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히 소녀일 줄 알았던 올리비아 뉴튼 존이 2022년 8월 8일, 7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의 영면은 한 시대의 마감이자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추억으로 만드는 모멘텀이다.
195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대계 독일인 과학자 맥스 보른의 외손녀가 올리비아 뉴튼 존이라는 사실은 그에겐 좋은 배경이다. 외국도 우리나라처럼 학벌이 좋거나 훌륭한 집안 출신의 가수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간 올리비아 뉴튼 존은 그곳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고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컨트리와 포크 스타일의 노래들로 입지를 다졌다. 밥 딜런의 원곡을 커버한 그의 첫 번째 히트곡 ‘If not for you’를 비롯해 ‘If you love me (Let me know)’, 조영남이 ‘내 고향 충청도’로 번안한 미국 민요 ‘Banks of the Ohio’, ‘Let me be there’,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I honestly love you’, ‘Have never been mellow’, ‘Please Mr. Please’ 등이 당시에 발표한 곡들. 올리비아 뉴튼 존을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이렇게 성공했지만 음악적인 변화는 쉽지 않았다. 자신을 응원해준 미국 백인들이 좋아하는 보수적인 음악 컨트리를 버리기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영화 출연이었다. 그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 < 그리스 >에서 주인공 샌디 역을 맡아 자연스럽게 음악 변신을 완수했다. 사운드트랙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You’re the one that I want’, ‘Summer nights’ 같은 초기 로큰롤 스타일의 신나는 음악으로 음악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 그리고 변신에 성공하자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80년대에 E.L.O.와 함께 작업한 뮤지컬 영화 < 재너두 >의 주제가 ‘Xanadu’와 ‘Magic’ 그리고 ‘Make a move on me’, ‘Heart attack’, ‘Physical’까지 컨트리와 포크의 채취를 없앤 댄스 팝 노래들로 차트를 맹폭했다. 특히 10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지킨 ‘Physical’은 뮤직비디오 덕분에 MTV에서 환영 받았고 1980년대 초반에 에어로빅 열풍을 주도했다.
그는 이 곡들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렸지만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래미가 사랑했던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이 시점부터 후보 군에서 배제됐고 1983년에 존 트래볼타와 다시 출연한 영화 < Two Of A Kind >는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이 OST 수록곡인 신스팝 넘버 ‘Twist of fate’는 올리비아 뉴튼 존의 마지막 빌보드 탑 텐 싱글이 됐다.

1989년에는 UN의 환경운동 민간대사를 맡아 자연보호에 앞장섰고 1990년대 초반에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완치판정을 받아 인간승리의 주연이 됐다. 2000년 8월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 성화 주자로 참여했으며 2000년과 2016년에 두 차례 내한공연을 가져 오랫동안 기다린 국내 팬들과 만나 추억을 공유했다.
살아생전 5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과 10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 4번의 그래미 수상 등 대중가수가 거둘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올리비아 뉴튼 존은 컨트리 가수에서 팝 가수로 변신해 성공을 거둔 유일한 여가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변했다. 인간에서 천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