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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Viann) ‘The Baker’ (2019)

평가: 4/5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 Los Angeles >가, 혹은 썬더캣(Thundercat)의 < Where The Giants Roam >이 떠오른다. 부드럽게 조율된 피아노와 현악기의 선율 사이로 날카로운 소음, 땅을 기는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부피와 탄성을 지닌 웡키(Wonky) 사운드가 조립되는 선과 악의 공존. 비앙(Viann)은 보편적인 일상의 기본 물질과 죄악을 지닌 비주류의 원소를 한 데 모아 해체, 분석, 그리고 재배열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연옥을 설계한다. 그야말로 신의 신성한 과업, 창조주가 펼치는 ‘베이킹’이다.

개인의 능력을 감추기 보다, 오히려 최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여러 재료를 능란하게 다뤄온 본인 실력에 대한 믿음과 작품의 주체를 자신으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이는 작중 솔로 파트로 입증되는데, ‘Color me bed’의 변칙적인 트랩 비트에서 ‘시가렛’으로 이어지는 워프 레코즈(Warp Records) 풍의 베이스 사운드, 위협적인 전자음이 날뛰는 ‘Hub’와 ‘막내’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렉트로니카와 재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현란함은 같은 계열의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을 지향하는 아티스트 ‘XXX’의 날카로운 청적 쾌감보다는 조금 다른 결인, 미묘하고도 아늑한 안정감이다.

피처링 선택 또한 매우 탁월하다. 아티스트 특성에 맞게 변모하는 비트 메이킹이 작품 전반에 드러날뿐더러, 그의 위대한 천지창조 과정에 기꺼이 참여한 인물들 또한 날렵한 솜씨로 비트와 시너지를 이루는 모습이다. 진보의 그루비한 감각을 부각하는 ‘Got it all’, 후디의 차분한 기조를 따라가는 ‘0과 1 사이’, 그리고 수민의 몽환적인 음색을 팝 사운드로 구현한 ‘4ㄹ5’는 색채를 대상에 일치시킴과 동시에 몰입도를 깨트리지 않고 이어 나간 사례다. 랩의 영역 또한 건재하다. 이현준의 격한 래핑을 온전히 담는 ‘시가렛’과 쿤디 판다의 박자감을 스타가토 형식으로 돋보인 ‘Menace’, 특히 비와이의 화려한 랩 기술이 드러난 ‘Golden Fleece’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비트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트랙이 거듭함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법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실로 놀라운 현장이다.

비앙은 앨범에 ‘매슬로(Maslow) 5대 위계질서’ 이론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부터 자아실현에 이르는 단계까지, 트랙을 나아갈수록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태도와 거친 표면을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서사가 그렇다. 이는 마치 진정한 예술가로 승화하려는, 숭고한 포부이자 음악적 욕구 해소다. 게다가 다소 거창한 주제임에도 접근성 좋은 재즈 요소와 앨범을 하나로 관통하는 메시지로 기반을 다진 덕일까, 내용물이 화려함에도 난잡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만 쉬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쿤디판다와 합을 맞춘 < 재건축 >에서 동양적이면서도 신묘한 프로듀싱으로 이름을 알린 비앙, 그는 < The Baker >로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내로라하는 국내 프로듀서 반열에 쐐기를 박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록곡 –
1. Color me bad
2. Cigarette (Feat. 이현준)
3. Got it all (Feat. JINBO The SuperFreak)
4. Menace (Feat. Khundi Panda)
5. 차원 (Feat. HYNGSN)
6. 우리 집
7. 4ㄹ5 (Feat. SUMIN & Khundi Panda)
8. HUB
9. Jealousy (Feat. HYNGSN)
10. Golden Fleece (Feat. BewhY)
11. 막내 (Feat. NOT EASY)
12. TEST. (With. Eden Highway)
13. 말 한마디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 Your Truth (Feat. Noogi)
14. 0과 1 사이 (Feat. Hoody)  
15. 돈 (With. FR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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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주파 ‘곡면'(2019)

평가: 2.5/5
  1. 동양고주파. 이들이 어떤 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핵심에는 피아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중세 아시아의 타악기 양금과, 이를 연주하는 윤은화가 있다. 그와 함께,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일원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최우영의 베이스와 장도혁의 퍼커션은 동양적인 록밴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조선 말 전통음악에 쓰이던 악기로 록을 연주하는 실험정신은 흥미로운 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다. 첫 정규앨범 < 곡면 >으로 이들은 록과 국악에서 각각 가져가고 버려야 할 부분을 가늠하고 있다. 다만 아직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첫 곡 ‘파도’부터 마지막 곡 ‘잠’까지, 모든 곡에 가사가 없다. 그나마 ‘모서리’의 코러스를 제외하면 사람 목소리도 찾을 수 없다. 자연히 악기들 간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 이음매는 베이스다. ‘상자’를 보자. 묵직한 메탈의 에너지를 가져오면서도 양금의 멜로디 라인을 함께 연주하며 따라가거나, 퍼커션의 리듬을 그대로 받쳐준다. ‘파괴’와 ‘먹이’ 같은 긴장감 넘치는 트랙에서도 그 역할이 두드러지고, ‘과거’의 펑키한 베이스라인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떠오를 정도다.

    그럼에도 역시 귀를 사로잡는 것은 동양의 소리, 양금이다. 사다리꼴의 상자 위에 얹은 금속 줄을 가느다란 대나무 채로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이 서정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소리에 베이스와 퍼커션이 자리를 내줄 때 그 신선함은 빛을 발한다. ‘샘’에서는 피아노와 같은 차분함을, ‘노니’에서는 톡톡 튀는 퍼커션에 힘입은 발랄함을 느낄 수 있다. 점묘화를 그리듯 짧게 음을 연타하는 양금의 특성상, ‘은하’나 ‘섬’의 생동감보다는 ‘잠’에서 연출하는 신비감이 놀랍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와 대비되는 단단한 질감의 소리로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해낸다.

    아쉬운 점이라면 퍼커션이다. 양금의 날카로운 소리와 베이스의 묵직함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강렬한 곡들의 에너지가 반감된다. 새로운 악기의 조합에 어울리는 스타일의 작곡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올만한 단점이다.

    < 곡면 >은 이 맥락 속에서 바라보자면 의미 있는 앨범이다.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며 서사적인 성격을 띠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연장선에 있고, 국악을 통해 록의 ‘진보’를 동쪽으로 끌고 오려는 시도 역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만큼 동양고주파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록의 묵직함을 재현해 듣기 쉬운 국악을 만들든, 사이키델릭함을 추구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든 어느 한쪽도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동양고주파가 마주한 딜레마다.
  • – 수록곡 –
    1. 파도
    2. 그때와 지금
    3. 상자
    4. 밝은 산 
    5. 먹이
    6. 샘
    7. 은하
    8. 터널
    9. 과거
    10. 모서리
    11. 파괴
    12. 노니 
    13. 섬
    14.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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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 ‘RE_vive'(2019)

평가: 2/5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특별하다. 2006년에 데뷔해 ‘멤버 교체 없이 가장 오래 유지된 걸 그룹’이란 수식어가 말해주듯 알앤비 보컬 팀으로 시작하여 뒤늦게 ‘아이돌’이 된 후발주자가 과포화된 시장을 변화와 독창성이란 무기로 버텨냈다. 최근 방영한 엠넷 프로그램 < 퀸덤 >에서 러블리즈가 커버한 ‘Sixth-sense’ 무대를 보고 대중이 아쉬워한 것은 그들이 구축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그리워해서이다. 타의로 꺼내진 추억이지만 그만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이다.

정규 6집 앨범 이후 4년 만에 발매된 < RE_vive >는 그런 기대를 받으며 공개됐다. 열 개로 구성된 수록곡이 모두 리메이크인 것도 확실한 자신을 믿기에 가능한 시도였지만 자충수에 빠져버렸다. 수민이 편곡한 ‘결국 흔해 빠진 사랑 얘기’는 레트로란 단어에 집착한 나머지 19년 전 윤상의 오리지널보다 세련되지 못하고 지루해졌으며 두 개의 타이틀 중 하나인 베이시스의 원곡 ‘내가 날 버린 이유’도 마찬가지. 아이유의 ‘좋은 날’ 등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이민수 작곡가는 웅장한 분위기에 취해 스트링을 과하게 덧칠했고 가수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미료의 랩 또한 어긋난 구성에 일조했다. 앨범에서 친근한 원곡을 이길 정도로 뛰어난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원더우먼’만이 앨범을 유일하게 빛낸다.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수록곡으로 윤종신이 작곡하고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이 부른 원곡은 지 고릴라의 펑키(funky)한 리듬과 현악이 가미되어 수준 높은 댄스곡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뮤직비디오는 남성이 여장한 것을 뜻하는 드래그 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며, 턱시도를 입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대비되어 변화한 시대를 가볍지 않게 다룬다. 그들이기에 가능한 접근법이다.

< RE_vive >의 의미는 뮤직비디오와 지금 세대에게 잊힌 명곡을 소개해주는 것에 그쳤다.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꾸준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그들이었지만 이번 작품은 복귀를 축하하기는커녕 드래그 퀸과 원작자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었다.

옛것을 꺼내와 재해석하는 ‘뉴트로’는 유행처럼 번져 대중음악에도 스며들었다. 다만 이런 작법은 비교될 곡이 있기에 가혹하며 브라운 아이드 걸스도 위험한 도전에 나섰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누구보다 독보적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빛났던 과거에 의지하지 말고 뚜렷한 색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 수록곡 –
1. 결국 흔해 빠진 사랑얘기 (윤상)
2. 내가 날 버린 이유 (베이시스)
3. 원더우먼 (조원선) 
4. 애수 (god)
5.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은하)
6. 사랑밖엔 난 몰라 (심수봉)
7.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임현정)
8. 하늘 (어떤날)
9. 초대 (Feat. 엄정화) (엄정화)
10. 편지 (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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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킴(Lim Kim) ‘Generasian'(2019)

평가: 3.5/5

과격한 ‘Sal-Ki‘로 김예림을 살해한 림킴은 < Generasian >으로 본인의 이미지 변신이 즉흥적인 일탈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얼마나 독한 결심인지 이름과 배경 지식을 가리면 그 누구도 과거의 그가 < 슈퍼스타 K3 >의 투개월로 데뷔한 솔로 가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유년기 유학 경험으로부터 발견한 ‘동양’과 ‘여성’의 정체성 아래, 거칠고 파괴적인 선동과 실험을 이어가는 림킴에게선 일단 ‘단단히 준비된’ 모습이 포착된다. 

‘민족요’의 수미상관 구조 속 노래들은 확실히 충격과 공격, 전복을 의도하고 있다. 긴 공백기의 내면 탐구 과정을 호기롭게 ‘신세계’라 선언하는 ‘민족요(Entrance)’의 우리 가락부터 ‘아시아 현상’을 노래하는 ‘Yellow’, 인더스트리얼으로부터 잔뜩 벼린 날붙이들의 거친 충돌 ‘Digital khan’과 신비로운 ‘Mong’, ‘Yo-Soul’까지.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티(No identity)와 림킴은 전에 없던 소리와 전에 없던 콘셉트를 향해 거침없이 진군한다.

변화의 중심축이 잘 잡혀 있어 그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호접몽’의 개념을 빌린 ‘Mong’과 마법(Magic)의 한자어 ‘Yo-Soul’의 신비로운 멜로디에서 림킴은 자연스러운 뮤즈가 되어 최적의 가창을 들려준다. 본인이 보컬보다 더 자연스럽다고 밝힌 랩도 ‘Sal-Ki‘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일본 교복, 조신함, 중국 경극 등으로 희화화된 동양 여성의 고정관념을 비틀어 반항하는 ‘Yellow’의 삐딱함, ‘Digital khan’의 당당함 모두 무리 없이 소화한다.

유교 문화권 하의 억압적인 젠더 구조, 가부장제 사회 속 고통받는 한국 여성들에게 림킴의 행보와 음악은 상당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동시에 < Generasian >은 무국적을 지향한다. 인터넷 시대 ‘디지털 유목민’을 유목 민족의 지도자 ‘칸’으로 격상하여 ‘Digital Kahn’이라 선포하고, ‘민족요(Entrance)’를 제외한 모든 곡을 영어 가사로 쓴 것이 그 증거다. 언뜻 장점 같지만, 언어나 문화 등 민족적 색채를 더 강화하는 것이 최근 세계 시장에서 더 호응을 끌어냄을 고려해보면 단점이다. 

림킴은 수많은 아시아 여성 뮤지션들의 발화에 분노와 전통의 언어를 더하며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우리의 민속 음악, 실험적인 테크노, 힙합을 자유로이 풀어내는 모습은 영국의 엠아이에이(M.I.A), 아프리카 토속의 리듬을 전자음으로 풀어낸 뉴욕의 제이린(Jlin)을 연상케 한다. 아시아의 경우 대만의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등 중화권 위주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정체성을 당당히 표현하며 편견에 맞서고 있는데, 림킴이 이 흐름을 영리하게 포착했다. 

아티스트 개인에게 < Generasian >은 훌륭한 ‘전세 뒤집기’지만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작품인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다. 대개 독특한 콘셉트로 승부하는 아티스트들은 구성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권을 꽉 쥐고 있는데, 림킴의 ‘동양 여성’은 자주적인 모습 아래 앞서 언급한 레퍼런스와 프로듀서의 색채가 꽤 짙다. 거친 신생 혁명 여전사의 성공 여부는 정체성의 활용과 정체성에 매몰되는 것 사이의 진지한 고민에 달려있다.

– 수록곡 –
1 민족요 (Entrance)  
2. Yellow
3. Mong
4. Digital khan  
5. Yo-soul 
6. 민족요 (E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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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George) ‘Leeee’ (2019)

평가: 3/5

< Leeee >는 무채색의 영역에 맞닿아 있다. 흰 배경과 흰 티셔츠, 컴퓨터로 모델링 된 무표정의 사내는 깔끔하고 순수한 첫인상을 자아낸다. 표지부터 의도적으로 강조되는 무색, 백(白)의 반복은 단조로운 무개성의 의미가 아니다. 기교 한 줌 섞이지 않은 담백한 음색으로 다양한 색을 포용하겠다는 포부이자, 어느 물감이든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 백색의 도화지다.

죠지는 백지 위로 먼저 자신의 작업 세계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의 선으로 도안을 그린다. 가볍고 나른한 포크 멜로디의 첫 트랙 ‘Idkyet’가 그렇다. 흐릿하지만 ‘Nike shoes’가 연상되는 리듬과 ‘Aqua man’의 가사 ‘헤엄, 헤엄, 헤엄’을 작게 읊조리는 부분은 평소 자주 듣고 좋아하던 가수인 빈지노에 대한 오마주다. 빈지노의 랩 스타일을 고스란히 차용했던 초창기 작품 ‘The bottom of the sea’와는 다르다. ‘Idkyet’은 그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내고 소화하는 데 집중한다.

차분한 어쿠스틱 스타일로의 편곡을 거친 ‘하루종일’ 또한 기리보이의 원곡이 청사진이다. 기존의 팝적인 면을 모두 덜어내고 기타만 남긴 간결한 악기 구성은 죠지의 군더더기 없는 수수한 보컬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길을 터준다. 그가 구상하는 형태는 단순 복제가 아니다. 타인의 스케치를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포인트를 집어내 온전히 자신의 그림체로 바꾸는 영리한 재창조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죠지만의 색이 첨가된다. 전작 싱글 ‘Boat’에서 선보인 특유의 가사 센스가 그 정체다.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다분히 현실적인 단어와 일상에서의 면밀한 관찰로 얻어낸 표현은 청자에게 보편적 공감을 유도한다. 각자 삶에 부딪혀 서먹해진 가족의 단면을 풀어낸 ‘족보의 몰락’를 보자. 덤덤한 어투로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아마도 족보의 몰락’을 읊조리는 훅은 가벼운 말장난이지만 소소한 조소와 위트 있는 인상을 남긴다.

일률적인 태도로 선과 틀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회를 노래한 ‘어쩌면’은 구어체를 중심으로 한 노랫말이 핵심이다. 곡은 담화에 가까운 차분한 어조로 진행되지만, 그 내용은 젊은 세대의 허무주의를 관통하는 진지한 감상이 채워지며 조금은 뼈아픈 기시감을 선사한다. 차밍 립스(Charmimg Lips)의 사무치듯 울리는 기타는 넉넉한 에코를 조성하며 분위기에 걸맞은 오묘한 공허함을 구현한다. 이는 가사와 교묘히 배합되며 몰입감을 올리는 요소다.

다섯 곡이라는 아기자기한 규모에 전반적으로 심심하고 무난한 프로덕션은 전작 < Cassette >의 작품을 대표하는 몽롱하고 신비로운 풍경과 돋보이는 개성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즐길 거리가 다분히 포진된 작품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 Leeee >는 여러 스타일을 본연의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려낸 조그만 화폭이다. 어느 색으로도 칠해질 수 있는 백의 정체성을 지닌 죠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있다. 그저 단순한 사랑 노래를 흐느끼는 흔한 알앤비 아티스트가 아닌 우리네 삶과 밀접해 있는 가장 보통의 위치에서 말이다. 

– 수록곡 –
1. Idkyet
2. Aura (Feat. 샘 킴)
3. 족보의 몰락
4. 어쩌면
5. 하루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