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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Last Fantasy'(2011)

평가: 3.5/5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은 이럴 때 하는 말 아닐까. 또래답지 않은 음악성과 ‘좋은 날’의 대히트를 통해 단숨에 ‘대세’로 떠오른 소녀의 십대 시절 마지막 페이지는 초호화 뮤지션들의 참여로 21세기형 블록버스터를 예고한 상태였다. 그로 인해 생겨난 대중들의 기대감은 올해 컴백한 여느 가수들과는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을 실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이들은 이 소포모어 작의 결과물이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는 날카로운 잣대를 겨눴고, 아주 잘하지 않고서야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우려 역시 고개를 들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곡진의 면모가 공개됨과 동시에 두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하나는 정규작만이 가지는 일관성 있는 콘셉트적 재미, 또 하나는 그녀 자신이 프로듀싱에 대한 얼마간의 전권을 쥘 것이라는 예상(사실 나조차도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을 너무 과하게 바란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었다. 이처럼 결국 전문가들에 의해 무대가 마련되었다면, 결국 흐름에 상관없이 각 트랙에 있어서 작곡가들이 얼마나 아이유의 능력을 잘 이끌어냈느냐, 그리고 아이유 자신은 맡겨진 임무를 잘 이행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성에 차기엔 약간은 부족한 기운이 감지된다. 크레디트를 보고 입이 쩍 벌어진 이들이 다수 있었겠지만 좋은 스태프가 있다고 명반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무수히 확인해왔다. 기대한 것에서 한 발짝 뒤쳐진 듯한 인상은 무엇보다도 작곡가들의 욕심이 컸음을 반증한다. 아이유와 같은 캐릭터의 가수와 작업한 일이 드문 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는 의욕이 과잉이 되어 나타난 탓이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어수선함’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달랐기에 일어난 반작용현상이다.

가장 잘 타협을 본 것은 역시 정석원과 김광진, 라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전형적인 정석원 스타일의 대곡 지향 발라드 ‘비밀’은 김이나가 쓴 섬세한 가사, 적재적소에 파고드는 웅장한 코러스 워크가 ‘소녀의 짝사랑’이라는 테마를 극대화시키며 최고의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별을 찾는 아이’에서는 기교를 뺀 자연스러운 보컬에 서정적인 선율이 더해지며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또한 그 내츄럴함을 어쿠스틱 사운드에 얹은 ‘Teacher’는 오히려 작곡가의 색깔이 약했기에 빛을 본 트랙이다. ‘미운 오리’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았던 만큼 이런 스타일의 곡에서 확실히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해 후반부 트랙인 ‘4AM’이나 ‘라망(L’amant)’은 확실히 무리수처럼 보인다. 코린 베일리 래의 감성을 표현하기엔 아직 부족한 탓인지 그저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의 목소리로 들리는 전자나, 정재형만의 작법을 더욱 무겁게 가져가려다 오히려 주인공의 자리를 지워버린 아전인수격인 후자나 모두 이상적인 협연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그 밖에도 6분이라는 시간을 디즈니 식 오케스트라로 덩치만 불린 ‘Last fantasy’, 트렌드를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좋은 날’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너랑 나’ 등 지적대상 포인트도 상당수 존재한다.

잠깐, 여기까지는 ‘기대했던 만큼 해냈을까’라는 관점이었다. 그렇다면 잠시 힘을 빼고 여러 메인스트림의 결과물들과 나란히 놓고 본다면 어떨까. 재미있게도 ‘좋은 앨범’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앞에서 지적한 곡들도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이지 일정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딱히 모난 부분을 찾기 힘들다. ‘Last fantasy’도 멜로디는 확실히 살아 있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도 편곡을 조금도 고급스럽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 원곡에 비해 표현력만큼은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올해 들어 이렇게 곡간의 간격이 없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귀를 자극하는 모음집을 주류의 최전방에서 만나본 적이 있나 싶다. 잘 짜여진 스토리북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한곡한곡이 들을만한 ‘싱글 콜렉션’을 제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듯 실망을 느끼거나 불만을 토로할 법도 한 것이 사실이다. 호화진이 참석했음에도 이렇게 밖에 뽑아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능력 있는 프로듀서를 기용해 좀 더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겠냐고.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기도 하다. 수많은 리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에 조영철 프로듀서는 단기간 내에 기세를 이어갈 EP를 내는 대신 그 열기가 식더라도 1년을 걸려 유수의 음악가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이를 단순히 ‘안정을 위한 전략’으로만 볼 수 없는 요인이 여기에 있다.

즉,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나아가려는 중간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획이었고, 아이유 자신도 색깔을 잃지 않고 1990년대의 향수를 상당부분 살려 내며 가수로서의 능력도 욕먹지 않을 정도로 발휘해냈다는 것에서 이 소포모어 작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더욱이 다른 아이돌 가수와는 다르게 또래 아이들은 이름도 모르는 생소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고, 그들을 잊지 않고 한데 불러 모았다는 점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섭외에 공들인 것에 비해 녹음 자체에 기울인 시간이 짧아 보컬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많은 이들의 지원은 그녀의 잠재력을 확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음원 순위와 음반 판매량이 말해주듯 ‘완성도 있는 작품’에 귀착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수 본인에게 좋은 수업이 되었으리라는 점까지 포함하면 득이면 득이지 잃을 것은 없던 시도였다.

말 많았던 이 한 장의 시디에 붙인 < Last Fantasy >라는 문구를 보고 이보다 더 적합한 타이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두 단어가 아이유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가 그려내는 틴에이지 시절의 이야기를 넘어, 그녀의 존재 자체로 이 의미는 이어진다. 아이돌과 같은 스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친숙함을 지니며, 싱어송라이터인 동시에 가창력도 좋은 가수의 출현, 그것은 유명 뮤지션들조차도 앞 다투어 곡을 써주고 싶은, 한마디로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판타지’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꽤 수준급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부정하며 “더 좋았어야해!” 라고 질타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그 생각이 대중들에게까지 미쳐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13곡에 담겨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해야 할 때다. 아이돌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음악을 하고자 1990년대의 영웅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는 공로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고 그로 인해 결코 생명력이 짧지 않은 곡들이 탄생했음을 인정함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과대평가와 거품을 걷어낼 시기인 것이다. 이 한 장을 마지막으로 ‘마지막 판타지’라는 짐과 아이돌 스타라는 허물을 벗고, 멀지 않은 미래에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하는 20대의 아이유와 다시금 재회하기 위해서.

– 수록곡 –
1. 비밀 
2. 잠자는 숲 속의 왕자 (Feat. 윤상)
3. 별을 찾는 아이(Feat. 김광진) 
4. 너랑 나 
5. 벽지무늬 
6. 삼촌 (Feat. 이적)
7. 사랑니 
8. Everything’s alright (Feat. 김현철)
9. Last fantasy
10. Teacher (Feat. Ra.D) 
11. 길 잃은 강아지 
12. 4AM
13. 라망(L’am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