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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결산 편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래미 어워드가 범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행사 날짜까지 옮겼다. 붉은 융단 위에 별들이 쏟아지던 그때 한국은 3월 15일 아침 9시였다.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은 무관중인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여타의 국내 시상식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어워드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사회를 맡았던 앨리샤 키스를 대신해 이번에는 언변이 남다른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식순과 돌발상황에 대비함과 동시에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논란의 감정을 내려놓고 축제 자체를 즐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방식

매년 특별한 협업 스테이지를 선보이던 그래미가 코로나의 영향으로 그 규모를 줄였다. 대편성의 무대가 압도하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뮤지션이 간단한 구성으로 자신의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마치며 ‘2020년’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카메라를 다각도로 활용한 배드 버니와 제이 코르테즈의 ‘Dakiti’, 복고적인 색채와 조명이 잘 묻어난 실크 소닉(앤더슨 팩과 브루노 마스)의 ‘Leave the door open’ 무대가 무관중에 의한 중계의 이점을 적절히 살린 예다.

인상적인 부분은 공연 중간중간 카메라에 잡히는 뮤지션들의 얼굴이다. 관중이 없기에 공연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다시 공연자가 되는 이 모습은 마치 아티스트끼리 여는 뒤풀이 파티와 같았다. 자신의 차례가 끝난 뒤 술인지 물인지 모를 잔을 들고 앉아 있는 배드 버니부터 카디 비와 매간 더 스탈리온의 무대를 미친 듯 즐기는 포스트 말론까지 재밌는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관중이 없다고 열기가 식지는 않았다.

코로나 대응 공연보다 대단하고 놀라웠던 점은 따로 있다. 경영난에 처한 내슈빌의 스테이션 인, 뉴욕의 아폴로 시어터 등 총 4곳의 소규모 공연장 직원들이 주요 부문 후보를 소개하며 공연 업계의 실정을 알린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화제인 이 문제에 대해 대중음악의 본토인 미국, 그중에서도 권위 있다는 단체에서는 이를 어떻게 조명하고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의 인터뷰를 티저로 만들거나, 공연을 녹화본으로 대처하며, 화상으로 시상식에 참여하는 등 세심한 준비가 돋보였다.

역사의 절차를 밟아가는 방탄소년단

한국 가수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공연을 할 줄이야. 녹화 중계였지만 여의도 빌딩의 헬리패드까지 올라가서 노래하는 BTS를 전 세계가 지켜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무대 사이즈로만 보면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무대 중에서는 최대 크기였다. 제 61회에서는 시상자로, 제 62회에서는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노래했던 이력을 생각하면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퍼포머로 참여한 것뿐만 아니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도 ‘Dynamite’로 이름을 올렸다. ‘Rain on me’를 부른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아쉽게 트로피가 넘어갔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카디 비의 ‘WAP’ 같은 노래와 비교해 ‘건전’ 가요 & 가수로 불리고 있다니 생각도 못 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논란을 잠시 잠재우다.

인종차별부터 남녀차별까지 매년 습관처럼 욕을 먹던 레코딩 아카데미(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 NARAS)가 심사위원단을 대폭 개편하면서 제 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본상을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2개, 두아 리파와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각각 1개씩 수여해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년 빌리 아일리시에게 주요 부문 4개를 쓸어주며 ‘몰아주기’ 논란을 다시 가중했다. 

빌보드 HOT 100에서 ’Blinding lights’로 1년 동안 10위권을 지킨 대기록의 주인공 위켄드가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후보 무관에 그치자 그는 영원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시상식 전부터 연일 얘깃거리였다. 이러한 여러 문제를 의식한 듯 이번에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안전하게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올해의 레코드, 앨범, 노래, 그리고 신인상을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 테일러 스위프트의 < Folklore >, H.E.R의 ‘I can’t breathe’, 그리고 메간 더 스탈리온이 수상하며 장내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후보만 봐도 반 이상이 여성이고 흑인과 백인이 반반이다. 그중 ‘I can’t breathe’는 BLM을 대표하는 노래다. 위켄드 개인과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며, 그의 사건은 분명 레코딩 아카데미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올해의 본상 결과는 아카데미 위원회도 이제 대중과 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의 주인공

진정한 주연은 따로 있었다. 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고 4개 부문을 수상한 그의 이름 비욘세.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 후보와 수상에서 최다를 기록했지만 이는 귀여운 수준이다. 올해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베스트 랩 퍼포먼스, 베스트 랩 송, 베스트 뮤직비디오를 거머쥐면서 그는 역대 총 28개의 그래미상을 따냈다. 여성 최다 수상자임과 동시에 남자를 포함하면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 2등이다.

비욘세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본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다. 작년 주요 부문을 싹쓸이한 후 그가 받은 ‘레코드 오브 더 이어’의 타이기록은 U2와 로버타 플랙만이 가진 진기록이다. 빌리 아일리시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 Fearless >, < 1989 >, 그리고 2020년 포크를 시도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 Folklore >로 ‘앨범 오브 더 이어’를 3회나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다. 엔지니어를 제외한 뮤지션으로서는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등과 같은 레전드들과 동일한 선상에 섰다. 빌리 아일리시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음악으로 치유하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지난 한 해도 우리의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로큰롤의 왕’ 리틀 리처드, ‘갬블러’ 케니 로저스, 작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은 존 프라인, 코로나 위로송 ‘You’ll never walk alone’의 주역 제리 마스던 등 트리뷰트한 뮤지션만 이 정도다. 팬데믹 상황의 힘든 위기 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음악으로 치유를 받고, 한데 모여 떠난 이들을 기리는 이런 자리는 그래미 어워드가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서만 머무르던 2020년 ‘음악’은 가장 큰 치료제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시상식은 성공에 가까웠다. 본상 수상자와 각종 기록을 세운 뮤지션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 컨트리 뮤지션 미란다 램버트, 마렌 모리스, 그리고 흑인 여성 컨트리 뮤지션인 미키 가이턴의 공연까지 집중 조명하며 형식적인 노력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시아 가수 BTS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레코딩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신경 쓰기도 전에, 흑인과 여성 뮤지션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의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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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여성, ‘힙합에서 살아남기’ 혹은 ‘힙합으로 살아남기’

여느 때와 같이 음악을 듣다간 깜짝 놀랄 가능성이 크다. 카디 비와 함께한 싱글 ‘WAP’으로 한 번, 비욘세가 리믹스로 참여해 힘을 실어준 ‘Savage Remix’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놓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곡 ‘Body’의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보자. 단박에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여성의 신음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정말 가득 채운다. 잠깐 잠깐의 효과음이 아니라 아예 신음이 사운드 소스가 되고 비트가 됐다. 적나라한 음성에 곡을 멀리하려 해도 이것 참 난감하리만큼 메인 멜로디가 선명하다. ‘하악 하악’하는 교성 위에 ‘Body’를 연음으로 연속해 뱉어 ‘바디야리야리야리’하는 후크 라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 청산별곡 >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버금가는 중독성이다.

이게 바로 숨어 듣는 명곡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짜릿한 해방감이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정숙한 여성 되기의 정반대 이미지를 끌어오다니. 시원하고 강렬한 전유이자 날카로운 전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이분화, 즉 ‘성녀’와 ‘성녀가 아닌 자’의 프레임을 벗어나 당당히 그 위에 섰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서.

여성은 언제나 잣대 위에 올랐다. 혹은 일종의 소재나 수단으로 자리했다. 남근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코닉한 로고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 중인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그들이 느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로커의 마초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소환됐고 때문에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처럼 노래하거나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무성(asexual)의 전략을 취했다. 남성을 흉내 내는 전자는 윌슨 자매가 만든 밴드 하트(Heart), 재니스 조플린이 있으며 후자는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등의 포크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중 힙합은 유달리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TLC, 니키 미나즈, 카디 비 등을 경유해 주체적 여성을 손에 쥐고 달린 음악가들의 궤가 있지만 그에 반하는 여성 대상화의 벽은 견고하다. 여전히 많은 래퍼가 ‘퍽(Fuck)’과 ‘비치(Bitch)’를 마침표처럼 사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다’를 넘어서 ‘진짜 나쁜 여자들을 나쁘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격론이 앞 다퉈 튀어나온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설사 그 본질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성 차별적이라면 변해야 한다.

힙합을 즐기려면 검열과 염려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시 내가 ‘비치’는 아닌지, 그들이 말하는 ‘퍽’이 혹시나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닐지. 노래 하나 듣는데 뭐 이렇게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꺼내오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언제고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힘주어 철창을 걸어 잠그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힙합의 ‘힙(hip)’함을 따라가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Body’는 그 장애물을 부수고 뒤집는다. 몸은 가장 먼저 사회에 귀속된다. 요새 회자하는 ‘말하는 몸’이라는 문장은 몸 안에 적힌 역사와 몸에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잣대를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스탈리온은 몸을 가져와 말한다.

“Body crazy, curvy, wavy, big titties, lil’ waist
미친 몸매, 매끈, 늘씬, 큰 가슴, 호리호리한 허리”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몸을 다져도 이를 부각해서는 안 되는 묘한 엄숙 문화를 뒤틀어 당당하게 자기 어필의 포인트로 삼았다. 힙합에서의 여성이 발화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존재였다면 노래 속 그는 다르다. 여성 스테레오타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감을 뽐낸다. 일면 무례하고 그래서 불경한 여성이 될 수 있겠지만 꼿꼿한 기지에서 힘 있는 균열이 뻗어 나온다.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관습적인 여성성의 덫을 피해 나가는 그의 서사에 호쾌한 자기다움이 묻어난다.

유로 댄스로 유럽과 미국을 이어낸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의 ‘Love to love you baby’에도 신음이 담겨있다. 이는 불세출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의 소리는 보컬 액슬 로즈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연기의 의도만은 다른 곡과 같다. 심지어 그들의 곡 ‘Rocket queen’은 성관계 중인 여성의 신음을 그대로 녹음해 사운드로 삼았다.

이렇듯 신음이 노래에 포함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음이 여성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다. ‘Body’의 함의는 이처럼 다채롭다. 그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신음을 앞세워 자신을 그린다. ‘힙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의 빗장을 걸어왔다면 그의 곡은 여성이 ‘힙합으로 살아남기’에 적합한 새 활로를 개척했다.

‘Body’에는 힘센 여성성의 발화가 있다. 그의 존재 앞에 성적 자유인가 혹은 남성의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따라붙을 것이며 나아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철옹성의 논박이 뒤이어 올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Body’를 풀어낼 맥락은 많다. 오랜 시간 괄호 치워지고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해체했다. 여성이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고 밝힐 수 있다. 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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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메간 더 스탤리온(Megan Thee Stallion) ‘Savage(feat. Beyonce)’ (2020)

평가: 3/5

요즘 빌보드의 히트곡들은 틱톡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되는 느낌이다. 이 곡 역시 댄스 챌린지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급상승 추이를 보인 곡이기 때문. 후렴구의 중독성 있는 프레이즈는 분명 인상적이나 평면적인 구성으로 인해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 리믹스 버전은 그 흠을 완벽히 보완한다. 보컬과 랩, 코러스를 오가며 무차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비욘세의 퍼포먼스는 이 곡에 필요한 부분만을 철저히 공략하며 곡의 입체감을 부여한다.

이렇게 대폭 업그레이드된 완성도 덕분인지 원곡이 도달하지 못한 빌보드 1위에 등극. 다만 피처링의 압도당하는 이 신예 래퍼의 존재감이 조금은 애처로우며, 자칫 원히트 원더로 그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참고로 이 곡을 통해 비욘세는 90년대, 00년대, 10년대에 이어 20년대에 빌보드 넘버 원을 가진 두번째 가수가 되었다. 어째 비욘세 이야기를 더 하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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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 ‘Suga'(2020)

평가: 3.5/5

부드러운 감언으로 상대를 타이르다가도 갑작스레 폐부를 찌르는 날붙이가 되는 ‘혀’. 그런 혀의 이중적인 면은 래퍼에게는 곧 무기다. 2019년도 발매한 믹스테이프 < Fever >로 이름을 알린 텍사스 출신 래퍼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은 전면에 크게 그려 넣은 입술과 키스를 의미하는 속어 < Suga >로 ‘혀’의 인상에 불을 지핀다. 마냥 설탕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은 내용물과 말이다.

일차원적으로, 컬트 영화 < 록키 호러 픽쳐 쇼 >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표지로부터 정욕적 색채를 끌어내고, 다음 단계로는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카디 비(Cardi B)가 자주 사용하던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식 진취적이고 주도적인 여성상을 주입한다. 재료 하나하나가 전부 도발적이다. 전작에서 묵직하게 자리 잡은 탄탄한 래핑과 여장부 이미지의 두 성분은 착실히 챙긴 데다, 현작에 와서는 강렬한 시각적 요소와 감각적 비트를 버무렸다.

뚜렷한 사운드를 지향한 덕에 다양한 스타일이 쉽게 다가온다. 둔중한 베이스라인이 특징인 트랩 ‘Ain’t equal’과 ‘Savage’. 칼을 꺼내 드는 효과음을 사용한 ‘Captain hook’에서는 독기가 스멀스멀 배어난다. 이후 켈라니(Kehlani)의 피처링이 어우러지는 ‘Hit my phone’과 ‘B.I.T.C.H’는 안정적인 훅 메이킹으로 포용적인 팝 랩을 구현하고,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팀버랜드(Timbaland) 등 유명 프로듀서의 손길이 닿은 ‘Stop playing’과 ‘What I needed’로는 감각적인 알앤비의 단내를 풍기기도 한다. 메간은 앞서 말한 혀의 이중성을 도구 삼아 마구 내두른다. 매서운 래핑을 쏘아붙이기도, 달콤하게 감싸기도 하기도, 그 과정은 놀랍도록 유연하다.

본래 5월에 발매 예정이던 < Suga >는 소속 레이블과의 문제로 불가피하게 예상보다 일찍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앨범이다. 우여곡절 가운데 급하게 출시된 작품이기에 짧은 러닝타임의 EP 형태로 나오게 되었지만, 되려 강점을 일축한 수록곡이 부담 없는 압권을 선사한다. 2019년도 XXL 잡지가 뽑은 신예 래퍼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새긴 메간 더 스탈리온은 결국 기대주라는 타이틀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셈. 그뿐인가, 동시에 자극적인 뒷맛을 남겨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감질나게 만들었다.

– 수록곡 –
1. Ain’t equal
2. Savage 
3. Captain hook 
4. Hit my phone (Feat. Kehlani) 
5. B.I.T.C.H. 

6. Rich
7. Stop playing
8. Crying in the car
9. What I nee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