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전찬일의 영화수다 – 왜 < 미나리 >인가!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윌 패튼 등 주·조연에 40대 초반의 재미교포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이 연출한 네 번째 장편극영화 < 미나리 >는, 오는 26일(한국시간 기준) 개최될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거머쥘까?

1980년대 초반, 희망·구원을 찾아 이민을 간 미국 캘리포니아를 10년 만에 떠나 시골 마을 아칸소로 막 이주한 한국 가족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가족 드라마. 한국적 정서·감성 가득한 이 미국 영화는 총 6개 부문에 후보 지명돼 있다. 영예의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이다. 노미네이션으로만 치자면 봉준호의 < 기생충 >을 압도한다. 그 역사적 걸작은 미술상, 편집상까지 역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쥐었으나, 연기상으로는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여정의 수상 및 노미네이션 퍼레이드는 특히 눈이 부실 정도다. 그 여걸은 11일(현지 시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상 여우조연상을 안으며 37번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로써 오스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후보만으로도 역사적 쾌거였는데, 이제는 상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이변’으로 회자될 상황이다. 7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대세 배우’가 된 것. 당사자도 말했듯,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대체 왜 < 미나리 >일까?

곧 유튜브에 업로드돼 첫 방송될 ‘전찬일 이덕일의 종횡무진: 영화와 역사를 탐하다’ 등에서도 적시했듯, < 미나리 >의 주목할 만한 덕목‧화제성은 크게 서너 가지다. 우선은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안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연출력으로 자유롭게 극화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적 사건을 이민 가족으로 으레 겪을 수밖에 없을, 인종차별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가족 내 캐릭터―다름 아닌 윤여정이 분한 극 중 할머니 순자다!―의 불가항력적 선의의 실수로 구현‧처리한 선택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영화의 으뜸 미덕이다. 어느 모로는 의외이면서도 영화에 남다른 신선함‧수준을 안겨주기 모자람 없다고 할까.

정이삭 감독은 사실, 첫 장편 < 문유랑가보 >로 단연 주목할 만한 데뷔전을 치른 바 있다.  비록 수상은 못 했어도, 서른을 바라보던 지난 2007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 공식 섹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고, 데뷔작인지라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 상 후보에 올라 일찌감치 큰 화제 몰이를 했던 것. 당시 칸을 찾았던 필자는, 영화의 화제성도 그렇거니와 그 속내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전 와중에 있던 아프리카 르완다 두 소년의 이야기를 르완다인들의 협조를 받아 가며 르완다 어로 찍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성취는 사상 최초였다. 두 영화 사이에는 13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놓여있긴 해도, < 미나리 >의 ‘영광’은 그때 이미 예고됐던 셈이다. 다소 성급한 진단일 수도 있어도, 그에게서 ‘포스트-봉준호’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다.

두 번째 화제성은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연기에서 연유한다. 윤여정을 필두로, 봉준호의 < 옥자 >(2017)와 이창동의 < 버닝 >(2018) 등을 통해 그 연기력을 공인받은 스티븐 연, 오스카 후보지명엔 실패했어도 인생 일대의 연기를 선보인 한예리,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건만 우리말 연기도 곧잘 해낸 앨런 김과 노엘 조 등이 구현한 앙상블 연기는 < 기생충 >에 비견되기 부족함 없다.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국배우조합(SAG)상에서는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아론 소킨)에 영화 부문 앙상블상이 안기긴 했어도….

< 미나리 >가 누리고 있는 작금의 연기를 향한 상찬들은 물론, 연기도 연기거니와 성격화(Characterization)에 기인한다. 당장 할머니이면서도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쳐 함께 치고, 상소리들이 두루 섞인 거친 입담을 과시하며,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못한다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엉뚱(?)하게 미나리의 질긴 근성을 설파하는 등의 순자부터가 얼마나 ‘별난’ 캐릭터인가. 그야말로 역대급 캐릭터의 완승이다.

흥미로운 점은 < 미나리 >가 자신의 연기 최고작이 아니라는 것을 윤여정 본인이 잊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녀는 영화 데뷔작 < 화녀 >(김기영, 1971)―그 ‘청불 영화’를 필자는 초등학교 4년 적 청량리에 있었던 동일 극장에서 관람했다!―에서부터 이미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으며, < 꽃피는 봄이 오면 >(유장하, 2004),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등을 통해 최상의 연기력을 선보인 ‘연기의 달인’ 아닌가. 그럴 법한데도 전혀 우쭐대지 않고 늘 겸허한 수상 소감을 피력하는 윤여정의 모습이야말로, 연기를 넘어 후배 배우들이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할 진정한 그 무엇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상기 덕목들보다 더 아름다운 < 미나리 >의 (영화) 역사적 의의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압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네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현실, 다시 말해 무려 750만에 달한다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는 데서 나는 찾고 있다. 영화적 수준에서는 다소 못 미칠지언정, < 미나리 >의 영화사적 의미가 < 기생충 >을 능가한다고 평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일전에 다른 지면에서 밝혔던 내 진단을 여기에 옮기며, 이 글을 마치련다.

“나는 < 미나리 >의 가장 큰 의의를 다른 지점에서 찾는다. 영화는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문제를 전격적으로 소환·환기·각인시키는데 전환점(Turning Point)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위성에서는 그래선 안 되나, 조국 대한민국조차도 거의 잊다시피 주변부화시켜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주요 현실 중 하나….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배창호와 이장호, 김호선, 조정래 등이 각각 < 깊고 푸른 밤 >(1985)과 < 명자 아끼꼬 쏘냐 >(1992), < 애니깽 >(Henequen; 1996), < 귀향 >(2016) 등을 통해 일찍이 다룬 바 있는 주요 이슈다.

< 미나리 >는 문화예술과 오락이 얼마나 밀접하게 (현실) 정치와 연관돼 있는가를, 영화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문화 콘텐츠·스토리텔링으로 극화시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를 새삼 증거한다. < 기생충 >이 가족 희비극을 통해 이 세상의 비정한 신자유주의를 향해 통렬한 화살을 날렸듯. 그럼으로써 < 미나리 >는, 비평가로서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온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 얼마나 위대한 성취들인가!”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Categories
Album POP Album

미나리(Minari)

평가: 4/5

2020년 개봉해 비평가들의 찬사와 더불어 여배우 윤여정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쓴 영화 < 미나리 >(Minari)는 우선, 한국계 미국인 2세 정이삭(Lee Isaac Chung)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영화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Plan B Entertainment)가 만든 작품이다. 알다시피 “플랜 B 엔터테인먼트”는 <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으로 2013년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작년 < 기생충 >(Parasite)로 아카데미의 총애를 받은 봉준호 감독의 2017년 영화 < 옥자 >(Okja)의 제작사로도 유명하다.

윤여정과 한예리, 두 한국여배우의 출연이 돋보이는 영화는 1980년대 아칸소 시골을 배경무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이주한 부부가 주인공이다. 서로를 구해주자고 떠난 미국에서 자녀를 낳고, 아이들을 돌봐줄 엄마이자 할머니까지 합세하면서 전개되는 가족이야기가 그 골자이다. 무엇보다 실제 사실에 근거한 각본이라는 점, 드라마 < 미나리 >는 정 감독의 유년시절 성장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주가 보통으로 알고 있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그야말로 확 바뀌는 5인 가족은 오자크(Ozark Mountains)에서 새로 시작하는 삶의 불안정과 도전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가족의 회복력과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음악을 위해 정 이삭 감독은 작곡가 에밀 모세리(Emile Mosseri)와 손을 맞잡았다. 에밀은 2019년 < The Last Black Man in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흑인)와 2020년 < Homecoming >(귀향)의 두 번째 시즌에 음악을 맡아 주목받은 신예 유망주, 피아니스트 겸 가수, 제작자로 알려졌다. 그의 애정 어린 스코어는 부드럽고 소소하지만 정말 매력적이다. 온기로 가득해 특히 마음에 와 닿는 한편, 종종 아주 약간의 불협화음에 대비해 대조를 강조하는 사운드를 생성해 흥미롭다. 표면적으로는 일종의 작은 행복감을 구현해내지만, 그 배후에는 묵직한 감동이 있다.

그중 가장 명징하게 오는 음악은 배우 한예리가 한국어로 부른 노래, ‘Rain Song(비의 노래)’라는 자장가와 만화경처럼 계속 변화하는 ‘Wind Song(바람에 바람)’가 있다. 주제가 되는 ‘테마’에 노랫말을 덧붙인 곡으로 두곡 다 매혹적이다. ‘비의 노래’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심을 불러내는 차분한 곡조가 몽환적인 전자음향효과와 어울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바람의 노래’는 웨스턴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은 어쿠스틱 기타 리듬과 전자음악의 융합이 노래와 함께 농장의 자연을 주요무대로 한 극의 정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영화 전반에 쓰인 음악은 이상의 각 주요 테마에 가사를 넣은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어쿠스틱 기타를 통한 자연적인 포크(Folk)와 피아노, 목관악기, 금관악기 등을 통한 클래식(Classic)을 결합해낸 목가적인 악풍이 가장 두드러진다. 거기에 전자악기를 혼용해 시대적 분위기를 강화했다. 구체적으로 1980년대 들어온 LFO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테레민(Theremin) 풍의 음향효과를 낸 것이 그러하다.

스코어의 중심은 ‘Grandma Picked a Good Spot'(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고르셨구나)으로, 전체적으로 클래식 피아노 솔로가 현악으로 뒷받침되며 변주를 통해 극적인 감동과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곡. 대부분의 지시악곡들과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명상적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새 보금자리가 될 하우스트레일러로 가족이 차로 이동하는 동안 영화를 반주하는 ‘Big country’와 다른 한편에서 일정한 화음을 반복해 연주하는 악구가 특징. 스코어에 편성된 주요악기인 피아노와 어쿠스틱기타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명징한 선율을 자아내는 ‘Garden of Eden’과 함께 영화의 극적 핵심을 관통하는 음악. 몇몇 테마를 중심으로 다른 멜로디와 코드진행을 이용한 방식을 추구했다.

‘Big country’를 서두로 모세리는 때때로 말없는 보컬을 사용하여 큰 효과를 낸다. ‘Jacob’s Prayer(야곱의 기도)’와 ‘Paul’s Antiphony'(폴의 교창), ‘Find it Everytime'(매번 찾아내지)는 그 범례. 매우 아름답고 황홀하다. 전자음악은 때로 일종의 최면효과를 만든다. 여러 면에서 음악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를 위한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의 음악을 상기시킨다. < 트윈 픽스 >(Twin Peaks)처럼 꿈을 듣는 것과 같다. 하이라이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Minari Suite'(미나리 조곡), 피아노와 허밍 보컬을 위한 메인 테마의 정감 넘치는 버전을 들려준다.

< 미나리 >에 쓰인 음악은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감성적 인지를 얻는 독특한 악보로, 영화의 내용적인 일면을 보충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과하게 감동을 강요한다거나 영화의 부족한 면을 음악으로 대신하지 않는다. 때론 소소한 일상의 소품처럼, 때론 진심어린 울림처럼 화면전개를 차분하게 받쳐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렇게 영화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영화가 된다. 고전과 현대음악 양식의 조화가 시적인 영상과 마음의 소리, 두 세계를 하나로 잇는 교량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미나리>의 음악은 2021년 제 74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BAFTA)에서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김진성)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1. Intro(도입)
2. Jacob and The Stone(야곱과 돌)
3. Big Country(대 서부)
4. Garden of Eden(에덴 정원)
5. Rain Song (feat. Han Ye-ri)(비의 노래)
6. Grandma Picked A Good Spot(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잡으셨네)
7. Halmeoni(할머니)
8. Jacob’s Prayer(야곱의 기도)
9. Wind Song (feat. Han Ye-ri)(바람에 바람)
10. Birdslingers(한방날리기)
11. Oklahoma City(오클라호마 시)
12. Minari Suite(미나리 조곡)
13. You’ll Be Happy(행복할 걸세)
14. Paul’s Antiphony(폴의 교창/성가)
15.Find It Every Time(매번 찾아내지)
16.Outro(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