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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1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스플래시가 벌써 9회차를 맞이했다. 1년은 과연 그간의 일들을 톺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우리의 스플래시에 어떤 경향성을 띤 시선이 자리하지는 않았을까? 돌아보며 올해는 조금 색다른 스플래시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 ‘더불어올해 역시음악계에 벌어진 사건을 뽑아 그것의 내면을 한 번 더 찔렀다. 사건의 전시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시하려 했달까. 음악. 어떻게 들었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함께 얘기 나누고자 한다.

1. 오디션 프로그램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라고 했지만 어디에도 패자는 없었다. 올해를 반추할 때 < 스트릿 우먼 파이터 >, 일명 ‘스우파’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맨 앞에 선다. 2009년 엠넷의 < 슈퍼스타K > 이후 오랜 시간 대중의 곁을 ‘스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적나라한 수법에 지쳐버린 지금. 기 센 언니들의 “자존심을 건 생존경쟁”은 전례 없이 화끈했다. 거침없는 직언, 거리낌 없는 춤사위, 여기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숨겨졌던) 서사까지. 열광, 열풍을 만들 요소가 넘쳤다.

여성이 전면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지만 스우파가 견인한 ‘댄스’ 열풍은 대단했다. 각종 숏폼 플랫폼에는 2차 계급 미션 때 췄던 ‘Hey mama’를 패러디한 영상들이 넘쳤다. 또한 서브컬쳐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왁킹과 보깅.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비보잉(브레이킹) 혹은 (걸스) 힙합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모두 여성들의 손길을 거쳤다. 특히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질 스콧의 ‘Womanifesto’를 차용해 섹스(Sex) 아닌 젠더(Gender)를, 성 너머 개인의 가치를 다룬 것은 단연 올해의 베스트 모먼트.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야

라고 < 쇼미더머니10 >에 출연한 악뮤(AKMU) 찬혁은 노래했다. 몇 마디 앞서 뱉은 “이건 하나의 유행 혹은 TV 쇼”라는 가사 역시 그저 실소에 그칠 비유가 아니다. 2012년 출발한 ‘쇼미’는 이후 < 고등래퍼 >, < 언프리티 랩스타 > 등으로 가지 쳐졌다. 오늘날 은 그리고 힙합은 그야말로 2010년대를 강타한 선 굵은 유행이며 십 대와 이십 대의 감수성을 품고, 푸는 핵심 장르. 날 서고 거친 정서를 대변하고 때론 아픈 상처에 연고를 발라버리며 스웨그(SWAG)까지 챙긴다. 어느덧 10년을 맞이한 ‘쇼미’의 인기로 미뤄볼 때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어떤 지점에서) 뭉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트로트와 케이팝

힙합 댄스 락 발라드도 좋지만 슬플 땐 what?”

2019년 TV조선에서 방영한 < 내일은 미스트롯 >에 이어 2020년 < 내일은 미스터트롯 >의 대흥행은 2000년대 초 장윤정, 박현빈 이후 모처럼 트로트의 재림을 이끌었다. 이찬원, 영탁, 정동원 그리고 임영웅 등 ‘트로트계의 아이돌’들이 중장년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 9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 사랑의 콜센타 >가 이들의 인기를 대변했고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음에도 < 미스터트롯 >발 콘서트가 전국을 누볐다. 12월의 끝 ‘테스형’ 나훈아, 심수봉에 이어 임영웅이 공중파에서 단독 콘서트를 선보인다는 점 역시 트로트의 열기를 가늠케 한다.

“I’m on the next level”

K팝, K팝, K팝! 힘차게 외연을 확장 중인 오늘날의 K팝은 비단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가능성을 잇는 창문. 올해에도 방탄소년단은 한국 너머 전 세계를 순항했다. 수많은 효자곡이 있었지만 가장 큰 성과를 안긴 건 ‘Butter’. 자그마치 빌보드 싱글차트 10주간 1위를 거머쥐며 역사를 썼다. 뒤이어 ‘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 함께한 ‘My universe’가 정상에 올랐고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의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수상 역시 BTS의 것이었다.

선배 그룹의 성장에 힘입어 4세대 아이돌로 칭해지는 ‘뉴’ 세대의 성장도 돋보였다. 그중 ‘가상의 아바타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독보적인 콘셉트로 활동한 에스파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블랙맘바(Blackmamba)를 찾으러 광야로 떠난다’는 설정의 싱글 ‘Next level’이 다소 난해한 설정과 별개로 세상을 달궜다. ‘디귿댄스’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었다. 뒤이어 발매한 첫 번째 EP < Savage >의 성공은 에스파식 21세기형 혼종성의 확실한 한방.

특히 Savage 즉, 맹렬한 혹은 ‘쎈’의 뜻을 가진 단어는 에스파와 같은 4세대 걸그룹의 핵심이다. 블랙핑크의 ‘Pretty Savage’, 있지(ITZY)의 ‘달라달라’, 이외에도 (여자) 아이들, 전소미 등 여성 아이돌의 방향성은 확연히 과거와 다르다. 그것이 시대상을 반영한 속셈 있는 처세술일 지어도 이 변화는 분명 어렴풋하게나마 ‘넥스트 레벨’로의 도약을 그린다.

3. 역주행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 그대여 내게 말해줘 사랑한다고

올해도 꿋꿋이 역주행이 찾아왔다. 4년 만에 빛을 본 브레이브걸스 ‘Rollin’’ 앞에 불순물은 감히 엉겨 붙지 못한다. 군통령. 오랜 무명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찾아간 군대 위문공연이 브레이브걸스에게 드디어 형형 빛깔 색을 입혔다. 특별한 홍보는 없었지만 한 유튜버가 올린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역주행의 불을 지폈다. 기다리고 있었단 듯 롤린롤린롤린, ‘Rollin’’이, ‘운전만 해’가 역주행했고 이후 발매한 ‘치맛바람’이 정주행에 성공, ‘브걸’은 대세 가수가 됐다.

유튜브란 뉴미디어가 만든 역주행도 있었지만 작년과 같이 올드미디어의 대표 격인 TV 방송이 만든 역주행도 있었다. < 놀면 뭐하니? >가 놀지 않고 성실히 만든 ‘부캐’ MSG 워너비 TOP8이 부른 바로 그 노래. 라붐의 ‘상상더하기’가 차트를 뒤집었다. 2016년에서 2021년으로. 발매 5년 만에 음원 순위 상위권 진입이란 상상은 현실이 됐다.

4. 코로나

그리고 코로나. 벌써 횟수로 3년째 전 세계를 굳게 만든 코로나가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 신을 옭아맸다.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한 ‘온택트(Ontact) 콘서트’가 성행했다. 대면 콘서트에서는 함성 대신 박수로, 혹은 소리 나는 인형 등을 통해 마스크에 갇힌 흥겨움을 토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11월경 규제가 완화되며 공연계가 활기를 되찾는가 했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무대의 열기는 짧게 오르고 빠르게 식었다.

활동이 제한되며 시선은 메타버스, NFT(대체 부가능한 토큰)으로 이동했다. 현실보단 가상이, 온라인상의 저작권이 화두가 됐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방탄소년단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NFT 또한 음악 산업의 자본가들을 움직였다. JYP, 빅히트, YG 등의 거대 기획사가 NFT로 눈을 돌렸고 며칠 전 브레이브걸스의 NFT 상품 400개가 1분이 채 안 돼 완판된다.

그리하여 결론. 숏폼 플랫폼, 유튜브, 뉴미디어, 메타버스, NFT. 음악은 이제 단순히 귀로 듣는 차원을 넘어 숏폼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뽐내고, 유튜브, 뉴미디어 등으로 재밌게 즐길 거리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메타버스, NFT 등의 거대 자본, 새로운 기술은 이 음악들의 산업적 가치를 튼튼하게 지탱, 우리 음악의 세계화에 발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에 우리의 취향은 얼마나 반영될 수 있는가. 결국은 모두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들리는 대로 듣게 된 음악’. 혹은 ‘들렸기에 즐기게 된 음악’인 것은 아닐까? 이 사이 힘을 잃는 건 어쩌면 자신의 음악을 독립적으로 쓰고 있는 많은 인디 뮤지션이 될 것이다.

비슷하게 십 대, 이십 대가 열렬히 힙합을 따라부를 때 최신 취향과 멀어진 중장년층이 트로트에 몰두하는 세대 간의 격차, 음악 청취 층의 이분화 속 ‘음악의 다양함’, ‘음악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들’, ‘음악이 묘사하는 여러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 알고리즘의 시대. 음악으로 표현되고, 표출될 수 있는 문화가 더 자주 그리고 더 쉽게 세상에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 스플래시에는 보다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더 뾰족하게 담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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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돌풍 속 대중음악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 레디 플레이어 원 >은 모든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람들이 신음하는 2045년 지구, 척박한 일상 속 가상 세계 ‘오아시스’만이 피난처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게임에 참가하며, 고전 영화를 배경으로 한 퀘스트와 대중문화 속 전설적인 캐릭터를 만나는 등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허물고 비로소 모두의 꿈을 실현하는 인류의 새로운 생태계, ‘메타버스(Metaverse)’다.

먼 미래처럼 보이던 모습이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는 이미 금융, 의료, 교육 등 사회 다방면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뜨겁게 동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2’로 애플의 초기 아이폰과 맞먹는 판매량을 기록한 페이스북과 하이엔드 VR 헤드셋을 발표할 예정인 애플, 그 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도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기 위해 저마다 발 빨리 움직이고 있다.

메타버스가 새 시대의 문명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핵심이 ‘콘텐츠’에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최첨단 기술을 겸비해도 그 속에 즐길 거리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이야기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의 성패도 참신한 놀잇거리가 있는지에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음악계 역시 이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 너머의 광활한 땅을 맞아 조금씩 시류에 탑승하고 있는 국내외 팝 신의 면면을 살펴본다.

에스파, 무한한 가상 세계의 광야로

K팝 신에 화끈한 신기술의 돌풍이 인다. 2020년 11월 ‘Black mamba’로 데뷔한 에스파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월 ‘Next level’로 공개 32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하며 매서운 기세를 입증했다. 국내 음원 사이트 정상에 안착하는 것은 물론 독특한 팔 꺾기 ‘디귿 춤’은 각종 SNS에서도 유행했다. ‘Next level’은 이렇게 끝난다. “Next level /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그룹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장대한 이상을 그려가는 기획사의 미래관까지 압축한 한 줄이다.

에스파는 현재로서 K팝이 다다른 세계관의 절정이다. 인원 구성부터 독특하다. 실제 멤버 네 명에 그들의 분신 넷이 공존한다. 개인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제공된 데이터로 설계된 각 멤버의 아바타들이다. ‘싱크(Synk)’를 통해 이들과 교감하고 그를 방해하는 악당의 존재를 찾아 가상의 땅 ‘광야’로 떠나는 등 그 스토리도 장대하다. 어느 순간 멤버들과 교차되고 무대 위에서 직접 춤추기도 하는 아바타. ‘삶의 기록’을 뜻하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과 ‘가상 세계’ 메타버스를 결합했고 이를 뒤받치는 건 최첨단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이다.

SM은 세계관을 음악에 한정하지 않겠다는 야심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 SM 콩그레스 2021에서 ‘음악을 기반으로 이전에 없던 경험을 만들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모션 그래픽, 아바타, 소설의 앞글자를 딴 ‘CAWMAN’을 자사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콘텐츠가 디지털 세상에서 팬들을 통해 확장해 가수와 대중이 그 속에서 호흡할 것이라는 귀띔이다. K팝 산업 최전선에 선 SMCU의 미래, 그 중심에 메타버스가 있다.

새 시대의 콘서트 컬쳐,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

팬데믹으로 부닥친 일상 구금은 공연 업계에 큰 타격이었다. 가수는 무대 뒤에서 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메타버스가 대중음악계에 관심사로 급부상한 것도 사실 이런 사정에서였다. 메타버스는 멈춰버린, 그리고 앞으로 크게 바뀔 콘서트 업계에 방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게임 산업이었다.

미국의 에픽게임즈가 제작한 ‘포트나이트’는 온라인 게임에서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로 거듭난 플랫폼이다. 지난해 4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이곳에서 가상 공연을 펼쳐 큰 화제를 모았다. 2,770만 명의 관객, 200억 원이 넘는 수익으로 오프라인 공연보다 더 많은 돈을 번 대규모 쇼였다. 방탄소년단도 ‘Dynamite’의 새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에서 최초 공개했고, 올해 8월에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리프트 투어’로 유행의 열기를 이어갔다.

월간 사용자 수 1억5000만 명에 달하는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작년 래퍼 릴 나스 엑스는 로블록스 내에서 물리 기반 렌더링, 안면 인식 기술 등을 앞세운 빼어난 몰입감의 가상 공연으로 3,600만 명의 접속자를 모았다. 이 밖에도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콘서트에서는 밴드를 콘셉트로 한 미니 게임과 퀘스트도 펼쳐졌다.

로블록스는 대형 음반사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기업이기도 하다. 연초 워너 뮤직에 5억 2천만 달러를 투자받은 데에 이어 7월에는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더 많은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로블록스 안에서 울려 퍼질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K팝 팬들의 새로운 소통 창구

미국에 로블록스가 있다면 한국에도 이에 뒤처지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개발한 제페토다. 증강현실 기반의 3차원 아바타 플랫폼이자 글로벌 10대들에게 하나의 소셜 미디어 앱으로 자리매김한 서비스로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유저가 뛰어놀고 있는 새 시대의 놀이터다.

제페토는 K팝 신과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회사는 YG엔터테인먼트다. 지난해 9월 블랙핑크는 제페토에서 멤버들의 아바타를 앞세운 가상 팬 사인회를 개최해 4,600만 명의 세계 팬을 끌어모았다.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현한 ‘블핑하우스’는 연일 팬들이 사진을 찍고 춤을 추는 ‘블링크(BLINK)’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기존에 있던 단상에 가수의 아바타를 올려놓은 것은 비교적 간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자체적인 온라인 팬 플랫폼 제작에도 열성을 다한다. 재작년 하이브는 팬 커뮤니티 서비스 ‘위버스’를 론칭해 팬과 가수의 다양한 교류 방식을 하나의 채널에 취합하는 전략을 펼쳤다.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가 카카오 산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합작한 ‘유니버스’도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팬들은 아티스트의 아바타를 코디하거나 직접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메타버스가 선사한 K팝 신 스타와 팬들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다.

다시 음악을 소장하는 시대로? NFT를 만나다

메타버스가 일상에 고착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시장과의 연결이다. 가상 세계가 가상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과 상호운용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수익 모델을 창출해 판매하고 화폐를 벌어들이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이에 최근 몇 년 사이 가상자산 N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소유권, 판매 이력 등의 정보가 블록체인에 저장되어 위조가 불가능하고, 각각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인식 값이 부여되어 대체 역시 불가능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대중음악계에도 NFT를 활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Blinding Lights’의 스타 위켄드는 예술 경매 플랫폼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에서 낙찰자만 소유할 수 있는 미공개 음원을 판매했다. 수익은 229만 달러(한화 약 26억 원)였다. 이 밖에도 린제이 로한, 미국 밴드 킹스 오브 리온, DJ 저스틴 블라우도 앨범 발매에 NFT를 적용했다. 음원 스트리밍이 절대적인 음악 청취 방식이 된 지금 다시 과거처럼 노래를 개인이 소장하는 형국이 도래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K팝 산업의 발걸음도 바쁘다. JYP엔터테인먼트는 7월 블록체인 업체 두나무와 NFT 플랫폼 사업을 위한 업무 제휴를 맺었다. 국내에서는 산업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최초 기획사다. 보이그룹 에이스는 4월 미국 블록체인 플랫폼 왁스(WAX)를 통해 멤버들의 사진 등이 담긴 굿즈를 선보였다. 가수뿐만 아니라 인플루언서, 화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품을 다루는 K컬쳐 전문 NFT 마켓 플레이스 스노우닥도 등장했다.

NFT 시스템은 가수와 팬 모두에게 윈윈(win-win) 될 수 있다. 아티스트는 무분별한 복제를 막아 창작물의 희소성을 지킬 수 있고,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독점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아 대중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투기성 거래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고민해볼 만하다. 대중음악계와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체적인 적정선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케팅 수단 그 너머로, 라디오헤드의 특별한 전시회

앞서 언급했듯 미국의 에픽 게임즈는 메타버스와 대중음악을 연결할 방법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포트나이트에서 유저들은 트래비스 스콧의 신곡을 들었고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디오헤드다. 엥? 라디오헤드? 의외의 인물이다. 라디오헤드가 아바타로 변신해 포트나이트에서 오징어 춤을 추면서 ‘Creep’을 연주하기라도 하는 걸까?

뭐, 그것도 재미있겠다만 정확히는 아니다. 기술 혁신과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세기의 록 밴드는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지난 9월 8일 에픽 게임즈와 콜라보한 < Kid A Mnesia Exhibition > 프로젝트의 티저가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공개됐다. 밴드의 2000년대 걸작 < Kid A >와 < Amnesia >의 20주년과 21주년을 기념하는 가상 전시회다.

오는 11월 플레이스테이션5, 맥, PC를 통해 정식 출시 예정이지만 아직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어 정확히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고편에서부터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리더 톰 요크와 비주얼 디자이너 스탠리 돈우드가 협업한 아트워크와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가 맡은 오디오 디자인이 지하 세계에서 1인칭 시점의 관람자를 디스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으스스한 전경으로 초대한다.

가상 공연이나 팬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와 달리 아티스트의 명작을 박물관 형식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라디오헤드는 매우 난해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어쩌면 그들이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팀의 예술 세계를 메타버스에서 구현할 지도 모를 일이다. 메타버스가 단순 마케팅 수단을 넘어 뮤지션의 내면과 감정을 보다 정교하게 채색하는 캔버스로 진화할지. 결과는 11월에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