in’과 전자 피아노에 겹겹이 층을 낸 현악기로 담백함을 자아내는 ‘Tactics’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쉬어가는 구간을 마련해 흐름을 단단히 유지한다. 특히, 로파이한 무드에 포근한 관악기 솔로를 휘몰아친 ‘Slide tacke’는 앨범의 백미.

전환에 전환을 거듭하는 진행에도 내면을 철저히 견지하기에 더 특별하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손길은 활발해졌을지언정 그 속 미셸 자우너의 어투는 여전히 싸늘하고, 아슬아슬하다. 1집 < Psychopomp >의 ‘Jane cum’이 겹쳐가는 매서운 기타 디스토션의 ‘Sit’과 어두컴컴한 신시사이저의 깊은 골짜기가 멋들어진 ‘Posing in bondage’는 각각 섹슈얼한 상상과 상대를 향한 처절한 갈구로 비틀거린다. 대담했던 초반부에서 뒤로 갈수록 차분하고 섬세하게 종결되는 흐름도 자연스럽다. “지옥은 사랑할 사람을 찾고 나는 너를 다시 볼 수 없어”(“Hell is finding someone to love and I can’t see you again”)라 이별을 직접적으로 설파하는 ‘In hell’과 쓸쓸한 기타 연주 위로 외로운 자신을 인정하는 피날레 ‘Posing for cars’의 여운이 유독 차디찬 이유다.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감성은 깊어졌다. 특유의 담담한 감정 응시를 유지한 채 화려한 곡조를 보태니 더없이 탄탄하고 응집력 있다. 변화무쌍한 구성과 그에 자연스럽게 따라온 커리어 상의 변곡점으로 이전보다 적극적인 평단의 호응과 스포트라이트까지 챙긴 것은 덤이다. 여러모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최고작. 아물지 않은 트라우마 속 꿈틀대는 음악적 열의와 야심이 일군 눈부신 자가 치유다.

– 수록곡 –
1. Paprika 
2. Be sweet 
3. Kokomo, in
4. Slide tackle 
5. Posing in bondage
6. Sit
7. Savage good boy 
8. In hell 
9. Tactics
10. Posing for c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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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라이프(Westlife) ‘My hero’ (2021)

평가: 2.5/5

다년차 아티스트에게 필연적으로 ‘변화’와 ‘고수’라는 기로가 찾아온다고 가정한다면, 2018년 재결성 소식을 알리며 활동을 재개한 팝 보컬 그룹 웨스트라이프의 선택은 전자에 가깝다. 에드 시런이 작곡에 참여해 EDM 스타일로의 개편을 꾀한 ‘Hello my love’을 전작 < Spectrum >의 타이틀로 내건 것부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했다. 실제로도 이 작품에 속한 ‘Dance’나 ‘L.O.V.E.’ 등의 트랙은 그룹이 가진 연차와 네임밸류를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현존하는 팝 경향에 맞닿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12번째 정규작 < Wild Dreams >의 발매에 앞서 선공개된 ‘My hero’는 중도의 입장에 가깝다. 그들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건반과 공명을 버무린 진득한 발라드를 주된 작법으로 내걸었지만, 현 주류 시장에 어울릴 만한 공정을 거쳤다. 이름이 비슷한 히트 넘버 ‘My love’와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팝 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애드 시런과 초기작부터 연을 맺어온 스티브 맥(Steve Mac)의 참여가 정직하게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창의적인 멜로디나 화음부에서의 임팩트는 조금 부족하다. 다만 향후 발매될 앨범을 위한 소개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20년 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장수 그룹 중 지금의 웨스트라이프는 분명히 자생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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쉭(Chic) ‘Risque’ (1979)

평가: 4.5/5

밴드 Chic. 이들의 이름이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영향 아래 노출되지 않은 뮤지션은 거짓 조금 섞어 (거의) 없다. 1970년대 중후반 디스코가 발족한 이후 전 세계가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로 들썩이던 그때, 중심에는 밴드 쉭이 있었다. 평단과 대중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 Risque >를 통해 그룹의 가치와 음악적,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봤다.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
연주자가 밴드의 대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쉭은 다르다. 그들의 대표곡 ‘Le freak’, ‘Good times’를 꺼내 들었을 때 단박에 ‘아, 이 곡!’ 하며 익숙한 선율을 떠올리겠지만 노래를 부른 보컬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쉭은 명백히 기타의 나일 로저스와 베이스의 버나드 에드워즈의 것이었다. 1996년 에드워즈가 폐렴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이들의 생명은 계속해서 같이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 ‘디스코텍(discotheque, 지금의 클럽)’에서 이름을 딴 ‘디스코’가 세상에 내려앉았다. 반복되는 리듬과 이렇다 할 가사 없이 철저히 즐거움에 초점 맞춘 노래는 종종 가벼웠고 정확히는 가볍게 보였다. 도나 섬머, 비지스 등이 디스코 열풍을 점화했다. 로드 스튜어트는 ‘Da ya think I’m sexy?’로, 롤링 스톤스는 ‘Miss you’로 그 시류에 안착,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디스코에는 시대가 담겨있다. 춤추고 춤추며 잊고자 한 것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이다. 1975년 베트남전이 열었던 문을 잠그자 과거를 잊게 하는 밝은 곡들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쉭은 가장 정치적이었다. 밴드의 원 그룹명이 ‘알라 앤 더 나이프 월딩 펑크스(Allah & the Knife Wielding Punks)’ 즉, ‘알라신과 칼을 휘두르는 펑크족’일 만큼 그들은 뭔가 달랐다.

Good times
이들의 음악에는 은유적인 가사가, 그래서 시대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특히 음반의 첫 곡이자 대표곡 ‘Good times’는 당시 미국 경제 침체를 향한 시선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지금은 좋은 시간이며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자이브와 지르박을 춥시다’라는 외침. 여기에는 잔혹하고 동시에 일리 있는 낙관이 넘실거린다.

8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두 개의 코드만을 오가는 곡은 전작 < C’est Chic >(1978)의 ‘Le freak’ 이후 차트 정상에 오른 유일한 곡이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많이 샘플링된 노래이기도 하다. 싱글이 공개된 1979년 슈가힐 갱의 ‘Rapper’s delight’에 샘플링된 것을 시작으로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의 ‘Adventures on the wheels of steel’, 블론디의 ‘Rapture’,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까지 곡의 잔류가 흐른다.

리듬, 박자, 변화
또 하나 쉭의 강점은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리듬에 있다. 수록곡 ‘My feet keep dancing’을 들어보자. 여성과 남성의 보컬이 교차하며 합을 쌓다가 적소에 등장하는 박수 소리는 곡의 매력을 십분 살린다. 초기 히트곡 ‘Dance, dance, dance (yowsah, yowsah, yowsah)’와 같이 리듬을 부각하는 클랩비트의 등장. 이는 그룹이 쫀득한 리듬과 박자의 뽑아내고자 얼마나 골몰했는지를 증명한다.

앨범의 또 다른 히트곡 ‘My forbidden lover’ 역시 마찬가지. 펑키한 리듬감으로 무장해 작품의 무드를 잇는다. 이렇듯 이즈음 쉭의 음악은 팝 역사상 처음으로 리듬이 노래의 핵심 요소로 자리하는 데 일조했다. 1979년 ‘디스코 파괴의 밤(Disco Demolition Derby)’으로 짧고 강하게 끓어올랐던 디스코 붐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지만 이들의 음악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뽐냈다. ‘랩’과의 조우. 강렬한 리듬감 위에 놓인 빽빽한 가사들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흑인 음악 신을 시작으로 점차 세상을 정복했다.

‘디스코’로 연결하다!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가 쏘아 올린 축포는 1979년을 ‘디스코의 시대’로 만들었다. 실제로 외국의 한 평론가는 이 음반을 디스코 시대를 정의한 음반으로 뽑기도 한다. 이렇게 등장한 나일 로저스는 이후 데이비드 보위의 ‘Let’s dance’, 듀란듀란의 ‘The reflex’ 등을 프로듀싱하며 음악적 역량을 펼쳤다. 특히 마돈나의 두 번째 정규음반 < Like A Virgin >을 매만지며 그는 ‘디스코풍’ 음악의 매력을 계속해서 사회와 연결했다.

디스코의 흔적은 어디에나 있다. 완연히 주류로 올라온 랩과 힙합에도, 하우스 등의 전자음에도 디스코가 묻어있다. 그러니 쉭을 듣는다는 것은 그 음악의 뿌리를 듣는다는 것과 같다. 오늘날 나일 로저스를 쉭의 멤버보다는 2013년 다프트 펑크와 함께한 ‘Get lucky’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렴 어쩌랴. 그렇게 디스코는 그리고 쉭, 나일 로저스는 디스코를 이어가고 있다.

– 수록곡 –
1. Good times
2. A warm summernight
3. My feet keep dancing
4. My forbidden lover
5. Can’t stand to love you
6. Will you cry
7. What abou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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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위켄드(Swedish House Mafia, The Weeknd) ‘Moth to a flame’ (2021)

평가: 3/5

2012년 ‘Don’t you worry child’로 EDM의 황금기를 옹립했던 3인조 그룹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와 작년 복고 유행을 이끌었던 위켄드의 만남은 이중적인 전조다. 싱글은 세 명의 디제이가 9년 만에 발매할 정규 앨범을 예고하는 동시에 < Starboy >에서 EDM 듀오 다프크 펑크와 협업해 1980년대 사운드를 접목했던 위켄드의 다음 앨범을 위한 탐색전이다.

‘그는 자기가 잠들면 네가 나에게 전화하는 걸 알까?’라며 위태로운 사랑을 그리는 노랫말과 날카로운 전자음은 위켄드의 ‘Take my breath’를 계승한다. 의도적인 공백에 자리한 신시사이저는 보컬 사이에 녹아들어 가수의 목소리가 가진 울림을 키우고 점점 쌓이는 공명은 단조로움을 줄여준다. 불에 온몸을 던지는 나방과 같이 단번에 이끌리는 곡은 아니지만 절제된 매력으로 천천히 불씨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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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웬티 포 케이 골든, 릴 테카(24KGoldn, Lil Tecca) ‘Prada’ (2021)

평가: 3/5

떠오르는 신예 래퍼가 돌아왔다. 작년 틱톡의 혜택을 받은 ‘Mood’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주인공이 된 2000년생 신인 트웬티 포 케이 골든(24kgoldn)의 신곡이다. 너드 래퍼로 유명한 릴 테카를 피쳐링으로 낙점했다. 올해 초 발매한 정규 앨범 < El Dorado >를 조국에서 50만 장 팔아치우며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에서 골드 인증을 받은 데에 이어 또 한 명의 유망주와 함께 자신이 원 히트 원더가 아님을 입증하고자 한다. 

소재는 돈 자랑이다. ‘Mood’가 로맨스와 권태를 주제로 한 것과 내용의 측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얼개는 비슷하다. 중독성 강한 후렴이 귀를 사로잡고 비슷한 리듬의 벌스가 채워진 뒤 2절에서 힘껏 목을 긁어 싱잉을 전달한다. 잘 들리는 훅(Hook)에서 오는 흡인력이 강하다. 히트 이상의 개성은 모호할지라도, 제법 괜찮은 곡을 쓸 줄 아는 뮤지션임은 톡톡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