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씨의 노래들은 주요 멜로디와 코러스가 뚜렷해서 금방 익숙해진다. ‘Teddy bear’도 마찬가지다. 프로듀서 블랙 아이드 필승과 하이업 엔터테인먼트의 작곡 팀은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이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의 ‘Tomboy’ 이후 트렌드로 정착한 팝펑크에 댄스 팝을 융합한 ‘Teddy bear’는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미국의 아이돌 여가수 스테이시 오리코, 애슐리 심슨, 힐러리 더프, 린제이 로한의 노래처럼 속도감 있는 흥겨움 속에 확실한 후크를 장착해 처음 들어도 흥얼거리게 만든다. 여기에 모든 멤버가 코러스로 참여하는 스테이씨의 주특기가 발휘되어 우리를 양지로 안내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인용구에 어울리는 다작이다. 자신의 곡은 물론 다른 아티스트의 피처링까지 참여하며 ‘Counting stars’로 시작해 ‘Love me’와 ‘자격지심’까지 이어지는 연타석 안타를 이어 나가려 한다. 예능이나 새로운 컨텐츠가 아닌 음악으로 승부하는 정공법이다.
이번엔 5년 전 무료 음원 공유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했던 곡을 재녹음했다. 과거에 비해 목소리를 담는 방식이나 래퍼로서 진화한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지만 지난 작업물에 기대야 하는 스타일의 정체는 비오의 이름을 좁게 가둔다. 몇 년째 힙합 신에 만연한 싱잉랩을 빈복하면서 멜로디는 더 단조롭다. 곡의 의의는 오랜 시간 비오의 발전을 지켜봐 온 골수팬을 위한 팬서비스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한 여성의 심정이 ‘Cupid’와 이전 앨범 수록곡 ‘Lovin’ me’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노래는 프리퀄 싱글이다.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메트로놈과 마지막에 들리는 ‘Lovin’ me’ 건반 리프의 연결고리는 지금까지 발표한 다섯 곡이 하나의 유기체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샹송 분위기의 스캣에 이어지는 니요의 ‘Because of you’ 같은 정직한 8비트 박자는 피프티 피프티가 변하지 않은 다채로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늑하고 편안한 아란의 목소리는 포근하고 수정처럼 맑은 시오의 음색은 귀여운 새침데기를 연기한다. 두 메인 보컬의 앙상블은 현존 걸그룹 중 최상위고 작사에 참여한 키나의 랩 메이킹과 톡 쏘는 래핑조차 아름답다. 이런 조화는 후반부에 조가 바뀌는 구간에서도 네 멤버가 흔들리지 않는 원동력이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인 새나의 보컬이 줄어든 것은 안무 창작에 참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프티 피프티는 ‘Cupid’로 데뷔 3개월 만에 자신들의 지분을 늘리면서 본인들의 색깔도 찾았다. 50과 50이 만나 점점 100에 가까워진다.
엔야의 몽롱함과 뉴진스의 미니멀함이 힘을 합쳤다. 잔잔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저드의 목소리 또한 음악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큰 기대 없이 그저 그런 알앤비라고 생각한 순간 노래는 변신한다. ‘변화는 없겠지 no more’라는 다소 모순된 가사와 함께 왜 이제 나왔지 싶은 비트가 다시 음악을 어루만진다. 여러모로 재치 있다.
2022년 해체했던 하이라이트레코즈에 있으면서 차근차근 알려온 힙합, 알앤비의 이미지를 넘어 전자 음악 스타일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사운드 자체의 개성이 확실하게 자리잡혀 있기에 저드라는 음악가는 장르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음악과 음향이 평소보다 과하지만 과하게 들리지 않아 과몰입하게 만드는 싱글이다.
지난 몇 년간 릴 핍(Lil Peep)과 릴 우지 버트 등 이모(Emotional) 힙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의 영향이 전 세계로 빠르게 뻗었다. 국내에서는 싱잉 랩의 인기가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음악가가 감성적인 랩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프로듀서 토일은 그 선봉에서 즉각적인 트렌드 반영과 대중적인 멜로디의 융합으로 빠르게 힙합 신 중심에 섰다.
지난해 힙합플레이야와 힙합엘이가 공동 주관한 < KHA 2022 >에서 올해의 프로듀서를 수상한 토일이 같은 레이블 소속이자 < 고등래퍼3 > 출신의 래퍼 지스트와 합작 앨범 < Toast >를 발매했다. 두 사람의 이름을 융합해 건배라는 뜻을 만들어낸 제목이다.
앨범은 프로듀서로 참여한 < 쇼미더머니 10 >에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놓았다. 방송을 통해 보여준 곡의 장르가 스펙트럼이 좁았던 모습처럼 여전히 지난 시간 반복해왔던 스타일을 재생산한다. 다만 경연에 비해 자율성이 주어진 프로젝트인 만큼 본인의 음악을 구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직접 대입해 장점을 극대화한다.
래퍼로 등장했지만 알앤비 가수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지스트와의 합작인 만큼 앨범을 힙합에 한정하지 않고 보컬 위주의 곡들로 채웠다. 첫 번째 곡 ‘Friends with benefits’부터 랩이 등장하지 않고 ‘Puzzle’에는 1인 밴드 가수 치즈가 참여하며 힙합을 확실하게 뒷 배경으로 보낸다. 애매한 중심을 지키기보다는 완전히 선로를 변경해 확실한 방향성을 취한다.
전략은 성공적이다. 한 우물을 파 수원을 발견한 듯 비트의 완성도는 높아졌으며 보컬의 선명한 멜로디는 호스트나 피처링 할 것 없이 적절한 녹음 방식과 이펙트로 완전히 곡에 녹아든다. 1990년대 뉴잭스윙을 흡수한 ‘이상형’이나 2000년대 초중반 미디움 템포 알앤비에 현재의 색을 입힌 ‘정리정돈’은 음반의 일체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행을 빠르게 반영해 듣는 재미를 더한다. 토일은 완성도에서 나오는 자기복제와 개성의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내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