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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새드 걸 팝, 팝은 어떻게 슬퍼졌는가

2021년 < Sour >의 기록적인 데뷔로 음악계를 거세게 강타한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소포모어 앨범 < Guts >와 함께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선공개곡 ‘Vampire’는 어렵지 않게 빌보드 정상에 올랐고, 이어 발표된 ‘Bad idea right?’ 역시 다수의 차트 상위권을 장식했다. 이 정도 기세라면 이번 앨범 역시도 전작만큼의 성과를 이룰 공산이 무척 높아 보인다.

거대한 상업적 성공이 못지않게, 올리비아의 음악은 비평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이어갔다. 등장과 함께 그래미 시상식 3관왕을 차지함은 물론, 데뷔 앨범 < Sour >는 유수의 매체에서 당해 최고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등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차기작 < Guts >의 선공개 싱글들은 그 피치포크마저도 연이어 베스트 뉴 트랙(Best New Track)에 선정할 만큼 음악적으로 더욱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트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별칭과 점점 거리를 좁히는 모양새다.

영민하고 매력적인 음악 자체도 수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다수의 평론가 및 대중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이 성공을 Z세대의 세대 의식과 연관 지었다. ‘Drivers license’, ‘Deja vu’ 등 그의 음악에서 강하게 표현되는 비련의 정서가 젊은 세대의 감성에 적중했다는 식의 평가였다.

▶ (좌) 빌리 아일리시 / (우) 로드

비단 올리비아 로드리고뿐만이 아니다. 최근 팝 음악 전반에는 이전보다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자욱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당장 < Sour > 이전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의 빌리 아일리시와 < Pure Heroine >(2013), < Melodrama >(2017)의 로드(Lorde)가 유사한 평가를 받기도 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최근 대부분의 팝 신성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별과 우울의 주제를 동반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를 비롯, 몇몇 이들이 나서 ‘새드 걸 팝(Sad Girl Pop)’이라는 용어와 함께 해당 흐름을 구획화하려는 시도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케이티 페리를 필두로 한 희망차고 화려한 팝이 위세를 떨치던 10여 년 전 팝 시장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변화다.

왜 지금의 젊은 대중은 우울한 정서에 열광하는가

원인은 꽤나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변화가 그러했듯 음악 내부뿐 아니라 여러 사회, 문화의 흐름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러한 맥락의 배경을 음악 내부에서 찾아볼 때, 가장 먼저 지목돼야 할 이름은 역시 ‘팝의 여왕’ 테일러 스위프트다. < Speak Now >(2010) 이후 컨트리에서 팝으로 노선을 점차 전환한 테일러의 음악적 스타일은 그 진솔한 표현 방식과 함께 당시 젊은 리스너에게 팝의 지향점, 교과서적 존재로 간주되며 이후 음악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비롯 로드, 클레어오, 트로이 시반 등 팝의 수많은 주요 인물들이 테일러식 팝의 뒤를 따르며 지금의 감상주의적 시류가 만들어진 것이다. 단어 그대로 테일러 이전과 이후의 팝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 (좌) 테일러 스위프트 / (우) 라나 델 레이

지금의 ‘포스트 테일러 스위프트 팝’에 테일러 다음으로 큰 영향을 준 인물인 라나 델 레이의 이력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새드코어(Sadcore)’라 표현할 만큼 우울한 심상 묘사에 집중한 라나의 방법론은 팝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서 표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며, 빌리 아일리시, 로드 등 이후 음악에 큰 파란을 일으킨 아티스트들에게도 분명한 견인이 됐다.

이들의 공적은 ‘새드 걸 팝’ 도래의 또 다른 배경인 인디 신과 메인스트림의 결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영원한 인디 앨범이라는 별칭의 < Folklore >(2020)와 < Evermore >(2020)로 피비 브리저스, 본 이베어, 줄리엔 베이커로 대표되는 인디 포크, 챔버 팝의 질감과 인상을 대중화시키며 그 화학적 결합의 촉매 역할을 하였고, 한때 ‘힙스터의 여신’이라 불렸던 라나 델 레이는 메인스트림으로 자진 침투로 스스로 물리적 매개체 역할을 했다. 전자는 정상의 자리에서, 후자는 정상에 올라서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낸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의 노력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지만 인디 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요 요인은 단연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중화 및 고도화라는 시장의 흐름이다. 유저 성향에 맞춰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매개로 하는 지금의 스트리밍 구조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하고 심도 높은 청취 경험을 제공하며 디깅 문화의 보편화와 함께 비주류 음악의 접근성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인디 신은 이전보다 많은 소비층을 확보하며 더욱 넓고 두터워졌으며, 메인스트림과의 교류도 활발해져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공유하는 선순환도 이어졌다. 그렇게 주류 팝은 인디의 감성을 장착했고, 인디 신은 메인스트림의 활기를 나눠 받게 됐다.

가라앉은 사회와 함께 침잠한 음악

상술한 주요 아티스트들, 인디 신의 영향도 물론 적지 않으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결국 사회 분위기의 변화다. 경제적 저성장과 1인 가구의 증대, 그리고 SNS의 보급 및 대중화 등은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침체시켰고 이는 자연스레 슬픈 음악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세대’가 혼자 사는 것도 모자라, SNS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에도 손쉽게 노출되며 우울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이에 더불어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전염병까지 덮치며 사회적 교류마저 통제되자 그렇지 않아도 거대하던 우울은 곰팡이처럼 빠르게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수많은 작품의 발매와 공연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등 심각한 타격이 있기도 했으나 음악계는 변화한 기류를 기반으로 새로운 해답을 향해 나아갔다. 클레어오,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리지 맥알파인(Lizzy McAlpine) 등 젊은 베드룸 팝, 포크 아티스트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테이트 맥레이, 걸 인 레드, 스티브 레이시, 코난 그레이 등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슬픈 정서를 주무기로 리스너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 How I’m Feeling Now >(2020)의 찰리 XCX나 < Big Time >(2022)의 엔젤 올슨(Angel Olsen) 등 기존 아티스트들 역시도 그들만의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우울함에 생명력을 주입하며 시대에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비단 팝뿐만이 아니다. 타 장르를 포함한 다양한 방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히 이어졌다. 우울이 크게 작용하는 인디 록, 포크는 유례없는 원동력을 얻었고 감정의 극단을 달리는 슈게이즈 장르가 인디 신을 중심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마초적인 장르로 통하는 힙합마저도 이모(Emo)의 감성을 끌어오며 이모 랩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만큼 음악계는 우울을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시대, 음악이 나아갈 길

청년들의 음악 청취에 대해 분석한 국내 연구(최희진, 2021)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조사 대상자들의 75%가량은 증가한 개인 시간을 통해 음악 플랫폼에 더 많이 접속하고,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며 능동적으로 찾아 듣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음악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성찰하며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고 공동체의 의미까지 재발견하고 있었다. 음악계의 멱살을 잡고 흔든 위기 속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산업이 그 유연성을 발휘하며 스스로의 구조를 개편하여 새로운 경로를 설정하고 있던 것이다.

기쁨을 배로 나누던 팝은 이제 슬픔을 반으로 나눈다. 우울을 스스로 표현하고 공유할 때, 또 이를 받아들일 때의 카타르시스는 젊은 세대의 의식과 강하게 공명하며 이제 새로운 하나의 클리셰로 거듭났다. 늘 그랬듯, 음악이 새로운 답을 찾아낸 것이다. 우울의 차가운 빗줄기 이후, 팝의 땅을 단단히 굳힐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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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올해의 팝 싱글

2020년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지도 어느덧 1년, 작년과도 또 한 번 첨예하게 달라진 문화와 취향은 음악사의 새로운 지면을 장식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장르가 범람하고 개성이 대두되는 다양성의 시대. 신인과 고참의 뚜렷한 자기 피력이 전투적으로 부딪히고 교차하는 2021년의 팝 싱글 10곡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실크 소닉(Silk Sonic) ‘Leave the door open’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제대로일 줄이야! 1970년대 소울에 새 숨결을 불어 넣기 위해 뭉친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의 합동 작전은 그 시작인 ‘Leave the door open’에서부터 빈티지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선포했다. 둘이 태어나기도 십 년도 더 전에 위세를 떨치던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시절 명작을 빼다 박은 듯 매력적이다. 도처가 노스탤지어다. 은은하고도 후텁지근한 장르 특유의 무드와 감미로운 백 보컬, 거친 톤을 구사하면서도 저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는 앤더슨 팩의 목소리, 미성과 시원한 고음을 오가며 예쁘게 수놓은 브루노 마스의 고감도 후렴구까지. 기대를 상찬으로 맞바꾼 단연 올해 최고의 콜라보다.

깊이 있는 브로디 브라운(Brody Brown)의 베이스 라인과 1970년대 초 필리 소울에 뿌리내리고 있는 담백한 스트링을 비롯한 수준 높은 세션도 근사하지만, 그 앞의 친근한 노랫말이 무엇보다 재미다. 흑인 음악 특유의, 그리고 기본 토대라 할 수 있는 관능의 매력에 충실한 섹스어필이 웃음을 유발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능글맞은 언사로 새겨지는데 이게 도리어 무장을 해제시킨다. 달콤한 멜로디만큼이나 그들이 만끽한 성공의 맛 역시 달았다. 브루노 마스의 여덟 번째, 앤더슨 팩의 첫 번째 빌보드 넘버원 곡. (이홍현)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Driver’s license’

틴아이돌 배우 출신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데뷔곡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03년에 태어난 이 10대 소녀는 가식 없는 가창력으로 또래와 기성세대 모두를 감동시켰고 감정선을 자극하는 솔직함은 노래를 살렸다. 두려움 없는 사랑이 깨졌을 때 겪는 젊은이의 자기 파괴적인 심정과 어쩔 줄 몰라 하는 혼란스런 모습조차 감추지 않았다.

스타라는 이미지로 가려진 본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이 신인은 개인적인 분노와 회한, 아픈 추억을 예술로 승화하며 자신을 하이틴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끌어올렸다. 누구나 겪는 이별의 슬픔을 과감하게 표현한 ‘Driver’s license’는 2021년의 ‘실연 송’. 아름답고 순수하고 재능 있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상처를 준 조슈아 바셋이 밉다. (소승근)

방탄소년단(BTS) ‘Permission to dance’

가볍지만 통렬한 선포다. ‘Butter’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며 모두의 주목을 받은 가운데, 이에 대한 소감으로 가져온 행보는 다름 아닌 춤에 대한 갈망이었으니.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서로 간의 교류가 단단히 걸어잠긴 상황 속 BTS가 마련한 것은 각종 결핍에 시달리는 현 세대를 위한 ‘내적 댄스’의 창구였다.

작금의 BTS 신화는 단순 차트의 지표나 기록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의 이면에 존재하는, 전세계를 활보하며 젊음의 소리를 대변하고 대중에게 긍정적 흐름을 전파하는 문화 동맥의 역할을 놓치기 쉽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미처 챙기지 못한 개개인의 움직임 욕구를 부드럽고 면밀하게 채워준 산뜻한 혈류 ‘Permission to dance’는 팝스타가 지닐 수 있는 좋은 영향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장준환)

더 키드 라로이, 저스틴 비버(The Kid Laroi, Justin Bieber) ‘Stay’

더 키드 라로이, 저스틴 비버의 ‘Stay’가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로 빌보드 HOT 100에서 10주 연속 1위를 달리던 BTS를 막았다. < Justice >와 타이틀곡 ‘Peaches’로 한차례 정상을 찍었던 저스틴 비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는지 9살 어린 새 시대의 호주 뮤지션과 의기투합해 현시대 가장 핫한 뮤지션을 꺾은 것이다.

비속어 섞어가며 내게 머물기를 바라는 가사와는 다르게 속도감 있는 전개는 모두 비키라는 듯 쉴새 없이 달려 나간다. 기타를 제거한 펑크(Punk)같이 반복-간결-짧은 노래는 빠른 유행과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선호하는 Z세대를 취향 저격하며 두 번이나 차트 재등정에 성공한다. ‘Stay’, ‘Butter’, ‘Mood’ 등 3분 미만의 곡들이 유행한 올해를 대표하는 곡. (임동엽)

존 메이어(John Mayer) ‘Last train home’

2018년 발매한 신보의 첫 예고편 ‘New light’부터 유추할 수 있었다. 명실상부 현시대의 기타 히어로 존 메이어가 거듭 영감의 원천을 고백한다. 토토의 메가 히트곡 ‘Africa’를 오마주한 ‘마지막 열차’의 행선지는 1980년대 소프트 록. 팝 가수와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 흘러나왔던 곡을 소환해 선배 그룹과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노스탤지어로 주조한 결과물은 탄탄한 지원군을 갖춘다. 향수를 자극하는 신시사이저와 퍼커션 사운드는 토토와 합주 경험이 있는 키보디스트 그레그 필린게이즈와 퍼커셔니스트 레니 카스트로가 담당하고 컨트리 가수 마렌 모리스의 백업 보컬로 풍성함을 더했다. 재현의 미학은 공간감을 머금고 깨끗이 압축된 기타 사운드가 느긋한 보컬과 자연스레 포개지며 완성된다. 여유를 두른 40대의 존 메이어가 1980년대에 보내는 격조 높은 찬사다. 에릭 클랩튼의 바통을 이어받은 ‘뉴 슬로우핸드’는 바위 밑에 묻어 두었던 테이프를 되감아 모던 클래식 록 넘버를 탄생시켰다. (김성욱)

릴 나스 엑스(Lil Nas X) ‘Industry baby’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컨트리 랩을 하던 2년 전 루키가 어느덧 힙합 신을 주도하는,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흥 메시아로 거듭나고 있다. ‘Old town road’의 유례없는 흥행에도 원 히트 원더에 그칠 거라는 항간의 의견은 이제 무색할 뿐.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과감한 행보를 이어나간 릴 나스 엑스의 미래는 역사의 뒤안길이 아닌 개척자의 천명(天命)에 가까워 보인다.

무기는 화제성이지만 그 총알은 명료함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손길이 닿은 수려한 멜로디 메이킹과 중저음 톤을 살린 캐치한 훅이 빛을 발했다. 도발적인 뮤직비디오와 당당한 충격으로 무장한 ‘Industry baby’가 대중을 현혹하여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은 한 개인이, 혹은 한 곡이 거대한 외압을 타파하고 인정받는 순간일테니, 과연 올해를 대표할 팝 랩의 모범적인 효시 중 하나다. (장준환)

시저(SZA) ‘Good days’

불안이 잠식한 세상에 스며든 고결한 위로의 속삭임. 팬데믹이란 생소했던 단어가 익숙해질 만큼 일상엔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가 서려 있다. ‘좋은 날’이란 흔한 말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안부가 된 지금, 희망은 우연히 우리를 찾아왔고 그곳엔 시저의 음성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운명을 깨달은 듯 묵혀둔 멜로디로 급작스럽게 성소(聖所)를 마련했고 직접 기수가 되어 지친 이들을 위한 성가를 선창했다. 곡의 제목은 ‘Good days’. 정확히 2020년 크리스마스에 외친, 내일을 가로막은 벽을 허물 함성의 시작이었다.

신비로울 만큼 영적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대비되는 전자음의 조화로 탄생한 몽환적 공간엔 걱정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물감이 퍼져나가듯 잔잔하게 빈자리를 물들이는 목소리가 동행자인 제이콥 콜리어와 함께 청자의 굳어있던 상처를 치유하며 안식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고통의 종식이란 모두의 염원은 물결을 타고 ‘Good days’를 시저의 빌보드 핫 100 최고 기록인 9위까지 이끌며 감응한다. 발매한 지 1년. 이 지독한 나날은 아직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좋은 날을 품고서 빛을 기다린다는 차분한 노랫말이 인도하는 결과는 분명하다. 시련을 견뎌내고 결국 행복을 찾은 욥과 같이. (손기호)

걸 인 레드(Girl In Red) ‘Serotonin’

올해 차트를 수놓은 또래 뮤지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걸 인 레드 역시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싱어송라이터다. 첫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의 히트로 ‘걸 인 레드 음악 들어?’라는 질문이 퀴어 식별에 사용된 덕분. 그의 음악적 질료는 현재 겪고 있는 생생한 고민과 경험이며 돌려말하는 법 없이 노골적인 가사가 인기 비결이다.

‘Serotonin’에서도 자신이 앓고 있는 강박증인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정신질환은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주제지만 걸 인 레드는 솔직한 고백으로 코로나 블루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장 많이 겪고 있는 Z세대와 상호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다만 우울한 정서의 곡들이 뱉어내는 끈적한 감정과 멜로디는 모두 들어냈다. 산발적으로 내뱉는 건조한 래핑과 청량한 기타 리프는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내듯 경쾌하다.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듣는 ‘행복 호르몬’이다. (정수민)

울프 앨리스(Wolf Alice) ‘Smile’

1990년대 그런지 밴드들을 소환하는 파괴적인 기타 소리에 1980년대 신스팝 시대의 신시사이저 음색을 접붙인다. 30초간의 오마주는 보컬 엘리 로셀의 랩 혹은 주문으로 현대성을 껴안고 그가 내뱉는 단어들은 감정에 관한 직설화법이다. 지루할 새 없이 몰아치는 다이나믹스. 폭발성이 웅크린 개러지 록이란 측면에서 정규 2집 < Visions Of A Life >의 ‘Yuk foo’와 닮았다.

가끔은 남들의 시선 따윈 집어치우고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 감정, 성격, 취향. 자아를 이루는 모든 부면에서 당당해질 것을 주창하며 타인의 그 영역을 침범할 경우 성난 늑대처럼 으르렁댄다. 그러나 분노 표출만이 곡의 전부는 아니다. 후렴구에 들어서면 찰랑거리는 기타 스트로크로 경계심을 거두고 ‘길을 잃은 영혼들이 술집에 모인다’라며 연대를 강조한다. 내면의 투영부터 타인의 포용까지 짧은 곡에 너른 내용을 담아냈다. (염동교)

핑크 스웨츠(Pink Sweat$) ‘At my worst’

종종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팝송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2021년 상반기를 은은한 핑크빛 구름으로 감싸는 ‘At my worst’가 그 주인공이다. 다소 늦은 나이로 데뷔, 적은 작품 수라는 불리한 조건임에도 한국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확실하다. 프로그램 < 윤스테이 >의 배경음악, 켈라니의 피처링 버전 그리고 BTS 정국의 커버 영상. 이 3가지가 작년에 발매한 곡을 힘껏 견인한 요인이다.

올해도 이전과 별반 다름없는 삶이었다. 건조하고 말라버린 세상에 핑크 스웨츠가 생동감을 불어넣는 방식은 간단하다. 단순 멜로디와 ‘최악의 상황에도 널 위해 뭐든지 하겠다’라는 달짝지근한 맹세는 여전히 따스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마음을 차분히 채워 나갔다. 자장가처럼 말랑하게 스며들어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정타. 이것이 힐링의 기본 공식 아닐까.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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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Drivers license’ (2021)

평가: 3.5/5

디즈니 채널의 < 하이 스쿨 뮤지컬 >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데뷔곡은 셀레나 고메즈의 ‘Lose you to love me’처럼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 하이 스쿨 뮤지컬 >에 함께 출연해서 남자친구가 된 조슈아 바세트와 그에게 꼬리 친 배우 겸 가수 사브리나 카펜터에게 들으라는 듯 가감 없이 노래한다. 조슈아 바세트와의 추억, 그에 대한 회한과 분노, 체념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가식과 당당한 척을 거부한다.

허스키한 회색 음색은 절망적이고 점차 휘몰아치는 클라이맥스는 격앙된 분노를 분출한다. 우울하고 어둡지만 상심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드러난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이매진 드래곤스의 사운드 안에서 로드의 음색으로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른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절정으로 치닫다가 주요 멜로디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편곡은 근래에 듣기 힘든 하이라이트. 오랜만에 기승전결이 있는 팝송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