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JPOP Album

원 오크 록(One Ok Rock) ‘Eye of the Storm'(2019)

평가: 2.5/5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미국발 레이블인 풀드 바이 라멘(Fueled by Ramen)과 손을 맞잡은지도 어언 3년.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밴드가 쌓아올린 과거를 무로 돌리고 온전히 원점에서 시작해 나온 결과물이다. ‘원 오크 록이 아닌 음악을 좋아하는 개인’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어느 인터뷰처럼, 기존의 록 사운드는 철저히 배제하고 대신 타깃에 어울리는 트렌디한 팝 사운드로 대체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타카의 존재감이 두드러져 개인의 솔로앨범 같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기도 한다.

그나마 록의 기조를 유지했던 < Ambitious >(2017)조차 예전의 그들이 아니라며 많은 이들이 실망감을 비친 바 있으니, 기타/베이스/드럼 편성의 사운드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타격감 있는 비트을 겹겹이 두른 후 빈틈을 디스토션으로 메워낸 첫 곡 ‘Eye of the Storm’을 끝으로 팀은 과거 ‘원 오크 록’과 완전히 결별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Stand out fit in’은 두꺼운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는 퍼커션과 웅장한 코러스를 겹쳐내 완성한 거대한 팝 오페라로 마감질 되어 있다. 현지시장의 공략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팀의 의도가 가장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지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원 오크 록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배려를 베풀 생각이 전혀 없음을 명확히 한다. 생각해보면 이는 < 35xxxv >(2015)부터 유지해 오던 방향성이었다. 당시에는 물음표가 붙지만 결국엔 이를 납득하게끔 하는 그 과정에서의 성장이야말로 밴드의 주된 서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문제는 변화의 폭이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며, 그 변화에 대한 설득력 역시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점에 있다.

EDM과 트로피컬하우스, 퓨쳐 베이스 등의 팝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나, 그 적용 방식은 굉장히 단조롭다. 베이스와 비트 중심의 사운드 메이킹, 그리고 오버더빙 된 보컬은 ‘Head high’와 ‘Grow old die young’, ‘Push back’, ‘Wasted Nights’로 옷만 바꿔 입은 채 반복되며 다소의 지루함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이전의 다이나믹함이 살아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확연히 줄어든 속도감, 차곡차곡 모아 결정적인 지점에 터뜨림으로써 획득하는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이 작품에선 전혀 목격할 수가 없다는 점은 치명적. 그야말로 두마리 토끼를 놓치고 있는 형국이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엔 별로였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의 진화를 가늠할 수 있었던 전작의 사례가 있는지라 한두번의 감상으로 섣부른 평가를 내리지 말자라고 다짐했으나, 결국엔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변화시키면서까지 현지에 뿌리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래도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전반부에 비해 ‘Letting go’ 이후의 후반부의 완성도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 좋은 가창력을 부각시키지 못하는 답답한 선율과 곡 구성, 비슷한 문법을 반복하는 일부 트랙들은 정말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앨범 제목처럼 잠잠한 ‘태풍의 눈’으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기대를 내려놓고 반복해 들으면 분명 타협의 여지는 있다. 대신 기존에 팀을 알고 있던 이라면, 최소한 다섯번 이상의 감상이 쌓여야 조금씩 응어리가 풀리고 밴드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발군의 가창을 멋진 멜로디에 수놓는 ‘Wasted nights’와 라이브에서 거대한 떼창을 유도할 ‘In the stars’의 또 다른 역동성은 그 증거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 꿈틀대는 지점이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따라왔음에도 여전히 ‘完全感覚ドリーマー’를 위시한 < Niche シンドローム >(2010)로의 회귀를 원하는 이들은 더 이상 이 행보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신보는 원 오크 록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가정하고 만든 작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소 무리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끊임없이 재창조해 나가는 그들의 노력을 존경하지만, 이번만큼은 다소 당위성이 없어 보이는 변신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즉,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자신들의 색깔을 지우는 것이 정말 원했던 형태로의 전진이냐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까지 도달하자 여태까지 그들의 음악적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온 나 역시도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시점이 되었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 수록곡 –

  1. Eye of the storm
  2. Stand out fit in
  3. Head high
  4. Grow old die young
  5. Push back
  6. Wasted nights
  7. Change
  8. Letting go
  9. Worst in me
  10. In the stars (Feat. Kiiara)
  11. Giants
  12. Unforgettable
  13. The las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