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경연 방송 < 프로듀스 101 >의 아이오아이를 거쳐 발라드 스타일의 ‘월화수목금토일’로 솔로 데뷔한 청하는 ‘Roller coaster’, ‘벌써 12시’에 이어 올해 초 21곡의 대작 < Querencia >를 발매하며 보컬, 댄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 밖에도 ‘Meteor’의 창모, ‘Bad’의 크리스토퍼 등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여러 뮤지션과 협업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활동 5년 만에 첫 정규 앨범을 내놓은 2021년을 특별하고도 기억에 남을 한해로 마무리 짓기 위해 그가 꺼낸 카드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보컬은 곡의 중심이 청하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물 흐르듯 흘러 단숨에 도착한 후렴에서는 매끄럽고 유려한 반주와 멜로디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매력도를 높이고, 되풀이되는 일상을 긴 터널에 비유해 그 끝이 밝을 것이라 노래하는 가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족을 줄여 창자(唱者)의 의도와 청자의 감상을 통일시킨 청하의 ‘희망’ 전하기가 성공적이다.
‘마에스트로’, ‘빌었어’, ‘아름다워’, ‘아이야’ 등 그를 대표하는 곡들은 많지만 < Boyhood >에 담겼던 ‘Meteor’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 후 약 2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 나온 2번째 정규 앨범 < Underground Rockstar >는 어떤 작품일까, 그리고 어떤 기록과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이번 인터뷰는 그에 대한 해답이라기보다 신보를 듣고 각자가 느꼈던 바를 이해하고 정리해 넥스트 레벨로 나아갈 기회를 마련하고자 준비했다.
창모와의 인터뷰는 2021년에만 벌써 2번째다. 올봄 이후 여름과 가을을 뛰어넘어 다시 찾아온 겨울에 들려온 기쁜 소식이 랩스타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만남의 간격이 짧고, 바쁜 일정을 배려해 이번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하였으며 평소에 중심적으로 다루던 근황이나, 음악세계를 돌아보기보다 그가 새로 취입한 음반에 집중하려 한다.
앨범 발매로 굉장히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텐데 그래도 이즘 독자들과 팬들을 위해 간단하게 인사 나누고 시작할까 한다. 반갑습니다. 잘 듣고 계신가요? 이즘IZM 독자분들도 반갑습니다. 음악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아 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 Underground Rockstar >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 그리고 이번 앨범을 만들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온전히 내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앨범의 첫 스케치가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작년 즈음부터 ‘미움받을 용기’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 같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살 즈음 세워놨던 목표를 대부분 이룬 상태였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나 자신에게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라고 말했고 그 마음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내 마음, 내 본능을 따르는 것, 그게 제일 중요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인 음악 안에서 그런 도전을 한다면 한 사람의 구창모로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될 것이라 믿었다.
첫 곡부터 웅장한 현악기가 등장하며 영화 사운드 트랙 같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선보인다. 사운드적으로 많은 심혈을 기울인 것 같은데 노고가 상당했을 것 같다. 무명 때 돈을 많이 버는 음악가가 되면 진짜 오케스트라 세션을 받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엔 내 만족을 위해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몇십만 원밖에 안 하는 가상 악기 대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몇백만 원짜리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사서 직접 연주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내가 음악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은 힙합계에서도 손에 꼽힐 수준이지만, 음악을 만들 땐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모드였다. 감이 확 꽂히는 아이디어를 최상의 퀄리티로 실현하는 것, 그게 ‘언더그라운드 록스타’다.
‘Beretta’와 ‘Vivienne’은 느낌이 다르다. 작년의 ‘Swoosh flow’에 이은 또 하나의 UK 드릴 장르 곡인데, 플루트와 현악기, 안다영의 보컬로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난 영국 아티스트들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음악적으로 ‘1+1’이라는 정답이 뻔한 문제가 영국에 들어가면 “답이 2긴 한데 2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봤는데 내 답은 11이야 물론 숫자 발음은 내 동네 발음으로”라는 답으로 나오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은 설득력이 있다.
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다이내믹하고 트렌디한 나라에 사는 아티스트로서 그게 내가 지녀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난 내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동시에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환경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Vivienne’에서는 목소리가 유독 처절하다. 가사 중에서는 ‘ㄱ, ㄴ, ㄷ, ㄹ 하나씩 해낸 후 만나게 되는 챕터는 미움이니’라는 구절도 있지 않나. 마치 성공 후 받는 헤이팅이나, 따가운 눈초리에 대한 넋두리 같다. 노래의 의미가 궁금하다. 질문대로가 맞다. 난 항상 안될 거야, 별로야라는 얘기를 들어온 동시에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꾸준하게 이어온 래퍼 중 한 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쁘고 쿨한 모습으로 365일을 굴지는 않는다. 나는 인간이고 나름의 고통과 개성을 갖고 있다. 난 지금 내 정도 커리어의 뮤지션이 됐을 때 더는 나처럼 고뇌하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나는 그걸 노래에 반영했다.
피처링은 아니지만 ‘태지’에서는 ‘Come back home’을 샘플링하며 서태지와 협업에 성공했다. 과거 여래 매체를 통해 서태지를 향한 존경을 표했는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게 되었나? 난 이 노래를 통해 ‘서태지’란 거대한 존재에 대해 존경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분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큰 영광이다. 시대의 아이콘이지 않나. 게다가 나는 내 삶의 첫 집을 그가 살던 평창동에 장만했다.
‘No regret’은 언더그라운드 ‘록’스타의 콘셉트와 가장 부합하는 곡이 아닐까 싶다. 참고한 노래들이 있었을 것 같다. 이 곡이 아니더라도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많이 듣고 참고한 아티스트나 음반이 있다면? 이 노래 작업 당시 나와 조레인(Joe Layne) 형은 한마음으로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의 바이브(Vibe)를 담아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대표적으로는 카니예 웨스트의 < 808s & Heartbreak >, 스트록스의 < Is This It >, 오아시스의 < Definitely Maybe >, 이 세 앨범을 많이 들었었다.
< Boyhood >가 소년의 ‘성장 스토리’였다면, < Underground Rockstar >는 창모의 ‘지금’을 담고 있는 느낌이다. 이 틀을 중심으로 3가지 질문을 이어서 드린다.
< Boyhood > ‘Hotel Walkerhill’에서는 성공을 갈망했다면, 이번 앨범의 ‘Hotel room’에는 외로움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호텔이란 공간이 창모에게 어떤 의미인가. 호텔에서의 하루는 체크인과 함께 시작되지만 그 끝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하루는 체크아웃과 동시에 성냥팔이 소녀가 보았던 환상처럼 사라진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삐딱하게’의 가사처럼 말이다. 난 그게 스타의 인생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체크인을 했을 때부터 체크아웃을 생각하며 우울해 해야 할까? 아니다. 난 그 시간을 누릴 거다. 한 마디로 ‘호텔’은 내가 갈망했던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Beretta’부터 ‘Little brothers’로 이어지는 중반부에서는 그 내면이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삶이다. 난 늘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주변 사람들의 속을 태운다. 그런 동시에 해야겠다 싶은 일은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며 나의 꿈을 믿게 하고 힘을 준다. 어떠한 심경 변화라기보다 거기서 느껴졌던 그 자체가 그냥 ‘나’인 것이다.
< Underground Rockstar >와 < Boyhood >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특히, ‘Meteor‘의 성공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Meteor‘의 흥행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여유를 주었다. 덕분에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모든 환경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좁은 작업실에서 < M o t o w n >을 한창 만들던 2015년이 생각이 나곤 했다.
“새로운 사운드, 내 한계를 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담을 것”
그때와 비슷한 목표를 두고 이 앨범을 만들었다.
음반의 진행은 그야말로 유기적이다. 정리해보면, 과시적인 초반부에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중반부를 지나 결국 삶을 긍정하는 밝은 기운의 후반부로 이어진다. 흡사 ‘이 인생이 힘든 면도 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워’라는 메시지를 내비치는 것 같다. 앨범에 담겨있듯 창모의 현재가 늘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언더그라운드 록스타’의 삶을 만족하게 하는 게 있다면? 성공 후 무엇이 지금 자신을 가장 흡족하게 하는가? 여전히 본능적이면서도 열망과 분노를 갖고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내 모습에 만족한다. 내 돈, 내 동네 친구들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능력도 날 기분 좋게 만든다!
언더그라운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콘서트에 대한 계획을 세운 것이 있나? 아마 힘들지 않을까? 오지게 취해 홍대 헨즈(The Henz Club)에서 ‘Hyperstar’를 부르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에 관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중에 자신의 자식이 이 앨범을 들어봤냐 했을 때 들어봤다고 말할 수 있도록 미리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이 시즌에 앨범 전체를 돌려보길 바란다.
‘마에스트로’의 피아노 치는 래퍼에서 ‘Meteor’의 별똥별에 이르기까지. 창모의 성공 신화는 강렬하고도 명쾌한 음악의 승리였다. 이제는 TV 프로그램을 비롯해 각종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 주류로 올라섰음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언더그라운드 록스타’라 칭한다. 예술적 고집과 독자성만큼 진지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게 또한 창모가 힙합 애호가들과 대중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두드려온 동력일 것이다.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창모만이 털어놓는 ‘솔직함’과 대중 영합을 넘어서는 ‘진정성’이 공감을 부른다는 사실을 안다. 첫 정규 앨범 < Boyhood >의 성공 스토리는 경기 덕소의 꿈나무 래퍼가 새 시대의 전국 힙합스타로 솟아오르는 신분 상승을 엮어낸 강력한 자기 서사였다.
음악만큼이나 그는 인터뷰에서도 자신을 이야기하는 데에 솔직담백했다. 음악적 다양성에 대한 야망과 더불어 ‘돈’에 대한 나름의 철학까지 거침없이 자신의 진면(眞面)을 공개했다. 하지만 편안하고 밝은 목소리 안에는 살짝 고민도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와 나눈 대화는 한 편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았다.
첫 정규 앨범 < Boyhood >와 타이틀 ‘Meteor’로 2020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성공에 대해 현재 기분은 어떤가? 일단 덤덤했다. ‘Meteor’로 1위 했을 때, 항상 꿈꾸어 왔던 거라 상기되어 있다기보다는 그냥 ‘세상에 나를 보여줬구나.’ 싶었다. 결국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내가 그걸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라는 목표도 있었고. 나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음악 산업의 성공 모델은 아니다. 다른 모델이면서도, ‘이런 식으로도 음악을 하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모델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대중음악 신에 싱어송라이터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나는 그중에서 드문 힙합 신의 싱어송라이터다. 그리고 음악 외적으로 봐도 활동할 때 스타일리스트도 없고, 회사가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거나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창의력을 현실로 옮기는 일에만 몰두했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성공에는 여러 요소가 들어있기도 하지 않나. 음악을 통한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개념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는 언더그라운드는 홍대의 공연장, 라이브 클럽과 같은 문화 그 자체다. 사람들은 언더그라운드와 소위 말하는 오버그라운드 힙합을 나누기도 하는데, 나는 다 힙합이고 공연하는 곳과 활동하는 곳이 언더와 오버를 가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잘되고 돈을 많이 벌었을 때도 항상 언더그라운드에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거리에서 더 보기 쉬운 아티스트였다. 까다롭고, 숨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Meteor’를 발표했을 때, 히트할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다. 오히려 작업하면서 너무 많이 듣고 익숙해지는 바람에 어떤 감각을 잃어서인지 막판에 타이틀곡으로 안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뜯어말렸었다. 형들이 무조건 타이틀로 해야 된다고 말하더라. 형들 말을 들어보자 해서 타이틀로 냈다.
‘Meteor’는 한 방에 오는 곡이었다. 힙합 신에 실력 있는 래퍼들의 작품도 잘 만들었다지만 대중적으로는 어렵게 다가오는 곡이 있는데, ‘Meteor’는 아주 잘 들렸다. 그 이유를 발성과 음색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친 스탠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웃음)
(인스타그램 질문) < Boyhood >는 첫 정규 앨범인데, 다른 앨범들과 비교해서 준비 과정이나 기간에 다른 점이 있었나? 그리고 < Boyhood >가 무엇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이전까지의 앨범들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만든 노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 Boyhood >의 곡들은 내가 스무 살 때부터 만들어 놓고 나중에 정규앨범에 내기 위해 빼놓은 곡들이 많다. 그래서 장독대에 묵은 김치처럼, (웃음) 메시지도 더 깊고 진득하게 담긴 것 같다.
본인의 래핑, 음악에 있어 앞으로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메시지다. 뇌에서 생각나는 대로 바로 쓰기보다 시 같은 가사를 쓰고 싶다. 한 번 정제하고,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런 메시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버스(verse)와 코러스 부분이 음색 차이가 분명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새로운 피드백을 받는 걸 좋아한다. 원래는 남의 의견을 잘 안 듣는 스타일이었는데, 안 듣다가는 더 새로운 걸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반드시 있으니. 옛날에 활동했던 밴드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밴드는 멤버 수가 많아서 더 창의적인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다. 공동체, 커뮤니티이니까.
최근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피쳐링 등을 통해 협업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내 음악과 피쳐링은 구분하는 편이다. 피쳐링은 나에게 있어서는 래퍼로서 폼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최근 피쳐링 제의를 많이 받는데, 그건 그만큼 래퍼로서 현재 폼이 좋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 질문) 샤이니의 신곡 ‘Atlantis’ 작사 / 작곡에도 참여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SM에서 나의 랩을 원한다고 요청이 먼저 왔다. 협업하려는 법도 배울 겸 멤버 민호 씨의 스타일과 목소리를 생각해서 랩 메이킹에 참여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창모를 가리켜 ‘랩 피지컬’이 좋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그런데 내가 랩의 ‘정석파’이기는 하다. 요즘 랩에서 영감을 받기보다 예전 투팍(2Pac) 같은 거장들에게 영감을 받는다. 그 사람들은 악보를 그릴 때 무조건 지켜야 하는 오선처럼 무조건 지켜야 하는 존재다. 랩 피지컬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런 ‘기본’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주시는 거 아닐까 싶다.
창모를 이야기할 때 오토튠을 빼놓을 수 없다. 약간 고집스러운 면도 느껴지는데, 오토튠의 강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2008년쯤에 미국과 한국에 오토튠이 붐이 일었다. 그때 15살이었는데, 거기에 많이 영감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노래를 잘 못 불렀는데 멜로디는 부르고 싶었고, 그걸 보정해주는 게 오토튠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음악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오토튠을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장치 정도로 생각했다. 음이 어긋나고, 기계음처럼 들리는 것도 나이 탓인지 몰라도 자연스러웠다. 내가 부족한 싱잉 부분을 보완해줬다.
그리고 피아노를 쳤다 보니 연주를 하는 것과 음악을 만드는 것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연주는 시간을 들이고 손을 움직이면서 노력한다는 점에서 체육 같은 면도 있는데, 많은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음악의 개념도 있다. 나도 어렸을 땐 피아노를 쳤었는데 힙합을 접하고 화성 형식도 없고 그냥 무한 반복인 걸 보고 ‘와, 이런 음악도 있구나.’ 느꼈었다.
피아노를 치다가 힙합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이 써놓은 걸 쳐야 하는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치기만 하는 게 음악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작곡해서 치는 게 음악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만드는 쪽에, 재현보다는 창의에 더 끌렸다.
창모의 음악은 강하게 때리는 드럼 부분이 만들어내는 타격감이 있다. 반드시 이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카니예 웨스트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느낌이다. 그렇다. 내가 음악 실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에 카니예 웨스트의 영향이 7할 정도다. 카니예 웨스트의 음악에는 모든 게 다 섞여 있으니까.
카니예 웨스트를 배웠다면 음악을 어렵게 할 법도 한데 몸속에 대중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결코 어렵게 음악을 풀어내지 않는다. 내 음악이 소위 말하는 ‘뽕끼’가 있다고 한다. 팬들과 리스너들도 꼭 한 번씩 언급한다. 내가 학생 때는 모두가 한 장르에 빠지면 그 장르가 최고고, 타 장르나 한국에서 나오는 그 장르의 음악들은 무시하기 마련이었다. 나도 힙합에 빠졌을 때, 힙합이 좋으면서도 한국에서는 서울대 나온 사람들이 랩을 하고, 한국인의 감성이 배어있는 걸 보고 한편으로는 이건 진짜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나누게 되더라.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걸 그냥 받아들였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건데 이 감성이나 내가 살아온 생활 방식이 남아있는 게 과연 나쁜 걸까. 어떻게 보면 해외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또 새로운 느낌일 테니까.
힙합 말고 다른 대중가요도 많이 듣나? 깊게는 아니지만, 한국 록을 들었다. 예전에 국내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충격을 받았던 게 들국화와 산울림이었다. 메시지에 당시의 시대상이 담겨 있는 게 좋았다. 1970-80년대 나왔던 굉장히 착한 노랫말로 만들어진 건전 가요도 신기하게 느껴진 건 한국의 시대상이 담겨 있어서였다. 앨범 하나만으로도 역사니까. 거기서 위대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걸 아예 듣지 않은 래퍼들과 다른 표현법이 나오나 보다. 거기에 카니예 웨스트, 투팍 등 외국 래퍼들의 음악도 접목되니 완벽한 창모의 스타일이 나온 게 아닌지. 맞다. 나도 그 100대 명반 리스트를 본 게 인생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시야가 넓어졌다. 한국 음악이 결코 안 좋은 게 아니고 엄청난 것이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였다.
유튜브 채널 딩고 뮤직, < 쇼미더머니 >, < 고등래퍼 > 등 미디어에 자주 출연한다. 그런 게 사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는 경계했던 부분이다.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운지 이 부분 얘기를 들려 달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서 차트 1위에 오른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내가 음악적으로 좋은 곡을 만들고 계속 음악 생활을 하면서 마치 정원 나가듯이, 산책하듯이 그런 프로그램들에 나가면 그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다.
‘Swoosh flow’에서 UK 드릴을 선보였다. 이 곡이 속해 있는 폴 블랑코와의 협업 앨범 < BIPOLAR >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장르에 있어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모습이다. 항상 다양한 것을 하고 싶어 한다. 힙합의 태도를 가지고 만든 음악과 시도하고 싶어서 만드는 다른 여러 음악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힙합의 태도를 지키고 있다. 그런 애티튜드만 있다면 장르는 내가 창의적으로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창모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중음악계의 스타로 거듭났다. ‘Meteor’와 미디어를 통해 그를 접한 이들도 많겠지만, 힙합 신에서 창모가 인지도를 다지는 데에는 < 돈 벌 시간 2 >와 그 수록곡 ‘마에스트로’가 지대한 밑거름이었다. 그 무렵을 회상하며 그는 “앞길이 안 보이던 시절 ‘마에스트로’는 내 최후의 한방 같은 노래였다”며 노래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미래가 불투명하던 시기에도 그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날 것의 메시지에서 오는 ‘리얼함’이 있었다.
그간의 미니 앨범 제목에 ‘돈’이 자주 언급되는 데에도 나름의 이유를 덧붙였다. 그는 그것을 어린 시절의 생활 환경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유년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고향 ‘덕소’가 가지는 의미는 그에게 생각보다 큰 듯 보였다.
오늘날의 창모를 만든 데에는 < 돈 벌 시간 2 >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떻게 보면 ‘Meteor’보다 더 중요한 곡이 ‘마에스트로’와 ‘아름다워’가 아닐까. ‘아름다워’는 만들어 놓은 지 좀 됐었고, ‘마에스트로’는 앨범 작업하면서 급하게 쓴 곡이다. 좋은 음악이 나오려면 빡세게 살아야 한다고 그러던데, 그때가 음악을 하면서 제일 막막하던 때였다. ‘이걸 접어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이왕 포기할 거면 마지막으로 좋은 곡을 하나 내보고 끝내자 싶은 마음으로 쓴 곡이다.
‘마에스트로’의 반응은 조금 느렸는데, 그 곡이 왜 통했다고 보나?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것 같다. 그 당시에 사장님들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서 나와 계약을 하다 보니 나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그때 내가 노렸던 건 사람들이 하던 ‘랩 문법’을 피해서 하는 거였다. 그때 힙합 신은 그야말로 ‘돈 자랑’의 시대였다. 그런데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의 돈 자랑이 아닌 근본 없는 돈 자랑의 나열이었다. (웃음) 그래서 ‘이런 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내가 밑바닥에서 올라왔는데, 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실한 메시지를 담아서 보여준다면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흙수저’라 부르는 창모의 신분 상승 같은 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계층이 나누어져 있다.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장벽도 우리 세대 때부터 더 심해졌다.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계급 구조를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무렵 영국 밴드들에게 영감을 받기도 했는데, 오아시스도 자기를 ‘워킹 클래스‘라 부르고, 비틀스도 그랬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단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간 발매한 음반 제목들에서도 알 수 있지만, ‘돈’ 이야기를 유독 많이 한다. 돈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것 같은데. 로버트 기요사키의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라는 책이 있다. 내 인생을 바꾼 책 중 하나다. 그 책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재정적으로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본 한국 문화는 그랬다. 내 또래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도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돈 이야기 하시는 걸 보며 자랐다. 상황은 하지만 개선되지 않았고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가업을 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성공하고 난 후에는 부모님도 많이 기뻐하신다.
버클리 음대에 합격을 했는데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처럼 이렇게 뜨고 나서는 음악을 더 오래 하기 위해 꼭 버클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을 통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계획도 있는지. 뭘 배우려는 생각보다는 요즘이 협업의 시대이다 보니 음악을 만들 때 나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울타리를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 걸 공부하고 싶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법? 곤조가 센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꾀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웃음)
만약 지금 버클리 음대를 다니고 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해본 적 있나? 해봤다. 지금처럼 못 됐을 거다. 그냥 그 나이 때 제때 대학 들어간, 그 나이 때 해야 할 것들을 했던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 ‘덕소’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주 작은 동네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다 이어져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친구를 잘 모르는데 알고 보니 이 친구가 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 원장님의 아들이었다던가. (웃음) 그리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 좋았던 건 관심사가 비슷했다. 옷 좋아하고 랩 좋아하고. 친근한 작은 커뮤니티, 공동체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학창 시절 밴드를 했다고 들었다. 밴드를 했을 때의 감성이 지금 창모의 음악과 연관이 있는지. 밴드에 들어갔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들어갔는데, 피아노도 치고 했으니 여자애들에게 이름도 알릴 겸, 공연도 할 겸 그렇게 들어갔다. 당시 나는 힙합 키드여서 밴드 형들이 하는 연주가 신선했다. 그리고 그 무렵 서태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기타 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옛날 록 음악의 기타 리프들을 들으면서 멜로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 ‘힙합 비트 루프를 만들 때도 이런 멜로디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피아노, 밴드 두 가지를 경험하며 그러한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지금까지 만든 곡 중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졌는데, 나에게 자랑스러운 곡이 있다면? 달달한 노래다. < 닫는 순간 >에 수록된 ‘Interlude’. 2분짜리의 짧은 곡인데 그게 나의 감정도 잘 담겨 있고, 멜로디도 괜찮고, 노래의 독창성도 있다. 그래서 애정이 간다.
단순하게 ‘마에스트로’와 ‘Meteor’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마에스트로’. 이거는 나의 사소한 고민이었는데, ‘Meteor’의 발음이 완전 한국식이다. 그런데 적어도 훅에 나오는 영어 단어만큼은 영어 발음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웃음) 멋있어 보이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Meteor’는 유성, 별똥별이라는 뜻인데 분명 여기에도 메시지를 담은 것 같다. ‘Meteor’의 정확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박히게 된다’라는 뜻이다.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상은 아닐지라도, ‘너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차트도 점령하고 너희 거리 주변에 다 나오게 해줄게’. 이런 승리의 표현이다.
창모는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래퍼이기도 하지만 프로듀서로서 다른 래퍼들을 지원하거나 그들에게 비트를 줘본 적이 거의 없다. 프로듀서 창모로서 다른 래퍼들을 키워보거나 발굴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있다면 작업해보고 싶은 래퍼는? 나는 내가 2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프로듀서로서 ‘래퍼 창모’에게 맞춰 그 사람을 프로듀싱 해 1위 가수로 만들었다. 이제 ‘창모 프로듀서’는 완성이 된 거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아티스트의 프로듀싱도 도전하려고 한다. 작업하고 싶은 래퍼는 어린 래퍼들. 왜냐하면 내 음악도 그 친구들이 들었을 때는 신선한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린 친구들이 만족한다면, 내가 여전히 ‘Fresh’ 하다는 거 아닐까.
(인스타그램 질문) 현재 촬영 중인 < 고등래퍼 4 >에서 앞으로 회사를 만들어 사장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떤 포부에서 한 말인지 궁금하다. 항상 뭔가를 이루려면, 미리 그 마인드로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좌우명이다. 혼자 마음속으로 이미 사장 놀이를 하고 있다. 레이더에 있는 래퍼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회사가 낚아채 갈 수도 있으니 말하지는 않겠다. (웃음)
(트위터 질문) 래퍼가 꿈인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내가 앨범을 제대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반응도 얻을 때쯤에는 20대로서 삶을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메시지와 가사를 쓸 수 있었고 그게 전달이 된 거다. 요즘에는 랩만을 잘하려고 랩 레슨을 받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랩에서 중요한 것은 삶이고 그것을 담는 것이다. 래퍼가 되려면 막살든, 잘 살든 생각을 할 수 있게 일단 살아봐야 한다.
나를 음악인, 래퍼, 프로듀서로 만든 앨범이나 가수가 있다면. 카니예 웨스트의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다. 예술이라는 걸 그때 접했다. 그전에도 음악을 들었지만, 포괄적으로 비주얼, 음악, 퍼포먼스, 그리고 약간의 허세까지 모든 게 들어가 패키지화되어있다. ‘이게 예술이야’라는 걸 알려준 앨범이다. 그리고 카니예 웨스트의 < Yeezus >. (웃음) 투팍 노래 중에서는, ‘All about you’를 꼽겠다. 그 곡이 약간 지 펑크(G-Funk) 스타일의 말랑한 곡인데, 거기서 힙합 문법을 이해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가사를 보고 놀랐다. 노골적이면서도 그 나름의 달콤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