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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한, 챈슬러 ‘Beautiful’ (2021)

평가: 1/5

알앤비 싱어 김조한과 주로 케이팝 아이돌 곡들을 만들어온 프로듀서 챈슬러의 만남을 산술적으로만 예측하면 업템포의 알앤비 노래일 확률이 높았다. 초점은 그 검은색의 농도와 채도. 하지만 그 결과물은 1980, 1990년대의 감성과 분위기를 지닌 순도 100퍼센트의 도회적인 알앤비 발라드다.

파스텔 톤 사운드 안에서 더 끈적끈적해지는 관능적인 가사는 걸그룹 쥬얼리의 멤버였던 김은정의 손끝에서 나왔다. 여기에 챈슬러의 편하지 못한 가성과 후반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김조한 특유의 주입식 감정과잉 보컬이 섞이며 화려함만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애석하게도 과유불급은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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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HUTA) ‘알아 (Good night)’ (2021)

평가: 2.5/5

그룹 비투비의 메인 래퍼 이민혁이 2019년 솔로 앨범 < HUTAZONE > 이후 2년 만에 발매한 싱글이다. 전작을 포함한 여러 작업에서 팀 내 포지션과 다른 보컬적인 능력을 꾸준히 드러냈고, 이번 신곡 ‘알아 (Good night)’에서도 그 흐름을 이어간다. 재즈풍의 피아노 연주와 현악기 세션이 포근한 계절감을 재현하며, 자신의 감정을 덜어낸 빈자리에 위로를 가득 채운 목소리가 담백하다. 편곡과 가창에서 목적을 드러낸 곡은 따스하게 작동하며 청자의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지만 ‘겨울 감성’ 이상의 감상을 끌어내지 못한다. 오래도록 품기엔 다소 울림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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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 슬롬(SUMIN & Slom) ‘Miniseries’ (2021)

평가: 3.5/5

추종자를 위한 단편극

만약 진취적이고 감각적인 K팝을 원하는 이라면, < Your Home >부터 찬란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싱어송라이터 수민의 행보를 되짚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현 힙합 신이 내비치는 대중적 동향을 파악하고 싶은 이라면, 작년 < 쇼미더머니 9 > 경연곡 중 프로듀서 슬롬의 손길이 닿은 곡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욕심을 더 내어 이러한 감각성과 대중성을 성실히 만족하면서도, 동시에 완성도 높은 결정체를 갈망한다면 그 해답은 < Miniseries >가 될 것이다.

공인된 두 아티스트가 만나 수려한 진척도를 자아냈다. 비트 메이킹을 맡은 슬롬이 배후에 깔리는 윤곽을, 가사와 보컬을 맡은 수민이 전면에 드러나는 퍼포먼스를 담당하며 분리된 환경 속 각자의 장점을 골라 담는 작업을 펼친다. 이어지는 결합의 과정은 실로 안정적이다. 개성파 수민의 정열적인 빨강과 침착한 성향인 슬롬의 중용적 노랑은 정교하게 융화되며 이내 앨범의 상징적 색채인 주황빛으로 거듭난다.

사랑이라는 소재를 자잘하게 다룬 트랙들이 대열을 맞춰 병렬적으로 배치된다. 허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급과 진폭, 하물며 방향까지도 전부 다르다. 검질긴 네오 소울로 상대의 환영을 붙잡으려는 ‘신기루’, 지펑크의 그루브를 전가하며 댄스홀의 광경을 그려내는 ‘곤란한 노래’, 강박적 박자의 일렉트로닉 성분을 담아내며 끄덕임을 유도하는 ‘여기저기’ 등 각각의 트랙은 형상을 거듭 교체하며 표현의 범주를 계속 확장해 나간다. 이는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쉽게 일축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두 뮤지션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강조하는 지점이다.

말 그대로 ‘착했다가도, 스윗했다가도, 거칠’다. 반복을 쉽게 허용하지 않되 관성으로 단단히 이어 붙인 작법은 집중을 깨트리지 않는 선에서 길이와 점성을 유연하게 조절하며 통일감을 부여한다. 다만 능란한 변주로 독특한 인상을 각인한 초반부에 비해, 인스트루멘탈 트랙 ‘ㅜ’ 이후 비교적 정적으로 구성되는 후반부는 다소 무던하게 다가올 여지를 남긴다. 개러지 비트를 차용한 변화구 ‘한잔의 추억’이 경쾌하게 마무리를 장식하기 전까지 과도하게 평균을 주장한 구간은 작중 유일한 평범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쉽게 화려하기를 거부하고 얻어낸 고도의 세련미다. 늘 유행의 최전선을 달리던 수민의 캐주얼한 음악성이 다듬기에 최적화된 슬롬의 프로듀싱과 상호적으로 맞물려 대중 친화적 양식으로 여과된 모양새다. 펀딩 제작이라는 태생부터 강한 도전 정신을 내비치듯, 극도로 중도의 미학을 지향한 < Miniseries >는 어떠한 접두사에도 어울리는 영민한 보편성과 종합성을 선사한다. 마치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추종자라면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을, 어떠한 하나의 ‘잘 만들어진 얼터너티브 알앤비 앨범’의 규범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 수록곡 –
1. 신기루
2. 맞닿음
3. 곤란한 노래
4. 여기저기

5. 어떻게 될 것 같애
6. ㅜ
7. 망가진 사이
8. 일단은
9. Trap
10. 한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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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Savage’ (2021)

평가: 3.5/5

차세대 SMP의 이상향

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실재하는 우주의 변천사와 평행을 달린다.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소멸했지만 그들의 파편은 지금까지도 가요계를 수놓고 있다. 허공에 흩뿌려진 유산은 팽창의 자양분이 되어 2020년 마침내 일원화된 신세계 SMCU(SM Culture Universe)를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선배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태어난 거대 세계관의 주인공이 바로 걸그룹 에스파다.

팀 이름부터 방향성은 명확했다. 인간 멤버들이 자신의 데이터에 기반한 아바타 ‘아이(æ)’를 만나 경험하게 될 메타버스 스토리. 미래 기술과 음악의 접목이란 사실만으로 등장 전부터 이목이 쏠렸다. 낯익은 이미지로 점철된 데뷔곡 ‘Black mamba’가 그 기대에 미치진 못했으나 올해 손목을 꺾는 디귿 춤과 쫀득한 발음을 곁들인 ‘Next level’이 인기를 끌며 에스파는 단숨에 대세로 우뚝 섰다. 산업 간의 융합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힌 건 결국 음악이었다.

유행의 본질을 파악하고 돌아온 이들의 음조는 더욱 맹렬해졌다. 강렬한 비트와 찢어 늘인 신시사이저 그리고 극적인 고음 애드리브까지, ‘Savage’의 기틀은 보아와 동방신기가 프로듀서 유영진과 함께 주도했던 2000년대 중반 SMP다. 물론 그 시절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후렴구는 엔시티 127의 대표곡 ‘Cherry bomb’처럼 짧은 호흡으로 받아치며 중독성을 배가하고, 브릿지는 엑소의 알앤비 발라드 ‘What is love’를 들여와 보컬 기량을 발산한다. 더불어 둔탁한 타격의 틈엔 영국 일렉트로닉 레이블 PC 뮤직의 시그니처 샘플들을 분절시켜 입체감을 높인다. 기획사의 노하우를 집약하고 하이퍼 팝까지 이식한 K팝 트랙은 혁신적 관점으로 시대를 매끈하게 앞서간다.

뒤이은 ‘I’ll make you cry’까지 야성적인 자세로 일관한 데 비해 후반부는 톤을 낮추며 캐주얼한 면모를 드러낸다. 몽롱한 멜로디의 ‘자각몽’은 이달의 소녀나 레드벨벳의 드림 팝이 스치고, 자존감이 충만한 ‘Yeppi yeppi’는 있지의 ‘달라달라’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비교적 친숙한 질감이 자칫 독보적인 매력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채로운 전자음과 목소리의 블렌딩은 음악적 친밀감을 제고하며 타이틀곡의 접근법이 낯선 이들마저 새로운 차원으로 빨아들인다.

음악 외의 콘텐츠도 흡인력을 강화한다. 어린이 만화에 나올 법한 ‘ænergy’의 대사나 ‘Savage’ 뮤직비디오 속 2D 애니메이션은 키치한 즐길 거리다. 막연한 연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훗날을 위한 면밀한 설계로 짐작된다. 현실의 ‘나’와 가상의 또 다른 자아 ‘아이’는 익명에 가려진 시스템의 양면이고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빌런 ‘블랙 맘바’는 딥페이크를 비롯한 기술 범죄의 초상이다. 허구의 이야기 속 투쟁은 디지털 사회의 실태고 이를 조영하는 비주류 매체는 유머 섞인 지적질을 날린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서브컬처의 상승으로 근래 보기 드문 아이돌식 풍자를 완성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메타버스는 점점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여전히 흐릿하다. 엉성한 3D 모델링과 각종 표절 논란만 봐도 생소한 개념은 그저 키워드 마케팅에 불과해 보인다. 그럼에도 네 명의 소녀와 네 개의 홀로그램이 그려갈 문화 행보는 근시안적 태도의 불손함을 상쇄한다. 탄탄한 가창력과 과거의 질료로 구축한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다각적인 고발과 비판의 메시지. < Savage >는 미디어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며 가장 이상적인 SMP를 주조했다. 시대가 공증할 수 있는 ‘Iconic’한 존재, 선구자의 발걸음에 신세기의 성패가 달렸다.

– 수록곡 –
1. ænergy
2. Savage
3. I’ll make you cry
4. Yeppi yeppi
5. Iconic

6. 자각몽 (Lucid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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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랑 인터뷰

이랑은 어디에나 있다. 인터넷상에는 그가 쓴 많은 글이 넘실거리고 그를 주목한 기사도 한가득하다. 심심찮게 이랑이 그린 그림과 그가 작업한 영상 작업물을 만나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나왔다고 해도 다 몰라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라는 그의 말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랑은 때때로 쉽게 가려진다. 솔직한 그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궁금한 것을 거침없이 질문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가감 없이 목청을 높인다. 동시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두려움, 공포, 부담감을 숨기지 않는다. 다수가 마침표를 찍고 그저 멈춰 있을 때 그는 그 위에 갈고리를 걸어 물음표를 만든다. 정규 3집 < 늑대가 나타났다 >에는 그런 그가 사회를 향해 던진 커다란 의문 부호들이 가득하다. 본명이자 외자인 ‘이랑’ 대신 더 다정하게 ‘랑’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그를 만났다. 10월 중순 치른 수술 이후 별다른 휴식 없이 연일 일정을 소화했다는 랑에게서 투명한 피로가 스쳐 갔다.

랑이가 나타났다!”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쉴 겨를 없이 복귀한 거 같은데.
이미 10월 일정이 다 차 있는 상태에서 수술할 날짜를 어렵게 뺐다. 소화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계속 메일이 온다. SNS 같은 데를 보면 ‘바쁘다고 하더니 다 하네’ 싶기도 할 거다. 그래서인지 연락이 계속 오고 있다. 난감하다.

거절을 잘 못 하는 걸까?
거절도 많이 하는 편이다. 거절한 메일을 따로 모아두는 메일함 폴더가 있을 정도다.

거절의 기준이 있을지.
기준이 있어도 거절을 할 수 있게 된 건 얼마 안 됐다. 나를 알리는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무조건 많이 했다. 길에서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무료로 자주 하고. 지금은 경력이 쌓였으니까 이래저래 해서 못하겠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래도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거절이 굉장히 두렵다. 거절하는 순간 다시는 내게 일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달까.

랑의 음악이 가진 메시지가 때로는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일 등 해석하기에 따라 제도권에 반하는 길을 가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트로피 사건’ 이후로 지금도 욕 댓글이 달린다. 제일 재미있었던 댓글은 ‘이번만 듣고 다시는 안 듣겠다’는 글이다. 싫어하기로 마음을 다잡는 건데 솔직히 좀 귀여웠다. (웃음)

악플에 의연해 보인다.
당연히 상처 입는다. 다만, 익명성을 가지고 공격은 쉽게 하는데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지지하는 게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어떤 논란으로 인해 공격을 받고 있으면 실명을 드러낸 분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준다. 문화가 그렇다. 나를 직접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상황이 있어도 믿고 지지해준다. ‘프라우드(자긍심)’를 갖게 된다. 특히 트로피 때는 욕을 많이 먹었는데 예정된 일이 하나도 끊기지 않았다. 신뢰를 주고 있음을 느낀다.

앞에서 어떤 목소리를 시원하게 내기도 하고 동시에 내면의 힘듦, 불안함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인간이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매체에 노출이 되면 쉽게 ‘캐릭터’가 생긴다. 그걸 유지하기 위한 강박에 시달린다. 나아가 캐릭터가 밈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면 그 외의 수많은 면을 눈치껏 숨기고 자기 조절을 해야 한다.

내 캐릭터는 좀 시끄럽고, 그러니까 말을 자꾸 하고 의견을 내는 사람일 거다. ‘세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말을 하고 싶을 때 할 뿐이다. 그로 인해서 공격받으면 슬프고 무섭고 그런 걸 동시에 다 느낀다. ‘저 사람은 강하고 세니까 상처를 안 받겠지’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설리가 죽은 게 큰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부여한 캐릭터 때문에 특히 ‘노브라’를 가지고 정말 많은 얘기가 오갔고 그걸로 그를 괴롭혔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그가 얼마나 다양한 면을 혼자 끙끙대면서 감추고 외로웠을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랑이를 너머 사회로, 그러니까 이랑

정규 3집 < 늑대가 나타났다 >는 유독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소리친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1집 < 욘욘슨 >(2012)는 기존에 써뒀던 노래가 나왔던 거라 가수라는 직업의식도 없었다. 1집을 만들 때 20여 곡이 있었는데 실물 앨범에 12곡만 담겼다. ‘그냥 있는 노래를 다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였다.

1집에 안 넣은 곡들과 새로 쓴 노래를 집합해 2집 < 신의 놀이 >(2016)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실물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그런 식으로 경험들이 쌓이고 또 누군가 듣고 반응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책임 의식이 생겼다. 가장 듣는 사람을 고려하며 쓴 게 < 늑대가 나타났다 >다. 아티스트로서의 책임 의식, 프라이드를 반영했다.

영상감독, 작가, 만화가 외에 ‘가수’라는 직업 정체성도 받아드린 걸까?
딱 부여받은 정체성만 보여주소서 하는 분위기를 못 참는다. 공연할 때도 ‘지금 무섭다’, ‘객석이 안 보여서 무섭다’라고 자주 말한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서 찬양받는 존재가 되는 걸 못 참는다. 객석에 불을 밝혀서 어떤 사람들이랑 만나고 있는지 알고 들어가면 좀 편안한데 쥐 죽은 듯 고요하고 껌껌한 곳에서 다수가 나만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무섭다.

이유는?
실수했을 때 돌이킬 수 없지 않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부담이 제일 크다.

지난 2집 < 신의 놀이 >와 달리 이번 음반은 실물 CD를 제작했다.
사실 한국판은 CD 없이 (지난 음반처럼) 다운로드 코드만 있어도 된다. 일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문화적 차이를 생각했다. 일본은 아직 아날로그를 지향하기 때문에 CD가 없으면 안 사려고 한다. 다운로드 코드만 있는 앨범을 낯설어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노래마다 곡이 쓰인 배경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2집처럼 에세이를 포함한 앨범을 기대했고.
따로 책 계약을 해놨다. (웃음)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이랑의 가사-말’과 새로 쓴 분량을 합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언제 발매되느냐 물으니) 내년에 내야 하는데 아직 원고를.. 다음 달에 책이 나올 게 있고, 그다음에 또 나올 게 있고 막 이래서…

바쁘다, 쉬고 싶다, 너무 바쁘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올해 이미 5권의 책을 계약했다. 코로나 19란 상상 불가의 팬데믹이 불어 닥치며 일감이 줄어든 탓이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올라 그는 “1월 수입이 42만 원”이었음을 밝히며 트로피를 즉석에서 팔았다. 한 달 치 월세였던 50만 원을 벌었, 아니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랑의 활동은 계속됐다. 나름 이름도 알렸다.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타이틀 ‘늑대가 나타났다’의 한 가사가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듣고 나누며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전작보다 목소리를 긁고 강하게 표현하는 식의 창법 변화도 느껴졌다.
목소리가 어떤지에 대한 생각은 안 했었다. 어떻게 부르겠다 의도하지 않았으니까 듣는이가 동요 같이 부른다, 담백하게 부른다고 얘기 해주면 그냥 그렇구나 했다. 점점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고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멜로디에 얹어서 부르는 정도였는데… 목소리를 진짜 악기처럼 생각하고 작업하는 분들을 보니까 완전히 접근 방식이 달랐다. 나는 가사가 제일 중요한데 이들은 소리가 가장 중요하고. 아직은 어떻게 접근해야 목소리를 악기로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기서는 좀 더 크게 부르고, 더 긁으며 부르고 이런 것을 조금씩 시도 중이다.

음반의 시선이 나에게서 사회로보다 넓어졌지만 음악을 채우는 핵심 질료들은 전과 같다. 첼로의 혜지, 코러스의 혜미 등이 특히 각별할 것 같다.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하는 내게 늘 힘을 주는 조력자들이다. 대학생 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를 불렀다. 학교 게시판에 음악 할 사람을 찾는 글을 올렸는데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훌륭히 활동하고 있는 이길보라 감독만 답을 줬다. 둘이 한참 공연을 하다가 우연히 혜미가 내 공연을 보러 왔다. 이길보라가 떠났던 차여서 혜미를 막 꼬셨다. 코러스라도 해달라고.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을 하면서 드러머를 만났고 혜지를 만났고 프로듀서인 대봉이도 만났다. 그렇게 꾸려졌다.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에 힘을 보탠 합창단 ‘아는 언니들’은 어떤가?
음악을 가르치면서 다 같이 노래하고 소리 지르는 일들이 많았다. 항상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언젠가 이런 합창팀을 꾸리는 게 나의 원대한 목표였다. 그러다 우연히 아는 언니들 쪽에서 워크숍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랑스러움이 넘쳤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어서 더 매력적이기도 했고. 앨범 작업에 참여해달라고 먼저 제안했다.

합창단을 꿈꿨다고?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때 합창대회에 딱 한 번 나가 봤다. 가난한 축에 속했던 우리 학교만 빼고 모든 팀이 다 옷을 맞춰서, 그것도 화려한 성가대복 같은 가운을 입고 나왔더라. 우리는 각자 알아서 흰색 상의에 빨간 하의를 맞춰 입고 오는 거였다. 진빨강, 핑크에 가까운 빨강, 쿨톤, 웜톤 등 온갖 색이 다 섞인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느낀 어떤 부끄러운 감정이 생생하다. 이런 팀이 1등 하면 진짜 멋있는 건데. 우리가 노래를 잘 못 불렀나?

합창대회가 다양성을 포용할 줄 몰랐나 보다.
그래서 이번 ‘뮤즈스(MUZES)’ 영상을 찍을 때 까만색 졸업가운 제일 싼 거를 빌려서 다 같이 입었다. 한 벌에 5천 원 정도 줬다. (기분이 어땠냐 물으니) 하하하. 예전에 옷을 맞추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웃음)

방금의 일화처럼 아픔을 끌어다가 작품을 만든다. 이런 식의 창작이 자신을 소모하게 하진 않는지.
전혀.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은 내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뿐이다. 할 얘기가 너무 많고 살면 살수록 많은 걸 배우고 알게 되니까 어떻게 작품으로 낼지 정리가 안 될 정도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 내 이야기를 더 안 듣고 싶어 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를 느낀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있는 곳에 누군가가 얘기하러, 얘기 들으러 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넓은 작업실을 쓰는 것 역시 지금처럼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뮤지션 이랑으로 활동한 지 이제 10년 정도 됐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늑대가 나타났다’를 만들게 된 계기를 꼽고 싶다. 강남역 살인 사건 관련한 여성 집회에 초대돼서 노래를 부르게 됐다. 공연 의뢰가 왔을 때 엄청 겁이 났다. 집회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당시 개인적인 일로 인해 일절 밖으로 나오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대에 올라 다수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면 나중에 나를 도와줄 몇백 명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겠구나. 그날 기억이 좀 강렬하다. ‘신의 놀이’를 부르러 간 거였는데 그 곡을 따라 부르기 어려우니까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노래가 주는 연대의 힘을 느낀 것 같다.
자기 노래를 가지고 어떤 시위나, 집회 혹은 행사에 나와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한테는 ‘신의 놀이’ 정도가 전부였을 땐데 그 곡은 한번 듣고 기억하기 어려우니까. 모두 싶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를 써야겠다 한 거지. 후렴 정도는 따라부를 수 있으니 내게는 큰 성취다. (웃음)

랑은 어디서 쉼과 위로를 얻는지.
나는 쉴 줄 모른다. 그걸 못 배우고 못 해본 사람인 거다. 쉬는 날도 일정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미리 약속을 잡아 둔다. 조금만 시간이 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는 성격이다. 영원히 못 할 것 같은 게 명상일 정도로. 말없이 조용히 생각을 비우고 이런 건 너무 괴롭다. 소용돌이치는 이야기 속에서 그냥, 살고 있다.

힘을 한 번에 모아 태우는 별똥별이 떠오른다.
언니가 맨날 ‘너 일찍 죽을 거 같다’고 한다. (웃음) 내일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자살은 최대한 참으면서… 후회 없이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싶은데 또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니까. 이를테면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펴야 하니까 피고…

인터뷰 후 곧장 최소한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그러니 (거절해도) 양해를 부탁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니나 달라, 며칠 뒤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신을 태우고 스스로 타고 있는 건 아닐지 흠칫 손끝이 저릿했다. 랑이 만들고 나아가는 길에 사랑과 따뜻함만 놓여있기를 바란다. 상처를 덮고 하하하하 웃으며 해해해해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미룰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별똥별 말고 계속 반짝이는 별이 되기를. 그가 써내는 작품들처럼 랑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신의 놀이를 이어가기를 염원한다.

인터뷰: 박수진, 장준환, 정다열
정리: 박수진
사진: 정멜멜 작가 제공